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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氣三昧廻天破身功
오송학은 정녕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니 귀뿐만 아니라 눈마저 의심해야 했다.
청의인이 도작(屠爵)이라는 사실은 접어 둔다 쳐도..
장발소년이 진정 풍작(風爵)이란 말인가?
그것도 나이가 백 육십 사 세나 된...
그렇다면 그는 말로만 듣던 반로환동(反老還童)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얘기가 아닌가?
이때,
장발소년 풍작은 오송학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자 때를 만난 듯 다시 노성을 버럭 질렀다.
"이 놈, 어서 무례를 사과하지 못할까?"
그리고는 내심 득의 어린 웃음을 흘렸다.
'으흐흐.. 네 놈이 이번에도 바락바락 대드나 어디 두고 보겠다!'
그러나,
두고 볼 것도 없이 오송학은 즉시 냉랭하게 쏘아붙였다.
"흥! 내가 왜 사과해야 한단 말이오?
당신이 진작에 사실대로 말했으며 그런 일이 없었을 것 아니오?"
"뭐야? 내 죽음을 무릅쓰고 혈지(血池) 속으로 뛰어들어
한옥비차를 입에 물려주어 목숨을 구해 주었더니..제기랄!
순 헛고생을 했구나, 헛고생을 했어."
풍작은 분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 설식 바닥을 팔짝팔짝 뛰었다.
바로 그때였다.
문 쪽으로부터 한 줄기 물처럼 고요한 음성이 들려 온 것은..
"이제(二弟), 그만 참으시게."
말과 함께 안으로 두 사람이 들어섰다.
일남일녀(一男一女),
단아한 문사(文士) 차림의 백의중년인(白衣中年人)과
한 송이 붉은 꽃을 연상시키는 자의소녀(紫衣少女)였다.
부지중 그들을 향해 시선을 돌린 오송학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것은 두 가지로 인한 것이었다.
하나는 백의중년인의 기도(氣度)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그의 전신엔 감히 범접치 못할 위엄과 함께
탈속(脫俗)한 듯 고아한 기품이 은은히 서려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의소녀의 자태(姿態)에 대한 감탄이었다.
자고로,
사내란 끊어질 듯 가는 허리에 풍만한 가슴, 새까만 눈동자와 머릿결,
타는 듯한 붉은 입술에 시리도록 흰 치아,
그리고 투명하리만큼 하얀 살결의 여인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다 갖춘 여인이란 극히 드물다.
헌데 자소녀는 그 모든 것을 완벽히 갖춘 여인이었다.
그녀는 온갖 미(美)의 정화(精華)를 한 몸에 받고 태어난 듯
빼어나기 이를 데 없는 자태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흠이라면 전체적으로 차가운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것 뿐..
어쨌든,
도작은 물론 분노에 길길이 날뛰던 풍작마저도
백의중년인이 나타나자 즉시 지극한 공경의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을 본 오송학의 뇌리로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유작(儒爵)...저 사람은 유작이 분명하다!'
그의 예측은 말할것도 없이 정확했다.
'헌데...저 소녀가 요작(妖爵) 비영영(飛暎暎)...?
맙소사, 그렇다면 저 여자도 반로환동에 이른 할멈이라는 얘기가 아닌가?'
오송학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토록 아름다운 미소녀가 할멈이라니..
이런 경우는 무공이 오히려 이율배반적(二律背反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때 유작이 옆으로 다가와 오송학의 완맥(脘脈)을 지그시 잡았다.
그리 오래지 않아 그의 입에서 신음같은 일성이 흘러나왔다.
"십이중루(十二重樓)로 돌아드는 모든 혈맥(血脈)이 완전히 폐쇄되었군."
그러나 그의 경악성은 감회 어린 탄성으로 바뀌었다.
"노부의 눈은 정확했다.
천하에 이런 상태로 살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이 아이 뿐일 것이다."
도작과 풍작도 그 말에 동감이라는 듯 역시 감회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자의미소녀만은 관심조차 없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한켠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무슨 연유인가?
좌중에는 잠시 의미를 알 수 없는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 침묵은 오래지 않아 도작 막우로 인해 흩어져 버렸다.
"말이 길면 정(精)만 쌓이고 시간을 오래 끌면 회한(悔恨)만 남는 법...
대형(大兄), 소제가 대형의 거둠을 받은 지도 어언 백 오십여 성상(星霜)..
