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군자문위원단 소백산천문대 탐방 소회)
소백산그림자 오딧세이 F(x) -1
최길하
1.
F(x)
걸그룹 F(x) 루비 이야기가 아니다.
엑셀 연산에서 가장 많이 운영하는 작업 그 함수 F(x)다.
“별놈 다 보겠네. 그 수학공부 지금 이 나이에 나더러 하라고?
나 학교 다닐 때도 안했다“
가령, 6쪽 마늘을 1접 2접 3접.... 심었다하자.
(귓구멍을 좀 후비고 싶으시겠지?)
예상되는 생산량은?
한 접에 4접 생산 된다고 치면
(6쪽인데 1접에 6접 나와야 되는 거 아니야?)
농사도 인생도 에너지 허실이 있다.
4(1)=4접
4(2)=8접
4(3)=12접
4(4)=16접....
입력값에 따라 산출값이 달라지는 산수,
이게 F(x)다.
"그걸 누가 모르나?"
여기까진 다 안다. 구구단이니까.
이걸 인생살이에 대입하고 환유해 보자는 것입니다.
당신(자문위원)에게서 나는 F(x) 함수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단양군자문위원단과 1박 2일로 천문대를 탐방했다.
위원들 서로간의 탐방(?)도 이루어졌다.
옛날 우리 아버지 때만 해도 악수하고 명함 건네는 인사법이 아니었다.
“내가 아버지 인사법을 봐서 아는데” 그때 인사법은 등을 서로 굽히고
어느 산영(山影)에서 온 무슨 성씨 몇 대 손 00입니다. 이렇게 했다.
왜, 하필 고향 산그림자(山影)일까?
성장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 산을 닮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질이 어떻다는 말을 한다. 산세와 같다.
그 산 그림자가 알게 모르게 내 가슴에 드리워지기 때문이다.
서양에 <큰 바위 얼굴>처럼 우리에겐 그 산이 있다.
그래서 산=덕의 상징이었다. 인과 덕을 최고의 덕목으로 치던 시대였다.
단양군내 초중고 교가치고 소백산 금수산 정기 안 들어간 교가 있던가?
그만큼 어릴 때 환경이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단양, 단양이 나를 키웠고 단양은 소백산 금수산 남한강이다.
그럼 단양인의 기질은 어떤가?
소백산은 장엄하면서도 능선을 타보면 대단히 완만한 노년기 산임을 알 수 있다.
충남 아산에 설화산이 있는데 그 산 마그마가 터져 흘러내렸다.
그 돌로 마을 담을 쌓았는데 이 마을이 "외암마을"이고 돌담이 문화재다.
외암마을에 추사 김정희의 처가집이 있다. 추사는 처가집에서 많이 살았다.
나는 그 마을의 까칠한 돌담 돌을 돌아보던 어느날
추사체가 바로 여기서 이루어졌구나 직감했다.
추사체의 행서는 까칠한 돌담 돌과 같았다. 타제석기가 조금 수마된 느낌이다.
소백산을 글씨로 치면 한석봉 천자문체다.
단양사람의 기질은 한석봉 천자문체다.
원인(x)이란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그 환경에 적응하며 자라는 과정을 통과하여 결과(y)로 나타난다.
이 환경과 과정에서 얼마나 힘을 쏟았나?
그 식이 바로 F(x)다.
인넷트와 아웃네트 사이엔 꼭 하나의 기호가 성립됩니다.
등호 서양말로 이꼴(=)입니다.
인넷트 만큼 아웃넷트로 산출됩니다. 저울입니다.
대차대조표입니다. 좌변과 우변이 천평(天秤)을 이룹니다.
인생도 산수입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들은 굶주리면서도 다 학교에 보냈습니다.
6.25 전쟁중에도 천막학교를 열었고 "떡지"판 군정 교과서를 만들었습니다.
문맹율제로, 그 교육에 힘이 급성장 근현대화의 동력이 되었습니다.
산 첩첩 물 굽이굽이 감자 심고 수수 심는 두메산골에서
소위 말하는 당신의 출세도 이 교육 덕분입니다.
(주로 미군들이 버린 박스를 물에 풀어 종이를 뜨는데 종이가 '떡'처럼 두껍고
울퉁불퉁하다. 그래서 떡지다. 내게도 10여권 있는데 인쇄 글씨를 손톱으로 긁으면 떨어진다)
물리학에선 만물을 에너지(E=mc2 / 에너지=물질 곱하기 가속도)라 합니다.
스스로 풀어지는 에너지엔 흐름의 법칙이 있습니다.
열역학 2법칙(엔트로피)입니다.
진시왕은 이것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 대표입니다.
소백산 바위 하나가 계곡을 타고 굴러 차츰차츰 잘게 부서지며 한강의 강모래가 됩니다.
그 강 모래가 다시 적분이 되며 거슬러 올라가 소백산 바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에너지의 가역반응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열역학 2법칙(엔트로피)이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없습니다. 세상 모든 만물은 이 법칙을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법칙은 물리이면서 가장 평등한 진리의 철학입니다.
그래서 영생의 간절한 염원은 복제라는 간접 영생의 형태로 진화되고 유전됩니다.
'제법무상(만물은 잠시도 쉬지 않고 변한다)'이라는 말은
바로 이 열역학 2법칙(엔트로피)을 말하는 것입니다.
엔트로피 - 만물은 끝없이 에너지를 잃으면서 흘러가는데 왜 이 길을 택했을까?
에너지보존법칙에 의하면 에너지는 그 정량 그대로 전환되는데
흘린 그 땀, 그 에너지는 그럼 어디로 갔을까?
