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결혼식
하루에 두 개의 결혼식을 보았다.
아침에 영국의 해리 왕자 결혼식 동영상을 카톡으로 받았다. 전 세계인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결혼식인데도 금방 열게 되지 않았다. 두 아이가 결혼식을 치른지 10년이 넘어서인지 결혼식에
크게 관심이 일지 않는다. 더욱이 거창한 것들에는 부러움이나 호기심도 일지 않는다. 오후에
우연히 MC김국진과 가수 강수지의 작다 못해 초라한 결혼식을 보았다. 그들은 가족들과 같이
밥을 먹는 것으로 식을 대신 하려고 했는데 프로그램을 같이 하는 동료들이 서운하여 몰래 준비를
하여 프로그램 속에서 식을 치러 주었다.
"수지는 엄마도 없고 언니도 없쟎아. 그래서 내가 그냥 해주고 싶었어. 이왕 손에 뭍힌 김에
이바지 겸해서 밤새 준비를 했지. 내가 수지의 친정이야"
언니 뻘 되는 출연자가 아무도 모르게 진정을 담은 음식과 꽃 몇송이를 가져와 산중의 오두막집
마당 앞에 펼쳤다. 그것을 나누어 차리는 동료들 눈에는 그렁그렁 감동의 눈물이 고이고 작아서
아름다운 사람 풍경에 감동되어 여기저기서 흐느낀다. 인간미가 넘치고 고마움이 깃든 잔칫날이다.
정성이 깃든 음식을 당사자들이 모르게 마당에 늘어놓았다. 그들 신랑신부는 패딩점퍼 차림으로
꽃을 들고 핸드폰에서 울려퍼지는 웨딩마치를 들으며 입장하였다. 보통이상으로 체구가 작고
마른 두 사람은 사슴같은 눈망을만 동글동글 굴리더니 눈가가 촉촉하게 젖는다. 아마도 신부의
어머니가 최근에 돌아가신 모양이다. 펑펑 쏟아질 눈물을 참느라고 강수지는 눈가가 시뻘개진다.
신랑신부보다 하객인 참여자들의 표정이 더 아름답다. 잘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과 그 언니가
준비해주어서 고맙다는 표정이 절절하게 전해져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추르르 흘렀다.
나는 그 결혼식을 보고나서야 해리왕세자와 매건 마클의 결혼식 동영상을 열어보았다. 과연 내가
감격할 것인가 무엇에 집중하며 내가 볼 것인가 내 의식의 흐름을 관찰하고 싶어졌다.
엘리자베스 2세가 자주 머무는 윈저궁에서 켄터베리 주교의 주례로 식이 진행된다. 교향악단의
우아한 연주가 흐르고 하얀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등장한다. 말해 무엇할까. 무엇이든 최고일
것이나 왕가 가족이 총출동되어 올리는 혼인예배를 본다. 신부가 주례주교 앞에 이르자 베일이
벗겨진다. 성장한 하객의 옷차림도 구경거리가 된다. 저마다 특별한 모자와 특별한 차림새로
하객이 되어 모여있는 풍경만으로도 특별한 볼거리지만 혼인에 대한 은근한 향내를 맡을 수는
없었다. 식은 끝났다. 그들은 쌍두마차가 끌고 뚜껑이 없는 자리에 앉아 시내를 돈다 그 광경을
보려고 며칠 전부터 노숙을 하기도 한다는데 내겐 전혀 그런 감동이 일지 않는다. 조금 나은 것과
터무니 없이 차이가 나는 것의 차이 때문일까. 이들의 결혼식이 있기까지 고뇌가 깃들어있음이
역력했다. 독일방송은 그들의 인종차별적 발언이 잦았다고 하고 축가도 흑인들이 즐겨부르는
소울 음악을 택한 것에 대해 다양한 종류의 구설수에 휘말렸다.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도
사랑하는데는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는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혼혈에 이혼경력이 있는 배우가
왕가 가족이 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김국진 강수지의 가장 작은 결혼식에는 우정이 있고 몇 안 되는 하객의 진정어린 축복만
있었다. 패딩점퍼를 입고 시골마당에 서있어도 아름다웠다. 타인의 소박한 결혼식에 감동하는
동료들의 표정에 몰입하다가 감동으로 이어졌다. 제 일처럼 살가운 모습이 역력했다.
그들은 20년 전에 프로그램의 진행자와 게스트로 처음 만났다. 20년이 지나 돌고 돌아 다른
프로그램에서 다시 만나 서로 알아가다가 25년만에 결혼을 하는 사이다. 서로 재혼인 입장인데다
나이가 있다보니 그냥 가족들과 식사를 하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하려고 하였다가 정이 있고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듬뿍 든 식을 치르고 말았다. 식이 끝나면 드레스를 벗으며 홀가분하거나
허망해 할 것이 없고 많은 하객들 앞에서 긴장될 것이 없는 그들의 합일도 참 좋아보인다.
그러나 인간의 양면성을 누가 알기나 할까. 좋아보이면 내 자식도 그렇게 식을 올렸어야 하는게
아닌가. 남을 감동시키는 것과 스스로 만족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여서 그들이 더
존경스러웠다. 순수하고 좋아보여도 나는 그러기 싫은 것이 어디 결혼식 뿐인가. 삶 자체가 그런
것을.
작은 결혼식에서는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고 진정한 축복이 함께 했다면, 큰 것에는 웅장함과
화려함으로 빛나는 형식미가 돋보였다. 만사가 주어진 상황에서 내용만 충실하다면 그것으로
족하리라. 내 결혼식은 나대로 좋고 영국 해리앙자의 결혼식은 세련되고 멋지고 풍성해서 좋고,
조촐한 결혼식은 그들 나름의 결실이라 좋은 것, 사랑이 결실을 맺고 두사람이 하나되는 식이며
앞으로 잘 살겠다는 약속을 하는 날인데 뭐가 문제인가. 관심사가 코 앞에 있을 때 호기심이
극대화 되는 데 앞으로 내 손자손녀가 결혼 하는 것을 볼 기회가 오기나 하려는지 모를 일이다.
사는게 뭐 별 것인가. 자손을 낳고 키워서 자자손손 퍼져가는 그것에 인생 본연의 기꺼움이
있다는 것을 순간 맛보았다. 젊은이는 이해하지 못할 묘한 간결한 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