그 동안 대형께서 베풀어주신 은혜 미처 다 갚지도 못하고 소제는 먼저 갈가 하오.
부디 먼저 가는 아우를 탓하지 마시길..."
말과 함께 그는 품속에서 얄팍한 책자 한 권을 꺼내
오송학이 누워 있는 석탁 위에 올려놓았다.
유작이 나직이 탄식했다.
"일제(一弟)여, 먼저 가고자 하는 일제를 막지 못하는 우형(愚兄)을 용서하시게,
비록 일제의 몸은 간다 하나 일제의 분광환영검법(分光幻影劍法)은
여전히 천하제일(天下第一)의 검법(劍法)으로 남아
위선(僞善)과 혼세탁진(混世濁塵)을 벨 것이네."
그 말이 끝난 순간 풍작 천가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대형, 이형(二兄)과 소제는 한날 한시에 태어나지는 않았으되 같이 죽기로 맹세한 사이외다.
부디 함께 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길...."
"이제(二弟)...!"
"소제는 대형의 거둠을 받아 한(恨)을 삭일 수 있었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형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오."
"감사할 사람은 오히려 우형이네, 잘 가시게.
이제의 분광환영장법(分光幻影章法)은 여전히 천하제일장법(天下第一章法)으로 남아
구주(九州)와 팔황(八荒)을 뒤덮을 것이네.
우형도 곧 뒤따를지니 먼저 간 삼제(三弟)에게 안부나 전해 주시게."
"뒷일을 부탁드리오. 대형...
풍작은 말을 마치자 품속에서 한 권의 책자를 꺼내 도작이 꺼내 놓은 책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때,
유작의 입에선 비감어린 싯귀가 나직이 새어 나왔다.
술은 끝났지만 그대 가면 서운하네.
밝은 달 뜰 때까지 기다렸다 돌아가소.
달뜨고 길 밝을 때 보내고 싶구나.."
시를 읊는 그의 두 눈에 문득 흥건한 눈물이 괴어올랐다.
일련의 대화를 들으며 의혹을 금치 못하던 오송학은
그 시를 듣는 순간 비로소 그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자...잠깐!"
그는 다급히 입을 열어 그들을 제지하려는 순간이었다.
번-쩍!
번쩍!
도작과 풍작의 몸이 허공으로 둥실 떠오르는가 싶더니
돌연 찬란한 광휘(光煇)로 돌변했다
. 동시에 오송학의 몸도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그 짧은 순간에 오송학의 뇌리로 하나의 광경이 번뜩 스쳐갔다.
'이것은 광덕별부에서 환작(幻爵)이 펼쳤던...
그렇다면 환작도..! 아아... 이제야 그것을 깨닫다니..'
그렇다.
도작과 풍작은 지금 이기삼매회천파신공(以氣三昧廻天破身功)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오송학은 당시 공력을 소유하지 못한 탓으로
이기삼매회천파신공이 펼쳐지는 순간의 충격을 이기지 못해 정신을 잃었으나
지금은 모든 상황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허공으로 떠오른 도작과 풍작의 몸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한껏 부풀어오르며
점차 동공을 파열시킬 듯 극렬한 광채를 폭사시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한 순간,
퍽! 퍽!
두 사람의 몸이 폭죽 터지듯 터져 올랐다.
그들은 놀랍게도 스스로의 육신을 터뜨린 것이었다.
그들의 몸에서 터져나온 피와 살점들은 석실의 공간을 자욱이 뒤덮더니,
이윽고,
폭포수처럼 한꺼번에 오송학의 전신을 덮어 버렸다.
오송학이 받은 놀라움의 충격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의 사고(思考)로서는 이 끔찍한 광경을 도대체 이해조차 할 수 없었다.
'대체 이들은 무엇때문에 날 위해..!'
오송학의 생각은 더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온몸이 불에 데이기라도 한 듯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 때문이었다.
아니 그것은 단순히 뜨거운 느낌이 아니었다.
고통,
그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이었다.
마치 도작과 풍작의 피와 살점들은 오송학의 피부에 닿는 즉시
극점(極點)의 불꽃으로 화하여 타오르고 있는 듯했다.
"으윽..!"
