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에 찾은 명산과 선인의 숨결
~ 일본제일의 호수 비파호 일주 기행록(끝)
5월 28일(화), 하루 종일 굵은 비가 내린다. 오전 8시, 전용버스 편으로 이틀 간 묵은 하마오쓰의 숙소를 나서 인근의 명산 히에이산(比叡山)으로 향하였다. 새벽부터 큰 비가 내리고 있어 탐방 여부를 고심하였으나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기 아까워 일단 가보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히에이산 오르며 조망하는 비와코가 절경이라는데 짙은 안개에 가려 이를 감상하기는 어려운 상황, 울창한 숲길의 드라이브가 운치 있다. 40여분 달려 이른 곳은 정상 부근에 자리 잡은 세계문화유산 엔라쿠지(延曆寺), 빗속을 뚫고 오랜 역사와 전통이 깃든 고찰을 30여분 둘러 본 후 공항으로 가는 길목의 교토로 향하였다.
우중이어서 한적한 엔라쿠지(延曆寺) 주차장
먼저 찾은 곳은 대한민국민단교토본부, 김형련 부단장과 조승제 사무국장의 안내로 건물 아래층에 비치한 조선 세종 때 일본과의 외교교섭에 큰 몫을 감당한 이예(李藝) 선생의 동상을 참관하였다. 최근에 한국에서 제작하여 이곳까지 운반한 동상은 제막행사는 가졌으나 설명문이 아직 한국에서 도착하지 않은 상태, 교토를 거쳐 가는 길에 이를 참관하게 된 것이다. 이예 선생과는 작년 4월 조선통신사 한일우정걷기로 울산을 지날 때 이에 맞춰 거행된 ‘울산을 빛낸 인물 조선통신사 이예 축제’ 기념행사에 참가한 인연이 있기도.
민단교토본부에 설치된 이예 선생 동상 앞에서
이어서 들른 곳은 시내 중심가의 백화점 등 상점가, 더러 필요한 상품을 쇼핑하기도. 서둘러 교토 역에 도착하니 오후 1시가 지난다. 엄청난 규모의 역사 안은 오가는 시민들로 대 혼잡, 식당마다 대기자가 줄을 선다. 차분히 점심을 들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지하의 식품점에서 각기 도시락을 준비, 오후 2시 반에 출발하는 간사이공항 행 특급열차에 올랐다. 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4시, 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가운데 출국수속을 마치고 탑승구에 이르니 오후 5시가 훌쩍 지난다.
출국예정시간은 오후 6시 반, 6시부터 탑승시간인데 타고 갈 비행기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며 30여분 지연된다. 폭우의 영향일까. 예정시간보다 40여분 늦은 오후 7시 지나 이륙한 인천행 여객기는 순항 끝에 저녁 9시 가까이 인천공항에 무사히 착륙하였다. 서둘러 입국수속을 마치고 수하물을 찾으니 9시 20분이 지난다. 내가 타고 갈 청주행 버스는 9시 반 출발, 부지런히 움직여 간신히 탑승하였다. 청주의 집에 도착하니 밤 12시, 마지막까지 분주히 움직인 일행 모두 편한 밤 보내시라.
* 집에 도착하니 탁자 위에 옛 동료교수가 보낸 우편물이 주인을 기다린다. 반가이 봉투를 여니 눈길을 끄는 어느 스님의 에세이 ‘나는 걸어서 바다로 간다’가 흥미롭다. 마음에 닿는 요지,
‘나는 하루 두 번 걸어서 바다에 간다. 길을 걸으며 나는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요즘은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실감하고 있다. 이제는 걷는 것이 즐거움이고 그것이 순례의 의미까지 지니게 되었다. 길 위에서 나는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닫는다. 걸으며 내가 만나는 모든 것들이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다. 걷는다는 것은 다만 다리로 하는 공간 이동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닫힌 마음에서 열린 마음으로의 이동을 의미하기도 하다. 산길을 내려와 마을을 지나 더 낮은 곳으로 가야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바다는 이렇게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한다. 바다에 서면 가슴이 트이는 시원함을 느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두운 밤바다에 별이 돋듯 나는 바다에서 진리와 진실을 향해 감았던 눈을 뜬다. 설혹 진리가 저 밤하늘의 별처럼 아득히 먼 것일지라도 그 별빛을 바라보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삶은 그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다처럼 넓고 깊은 비와코를 일주한 소회를 대신하기에 적절한 내용일 듯!
비와코 일주 후 받은 지인의 메시지, ‘장하십니다. 무사히 마치셨네요. 아름답고 툭 트인 풍광의 드넓은 호수 길을, 집에서 눈과 머리로 일행을 따라 걸어보았습니다. 좋은 길,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다처럼 아스라한 비와코 호수
첫댓글 축하드립니다^^ 계속 건강하게 걸으시면서 멋진 기행록을 올려주시길 기대합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