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철학사] 제6장 바라문교의 재정비
길희성: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 졸업. 하바드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 전공.
저서- Chinul, the Founder of the Korean Son Tradition
현재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 목 차 ▒
제6장 바라문교의 재정비
1. 바라문교의 불교 ▲ 위로
불교나 쟈이나교와 같은 자유사상적 종교운동은 종래의 바라문교의 전통에 커다란 타격을 가했다. 바라문전통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베다의 제사의식과 이에 따르는 바라문계급의 종교적, 사회적 권위에 있었던 것이다. 불교나 쟈이나교의 강한 윤리적 합리성에 입각한 종교로서 반제사주의적 성격을 지녔고, 사회적으로도 또한 초세간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유리관으로 인하여 바라문계급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정신은 이미 바라문교의 내부에서도 일어나 우파니샤드 사상의 배경을 형성하기도 한 것이었다. 그러나 바라문교의 전통에 가장 큰 위협이 된 것은 무엇보다도 불교였다.
불교는 특히 마우리야왕조의 아쇼카왕의 귀의를 받아 그의 지원 아래 크게 세력이 팽창하여 전인도적인 종교로서 성장하게 될 뿐만 아니라 주변의 제국들에까지 전파되게 되었다. 아쇼카왕은 마우리야왕조의 건설자인 챤드라굽타의 손자로서 B.C. 269년경에 왕조를 물려받았다.
챤드라굽타는 알렉산더대왕의 인도 서북부침입으로 인한 인도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서 당시의 강대국이었던 마가다의 난다왕을 제거하고 수도 파탈리푸트라를 장악하여 마우리야왕조를 수립했다(B.C. 320). 챤드라굽타는 그의 대신이며 유명한 실리론의 제자로 전해지는 카우틸리야의 보조를 받아 인도의 역사상 최초로 강력한 통일국가를 형성하는 위업을 이루게 된 것이다.
아쇼카왕의 치적에 관하여는 다행히도 그가 남긴 바위와 석주에 새긴 속령들을 통하여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 칙령에 의할 것 같으면 그는 많은 정복활동을 통하여 그의 영토의 확장에 힘쓰던 중 인도 중동부의 카링가 지방의 정벌 후에 전재의 참상을 깨닫고 마음을 돌이켜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로부터 전쟁을 통한 영토의 확장정책을 포기하고 그 대신 법에 의한 승리를 추구하는 것을 그의 대의정책으로 삼았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이와 같은 도덕적인 정책을 통하여 인접국가들로부터 많은 승리를 거두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정에 있어서도 그는 인정을 베풀어 여행자를 위하여 길가에 과실나무를 심고 휴게소를 만들고 우물을 파는 일, 약초의 재배와 요양원의 설치 등 사회복지사업에 힘썼다. 그는 특별히 음식과 제사를 위한 살생의 유적지에 순례를 행했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법에 의한 통치를 위하여 법대관들을 지방에다 파견하여 감독하게까지 하였다.
아쇼카왕은 당시의 모든 종교교단들에 관용을 베풀었지만 그 자신은 불, 법, 승의 삼보에 귀의한 불교신자였다. 그가 전파하려고 한 법이란 불타의 깊은 철학적 진리를 말한다기보다는 주로 선한 도덕적 행위를 뜻했지만, 여하튼 그것은 바라문의 사회윤리로서의 다르마가 아니라 불교의 보편주의적 평등사상에 입각한 윤리적 선을 의미했다는 데서 큰 의의를 지녔던 것이다.
마우리야왕조는 아쇼카왕의 사후 급속히 쇠퇴하게 되었고 인도는 다시 정치적 혼란기로 들어갔다. B.C. 183년경에는 바라문 출신의 장군 푸샤미트라 슝가라는 사람이 나타나 마지막 마우리야왕을 제거하고 슝가왕조를 수립했다. 그는 정통 바라문주의의 신봉자로서 베다의 동물제사를 부활시키며 불교를 탄압했다.
이상과 같은 역사적 상황하에서 바라문교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전통을 재정비하며 불교와 같은 대중적 종교운동에 대항하여 그들의 사회적 저변을 확대할 필요에 봉착한 것이다. 우리는 이 시기에 바라문교가 대체로 세 방면으로 새로운 지반을 구축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첫째로 불교와 같이 해설을 위한 수행의 체계를 조직적으로 발전시키는 노력이다. 이것은 요가사상의 체계적 발전으로 나아간다. 둘째로, 바라문교는 비아리안 계통의 인도의 원주민들에 깊은 뿌리를 박고 있는 토착적 신앙과의 습합을 통하여 대중적 신앙으로 발전해 나갔으며, 세째로는 불교에서 비교적 등한시해온 재가자들을 위한 생활규범으로서의 사회윤리체계의 확립에 힘썼다.
