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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누가복음 1:26-38
제목: 은혜가 은혜 되게 하라.
서론>
여러분은 은혜받으러 지금 여기에 앉아계시는 줄 믿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은혜받기를 원하여 예배당에 왔지만, 사모하지만, 모두가 은혜받고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또 은혜를 받았더라도 은혜를 온전히 이루어야 하는데, 은혜가 은혜 되게 하는 데까지 가지 못합니다.
따라서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가? 또 그렇게 받은 은혜를 온전히 이루려면, 다시 말씀드리면, 은혜가 은혜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가? 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답은, 의롭고 경건한 자입니다(26-27절).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26절에 보시면, 여섯째 달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섯째 달이란, 하나님께서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과 관련돼 있습니다. 이 부부는 나이가 많고 늙어 둘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서 아내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전하였습니다. 그래서 좋은 소식을 전한 지 벌써 여섯째 달이 되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통해 태어난 아들이 누구입니까? 세례 요한입니다. 그 또한 하나님 앞에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서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자신은 소리의 사명을 다한 인물이 세례 요한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11절에 보시면, “지금까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습니까? 여러분 중에 불임인 부부가 있습니까?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부어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렇게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지 여섯째 달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습니다. 본문 26절, 27절을 보시면, 천사 가브리엘은 갈릴리 나사렛 이란 동네에 사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에게로 보내심을 받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마리아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요셉과 마리아가 의롭고 경건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먼저 요셉이 의롭고 경건하다는 것은 마태복음 1장 19절, 20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성경은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라고 하였고,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한 사이인데,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을 때,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으며, 이 일을 생각했다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자기 아이도 아니기 때문에 마리아를 고소해서 율법대로 돌로 침을 받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육신의 혈기를 따라, 가문의 먹칠을 했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퍼뜨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급하게 성내기 전에 신앙적으로 생각해 본 것입니다.
자기에게 일어난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자기가 아는 마리아는 순결하고 정절을 생명처럼 지키는 여인인데, 그렇게 사내 품이 그리운 헤픈 여인이 아닌데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하나님께로 가져갔습니다.
이러한 요셉을 보면서 우리는 그가 의로운 자라는 것, 경건한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리아에게서도 똑같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29절에 보시면, 천사의 인사를 받고 마리아는 놀랐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이런 인사를 왜 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마리아가 의롭고 경건하다는 것은 여러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본문 이곳저곳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사람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본문 2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아멘.
따라서 의롭고 경건한 것은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의로운 사람이 불경건할 수 없고, 경건한 사람이 불의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의롭고 경건한 것은 마치 믿음과 행위처럼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가 의로우냐? 아니면 불의하냐?는 것은 그가 참으로 경건한 사람이냐? 아니냐? 를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눅 2장 25절에 보시면,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라고 했습니다. 에녹이 의로운 것은 그가 참으로 경건한 자이었고, 노아가 의로운 것은 그 역시 참으로 경건한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과 마리아의 행동을 통해서 그들이 가진 경건의 참된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매사 자기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신앙적으로 생각하고 신앙적으로 행동해 왔습니다.
우리는 경건하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고 있습니까? 예배드리는 행위와 봉사와 헌신에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하는 것에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한 걸음 나아가 행위에 두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대해서는 신앙적으로 생각하고 신앙적으로 해결을 보려 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그 일은 내 신앙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무슨 하나님과 관련 있느냐고 합니다. 그래서 신앙적인 문제와 내 삶을 분리해 버립니다. 그것은 경건한 삶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저도 뒤돌아보면 그런 잘못을 해왔습니다. 그것은 법적인 문제이지, 신앙적인 문제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뒤돌아보니,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그때 조금만 더 참고 이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갔더라면, 신앙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니, 지금이라도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때 했던 결정과 반대로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어떠한 자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기뻐하십니까? 의롭고 경건한 자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매사에 크고 작은 일에 대해 신앙적으로 생각하고 신앙적으로 해결을 보려는 사람인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의롭고 경건한 사람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이유는 그러한 의로움과 경건함이 모든 사람에게 은혜가 되기 때문입니다(28-33).