에너지를 잃는 만큼 자유와 평등이 되었습니다.
엔트로피는 자유와 평등을 갈망하며 자유와 평등을 향해가는 자율신경 엔진입니다.
엔트로피는 끝없이 낮은 곳으로 길을 열어가는 등호(=)입니다.
물 바람 온도 기압의 흐름은 모두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채워 등호(=)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평형(평등)을 이루기 위해 흘러가는 현상입니다. 그게 시간이고 공간이 변하는 원인입니다.
세상은 일분 일초도 가만히 있지 않고 흐르는데 이 시공간 흐름의 현상은 등호(=) 떼문입니다.
자연은 이렇게 잠시도 쉬지 않고 평등과 평화를 몸소 실천합니다.
물이 흐르는 소리 바람이 부는 소리가 바로 평등 평화를 향해 가는 행진곡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람소리 물소리가 평등 평화의 실천이며 설법이었습니다.
물의 수평과 바람의 기압이 평등 평화에 맞춰 길가는 소리입니다.
아주 단순하고 간단하고 분명한 진리인데 사람들은 나라는 아상(我相)
눈 앞 욕심이라는 안개에 가려 이 진리를 비껴갑니다.
2.
소백산 그늘의 젖을 물고 자란 분들이 많았다.
너나 나나 뻐꾹새 산 넘어가며 우는 산골,
진달래 피고 송화가루 날리는 두메산골 정겨운 촌놈들이다.
동기감응이라고 주파수가 맞는 것이다.
만종에서 대학로까지 반환점을 돌아온 연극연출가.
그의 모습에도 소백산 그늘이 일렁거렸다. F(x)다.
‘노동’에서 산 넘고 물 건너 몇 십리 밖 읍내 중학교를 다니는데
1달에 한 컬레씩 운동화가 다 닳더라는 분도 있었다.
왜 자전거 타고 다니지?
어머니가 누에고치 팔아 사 주는데 비포장이라
빵꾸(펑크)가 수시로 나서 마라톤이 제일 낫더란다.
이분도 소백산 그늘이 키워 기술고시에 합격시켜준다. F(x)다.
대강 ‘당동’은 지독한 음지라서 하루해가 토끼꼬리 같은 마을이다.
이 분은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소백산 그늘이 키운 것이다. F(x)다.
자코메티라는 스위스 조각가가 있다. 1966년 사망했다
1961년 <걷는 사람>이란 볼품없는(?) 쇠조각 한 점이 1174억에 경매된다.
1961년에 1174억? 비쩍 마른 쇠조각 한 점이 금값의 몇 십 몇 백 배라니?
아래 작품이다.
작품명은 <걷는 사람>이다.
그날 내가 본 사람들(자문위원단)은 이 비싼 쇠조각이었다.
과거 이렇게 비쩍 말라 고독하게 <걷던 사람>들이었다.
넘어질 것 같이 연약했지만 鐵心 鐵深의 사람들이었다.
자코메티는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우연의 산물이고, 정말로 하찮은 존재다.
본래 무의미한 것인데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너무나 빈약하여 금방이라도 부서져내릴 것만 같은 <걷는 사람>
꾸밈도 서사도 없는 건조한 작품의 이름 <걷는 사람>
가느다란 몸은 고독이 키운 영혼의 키가 아닐까?
몸에 비해 큰 발에 숨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많이 걸어왔다고..."
부서지거나 흔들릴지언정 쉽게 넘어지지는 않는다는 고집과 인내는 아닐까?
그는 걷는다. 이 묘한 주파수의 감동은 무엇일까?
부처님의 귀가 어깨에 걸리고 팔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이유는 삼라만상 고통의 소리들을 다 듣고,
그의 손을 잡아주고, 다 나누어주기 때문이다.
저 <걷는 사람>의 발도 "참 많이 걸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삭정이 같은 몸, 비례도 안 맞고 부분부분을 뜯어봐도 미학이라곤 눈꼽 만큼도 없습니다.
바로 이 다 맞지 않는 불균형이 이 작품의 가치라고 나는 의미를 부여합니다.
바로 <걷는 사람>의 비대칭은 그가 걸어온 서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저 사내의 가슴에 노래 한자락이 일렁거린다.
저 비쩍마른 쇠조각이 당신(자문위원)의 모습입니다.
나는 당신에게서 <걷는 사람>의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저 쇠조각과 나란히 걸어온 발자국들의 F(x) 함수를 읽었습니다.
오딧세이 : 몇 사람이 등장하는 오페라 무대.
목소리 음역이 다 다르다 갈등과 부조화다.
그 개성이 상대를 서로 배려하며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부조화의 음역이
때창을 하면 서로 방해가 된다. 상대가
부를 때는 길만 터준다.
부조화가 조화를 이룬다. 이를 앙상블이라 한다.
오딧세이는 앙상불의 미학이다.
다음 <F(x) -- 2>로 이어짐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걷습니다. 이왕이면 잘 걸어야겠습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들은 손발이 거룩하게 컸지
박수근 화백의 작품을 한 번 검색해봐요
모두 곤단하게 살아가는 6.25직후 어머니들인데 모두 손이 얼굴만 해
손발에 삶이 다 쓰여있지
이생각 저생각 하나마나한 생각들로 머리가 꼬인 새벽 거꾸로 읽는 재미에 빠져봅니다. 소백산 비로봉은 열 번쯤 올랐는데 잘 못 걸은 탓인지 남은게 없구요 '이제부터라도 잘 걸어봐야지' 는 물건너 갔고,,, 그래도 그냥 걸어봐야 겠습니다. 오늘의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