이러한 노력들을 통하여 바라문교는 좀더 포괄적인 종교로서 그 지반을 확대하면서 불교의 도전에 대처하였던 것이다. 바라문교의 이러한 새로운 추세를 잘 반영해 주고 있는 문헌은 서력 기원 약 200년경에 완성되었다고 여겨지는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와 같은 서사시들이다. 특히 마하바라타는 실로 인도 고전문화의 총화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그 내용이 다양하고 풍부하며 종교, 철학, 법률, 정치, 윤리, 신화, 역사 등의 백과사전적 보고와 같은 문헌이다. 이제 이 마하바라타를 중심으로 하여 바라문교의 새로운 모습을 검토하여 보자.
2. 쉬바신과 비슈누신의 신앙 ▲ 위로
본래 마하바라타는 베다시대의 아리안족들 중의 하나인 바라타족의 군담으로서, 현재의 델히부근인 쿠루크세트라라는 지방에서 벌어지는 왕위계승을 둘러싼 전쟁의 이야기를 그 중심소재로 하고 있다. 그러나 약 1000년 정도(B.C. 800~200 A.D.)의 오랜 세월을 두고 자라는 동안 바라문들의 손에 의하여 위에서 말한 여러가지 사상적 내용들이 혼입되어, 현재에는 약 10만송 가량의 방대한 서사시로서 18권으로 나뉘어져 있다. 종교적으로 보아 마하바라타는 많은 부분이 바라문의 베다적 전통을 그대로 전수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베다에서 찾기 어려운 점들도 발견된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중요한 것은 힌두교의 가장 대중적 신앙의 대상인 쉬바신과 비슈누신의 등장이다.
쉬바신의 숭배는 하라파나 모헨조다로의 유적발굴에서 나온 인더스 문화의 유물들을 통하여 제시되었듯이, 아리안족의 이주 이전의 인도 원주민들에 그 기원을 가지고 있는 듯 싶으나, 그 후 아리안족들의 베다전통에서는 거의 종적을 감추게 되었다. 그러나 슈베타슈바타라 우파니샤드와 같은 후기 우파니샤드에 와서 쉬바는 베다의 신 루드라와 동일시되고 다름아닌 브라만 자체로서 간주되게 된다. 이것은 그 동안에 쉬바신에 대한 신앙이 널리 발전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마하바라타에 와서는 그는 온 우주를 창조한 위대한 신으로 숭배될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신화적 전통도 풍부하게 형성되어, 히말라야의 높은 카일라사 산 속에서 심한 고행을 통하여 이 세계는 유지되며 상투를 튼 그의 머리꼭대기에는 초생달이 걸려 있고 이로부터 성스러운 갠지스강이 흘러나온다고 한다. 그의 몸은 고행자들처럼 재로 덮여 있고 그의 모과 팔은 뱀으로 휘감겨 있다. 그의 곁에는 그의 무기 삼지창과 그가 타고 다니는 황소 난디가 있으며 그의 아름다운 아내 파르바티 혹은 우마와 함께 히말라야 산 속에 거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쉬바신은 또한 세계의 창조적 힘으로서 남근의 상징을 통하여 숭배되기도 한다. 남근숭배는 이미 하라파문화의 유적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마하바라타에서 쉬바신보다도 더 큰 대중적 신앙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비슈누신이다. 비슈누신은 물론 베다와 브라흐마나에서도 이미 중요한 신으로 언급되지만, 그가 대중적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은 베다 전통의 밖에서 숭배되고 있던 바수데바나 크리슈나와 같은 신, 혹은 바라문의 종교전통에 기원을 둔 또 하나의 신 나라야나와 동일시된 후로부터이다.
