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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19:32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중식의 대가 이연복 셰프가 있습니다. 그는 지금 성공했습니다. 그는 자기 가게의 이름은 화목란으로 했습니다. 중국 여인의 이름입니다. 효녀입니다. 아버지를 위해 대신 군대에 나갔다고 알려졌고 영웅입니다. 그녀의 이름을 음식점 이름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럴 이유가 있겠죠
그는 22살에 대만 대사관 주방장 자리에 오를 만큼 빠르게 실력을 인정 받았습니다. 8년여간 근무하면서 운명의 짝을 만나 결혼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사와 대사 부인을 위해 요리하기보다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일본행을 선택했습니다. 당시에 인터넷이 없고 새로운 것에 대해 고민하던 중에 일본에서는 10배나 돈을 번다는 친구 말에 그냥 일본으로 간 것입니다.
그때 이연복은 6살, 7살 자식들을 한국에 남겨두고 일본으로 갔습니다. 이연복은 고생하는 데 애들 데려가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혼자 가려고 했는데 아내가 죽어도 쫓아오겠다고 한 것입니다. 할 수 없이 부부가 갔습니다. 결국 자녀는 부모의 자치가 된 것입니다.
이연복은 배수의 진을 치고 한국에 있는 집과 세간살이까지 전부 정리했습니다. 일본에서 애들 생각나면 다시 돌아올 것 같았습니다. 일본에서 일하다가 공중전화에서 애들과 가끔 통화하면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을 버텼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생활을 꾸준히 해도 발전이 없었습니다. 매일 거기서 거기였습니다. 돈을 어느 정도 벌어도 전부 생활비로 나갔습니다. 아이들이 중학교 3학년쯤 돼서 아이들끼리 일본으로 왔는데 공항에 마중을 갔는데, 바로 옆에 있었는데 몰라봤습니다.
이연복은 “일본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지병이 있으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연락받고 들어왔는데 벌써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눈물이 하나도 안 났습니다. 돌아가시고 나서 저녁에 천장을 보는데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습니다. 돈 많이 벌어서 효도하자고 하는 데 부질없습니다. 한 번이라도 더 가서 뵙고 자주 얼굴을 보여드리고 수다 떠는 것도 효도입니다. 나중에 한국에 와서 가게를 차릴 때 매장 이름을 놓고 고민을 했습니다. 그때 ‘뮬란’이 떠올랐습니다. 원래 이름이 화목란입니다. 효도에 대한 그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짐승도 압니다. 하물며 사람이라면 당연히 부모에게 잘해야 하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부모에게 진심으로 효도하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시면서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것이며 5계명에서 십계명까지는 인간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것인데 가장 첫 번째 5번째 계명이 내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당연하게 잘 지키는 것이라면 굳이 지키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 문제가 있거나, 있을 것을 아시기 때문에 계명으로 못을 박아 놓으신 것일 것입니다.
첫째 부모님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공경하라는 히브리어 원어는 ‘카베드’입니다. 그 뜻은 ‘간’ 혹은 ‘무겁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간은 소화를 돕고 피를 걸러줌으로 해독작용을 합니다. 한번 손상을 입으면 회복이 어렵습니다. 생명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는 간처럼 소중한 존재인 것입니다.
부모는 정말 나에게 소중한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 며칠 전에 최 철규 권사님이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45세에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고생 고생하시다가 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고, 안타깝고,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남자는 젊어 군대에 가서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은 기간을 잊지 못합니다. 그래서 평생 군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의 살아온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외롭고 배고프고, 고통과 공포스러움을 겪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너무도 힘든 훈련을 하고 숙소에 들어와 잠을 자고 있는데, 깨우더니 얼차레를 주는 것입니다. 너무 힘듭니다. 위로가 필요할 때입니다. 교관은 더 힘들게 몰아세웁니다. 숨이 차고 육체의 한계점에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교관들이 어머니 은혜를 노래하게 합니다.
