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산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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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냄새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
바깥 풍설(風雪) 소리에 침착하다.
산중(山中)에 책력(冊曆)도 없이
삼동(三冬)이 하이얗다.
--- 정지용, 『인동차(忍冬茶)』에서
▶ 산행일시 : 2013년 1월 5일(토), 맑음
▶ 산행인원 : 10명(영희언니, 드류, 김전무, 대간거사, 더산, 사계, 도자, 해마, 승연, 메아리)
▶ 산행시간 : 8시간 45분
▶ 산행거리 : 도상 15.6㎞
▶ 교 통 편 : 25인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
06 : 30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8 : 43 - 횡성군 안흥면 안흥리(安興里) 안흥고등학교, 산행시작
09 : 48 - △691.1m봉
11 : 03 - 신배골 새터마을
11 : 28 - 풍취산(風吹山, △697.2m)
12 : 02 - 구 42번 국도 신배골 입구, 점심
12 : 58 - 전재
14 : 28 - 881m봉
15 : 16 - 매화산(梅花山, △1,083.1m)
15 : 53 - 943m봉
16 : 20 - 867m봉, 왼쪽 지능선으로 내림
16 : 47 - 단지골
17 : 28 - 42번 국도, 단지골 입구, 산행종료
1. 풍취산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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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취산(風吹山, △697.2m)
오늘 1부 산행거리(도상 6㎞)가 어째 짧다고 했더니 산행하고 남을 시간을 미리 길바닥에 깔
아버린다. 동서울에서 중부고속도로 타는 것에서부터 버벅댄다. 올림픽대교 건너 서하남 IC
로 들어가더니만 어어 하는 사이에 송파로 빠진다. 복정에서 차 돌린다. 두메 님이 그간 산행
들머리와 날머리를 오고가는데 얼마나 우리를 편하게 했으며 알찬 산행을 즐기는데 기여한
바 얼마나 큰지 새삼 알겠다.
전재터널은 10일전쯤에 임시로 개통했다고 한다. 그런 줄 모르고 고갯마루로 오르다가 북사
면 눈길을 더 못 가게 막아놓은 것을 보고 뒤돌아서 전재터널로 들어간다. 주천(酒川)을 안흥
교로 건너기 전에 안흥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함께 있다. 여기가 풍취산 산행 들머리다. 풍취산
오르는 일반등로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메아리 대장님이 예의 숙고하여 도상 선 그은 산줄기
이다.
교사 왼쪽으로 돌아 산기슭 도는 임도 따르다말고 냅다 설사면의 잡목 어우른 잣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은근히 가파르다. 한 피치 올라 잡목 성긴 곳에 이르자 눈 속에 인적과 수적이 어지
럽게 나 있다. 인적에는 사냥꾼의 발자국 냄새가 난다. 다급한 모둠발 뜀은 고라니이겠고 그
옆의 날랜 발자국은 사냥개의 것이다.
오늘 서울의 아침기온은 영하 17도라고 했는데 외려 산속이 덜 춥다. 꼭꼭 여몄던 옷깃 풀고
귀마개도 걷는다. 산행 중 통상 휴식은 1시간 간격이다. △691.1m봉 오르기 전 노송 숲에서
첫 숨 돌린다. 좌판 벌려 산중진미인 메표 과메기 안주로 탁주 단맛을 맛보는 사이 대간거사
님은 등로 옆 언 땅에서 더덕을 화석(化石)으로 떠 온다.
△691.1m봉을 넘어서자 그리 심한 오르내림이 없는 부드러운 눈길이다. 걷기 좋다. 흔히 그
러하듯 우리가 첫 발자국 낸다. 거목의 신갈나무 옆이었다. 더덕은 영물이다. 특히 대물은. 여
러 사람의 안광(眼光)으로 뇌두를 포위하고 도자 님(불도자bulldozer에서 따온 이름이다)이 꽁
꽁 언 땅을 도자처럼 파는 데도 그만 놓치고 말았다.
근래 우리 오지산행도 요령이 많이 늘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당연히 △651.4m봉 들려 삼각
점을 알현하고 새터마을로 빠질 터인데 나부터 그 전위봉에서 풍취산이 가장 가까운 지능선
을 잡는다. 잡목 헤치며 가파른 사면을 우르르 내려 개울 건너면 새터마을 바깥쪽이고 목장
철조망 비켜 울창한 낙엽송 숲 오르면 능선 마루금은 여러 산행표지기가 줄지은 영춘기맥 길
이다. 대로로 변했다.
풍취산 정상이 한걸음이다. 공터 한가운데에서 발굴한 삼각점은 ┼자 방위표시 음각한 N0
048. 오늘은 풍취산답지 않게 ‘바람이 불지(風吹)’ 않는다. 잠시 서성이다 물러난다. 전재 차도
는 막아놓아서 점심도시락 실은 우리 차가 올 수 없기 때문에 전재터널 입구인 신배골 쪽으로
내린다. 방향을 미리 잘못 틀었다가 오른쪽 사면으로 대 트래버스 하여 지능선 잡는다.
구 42번 국도 신배골 입구다. 도로 아래 농가 한 채가 보이고 그 옆에 비닐하우스가 있다. 주
인이 마침 마당에 나왔다. 오지산행의 또 다른 얼굴인 김전무 님이 나선다. 저기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게 해주십사 하고 사정하여 대번에 쾌한 승낙을 받아낸다. 밖은 엄동의 맹추위인데
비닐하우스 안은 봄날로 훈풍이 가득하다. 곧바로 비닐하우스 안을 청소하여 우리를 손님으
로 맞이하는 주인의 고운 마음씨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도자 님이 준비한 남원추어탕 끓여
두루 한속 덥히다보니 자칫 2부 산행 무용론이 힘 받을 뻔했다.
