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씬(Last Scene)
최 화 웅
영화 <라스트 씬>은 폐관한 극장의 축문(祝文)이다. 문을 닫은 부산의 독립예술영화관, 국도예술관의 첫제사에 고(告)하는 내용이우리를 슬프게 했다. <라스트 씬>은 독립영화 감독 박배일이 연출한 러닝타임 90분의 다큐멘터리로 우리나라 영화계의 속살을 들여다보게 했다. 단관의 국도극장은 순환을 거부한 소유와 증식에만 매달린 자본주의의 변방이었다. 자갈치 국도극장이 철거되면서 2008년 대연동 부산문화회관 옆으로 옮겨와 새 문화공간인 독립예술영화관으로 둥지를 틀었다가 개관 10년만인 2018년 1월 31일 문을 닫았다. 제목의 '마지막'이라는 뜻의 ‘Last"에는 이별과 아쉬움을 넘어서는 비장함과 쓸쓸함의 구릉이다. 우리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바라볼 뿐이다. ‘작은 영화관에 보내는 첫 번째 러브레타’라는 크레딧의 ‘작은 영화관’이란 말을 바꾸면 곧 옛 단관극장을 일컫는 말이다. 단관극장은 하나의 극장에 여러 개의 스크린을 건 요즘의 시끌벅적한 상업용 멀티플렉스가 아니라 하나의 극장에 하나의 스크린을 건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이다.
마지막 상영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손길에서 이별의 슬픔이 증폭되고 심지어 내재한 감정이 안으로 숙성했다. 국도예술관은 구원받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그러나 “엔딩 크레딧은 아직 올라가지 않았어요.”라고 전단지 카피가 독백한다. 그 소리는 옛 관객들의 추억, 젊은 날의 갈증과 사랑에 사무쳤다. 단관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한 건물에 하나의 스크린을 건 극장이나 학생들의 시청각교육의 기회인 단체관람을 줄인 말이다. 열 개 이상의 스크린을 걸고 수많은 칸막이방과 각종 부대시설을 갖춘 대형 멀티플렉스가 등장한 이후 부산의 경우 남포동과 광복동, 중앙동과 서면 일대의 단독 단관극장들은 하나 둘 소리 소문 없이 스크린을 내렸다. 막대한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의 진출과 백화점에 경쟁적으로 들어선 멀티플렉스극장에 밀려 단관극장은 몰락과 쇄락의 길을 걸었다. 단관극장은 대형서점에 밀린 동네 책방과 대형마트에 짓눌린 구멍가게 꼴이 되었다. 단관극장은 안타깝게도 어린 날 단체관람의 추억이 서린 기억 저편에 자리할 뿐이다.
부산의 단관극장은 대창동 4가 영선고개 들머리 가톨릭센터 1층 ‘아트씨어터 씨엔씨’와 남구 대연동 부산문화회관 이웃 가람아트센터 지하 1층 국도예술관 두 곳이 남았다. 2008년 6월 남포동의 국도극장이 가람예술관과 손을 잡고 국도예술관을 열었다. 국도예술관은 평소 상영관이다가 기획대관공연을 담당하는 대안문화공간이다. 부산문화회관 옆길을 따라 오르면 오른편에 클래식 카페 필하모니와 모차르트 레스토랑이 있는 가람아트홀 따라 좁은 골목길을 돌아서면 국도예술관이다. 첫 인상은 소박한 지하카페 같다. 계단을 내려가면 칠팔 명이 들어설 만한 비좁은 공간에 매표소와 원두커피를 파는 매점을 겸하고 있다. 벽면 게시판을 빼곡히 메운 사진과 영화포스터, 상영시간표와 길 잃은 엽서들이 도배되어 입장객을 반긴다. 극장에 발을 들여놓으면 이동식 스크린이 걸린 무대를 중심으로 반달 모양의 좌석 143개가 오손도손 정겹게 어깨동무하고 있다.
나도 한때 국도예술관의 정회원으로 12,000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단관극장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자 했다. 나는 이곳에서 알프스 산맥 1,300m 고지의 봉쇄수도원의 사계와 침묵수행을 소개하며 “봄은 겨울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침묵으로부터 온다.”고 일러주던 매력에 이끌려 다큐멘터리 <위대한 침묵>을 세 번이나 관람하고 스스로에게 퍼붓는 질문을 받은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와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 그리고 ‘트리 오브 라이프’와 아름답고도 슬프디 슬픈 영화 ‘자전거 탄 소년’을 보았다. 특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의 의미와 잊히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름다움을 일깨워준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와 ‘밀양’, 그리고 이창동 감독의 ‘시’를 보면서 공감했다. 학창시절 방학을 앞두거나 학기말시험 마지막 날 단체관람을 했었다. 극장문에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던 그 지루함 속에서도 밑도 끝도 없는 기대와 설렘으로 들떴던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극장은 표를 끊고 입장하여 좌석에 앉아 영화를 보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일어난다. 물론 어떤 영화를 상영하는지, 규모와 방식의 다양한 기준에 따라 행정적으로 영화관을 구분하겠지만 극장의 정체성은 상영환경과 관객에 의해 형성된다. 대부분의 물리적 공간의 정체성은 사람과의 관계가 결정한다. 저마다의 이유로 영화관을 꾸준히 찾는 관객들, 매일 아침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며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여 영화를 상영하는 운영자들. 국도예술관에서는 그렇게 일상이 쌓여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마지막 상영이 끝나고 나면, 작품도 끝이다. 영화는 국도예술관이 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고,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직설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영화관을 사랑하고 함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상이 사라지는 부재의 상실감을 전하고 공감할 뿐이다. 그리고 관객으로 하여금 저마다 일상 속의 영화관을 돌아보게 한다.
독립영화란 이윤 추구를 최우선 목표로 하는 일반 상업영화와는 달리 창작자의 의도가 중시되는 창작영화로 기존 영화와 주제, 형식, 제작 방법과는 크게 다르다. 여기서 ‘독립’이란 자본과 배급망에 크게 의존하지 않음을 의미하고 대체로 단편영화로 만들어지는 경향을 따른다. 전국에는 독립영화의 상영관이 독재정권의 검열과 통제에 저항한 문화적 아지트로 작지만 보석 같은 존재였다.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독립영화관은 서울의 ‘인디스페이스’와 ‘아트시네마’, ‘애무’와 ‘시네큐브’를 비롯해서 대전의 ‘아트시네마’와 대구의 ‘동성아트홀’과 ‘오오(55)극장’, 광주의 ‘독립영화관’과 전주의 ‘디지털독립영화관’, 창원의 ‘ㄹ-예술독립영화관’과 마산의 ‘씨네아트 리좀’가 명맥을 유지할 뿐 강릉의 독립예술극장 ‘신영극장’과 부산의 국도예술관은 이미 문을 닫았다. 국도예술관 프로그래머가 이야기하듯이 “폐관은 슬픈 현실이지만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이 이 시대를 향해 정곡을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