여하튼 마하바라타에는 비슈누, 나라야나, 하리, 바수데바, 크리슈나 등이 모두 같은 존재로 동일시되고 있으며, 바가바트, 즉 존귀한 자, 주라는 뜻의 칭호로서 불리어지고 있어 그에 대한 신앙과 전통이 널리 퍼지고 발전되어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비슈누신은 세계와 만물의 근원으로서, 유명한 신화에 의하면 그는 태고의 대양 가운데서 천수를 가진 뱀 쉐샤 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 동안 그의 배꼽으로부터 연꽃이 자라난다. 이 연꽃으로부터 우주창조의 대행자 브라마신이 태어나서 세계를 창조한다. 세계가 창조되자 비슈누신은 잠에서 깨어나 최상천인 바이쿤타에서 세계를 다스린다고 한다. 그는 주로 네 개의 팔을 가진 어두운 색깔의 인간으로 묘사되며 큰 독수리 가루다를 타고 다닌다. 그의 아내 락스미 혹은 슈리도 행운의 여신으로서 널리 숭배되었다.
마하바라타 가운데서 비슈누신앙을 가장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은 유명한 바가바드기타이다. 기타는 힌두교의 바이블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한 종교적 철학적 문헌으로서, 인도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애독되고 잇는 고전이다. 이제 그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3. 바가바드 기타의 사상 ▲ 위로
바가바드 기타는 원래 바수데바라는 인격신을 숭배하던 중인도 서부의 바가바타파에 의하여 만들어진 독립적인 시편으로서, 나중에 마하바라타의 일부분으로 흡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가바드란 말은 숭배할 만한 자 혹은 지극히 존귀한 자라는 뜻이며, 기타는 이 지존의 노래 혹은 가르침이라는 듯이다. 이 바가바타파들이 거하던 지방에 크리슈나라는 영웅이 있었는데, 이 영웅은 신격화되어 지존과 동일시되게 되었으며, 바가바드신앙이 점차 퍼짐에 따라 바라문 문화의 중심지인 중인도 동부에까지 미쳐, 결국 바수데바-크리슈나신은 비슈누신과 동일시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바가바드 기타의 교훈의 주가 되는 크리슈나는 비슈누신의 화신으로까지 간주되게 된 것이다.
마하바라타는 바라타족중에서 사촌간인 판다바 형제와 카우라바 형제들 간의 왕위계승을 위한 싸움의 이야기이다. 바가바드 기타는 이 서사시의 제 6권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 직접적인 배경은 다음과 같다. 판다바 5형제 중의 세째이며 크리슈나의 친구인 아르쥬나는 그의 사촌들인 카우라바 형제들과 전장에서 대결하여 살육전을 벌이려고 한다. 그 순간 그는 용기를 잃고 만다.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동족을 죽이지는 못하겠다고 고백을 하자, 아르쥬나의 수레잡이로서 그를 돕던 크리슈나가 그에게 무사로서의 의무인 싸움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설득시킨다. 이것이 바가바드 기타의 형식상의 이야기로 되어 있다.
바가바드 기타는 그 실제 내용에 있어서 어떤 체계적인 철학논서라기보다는 여러가지 해탈의 방법을 제시한 실천적 성격이 강한 종교적 작품이다. 다시 말하면 바가바드 기타는 그 전체적 성격을 한 마디로 규정한다면 요가의 고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가바드 기타는 3종의 요가를 말하고 있다. 즉 지의 요가, 행의 요가, 그리고 신애의 요가이다. 각기 인간의 시, 정, 의의 3면에 상응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지의 요가는 지에 대한 전념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기타에서 지란 상키야철학에 있어서처럼 영원한 정신으로서의 참자아와 물질적, 현상적 자아와를 분명히 구별하는 지혜를 의미하며, 혹은 우파니사드적인 범아일여의 진리와 신을 아는 지혜를 의미하기도 한다.
신애의 요가는 신에게, 특히 비슈누신에게 온 정신을 집중하고 그에 대한 믿음과 사랑과 헌신에 의하여 윤회의 세계로부터 구원을 받게 된다는 사상이다. 신애의 사상은 이미 슈베타슈바타라 우파니샤드에도 나타나 있지만 바가바드기타에 와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자세를 보이게 되었으며, 그 후의 모든 대중적 신앙운동과 유신론적 철학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행의 요가는 기타에 있어서 가장 독특하고 창의적인 사상으로서, 바라문의 사회윤리 질서와 해탈의 길과의 긴장관계를 해소해 주는 데 그 사상적 의의가 있다. 바라문의 사회윤리에 의하면 사람이란 누구든지 자기가 속한 계급과 나이가 규정하는 올바른 행위 dharma를 하여야만 하며 그렇게 해야만 사회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올바른 행위를 할지라도 우리는 자연히 그 행위의 결과를 얻기 마련이며 따라서 윤회의 세계에 속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우파니샤드 이후에는 모든 행위를 부정하며 사회적 유대관계를 끊어 버리고 고행과 더불어 신비적 지식만을 추구하는 포기자의 이상이 성행하게 된 것이다.