본문 28절에서 보시는 것처럼, 마리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고 또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은혜받기를 사모하지만, 모두가 은혜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 28절 말씀의 은혜를 입었다는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은혜를 입었다는 말은, 마치 내가 옷을 입은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비유하면 왕에게 성은을 입었다는 표현처럼, 하나님께서 은혜의 옷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마리아가 입었던 똑같은 은혜의 옷을 입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처녀인데 성령으로 배 속에 아기를 가지는 것은 마리아 한 사람으로 족합니다. 그러한 은혜는 오직 마리에게만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입은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가 되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녀가 나을 아들 예수를 통해서 주시는 큰 은혜인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마리아가 낳을 아들은 다윗의 왕위를 가지고 영원히 이스라엘을 다스릴 메시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었던 다윗은 그 왕위가 영원하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을 영원히 다스리지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다스리시며 그의 나라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는 그가 메시아로서 영원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 영원한 은혜를 가져다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오시도록 의롭고 경건한 요셉과 마리아에게 은혜를 입혀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의로움과 경건함이 나에게만 신앙적으로 유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에게 은혜가 되고 또 은혜가 되어야 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는 흘러갑니다. 그런데 물이 넘쳐야 흘러갈 물이 있듯이 내가 은혜를 충만히 받아야 이 은혜가 흘러갈 수 있습니다.
마리아의 몸속에 있는 은혜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충만하다고 요한은 증언합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요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아멘
그리고 요한복음 1장 16절을 보시면,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아멘.
따라서 마리아가 입은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충만하게 나타나고 이 은혜는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흘러가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렇게 그를 믿는 자는 또 불신자에게 은혜를 흐르게 해서 그도 은혜를 받은 자가 됩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26장 29절에서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된 것처럼, 우리 또한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은혜가 흘러가도록 통로가 돼야 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은혜가 통로가 되는 데 방해되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 의를 세우고, 자기의 경건을 자랑하게 되면, 교만하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데 흘러가지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
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성전 희생 제사와 기도를 통해 받은 은혜를 백성에게 흘러가게 해야 하지만, 자기 교만 때문에, 외식 때문에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다가 은혜의 통로가 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흐르지 못하도록 방해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의롭다고 여기거나 자신이 경건하다고 해서 그 입을 재갈 먹이지 아니하면, 받은 은혜를 다 쏟아버릴 뿐만 아니라 나로 인하여 흘러가야 할 하나님의 은혜를 흐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1장 26절 말씀에서,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받은 은혜를 다 쏟아버리고 바닥까지 보이게 하는 데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 현실을 보고, 내 환경을 보고서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면, 은혜는 바닥을 봅니다. 출애굽 한 1세대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의 은혜를 경험했고, 홍해가 마른 땅처럼 갈라져서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했지만,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결국 받은 은혜를 다 쏟아버렸습니다.
받은 은혜가 없으니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누리는 땅입니다. 이 사건으로 우리는 그 땅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쏟지 않고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자만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받은 은혜에 만족하지 말고 은혜를 더 풍성히 주시기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찬양과 기도를 통해, 또는 설교 말씀을 통해서 받은 은혜를 더 풍성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더 기도하고, 더 찬양하고, 더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은혜를 이루는 데는 믿음과 순종이 요구됩니다(34-38).