눈물, 콧물 뒤범벅이 되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마음이 읽힙니다.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부모님의 은혜가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한 것인지를 생각나게 한 것입니다. 참 많이 울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걱정덩어리였던 것입니다. 염려 덩어리였던 것입니다. 그 분들의 헌신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소중하게 여기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여자는 결혼해서 출산하게 될 때에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고 합니다. 어느 분이 딸이 출산하게 되어 병원에 갔습니다. 딸이 여러 시간의 산통 끝에 자식을 낳았습니다. 퉁퉁 부은 모습으로 분만실을 나오는 딸을 보며 안쓰러워 울고, 또 자기 어머니가 자기를 낳을 때에 얼마나 힘들고,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에 한 번 울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뉴욕에 살던 디자이너 포스터 허팅턴은 친구들과의 파티에서 이 질문을 생각해냈습니다. 그 질문은 만일 집에 불이 난다면, 당신은 무엇을 구해 내겠습니까?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그 질문의 핵심은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입니다.
나이 어린 세대들은 핸드폰, 노트북, 외장하드 등을 골랐고, 나이 든 세대들은 주로 필름, 일기, 편지, 수첩 등을 선택했습니다. 품목은 확연히 차이가 나지만 그 기능은 거의 동일한 것이기도 하다. '추억'을 담는 기능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추억'이지 값어치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추억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했던 추억입니다. 다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 시간은 돌이킬 수 없지만 부모님들의 희생은 나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분들이 헌신은 그 어떤 것으로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이야기하면 울음이 먼저 나오는 것입니다. 그 추억 때문입니다. 그 귀하고 소중한 희생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내 안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저장된 잊지 말아야 할 그 추억이 나이가 먹으면서 희미해집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그때 마음 먹었던 그 마음이 변해 있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에 하나님이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 부모에 비중을 높이 두라는 뜻입니다.
그 말은 무겁게 대하라는 뜻입니다. 부모님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부모님을 진실하게 존경심을 가지고 대하라는 뜻입니다.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한 금융 그룹에서 광고로 나왔던 장면입니다. 아이들이 40개월 미만의 아빠들을 불러서 몰래카메라를 집어넣고 그들에게 시험을 해봅니다. 아동학습을 통해 얻어지는 아버지의 역할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그 아버지들에게 설문조사를 시킵니다. 아버지 몇 분이 그 사무실에 들어와 설문지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 설문지에 답하기 시작합니다.
그 설문지는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은? 아이가 자는 모습을 지켜보신 적이 있습니까?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웃으면서 답을 신나게 써내려가는 아빠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차 핸드폰 책상 지갑에 아이의 사진이 몇 장이나 있습니까? 전화를 뒤져서 몇 장이나 있는지 뒤져보기도 하면서 웃으며 기쁨으로 그 답을 써 내려갑니다. 최근에 아이를 안아본 적이 있습니까?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말한 적이 언제입니까?
기쁨으로 웃으며 그 모든 설문을 다 끝낸 아빠들에게 설문지를 걷고 다른 한 세트의 설문지를 줍니다. 이번에도 똑같은 설문지의 질문입니다. 그런데 대상이 달랐습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은? 멈칫합니다. 아버지가 자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까? 침묵이 흐릅니다. 차 핸드폰 책상 지갑에 아버지 사진 몇 장이나 있습니까? 가슴을 움켜쥡니다. 최근에 아버지를 안아본 적이 있습니까? 흐느끼기 시작합니다.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말한 적이 언제입니까?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눈물을 터트립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자녀의 사진 만큼 부모의 사진도 가지고 계신가요. 음식은 뭘 좋아하시는지 아시나요.
저는 어머니가 홍어를 좋아하셔서 계속 홍어를 좋아하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홍어를 더 이상 썩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좋아하시는 음식을 어떻게...
그건 다름 아닌 이가 좋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딱딱한 음식을 드시기가 불편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에 좋았던 것 중에 먹을 때에 불편한 것들이 생겨서 안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소변을 자주 보셔야 해서 여행 중에도 자주 화장실을 모시고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잘 몰랐습니다. 아직도 어머니는 여전히 젊은 어머니인 줄 안 것입니다. 아내가 가끔 어머니가 80이라고 말해 줘서 “그렇지” 합니다. 하지만 이내 잊어버립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밥을 해주고, 가면 웃어주고 편하게 해주고, 당연히 그런 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버이 주일에 맞는 설교를 준비하며 부모에 대한 책을 찾아봤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목은 부모가 들어가 있는데 그 주된 내용은 자녀들을 어떻게 대하고 키울 것인가? 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왜 부모를 거역하는가’ ‘부모라면 놓쳐서는 안될 유대인 교육법’ ‘부모 갱신’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가’ ‘부모 역할’ ‘하버드 부모들의 자녀 교육’ ‘부모의 습관’ ‘부모 면허증’
‘머리 좋은 아이로 키우는 부모의 대화법’ 그 외에도 너무 많은 책들이 다 부모와 관련이 있는데 그 주 된 내용은 부모의 역할이 자녀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에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나온 책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를 더 잘 모실까? 어떻게 하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까? 어떻게 하면 부모를 소중하게 여길까? 어떻게 하면 부모를 건강하게 섬길까? 뭐 이런 책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없습니다.