오송학의 입에서 듣기 거북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몸이 송두리째 익어 버리는 듯한 고통은
촌각(寸刻)을 다투며 그의 심장으로 소용돌이쳐 오건만 몸은 꼼짝도 할 수가 없다
. 그러하니 그 고통이야 오죽하겠는가?
"으흑!"
이번엔 처음보다 더 극심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순간 그의 귓전으로 유작의 준엄한 음성이 들려 왔다.
"송학, 너는 한 마디도 하지 말고 한 생각도 떠올려서는 안된다.
개구(開口)와 잡념은 모든 공(功)을 수포로 돌릴 것이다."
오송학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고통,
고통을 참으라면 어떠한 고통이라도 참아 낼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인가?
도대체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저토록 참혹한 죽음의 길을 가게 만든 것인가?
그 어떤 한(恨)이 있기에...
그 어떤 염원(念願)이 있기에...
오송학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모든 의문은 이 고통이 끝나면 저절로 풀리리라!
어느 한순간 극렬한 싸움이 오송학의 내부에서 시작되었다.
그 하나는 고통에 굴복하고 입을 열어 이 고통을 호소하라는 본능의 외침이었다.
다른 하나는 고통 따위에겐 굴복할 수 없다는 오송학 특유의 이성(理性)과 끈기의 외침이었다.
싸움은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형세는 감정의 승리로 기우는 듯했다.
심장과 오장육부, 피와 뇌수, 그리고 근육,
그 모든 것들이 감정의 외침에 따를 것을 맹렬히 강요해 왔다.
실지로 그의 피와 살은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이 순간의 고통을 해소시키는 것만이 그의 삶보다 더 중요한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오송학은 결코 나약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 의지가 강한 인간이었다.
미약하게 잦아들던 인내와 끈기의 외침이 한 순간 노도처럼 그의 전신을 떨어 올렸다.
'물러가라!'
순간,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그의 표정이 평온을 되찾았다.
고통은 오히려 처음보다 더 극심했지만 더 이상 아무런 느낌도 주지 못했다
. 오송학은 오히려 고통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허공에 떠 있던 그의 몸이 서서히 석탁 위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의 몸이 석탁 위에 처음의 자세대로 떨어져 내린 순간,
유작이 언제 다가왔는지 두 손을 오송학의 단전혈(丹田穴)과 백회혈(百會穴)에 댔다.
이때,
오송학은 여전히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실로 초인적인 의지로 그 고통을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돌연 청량하고 시원하기 이를 데 없는 기운이 머리 위에서 쏟아져 들어왔다.
동시에 유작의 나직한 음성이 들려 왔다.
"송학, 너는 아주 잘 참아 주었다. 이제 노부의 내력을 따라 들끓는 기운들을 인도하도록 해라."
오송학은 입을 다문 채 유작이 이끄는 대로 체내의 뜨거운 기운을 유도해 갔다.
그러기를 무려 십이주천(十二週天)...
오송학은 막 십이주천이 끝난 순간 돌연 뇌리를 강타하는 아찔한 충격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유작이 오송학의 몸에서 손을 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그는 몹시 피곤한 얼굴로 지금까지 있었던 일련의 광경을
한 올의 표정조차 떠올리지 않고 차갑게 지켜보고 있던 자의미소녀를 돌아보았다.
"이리 오너라."
자의미소녀는 대답도 없이 유작의 옆으로 다가섰다.
유작은 품속에서 두 권의 책자와 한 통의 서찰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이제 너에게 달렸다.
저 아이는 깨어나는 순간 과도한 양기(陽氣)가 폭발할 것이다.
그때 네가 음기를 보충해 주어야 한다."
"그런 후, 너는 저 아이를 지옥겁화천(地獄劫火泉) 속에 던져라.
그러면 저 아이는 하룻동안 지옥겁화천의 양기(陽氣)를 흡수하고 스스로 밖으로 기어 나올 것이다.
그때 너는 다시 저 아이의 몸에 음기(陰氣)를 보충해 주어야 한다.
이 일련의 일은 보름 동안 거르지 않고 계속해야 한다. 너는 자신 있느냐?"
순간,
자의미소녀의 입이 처음으로 열렸다.
표정만큼이나 싸늘한 음성..
"물론이예요. 이 일은 당신과 나의 엄연한 계약이니까요."
무슨 말인가?
계약이라니...
이때 유작의 얼굴에 씁쓸한 고소가 떠올랐다.