마리아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비교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의 황제보다 더 부요하고 더 풍성하고 더 강력한 왕권을 가진 나라의 왕을 마리아가 임신하였기 때문에, 엄청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지만, 그 당시 의롭고 경건한 사람은 요셉과 마리아 외에도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구약 백성들에게 여러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한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이기 때문에, 그 약속 때문에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처녀라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갈릴리 나사렛 예수라는 이름으로 복음을 전파하실 것이기 때문에 갈릴리 나사렛 동네여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 약속이 이루어지려면, 구약 선지자들이 그 백성들에게 전했을 때 그들이 믿어야 했던 것처럼, 믿음이 없이는 또 믿고 순종함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어가시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고 순종하는 데는 인내가 따릅니다. 눅 2:35절 말씀에 보시면, 의롭고 경건한 사람 시므온은 이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마리아의 몸을 찌르듯 견딜 수 없는 큰 고통이 따를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리니” 아멘.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은 처녀인데 정혼 한 남편이 있는데,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면, 사랑하는 남편 요셉의 마음이 어떠할지 그렇게 사려 깊은 여인이 생각을 안 하겠습니까? 만약 사람들에게 소문이라도 나게 되면, 자신이 당할 수치와 모욕은 물론, 심지어 처녀가 정혼 한 남편이 있는데도 그 남편의 아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아기를 가졌다면, 유대 법에 따르면, 돌로 침을 당해도 싸다고 여겼습니다.
그 때문에 천사 가브리엘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자기 목숨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위험이 따름에도 마리아가 믿고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설복할 수 있도록 또 한 번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3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까?”
그래도 제사장 부부인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부부로서 동침해서 아들을 낳지만, 마리아는 처녀입니다. 처녀가 남자도 없이 어떻게 아기를 낳는다는 말입니까? 여러분 같으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마리아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요? 라고 물은 것입니다.
그래서 35-37절 말씀이 하나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의 입을 통해서 마리아가 설복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첫 번째 증거가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너를 덮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두 번째 증거가 무엇입니까? 네 친족 엘라사벳도 나이가 많고 늙어서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이미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증거가 이 모든 일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셨기 때문에,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마리아가 보인 반응은 놀랍도록 침착하고 매우 단호하며 담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8절 말씀입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아멘. 마리아의 대답은 천사가 말하는 것이 도무지 하나도 믿어지지 않지만, 덮어 놓고 아멘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마리아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마음에서 아멘 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시간을 주시면서 차근차근 설명해 주시면서 그녀가 설복할 수 있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마리아의 몸속에 있는 이 세상에 오실 예수님을 통해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가 그 약속이 이루어지려면, 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인내하며 순종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이것은 받은 은혜를 온전히 이루고자 하는 자, 은혜를 은혜 되게 하는 자들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사실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은혜를 온전히 이루려면, 은혜를 은혜 되게 하려면, 믿음과 인내와 순종은 필수라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께서도 은혜를 은혜 되게 하기까지 아버지에 대한 믿음과 인내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께 그리스도의 사역에 복종하셔야 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아버지의 뜻 곧 온 인류에게 가져다줄 영원한 은혜를 주시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분은 가롯 유다의 배신과 베드로의 부인을 견디어 내셔야 했습니다. 자신이 창세 전에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영광을 가지셨고 영화로우신 분이 이제 한낱 자신의 피조물에게 저주받고, 채찍질을 당하시며 침 뱉음과 조롱과 멸시와 천대를 받는 것을 견디어야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빌립보서 2장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시어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렇게 해서 그 은혜를 온전히 이루어, 은혜가 은혜 되게 해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까지 이 은혜가 흐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 또한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은혜 되게 하려면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내 사고, 내 이성으로 동의하고 '아멘' 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갸랴와 엘리사벳이 그랬던 것처럼, 요셉과 마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행하신 것처럼, 곧 순종하는 데까지 가야 합니다.
그리고 은혜가 은혜 되게 하는 데 방해되는 것과 결별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는 말씀으로 이기고 죽기까지 내 생명을 아끼지 않고 주를 위해 죽는 데까지 가게 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계시록 12장 11절은, “또 우리 형제들아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그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아멘.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 모두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은혜가 은혜 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두 말씀을 따라 살았고 말씀으로 죄와 이 세상과 싸워서 이겼습니다. 바로 십자가의 은혜를 폭포수처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은혜가 강물이 되고 바다를 이루어 구원의 바다가 된 것입니다. 어떤 죽은 사람도 이 바다에 헤엄치면 살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말씀대로 믿고 인내하며 순종하면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와 같은 은혜가 흘러넘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