세상이 부모에게 비중을 두지 않고 자식에게만 비중을 두기 때문입니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부모에게 비중을 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무겁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주신 계명입니다.
세 번째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 된 성도는 부모님을 잘 섬기고 따르고 소중하고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은 머리카락이 세서 희고 살아온 날이 충분하신 분들 앞에서 공경을 표하고 존경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효자, 효녀가 신앙생활도 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성도들에게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에베소서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엡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6: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고 섬기는 것은 부모로부터 땅에서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 은혜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를 공경하면 그 열매를 얻는 것은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대단한 진리이며 상입니다.
인생의 진리라는 예화가 있습니다.
중국 당나라 때 '도림'이라는 수행자가 있었는데 그는 항상 높은 나무 위에 앉아 수행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높은 관직을 갖고 시인으로 유명했던 '백거이'가 도림이 수행하는 나무 밑을 지나가다가 말을 걸었습니다.
"그 높은 곳에서 수행하고 있으면 불안하지 않습니까? 자칫 실수해서 떨어지면 크게 다치지 않겠소?"
그러자 도림이 웃음 띤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저보다는 그쪽이 훨씬 불안해 보입니다. 그렇게 계셔도 괜찮습니까?"
백거이가 도림에게 대답했습니다.
"괜찮지 않을 게 무엇이오? 나는 높은 관직에 있고 명성 또한 드높으니 아무것도 불안할 게 없습니다."
도림이 다시 말했습니다.
"그 높은 벼슬과 명성은 떨어지기 시작하면 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큰 고통과 상처를 얻게 될 텐데 어찌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 말을 들은 백거이는 당황한 낯빛이 되어 도림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불안을 떨치기 위해 어찌하면 좋겠소?"
진지한 표전으로 도림이 대답했습니다.
"항상 착한 일과 좋은 일만 하면 됩니다. 내 대답이 너무 뻔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항상 착한 일과 좋은 일만 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렇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어떻게 하면 늙은 어머니를 혹은 아버지를 가만히 보십시오. 미래의 내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까? 거울에 가서 가만히 보십시오. 또 내 자녀들을 가만히 보십시오. 그 얼굴 안에 부모님의 얼굴이 있습니다. 내 얼굴이 있습니다
보모님께 잘하는 것은 미래에 나에게 잘하는 것입니다.
부모력이라는 책에 소개된 글이 있습니다.
우리 국민 4명 중 3명은 친조부모와 외조부모를 ‘우리 가족’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닐슨컴퍼니코리아를 통해 ‘제2차 가족 실태 조사’를 해보니 우리 사회의 핵가족화 경향이 심화하면서 가족의 범위가 대폭 축소되고, 가족에 대한 인식도 급격히 둔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친조부모와 외조부모를 가족으로 인식한 비율은 각각 23%, 21%로 5년 전(64%, 48%) 조사 때보다 크게 줄었습니다.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도 가족으로 느낄 수 있게 의식적으로 공을 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글쎄요, 내 손주는, 내 자식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뭐가 잘못된 조사같다고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내 부모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데, 내 자식이 내 부모를 귀하게 여기겠습니까? 내가 내 부모를 잘 대하지 않는데, 내 아내가, 혹은 내 남편이 귀하게 여기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축복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답은 잘 섬기면 됩니다. 소중하고 귀하게 그리고 비중을 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부모님을 섬기면 됩니다. 너무도 뻔한 답입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그렇습니다. 나의 미래의 모습입니다. 그러니 사랑하고 마음을 부모에게 두십시오. 그것이 결국은 가정을 가정되게 하는 밑걸음입니다. 부모님의 얼굴이 환하게 웃음을 떠나지 않도록 노력하십시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