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각에서 출발하여 잠실까지(평양-서울이 아니고) 주행하는 대회다. 주한 헝가리대사관 Anett 영사와 동반주하기로 약속하고 12시쯤 집을 나섰다. 임진각까지는 시간이 꽤 소요되었다. 오후 4시가 다 되어 현장에 도착한 후 배번을 수령할 때 Anett 영사를 만나 완주목표를 12시간 30분으로 하고, 늦어지더라도 13시간내 완주를 해서 제주기록(13:16)을 갱신하기로 했다. 50km까지는 6분 40초, 그 후는 7분주로 운영하겠다고 알려줬다.
코스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태지만 탄천 진입 전까지는 문제될게 없어서 따로 확인하지도 않았다. 초반에는 무리 속에서 그들과 함께 이동하면 되고, 한강에 진입한 후에는 선수들이 흩어지더라도 강변로 따라가면 되기 때문이다.
17시 정각, 따가운 햇볕을 그대로 받으며 출발했다. 이외로 Anett 영사가 잘 달려줘서 6분 40초가 아닌 6분 30초로 페이스 유지가 가능했다. 적당하게 업힐이 있어, 걸어가면서 컨디션도 조절했다. 10km 단위로 배치된 보급터에는 바나나, 토마토, 오이 등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따로 파워젤을 많이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30km 지점 포시코에 물을 채우려는데 자봉하던 이명배씨가 물이 채워진 포시코를 건낸다. 작년 제주도에서 공짜로 얻은 포시코를 이번 대회에도 사용하지 못했다.
40km 지점 양복에 구두신고 가방을 들고 뛰는 젊은이를 만났다. 33살의 캠브리지 멤버스 직원으로 회사홍보차 출근복장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유창한 영어에 LA 마라톤도 이런 복장으로 참여를 했다고 하며 14시간을 목표로 뛰지만 발이 아파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한다. 42km 풀코스는 4시간 50분으로 통과했고, 50km는 5시간 40분에 통과했다. 51km 지점 식당에 도착하여 순대국을 먹으려는데 Anett 영사가 순대국이 매워서 먹지 못하겠다고 하자 아이스크림을 사서 건냈다.
다음주 낙동강 200km를 달릴 예정인 안장수와 공종숙씨도 만났다. 우리가 늦게 들어왔지만 먼저 식당을 나섰다. 한강변에 들어서면서 갈림길이 많은데도 Anett 영사가 길을 잘 찾아갔다. 반포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근처 지리에 대해서는 매우 익숙하여 내가 도움을 받는 상황이 되었다. 배터리가 방전이 되어 이제 길을 확인할 수단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였다. 전적으로 Anett 영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잠수교를 건넌 후 탄천 입구가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80km SP가 있는 지점까지 가야했다. 그만큼 코스정보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Anett 영사가 강남지맹에 가입을 한 상태라 그녀를 페메해주기 위해, 시의적절하게 강남지맹의 젊은 지원군(나중에 알았지만 남자 1등으로 골인하고 다시 되돌아온 대단한 사람. 재일교포라는데 우리말을 잘 못하는 듯)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80km SP에서 누룽지를 마시고 빈 물병에도 채웠다. 불편한 속을 달래는데는 누룽지만한게 없는 것 같다. 고라니가 튀어나오는 조용한 탄천을 달리는게 좋았지만 점점 Anett이 힘들어했다.
지원군한테 도움을 받는 처지가 되어 나는 좋았지만 90km CP부터 송파둘레길의 미로와 같은 숲길을 헤쳐가야 했다. 그나마 우리는 이 구간을 먼저 답사(골인)한 지원군 덕분에 크게 길을 헤메지는 않았지만 거의 모든 선수들이 조금씩은 알바를 했다고 한다. 길을 못 찾고 헤매던 공종숙씨도 만났다. 마지막 10km가 꽤 길었다. Anett 영사를 뒤에서 밀어주기도 하고 잘못하면 13시간 완주도 어렵겠다고 하면서 독려했다. 드디어 한강에 들어서자 Anett 영사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12시간 32분으로 골인을 하며, Anett은 처음 목표한 완주기록을 달성하고 개인 최고기록도 갈아치웠다. 더구나 Anett 영사는 여자 1등(전체 14등)이다. 내 역할을 다 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