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에 기별하다 외 1편
김연종
벼룩시장의 정보를 취합하여
네 징후를 포착한다
몸속의 소식들은
언제나 한발 늦기 마련이다
진검승부를 펼치기도 전에
몸을 꺾어버리는 너의 비겁함을
술잔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단기기억은 해마가 관장하고
장기기억은 대뇌피질이 저장한다지만
술 취한 너에 관한 기억이라면
씁쓸한 입술과 어리석은 혀뿐이다
인생에서 승부란 늘 뻔한 이치다
목소리 센 놈이 일견 유리해 보이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취하게 하는 자가
해마 속에 파고들고
누군가와 마음을 섞는 자만이
대뇌피질에 자리 잡는 것이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도
누구와도 마음 섞지 못하고
세상을 향해 헛구역질만 해대는
멍청한 간이여,
내 술이나 한잔 받아라
태초에 여백이 있었다
탯줄을 자르는 순간부터 나는
박쥐처럼 매달렸다
한 번도 허물을 벗지 않는 새는
꼬리뼈가 가늘어졌다
아직까지 꼬리를 자르지 못한 도마뱀은
다리가 퇴화했다
비가 오면
발바닥이 간지러운 물고기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유전자를 적당히 나누어 가진 시조새가
착지를 시도하다 구름 속에 매장되었다
초승에서 그믐까지 진화하는데
내 몸은 한 달이 걸리지만
그믐달이 초승달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다
구름의 진화는
다양성을 목표로 할 뿐 방향성은 없다
한 번도 신(神)을 선택할 기회 없이
내 기억은 진화하거나 소멸되었다
─문학 무크 『시에티카』 2011년 · 하반기 제5호
김연종
광주 출생. 2004년 『문학과경계』로 등단. 시집 『극락강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