본질이 없는 명분 다툼
본질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본질을 찾아간다. 참되게 살라고 한다. 본질은 변함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서로 다를 때도 있다. 본질을 놓고 힘겹게 싸움박질하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 엉뚱한 짓을 하고 있다. 마치 어쩔 수 없어 싸움을 위한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변질이 되고 있다. 잘못인 줄 뻔히 알면서 싫어도 다툰다.
특히나 정치판에서 흔히 볼 수 있듯 속이 훤히 들여다보여도 그저 정략적 물타기로 싸움질이다. 어떤 일이라는 것이 내 마음에 꼭 들 때가 있는가 하면 취향이 전혀 다를 때도 있는데 자신에게 맞추려 하면 소란할 수밖에 없다. 큰 틀에서 보면 크게 다르지 않아 그도 옳고 이도 맞다. 다만 누가 주도권을 잡았느냐에 따른 자존심에 명분 싸움일 때가 많다.
그런데 본질은 있되 명분이 없을 때도 있다. 직접 보거나 겪고도 느끼지를 못하면 있어도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주 무성한 숲속을 다녀오고도 나무를 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 아니다. 겉만 보거나 한쪽만 보고 모두가 그런 것처럼 쉽게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려 한다. 그러다 보면 모두를 아우르지 못한 일방적으로 일그러져 충돌할 수밖에 없다.
본질은 겉보다는 그 속에 응어리져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겉에서 맴돌다 속은 가까이 가보지도 못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왜곡될 수 있어 안타까운 일이다. 티브이 연속극을 보노라면 겉으로는 아주 추악해도 그 이면에는 사람으로서 도리나 진실을 보여주고 싶은 따스함이 있다. 본질이 무엇인지 그 맥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어도 딴짓하며 엉뚱하게 간다.
겉모습에 드러난 흥미진진함에 빨려들거나 속아서 그 속에 감춰진 본질을 간과하고 후회하면 안 된다. 알맹이 없는 껍데기만 보는 것이다. 본질은 좀처럼 쉽게 드러내려 하지 않다가도 어느 시점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빛을 발한다. 무언의 말을 속삭이고 손짓을 보이며 알아듣기를 바란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단순하게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 아니다.
올곧게 있어도 보는 이가 삐딱하면 제대로 보일 리가 없다. 그러다 보면 중심을 잃고 이러쿵저러쿵 혼자 나름대로 뒤흔들며 아는 척한다고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남의 말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귀가 얇아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다 혼쭐나기도 한다. 남의 말이 항상 틀린 것이 아니듯 옳은 것도 아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며 건너라.” 한다.
모두가 다 같은 하나의 마음으로 다가서야 할 본질이 있고, 지엽적으로는 각자의 마음이나 취향에서 바라보는 본질이 있어 다를 수 있다. 어찌 보면 옳고 그름에 앞서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나도 너도 모두가 틀린 생각일 때가 있어 더 아리송하게 한다. 본질이 없다기보다는 소홀해서 이면에 있는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너무 지나치게 오묘하여 찾지를 못하거나 너무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그냥 건성으로 지나치는 것이다. 어쨌든 자신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오는 허점이기도 하다. 이처럼 너무 느긋하다가 깜빡하게 된다. 본질은 멀리 있지 않다. 굳이 꼭꼭 감추거나 까다로움을 피우지도 않는다. 다만 마음이 한곳에 모이지를 못하면서 선입감이 끼어들고 흐려진다.
미리 단정하거나 앞질러 가며 눈까풀을 씌우면 제대로 보지 못해 판단하는데 혼선을 빚게 된다. 본질은 따로 있는데 답답하리만큼 엉뚱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나뭇잎이 아무리 아름답게 흔들리고 곱게 물이 들어도 나무 그 자체일 수 없고 어느 날 떨어지면 그뿐이다. 크고 작은 나무가 마찬가지다. 덩그러니 그대로 있을 뿐 나무 모두를 대변하지 못한다.
오늘의 본질은 단순히 꽃도 아니고 열매도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어도 아주 하찮은 지엽적인 것에 심각하게 티격태격 다툼질이다. 짚어도 너무 잘못 짚어 허방다리로 헛물켠다. 그만큼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본질을 아는지 모르는지 곁가지 몇 개쯤 없어도 그만인데 그것이 전부인 양 변죽만 울리며 설쳐대는 꼴이 안타깝게 한다.
주인은 따로 있는데 주변에서 얼씬거리며 섣부른 주인행세다. 들통나면 얄팍한 속셈에 웃음거리로 전락한다. 연속극 한 편 글 한 편도 무엇이 본질로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똑바로 보고 알아야 그만한 값을 한다.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주제 파악을 제대로 하라고 한다. 너무 지루해 외면할까 봐 곁들인 흥미에만 푹 빠져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소위 사탕발림으로 끝나면 안 된다. 겉만 핥다가 정작 알맹이는 언제 어디서 슬그머니 놓쳤는지 웃음거리가 되면 볼썽사나워진다. 요즈음은 여기저기서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명분 없는 다툼이 식상하게 한다. 속내를 알아야 어루만질 수 있다. 진정성이 느껴져야 한다. 알맹이는 없이 명분으로 본질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끝내는 부질없는 허튼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