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구정입니다. 고향을 가시기 위해서 많은 준비와 고생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래도 부모님과 친지들 생각하면 이런 고생쯤은 괜찮을 것입니다. 고향으로의 귀향 여행! 좋은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행과 고향이라는 주제로 구정주일 말씀을 드립니다. 모두들 마음은 이미 고향의 뒷 동산에 가서 있겠지요. 다행인 것은 이번에는 연휴의 기간이 길어서 분산되어 가기 때문에 조금은 편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더라도 여러분들이 가시는 그 길에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보호하여 주시기를 바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으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고향이라는 말만 들어도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동심의 시절을 떠 올리고,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동무들과 친척들을 만나서 회포를 풀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은 잠시 잊고 지냅니다. 그래서 명절은 좋은 것이지요.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성도는 육신의 고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 고향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연어가 바다에 나가 살다가 산란기가 되면 자기 고향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연어가 고향 가기 위해서 그 거센 물결을 거슬러 올라오고 장애를 뛰어넘어 필사적입니다. 이것이 천국 고향을 향한 우리 성도들의 모습이어야 함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천국 본향 가는 신앙은 무엇일까요?
I. 천국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이 사람들(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 길을 따라 가면 고향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둘째는 출발하기 전에 이미 따뜻하신 부모형제와 이웃 그리고 고향산천이 이미 마음에 선하게 마음에 비쳐온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고향을 믿음 가지고 떠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 본향도 믿음 가지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고향이며 예수 믿으면 그 고향에 가며 그리고 마음에 천국 고향이 항상 비쳐 와야 합니다. 그래서 고후4:18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라. 그리고 요14:1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이 천국의 믿음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통일이 되면 고향을 먼저 가려고 휴전선 부근에 집짓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세상 살면서 천국에 더 가깝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일생을 지상에서 성령 안에서 천국의 온갖 아름다움을 누리며 천국 문턱에서 기뻐하며 살다가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천국이 멀고 희미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슬퍼하며 두려워하다가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더 행복하겠습니까? 예수 믿고 천국을 바라보며 천국의 영역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세상을 나그네로 사는 것입니다.
13절에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이처럼 믿음의 조상들은 약속의 땅을 바라봄으로 이방 땅에서 결코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외국인과 나그네와 같이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우리에게 그와 같이 교훈합니다. 벧전2:11에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이 세상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세상 소망으로만 충만해서 쌓아만 두고 욕심내고 범죄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 때문일 뿐 세상에 더 머물러야 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멧돼지 우화가 있습니다. 숲 속의 멧돼지가 늦은 가을 감나무 아래를 지나가다가 감나무에서 떨어진 홍시를 발견하고 이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달콤한 홍시 맛을 본 멧돼지는 홍시를 찾기 위해 땅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지쳤습니다. 그래서 벌렁 드러누웠는데 홍시는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 높이 감나무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 멧돼지는 그만 화가 나서 발악을 하다가 결국 자기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는 우화입니다. 롯의 처와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지 않으면 실망할 날이 옵니다. 죽도록 세상 육신만을 위해 살다가 그것이 허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이렇게 되고 말 것입니다.
3.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사는 것입니다.
16절에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하였습니다. 우리가 고향 떠나 살아도 고향을 잊지 못합니다. 어려울 때 부모님의 품 안이 그립고 형제들의 사랑이 그립습니다. 그래서 친구도 어릴 때 고향 친구가 진짜 잊지 못할 친구입니다. 사실 저는 이 나이 되도록 고향이 어디인지도 정확히 모릅니다. 어렸을 때 고아원에서 자랐기 때문에 고향이라고 하면 그 곳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어릴적 생각을 하면서 명절 때마다 남의 집 음식을 걷어다가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가장 행복하였고, 즐거웠다고 뒤돌아봅니다.그 때는 명절 음식을 집 문밖에다가 많이 차려놔두었던 시절이었거든요. 설 명절때는 돌아다니며 걷어다가 고아원 뒷산 대나무 밭에 묻어두고 조금씩 꺼내서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튼 고향의 그리움으로 명절이면 고향을 찾는 생활, 이것이 바로 천국 본향을 가는 성도들의 생활입니다. 항상 천국을 그리워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빌1:21-24에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중략)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이처럼 바울은 몸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을 더 사모했습니다.
천국의 소망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국소망 생기면 빨리 죽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기 전에 천국의 소망 주셔서 천국 가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은사를 주시는 건 사실이지만 천국 소망 가진다고 다 부르시는 것 아닙니다. 시97:11에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렸도다"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천국의 기쁨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를 더 원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천국을 사모하며 살게 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 신앙인들의 마음입니다. 해마다 발생하는 일로 명절이면 고향에서 벌어지는 작은 놀이(고스돕이나 윷놀이 등)로 인해 의가 상하고 심지어 되돌릴 수 없는 범죄까지도 일어나곤 하는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아픕니다. 고향을 가셨으면 조금이라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내다가 돌아와야 하는데, 가지 않음만 못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고향을 사모하였으면, 가서 사랑을 전하고 또 부모형제 친척들이 주는 사랑을 마음에 담아와야 합니다. 즉 천국의 기쁨을 알리고 맛보며 지내다가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4. 성령 안에서 미리 천국을 맛보며 사는 것입니다.
롬14:17-18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잘 경외하며 예수 잘 믿고 성령 충만 받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 어두운 세상에서 해처럼 밝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향을 찾아 가시는 여러분들의 마음이 이미 그곳에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본질이니까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고향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천국이 우리의 본향(고향)입니다. 이 본향을 믿음으로 갑니다. 나그네로 갑니다. 충성하며 갑니다. 사모하며 갑니다. 미리 맛 보며 갑니다. 가족친지들을 만나뵈려고 수고하시는 여러분! 먼거리 여행에 안전운행하시고 다소 길이 막혀 짜증이 나실때는 찬양을 들으시면서 사랑을 전해보십시오. 모쪼록 이번 명절, 잘 보내시고 은혜가 넘치는 승리의 나팔을 불고 돌아오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여러분 모두 즐거운 여행을 하고 사랑이 넘치는 고향인, 하늘나라 본토로 돌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이번 구정명절에 우리 육신의 고향을 찾으면서도 천국의 본향을 찾지 못하는 성도 한 사람도 없이 모두 예수 잘 믿고 천국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