특히 불교에 의하여 이러한 운동이 대폭적으로 확대됨에 사회윤리 및 질서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바라문계급의 지도자들에게는 상당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게 되었으며, 바라문교 자체의 사회적 기반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바가바드기타"의 행의 요가 사상은 사회윤리를 준수하는 행위 자체가 해탈의 이상에 비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기타"에 의하면 우리의 속박을 가져오는 것은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는 욕망이라고 한다. 행위는 아무런 욕망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하는 한 업보를 초래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행위자의 내면적인 태도를 강조한다. "기타"는 말하기를 사람은 자연의 본성상 잠시도 행위없이 존속할 수 없으며, 문제는 행위를 하느냐 안하느냐가 아니라, 어떠한 자세로 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참다운 체념은 "행위를 전혀 하지 않는 체념"이 아니라, "행위 가운데서의 체념"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윤리와 해탈간의 긴장관계는 카르마 요가에 의하여 지양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행위를 하면서도 체념을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여야 욕망이 없이 행위 아닌 행위를 할 수 있겠는가? "기타"는 두 가지 길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지혜의 필요성이다. 특별히 상키야 철학에서 말하는 영원한 두개의 형이상학적 원리가 되는 정신과 물질에 대한 혼동없는 확실한 구별을 아는 지식을 말한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우리의 물질적 자아가 하는 것이며, 우리의 참자아인 정신은 어떠한 행위에도 개입하지 않으며 언제나 자유로운 방관자 내지 관조자와 같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 때에는 우리는 아무 욕망 없이 우리가 지닌 프라크르티의 필연적 성품에 따라 자연스러운 행동을 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카르마 요가의 다른 한 방법은 우리의 모든 행위를 신에 대한 전적인 사랑과 헌신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순수한 것으로서 업보를 초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의 은총에 의해 그와 사랑의 연합을 하는 구원에까지 이르게 된다고 한다.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보면 결국 행의 요가란 지의 요가나 신애의 요가로부터 독립해서 있는 길이라기보다는 바로 지와 신애에 입각한 행위의 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하튼 "기타"가 욕망없는 행위라는 개념에 착안하여 사회윤리적 의무와 해탈이라는 초월적 이상을 동시에 살리는 적극적인 행동의 철학을 전개한 것은 인도사상사상 특기할 만한 사상이다.
"기타"는 행의 요가라는 사상을 통하여 한편으로는 사성계급에 근거한 전통적인 사회질서를 옹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애의 길을 통하여 여자나 슈드라 계급까지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대중적인 구원의 길을 터준 것이다. 참으로 포기한 자는 외형적으로 출가한 자가 아니라 마음의 집착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와진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타"의 사상을 자세히 살펴볼 것 같으면, 지와 신애를 둘 다 강조하고 있으며, 때로는 지에 가장 높은 수행의 목표를 두는가 하면 다른 곳에서는 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최고의 길로 제시되고 있으며 지는 신애에 이르는 수단으로 간주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바가바드 기타"에는 우파니샤드적인 일원적인 사상과 상키야철학의 이차론적 요소, 자각의 종교와 신앙의 종교와의 차이 등이 아직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후세의 베단타철학의 거장들인 샹카라와 라마누자가 각기 자기의 철학적 입장에 따라 이 양면 중의 한 면을 더 강조하는 "기타"의 해석을 하게 된 것도 그 근거가 이미 "기타"내에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4. "해탈법품"에 나타난 철학사상 ▲ 위로
"바가바드 기타"와 더불어 "마하바라타"의 또 하나의 중요한 철학적 부분은 제12권 "해탈법품"이다. "해탈법품"의 철학사상도 결코 어떤 체계화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잡다한 사상들이 여러 모양으로 반복되어 나타나는가 하면 상호 모순적으로 서술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주로 상키야요가철학의 사상이다.
