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을돌아보며
눅19:41-48
(경술국치100년).
(삼일운동91주년).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시련들 중,가장 비참했던 역사였지요.
국권을 빼앗기고,
역사도 우리의 말도 빼앗기고,
민족의 정신과 얼마저 도륙당해야 했던 암흑기였지요.
주인이 제구실 못한 결과는 참으로 비참(悲慘) 그 자체였습니다.
열강들의 세력 다툼에 휘둘리며 겪어야 했던 참상(慘狀)은 형언키조차 어려운 실정이었지요.
때마침 세계 1차 대전이 끝나가고,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강화회의가 열릴 즈음,
강압에 숨죽이고 있던 민족혼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름 하여 ‘삼일독립만세운동’의 태동입니다.
겨울의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죽었던 것처럼 보이던 대지가,
봄의 기운에 그 생명력을 드러내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습니다.
한일합방(韓日合邦)이란 미명하에 시작된 일제의 만행은 지구상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혹(苛酷)과 야만(野蠻)의 극치였습니다.
한반도 전체가 감옥이며 병영이었습니다.
때마침 세계 1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1918년),
미국 대통령 윌슨이 세계 새질서의 원칙으로 제창한
민족 자결 대원칙’이 제시되었습니다.
숨죽이고 있던 민족혼이 국내외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에 대한 일제의 방해공작이 일었지요.
1)국내외의 매국노와 친일주구들을 동원한 한일합방 당위성과 찬양서명운동입니다.
2)볼모로 잡혀 있던 구황실 왕세자 영친왕과 일본황족
이본방자(나시모도요시꼬)와의 정책결혼 후 신혼여행명목으로 파리를 가게해서,
선일동화(鮮日同化)의 전시품화(展示品化) 계획 등, 온갖 계략을 꾸미게 됩니다.
이런 시련 속에서 민족혼이 꿈틀거린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방해공작을 관철하려면 고종황제의 재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고종이 끝내 협박에 굴복하지 않게 되자,
기미년(1919) 1월22일 고종황제를 독살하기에 이릅니다.
민족혼의 울분에 불을 붙인 결과가 됩니다.
삼일독립만세 운동의 시발은 일제의 수도 도쿄 한복판에서였습니다.
최팔용등 일본유학생 대표11사람이 조선청년 독립단’이란 이름으로
독립선언서와 결의문을 반포했습니다.
그 내용을 각국말로 번역하여 일제 정부와 의회,
그리고 도쿄 주재 외국사절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동시에 일으킨 시위운동으로 수백명이 투옥을 당합니다.
이 소식이 국내에 전해집니다.
고종의 국장일인 3월3일이 가까워 오자 경향각지에서 군중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잔혹한 민족박멸 정책 하에서 극비리에 준비된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난 정황(情況)입니다.
예수님의 조국사랑은 어떠하셨을까요?
옛 조상들이 눈물을 흘리며 드린 기도로 조국애를 표현했던 것처럼(시126:1-6),
예수님께서도 그리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시고 예루살렘을 입성하실 때,
소란을 피운다며 군중을 꾸짖으라는 바리새인의 요청에 주님께서 하신 답변입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눅19:40).
그리고 이어서 취하신 행동이 오늘 신약본문(눅19:41-48)입니다.
예수님의 연민과 분노’라 할 수 있는 반응이십니다.
1)성을 보시고 우시며 앞으로 겪게 될 비극을 말씀하셨습니다(눅19:41-44).
2)성전을 깨끗이 하셨습니다(45-46).
3)당신의 목에 상금이 걸린 것을 아시면서도, 날마다 가르침을 주셨습니다(47-48).
때가 되면’의 희망을 품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께서 실천하신 나라 사랑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