"옥교(玉嬌), 이 일을 단순히 계약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너의 희생은 그만한 보답을 받을 것이다."
"당신의 세 동생처럼 말인가요?"
유작을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너는 훗날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이어 그는 몸을 돌리며 말을 계속 했다.
"보름 후, 저 아이가 의식을 되찾으면 저 아이에게 혈부(血府)를 열게 하고
너도 저 아이와 함께 무공을 익히거라."
"계약 조건이니 당연한 일이예요."
"허헛..그래,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노부는 네게 한 가지 일러두고 싶은 말이 있다."
"암흑마천(暗黑魔天)은 미증유(未曾有)의 거력(巨力)을 가진 세력이다.
네가 정히 원수를 갚고 싶다면 네 스스로 저 아이를 도와야 할 것이다."
"내가 저 사람과 함께 행동해야 한다는 건가요?"
"강요는 아니다. 단지 서로에게 이롭다는 뜻이지..."
유작은 그 말을 남기고 느릿하게 석실 문을 향해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막 문을 나서는 그의 입에서 나직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이제 마지막 안배(按排)만이 남은 것인가..?"
마지막 안배,
그것은 과연 무엇이며 어떤 형태로 오송학 앞에 나타날 것인가?
모를 일인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유작은 조금전 자의미소녀를 가리켜 옥교(玉嬌)라 불렀었다는 사실이었다.
천하에 알려진 요작(妖爵)의 이름은 분명 비영영(飛暎暎)임에도..
그렇다면 자의미소녀는 요작이 아니었단 말인가?
* * *
사흘(三日),
만 사흘이 지났다.
그때에야 비로소 죽은 듯 미동도 없이 누워 있던 오송학의 얼굴에 홍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떠올랐다 싶은 순간 그것은 기이한 열기(熱氣)로 돌변하여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훅...!"
그의 입에서 뜨거운 숨결이 토해졌다.
한켠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자의미소녀는
일순 교구(嬌軀)를 가늘게 떨더니 이내 모종의 결심을 굳힌 듯
꽃잎처럼 붉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녀는 옥수(玉手)를 상의(上衣) 옷고름으로 가져갔다.
사르륵...!
옷고름이 풀리는 소리가 좁은 실내의 공간을 미묘하게 울렸다.
자색 상의가 바닥으로 나풀 떨어져 내렸다.
학(鶴)을 닮은 목의 유려한 호선(弧線)을 따라
아릴 듯 눈부신 여인의 하얀 속살이 상큼 자태를 드러냈다.
이어 자색 치마가 앙증스런 여인의 발등 위로 눈처럼 쌓이며
곧고 미끈하게 뻗은 두 다리가 은어(銀魚)처럼 빛을 발했다.
자의미소녀는 서두르지 않았다.
아랫배를 칭칭 동여맨 붉은 천을 천천히 풀어 한 줌도 안될 듯 가는 허리를 드러낸 후..
잠시 동요의 표정을 짓고는 옥수를 가슴 부위로 옮겨갔다.
툭!
연분홍빛 젖가리개가 풀리며 날 듯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하나의 눈부신 소녀의 나신이 오송학의 동공에 투영되었다.
그의 두눈에 붉은 핏발이 곤두섰다.
그는 이순간 정상적인 사고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그는 오직 체내에서 폭발할듯 뿜어지는 가공할 양기를 발산할 상대가 필요할 뿐이었다.
"크아아!"
그는 야수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괴성을 내지르며
소녀의 나신을 향해 뛰어 들었다.
소녀는 냉랭한 눈으로 그 모습을 쏘아보더니
옆으로 한 발짝 물러서며 일장(一掌)을 후리쳤다.
펑!
오송학의 몸이 제멋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으음..!"
그의 입에선 여전히 뜨거운 숨결을 실은 괴성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허나 그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는 듯
충혈된 눈으로 소녀의 나신을 탐욕스럽게 바라보기만 할뿐이었다.
소녀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녀가 몸을 숙이는 바람에 머리결이 그의 얼굴에 스쳤다.
한 순간 그는 자신의 체내에 뜨거운 감정이 솟구침을 느꼈다.
허나 그녀의 표정은 얼음조각처럼 차디찼다.
이 순간 그녀는 인간의 감정을 저버린 듯 싶었다.
이윽고 그녀의 손에 의해 오송학의 나체가 완전히 드러났다.
