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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에서는 만나가 사라져야 합니다 여호수아 5:12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만나는 먹고 배설물로 버려져야 할 양식이었습니다. 이유는 가나안에서는 더 이상 만나를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먹고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라는 곳을 지나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 새롭게 시작되는 삶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가나안에서의 첫 출발이 이제는 더 이상 만나를 먹을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만나를 먹을 수 없었다는 것은 예수가 사라졌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만나가 예수라는 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인들이 잘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만나는 먹어서 배설물로 버려야 할 양식이었습니다. 광야에서는 이 만나라는 양식이 백성들의 거의 주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주식이 사라졌다는 것은 이제 새로운 세상에 진입해 있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인구조사가 크게 두 번 등장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민수기 1장에서 한번의 인구조사와 민수기26장에서 두 번째의 인구조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의 인구조사는 시내광야에서의 인구조사였고 두 번째의 인구조사는 가나안의 초입 여리고를 목전에 둔 상태에서의 인구조사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번의 인구조사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었는데 바로 첫 번째의 인구조사와 두 번째 인구조사 대상인 백성들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인구조사 대상에 들어간 사람은 두 번째 인구조사에서는 다 죽은 후의 인구조사라는 것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입니다. 40년이라는 광야를 지나면서 첫 번째 인구조사를 받았던 사람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1차 인구조사에서 만나를 먹고 살았던 자들은 다 죽고 다시 태어난(거듭난) 2차 인구조사의 대상이 된 자들만이 약속의 땅에 입성하는 것입니다. 만나를 먹고 죽어야 천국(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구약에 있었던 사건으로 오늘날의 교회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민26;64-65 “모세와 제사장 아론이 시내 광야에서 계수한 이스라엘 자손은 한 사람도 들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 하셨음이라 이러므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이렇게 2차 인구조사를 받은 백성들만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렇게 가나안에 입성하는 그 백성들이 먹었던 광야에서의 양식인 만나가 가나안에서는 사라지고 드디어 가나안의 소출(열매)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만나, 즉 예수라는 떡은 가나안에 들어가면 못 먹는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로 이런 상황을 그대로 연결시켜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나의 주심이시고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인 것으로 믿고 살고 있습니다. 최후 심판 때에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콘보이(convoy)해 주실 주님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떡이 여러분에게 남아 있습니까? 버려졌습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예수라는 떡은 여전히 여러분 앞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에게서 버려져야 할 광야에서의 만나인데 여전히 버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바로 여러분이 광야에 있다는 것이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증거인 것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 예수라는 광야의 떡은 먹고 버려야 하는 것인데 여전히 그 떡을 구하고 사모하고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예수라는 떡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일까요? 예수님 살아생전 광야에서 오병이어 칠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였을 때에 예수를 좇았던 무리들은 무엇 때문에 예수를 따랐느냐는 것입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떡을 먹고 배부르기 위해 예수를 따랐던 것입니다. 떡을 먹고 배부르기 위함이라는 것은 나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주님을 따랐던, 즉 주님을 나의 목적에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어버리고 하나님은 나의 목적을 이루어주는 하인처럼 되어버린 것이지요. 성경은 이것을 죄라고 정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사람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사람의 목적달성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해먹는다고 하는 그것이 바로 썩을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썩는 양식(만나)은 어떻게 해야 먹지 않을 수가 있는가요? 어떤 방법론을 통해서 반드시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만나를 못먹게 되고 가나안에서의 소출을 먹게 됨을 말씀 드립니다. 일단 그 만나는 일차적으로 먹어야 합니다. 먹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도 넘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전도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면 영생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살을 먹는다는 의미가 바로 만나를 먹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차적으로 살을 먹는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살을 먹는다는 것은 바로 영접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께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의 살을 먹어야 합니다. 즉, 만나를 먹는 것이고 이것이 예수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만나를 먹는 과정이 에덴 동산에서 최초로 시연 됐는데 바로 선악과 사건입니다. 인간의 욕심에 의해 선악과를 먹는 아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먹으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는다고 하셨을 뿐입니다. 인간이 먼저 요구하여 먹은 것일 뿐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인간의 욕심으로 예수를 이용해 먹는 것이 바로 선악과를 먹는 것이고 광야에서 원망하며 달라고 한 것이 역시 만나였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소원성취를 위해서 매진하는 욕심이 바로 만나를 달라고 하는 원망이었으며 선악과를 내 손을 내밀어 따먹는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인들의 신앙생활이 다 이러한 모양새라는 것입니다.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가 그러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먹는 열매는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요? 바로 앞에서도 일부 언급하였듯 예수를 영접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를 영접한 그런 모양과 동일하게 지금 이 시대에 보내지는 예수를 영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무슨 예수가 또 오느냐고 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역사의 종말이 되는 그 순간이 언제인지는 몰라도 예수는 보내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3: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글은 이천년 전의 그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이야기가 절대 아닙니다. 인자(사람) 되셨던 예수님이 왜 또 오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분명하게 사람(인자)이 한번 죽는다고 하였지요 두 번 죽기 위해 다시 오시는 예수는 없습니다. 윗 두 구절에서 보낸다고 하는 예수는 바로 천사를 보낸다는 하는 그 천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하나님의 보내신 자 안에서 함께 성도되는 모든 자들을 예수로 지칭하고 있는 내용인 것입니다. 천사의 역할이 구원얻을 후사들을 위해 섬기라고 보내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 천사가 예수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이 땅의 육신을 입을 사람을 상대할려면 반드시 중보자를 대동하시기에 그러합니다. 중보자인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 사람(천사)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시기에 그러합니다. 이렇게 보내지는 자를 영접하는 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만나를 먹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낸 자(천사, 예수) 안에서 양육을 받는 과정이 광야 40년의 인생길 바로 우리 신앙의 삶이면서 만나를 먹는 과정이고 이 만나를 먹는 과정이 끝나면 약속의 땅에서의 소출을 먹게되는 삶을 살게 되는데 이 만나를 종식하는 사건이 바로 신약의 제자들이 예수를 떠나보내게 되는 오순절의 사건입니다. 예수가 제자들의 안목에서 어떻게 사라졌습니까? 바로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내신 자였다는 것이며 그 하나님의 행위가 돼 하나님의 뜻대로만 행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어떤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한쪽은 그 예수 없으면 못살 것 같은 무리와 다른 한쪽은 그 예수가 없어도 하나님이 성도를 이끌고 계시는 것을 아는 무리들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일차적으로 보낸 자를 영접하여야만 만나를 먹은 자가 되고 이차적으로 그 만나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니라 그 만나를 내리신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 바로 성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된 자(가나안에 들어간 자)들은 그 예수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냥 보내진 자(천사, 예수)와의 관계 안에서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다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만나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출처; 네이버카페 생명의 만나 남용모 목사 유튜브 남용모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