2. 낙엽송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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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낙엽송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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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풍취산 가는 길에서 동쪽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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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매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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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풍취산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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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풍취산 가는 길, 낙엽송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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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신배골 입구, 빈 옥수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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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화산(梅花山, △1,083.1m)
전재 고갯마루. 매화산 자락부터 치악산 국립공원이다. 왼쪽의 농장 길 따라가는 수도 있지만
철조망 살금살금 비켜 능선 마루금 붙든다. 영춘기맥 길인데도 눈 온 이후로 아무도 오가지
않았다. 선두는 신났다. 막 내닫는다. 등로는 나지막한 봉우리 오르내리며 목장을 크게 돈다.
등로 주변의 즐비하게 늘어선 우람한 적송이 볼만하다.
611m봉 내렸다가 본격적으로 긴 오르막이 시작되는 얕은 안부에서 오른쪽 사면으로 질러간
인적이 보여 나만 얼른 따랐다가 눈 깊은 골짜기 건너고 지능선 넘고 넘는 된 고역을 치른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일로매진(一路邁進)하여 어렵사리 능선에 든다. 775m봉에서 목장경계
철사줄 넘어 살짝 내렸다가 완만한 사면을 한 차례 오르면 너른 헬기장인 881m봉이다.
능선은 얕은 안부에서 주춤하였다가 곧추 솟구친다. 꼬박 매화산 정상까지 가파르기 넘어 설
벽이다. 몇 번의 걸음질로 겨우 한 발자국 오르는 횟수가 잦다. 잡목간 사이가 뜬 데에서는 발
버팀으로 스틱을 박는다. 눈길을 새로이 가면 나을까 크램폰으로 빙벽 찍듯이 맨 등산화로 찍
어 오르다 바위 잘못 디뎌 주르륵 미끄러져 내리기도 한다. 힘이 쭉 빠진다.
그렇게 50분 가까이 기어 매화산 정상이다. 나무숲이 치악산 천지봉과 비로봉을 가렸다. 정
상 한가운데 무덤이 아직 있다. ┤자 능선 분기. 직진은 영춘기맥으로 수래너미재 지나 천지
봉 간다. 우리는 왼쪽 능선으로 간다. 암릉이 나온다. 손맛 볼 게재가 아니다. 어느 해 여름이
던가? 그때는 아기자기한 재미 보았는데 오늘은 눈과 얼음으로 덮였다. 오른쪽 사면으로 길
게 돌아간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가파른 설사면의 트래버스 연속이다. 엷은 지능선 넘고
넘는다. 한 발만 삐끗하면 그야말로 골로 가겠다. 여기도 저기도 끝 아득한 협곡이 아가리 크
게 벌리고 있다. 방정맞은 생각이 자꾸 든다. 이런 때는 운수를 시험하기보다 미끄러져도 걸
릴 나무를 보아두고 기는데 그나마 없으니 한참 더듬거릴 수밖에.
돌부리 나무뿌리 찾느라 눈 헤집어 장갑이 진작 젖었어도 손 시린 줄 모르겠다. 가까스로 능
선으로 오른다. 다들 식겁했다고 한마디씩 한다. 이제는 걷기 수월한 등로다. 쭈욱 내렸다가
약간 올라 943m봉. 해는 사광(斜光)으로 뉘엿하다. 당초에는 이 산줄기 끝까지 가려고 했는데
가망 없는 일이다. 867m봉. 16시 20분. 어차피 탈출하려면 여기가 낫다. 단지골을 향하여 왼
쪽 지능선으로 발길 돌린다.
이상한 일이다. 김전무 님은 꼭 바로 내 앞에서 보기 좋게 엎어진다. 지난 진조산 2부 산행에
서 그러더니 오늘도 그런다. 굳이 내 앞에서는 눈길을 폼 나게 지칠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이
번에는 두 바퀴나 굴러 등산화 앞 축이 나갔다.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 되고 말 터인데 망외
(望外)의 구경인지라 미처 표정관리를 하지 못하고 대소(大笑)를 들켰다.
단지골 맨 안쪽으로 내린다. 길은 마을 대로이지만 눈길이라 차마 기사님더러 차 몰고 오시라
하지 못한다. 두메 님이라면 스스럼없이 부탁할 텐데. 42번 국도까지 3.2㎞. 걷는다.
9. 매화산 가는 길, 앞서 가는 이는 대간거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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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매화산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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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단지골을 나오며, 왼쪽부터 도자, 메아리, 영희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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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단지골 야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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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오가피나무(오갈피나무, Elsutherococcus sessiliflorus), 단지골에서
두릅나뭇과의 낙엽 활엽 관목. 높이는 2미터 정도이고 줄기에 가시가 있으며 잎은 어긋나고
장상 복엽이다. 여름에 자주색의 잔 꽃이 뭉쳐 피고 가을에 열매가 검게 익는다. 뿌리나 줄기
의 껍질은 오갈피라고 하며 약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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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애고~~~ 서하남 IC 입구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어 직진하는게 자칫 놓치기도 쉽지요^^
그래도 그리 멀리 돌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네요
두메님 쉬는 날은 저도 쉬어야겠어요.ㅎㅎ
드류님 들킨 표정에 전 괜히 실실댑니다.ㅋㅋ
역시 겨울 산행은 멋지군요
역시 산은 겨울산이 맞는 말씀이신데,,,힘이 들어서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