그 순간 소녀의 몸에 잔 경련이 일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몸을 가리고 있던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붉은 고의를 벗어 내렸다.
순간 석실의 천정으로부터 뿜어지던 야명주의 불빛이 격한 파동을 일으켰다.
오오..
그것은 도발이었다.
유혹의 한계를 넘어선 격정적인 도발!
"으음.."
그녀는 뱀처럼 부드러운 동작으로 오송학의 나신위로 걸터앉으며 나직한 신음을 발했다.
오송학의 몸 일부는 그순간 터질듯한 기세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의 한쌍 아름다운 봉복에 순간적으로 두려움이 빛이 스쳤다
. 허나 그녀는 이내 결심을 굳힌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몸을 움직였다.
한순간 불의 칼이 몸을 파고드는듯한 엄청난 통증이
그녀의 몸 일부에서부터 전신으로 무섭게 확산되었다.
그녀의 몸이 화살에 맞은 사슴처럼 파르르 경련하고..
눈가에 한줄기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린건 거의 동시였다.
그녀는 고통을 참아내며 서서히 몸을 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풍(熱風)!
두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소리는 점점 한 정점(頂点)을 향해 고조되고 있었다.
"하아.."
"으음.."
대체 누구일까?
오로지 복수의 일념(一念)으로 유작(儒爵)과의 계약에 의해
여인의 가장 소중히 해야 할 순결을 서슴없이 바친 이 소녀는..
빙옥교(氷玉嬌)!
운명은 그녀를 빙옥교라 이름하였다.
* * *
빙옥교는 축 늘어진 오송학을 허리에 끼고 석실을 나왔다.
오송학은 여전히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수 없는 상태였다.
석실 밖은 하나의 긴 회랑(回廊)이었다.
빙옥교는 회랑을 따라 걸었다.
그녀는 회랑의 끝에 위치한 문 앞에까지 걸어간 후에야 걸음을 멈추었다.
문은 주사 빛을 띠고 있었다.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몹시 견고하게 보였다.
빙옥교는 문 앞에 나가 서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문 옆에 난 조그만 볼록체를 가볍게 눌렀다.
그그긍...
일진의 굉음과 함께 문이 좌우로 갈라지며 열리기 시작했다.
순간,
화르륵!
갈라진 문틈으로 시뻘건 불길이 독사의 혓바닥처럼 몰아쳐 나왔다.
동시에 살을 녹일 듯 가공할 열기(熱氣)가 후끈 끼쳐 들었다.
헌데 문이 반쯤 열린 순간이다.
빙옥교가 오송학을 번쩍 들어 불길이 이글거리는 안으로 집어던지는 것이 아닌가?
이어 그녀는 지체없이 기관을 작동시켜 주사빛 문을 닫아 버렸다.
대체 무슨 일인가?
설마하니 그녀는 오송학을 불에 태워 죽이기로 마음먹기라도 했었단 말인가?
모를 일인데...
화르르륵!
화아악..
지옥(地獄)의 마화(魔火)인가?
꽃뱀의 무수한 혓바닥인가?
오송학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끝없는 불구덩이 속으로 한없이 떨어져 내렸다.
이미 죽은 것인지...
아니면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깊은 잠에 빠져든 것인지..
오송학은 이글대는 불 속을 떨어져 내리고 있음에도 한 마디 신음조차 뱉아내지 않았다.
쿵!
요란한 둔음과 함께 그의 몸이 바닥에 떨어져 내린 것은 잠시 후의 일이었다.
바닥은 암회색(暗灰色)의 암반(岩盤)이었다.
암반은 둥근 원형(圓形)을 형성하고 있었다.
암반을 중심으로 반장여 거리의 사방 벽과 위쪽에선 가공할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구천(九泉)의 화열지옥(火熱地獄)이라 함은 바로 이런 곳을 두고 이르는 말이리라.
이때,
파츠츠츠츠...
사방의 불길로부터 마치 폭죽이 터지듯 새파란 불꽃이 일시에 폭사되었다.
그 불꽃이 폭사된 방향은 다름 아닌 암반 위에 죽은 듯 누워 있는 오송학 쪽..
오송학의 벌거벗은 전신은 폭사되는 불꽃으로 하여 순식간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죽은 듯 신음조차 없이 미동도 않고 누워 있을 뿐이었다.
허나 그보다 놀라운 것은 그토록 극렬한 불꽃을 받고 있음에도
오송학의 몸은 시뻘겋게 달아오르기만 할 뿐
탄다거나 하는 등의 변화는 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괴사(怪事)!
아무리 천하에 기사괴변(奇事怪變)이 많다 하나 이는 정녕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아닌가?
그렇다. 이 놀라운 광경은 이곳이 바로 지옥겁화천(地獄劫火泉)이기에 가능했다.
무릇 천지간(天地間)의 모든 만물(萬物)은 서로 상반된 대립의 이치로 이루어진다
. 하늘(天)과 땅(地), 해(日)와 달(月), 불(火)과 물(水) 등..
양(陽)과 음(陰)은 필연적으로 공존(共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곧 음양상극(陰陽相剋)의 이치이다.
헌데 천하엔 그 음양상극의 이치를 벗어난 곳이 단 한곳 존재하니..
일체의 음(陰)의 기운을 거부한 채 오로지 양(陽)의 기운만을 생성시키는 곳,
그곳이 바로 전설의 지옥겁화천(地獄劫火泉)인 것이다.
만약 지옥겁화천에 생명체(生命體)가 떨어지면
그 생명체는 순수한 양(陽)의 정화(精華)를 한 몸에 받게 된다.
다시 말해 양(陽)의 정화로 인한 미증유의 힘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충만된 양기(陽氣)를 지순한 음기(陰氣)로써 즉시 순화시켜 주어야 가능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양(陽)의 정화가 폭발하여 죽음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하면 유작이 빙옥교를 오송학과 함께 남게 한 것은
바로 그러한 연유로 인한 안배가 아니겠는가?
............
* * *
지옥겁화천의 하루가 지났다.
오송학은 유작의 말대로 무서운 괴력(怪力)을 발휘하여 지옥겁화천을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빙옥교와의 예정된 정사(情事) 후,
그는 다시 축 늘어진 몸으로 지옥겁화천에 던져졌다.
이틀, 사흘, 나흘...
오송학은 어김없이 하루에 한 번씩 지옥겁화천을 뛰쳐나왔으매,
그때마다 빙옥교는 입술을 짓깨물며 야수처럼 다가드는 그에게 몸을 내주곤 했었다.
허나 참으로 알수 없는 것이 인간지사였다.
빙옥교는 오송학과의 정사(情事)가 거듭되면서 점차 고통이 아닌 쾌락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그녀가 아무리 마음속으로 그 쾌락을 거부하려 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어찌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인가?
그 이율배반적인 정사(情事)는 빙옥교를 깊은 혼돈으로 몰아넣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보름째 되는 날,
이 날도 오송학은 어김없이 지옥겁화천을 뛰쳐나왔다.
허나 지옥겁화천은 이미 예전의 그 무서운 지옥겁화천이 아니었다.
그토록 가공하던 극양지기(極陽之氣)는 오송학의 체내로 모조리 흡수되어
그저 싸늘한 바람만이 감돌뿐이었다.
어쨌든-
오송학은 또 한차례 빙옥교와 정사를 한 후 늘 그랬던 것처럼 몸을 축 늘어뜨렸다.
헌데 이 날은 뭔가 달랐다.
오송학의 몸에서 전에 없던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우두두두둑!
쩌저저적..
뼈마디가 어긋나는 소리인가?
괴이한 음향과 함께 그의 전신 근육이 제멋대로 불거졌다가는 오므라들고
, 오므라들었다가는 다시 불거진다.
빙옥교는 그런 오송학의 변화를 망연자실한 눈으로 응시했다.
'맙소사!'
허나 이변(異變)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피부, 그의 전신 피부가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듯 서서히 벗겨지는 것이었으니..
오오!
그러했다.
이는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꿈에서조차 이루길 갈망하는
탈태환골(脫胎換骨)의 현상이 아닌가?
한 겹의 피부가 벗겨지며 드러나는 것은
여인조차 부러워 할 투명하리만큼 희디흰 또 하나의 피부요,
한 겹의 피부가 완전히 벗겨진 순간 번쩍 뜨여진 두 눈은
한 마디로 무저(無底)의 심유한 대해(大海)라.
탈태환골(脫胎換骨)!
오송학은 자신도 모르게 새에 탈태환골을 이룬 것이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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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된 모습을 보면 기분이 어떨까?
감사 드립니다
즐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