우리는 이미 후기 우파니샤드들에 상키야철학의 사상이 나타나 있음을 언급했거니와 "마하바라타"의 "해탈법품"에는 이 원시 상키야 사상이 더욱 발전되어 체계화된 상키야 사상에 아주 가까운 형태로 전개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해탈법품"의 인도철학사적인 의의는 후기 우파니샤드와 마찬가지로 체계화된 상키야철학 이전의 상키야 사상의 발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데 있다. 특히 상키야 철학의 25윈리 및 세계전변설의 기초가 이미 이루어져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우선 감각기관의 수는 눈 귀 코 혀 몸의 5근으로 고정되어 사용되고 있으며, 여섯번째의 감각기관이라 불리는 의근이 심리기관으로서 모든 감각기관의 우두머리로 정립되어 있다. 또한 오원소설이 이론적 발전을 보아 오근에 해당하는 오대 혹은 오원소가 설정되게 된다. 종래에는 땅 물 불 바람의 사원소만을 말하던 것이 공이라는 소리의 성질을 지닌 원소가 추가되어 인도철학의 일반적인 정설로 형성되었다. 이 오대와 더불어 그들이 각각 지니고 있는 지배적 성품으로서 향 미 색 촉 풍의 오경이 언급된다.
그러나 나중에 우리가 고찰하겠지만 고전 상키야체계에서처럼 오경이 아직은 오유로 대체되어 있지 않으며, 오대도 오유로부터 전개해나오는 것이 아니다. 또한 다섯 개의 감각기관인 오지근과 오작근 및 의의 11근도 오대와 오경으로부터 생기는 것으로 되어 있어, 자의적으로부터 전개된 것으로 보는 고전 상키야의 설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외에도 정신적 원리인 푸루샤와 물질적 원리인 프라크르티의 개념은 물론, 상키야 철학의 세계설명의 중요한 이론이 되고 있는 3요소의 사상도 찾아볼 수 있다.
"해탈법품"에는 이론적인 상키야 철학뿐만 아니라 실천적 성격이 강한 요가의 사상이 아직도 상키야 철학과 밀접하게 연결되지 않은 채로 발견된다. "해탈법품"은 요가는 사회계급이 낮은 자나 여자들도 실천하여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상키야의 주지주의적 철학에 대하여 요가의 대중적, 실천적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요가의 실천방법에는 여러 가지 상이한 견해들 발견되나, 그 핵심은 감각기관을 대상의 세계로부터 퇴거하여 의근에 붙잡고 모든 생각의 활동을 멈추어서 우리의 참자아를 밝게 드러내는 것에 있다. 아트만을 아는 것은 아트만 자체라 하기도 하고 혹은 지성이라 하기도 하나, 의근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 의근이 아트만과 더불어 윤회의 주체가 된다는 사상도 우리의 주목을 끈다. 고전 상키야 철학에 있어서 부디가 차지하고 있는 지배적 역할과 대조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5. 바라문적 사회윤리의 확립 ▲ 위로
불교가 아무리 왕성한 포교활동과 자유롭고 평등한 윤리적인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대중적 종교로서 바라문교를 위협하는 세력을 형성하였다 하더라도, 불교는 종교로서 한가지 결정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불교가 불타 당시부터 출가승들을 중심으로 한 사원중심적인 종교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탈에 관한 적극적인 관심과 갈망이 없는 재가자들의 일상생활에 관한 한 불교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규정해 주는 윤리체계는 제공하지 못했다. 재가자들의 종교생활은 삼보에 귀의하여 오계를 지키며 승가에 필요한 물질적 포시를 하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오히려 그들의 일상 생활의 관습속에 깊이 파고들어 가서 그들의 행위를 지배하는 것은 베다시대 이래로 계속해서 내려오는 제의적 행위의 전통이었다. 더우기 우파니샤드 시대 이래로 고대인도인들 가운데서 윤회와 업보에 대한 믿음이 보편화되면서 과연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동들이 선한 행위로서 좋은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하여 재가자들은 자연히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같은 베다내에서도 브라흐마나와 같은 것은 제의를 주로 다루는 행위편으로서 우파니샤드와 같은 지식편과 별도로 연구되어 왔지만, 행위의 문제는 브라흐마나 이래로 계속해서 바라문 지도자들의 관심을 끌어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베다적 의식들의 규범을 취급하는 "천계경", 재가자들의 사회생활의 의무를 더 폭넓게 규정해 주는 "가정경"이나 "의무경"들이 편찬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의무"란 것은 우주의 법칙 그 자체에 근거하여 그것을 유지한다고 믿어지는 제사의 의무뿐만 아니라 사회적 의무까지 의미하게 되었다. "의무경"은 이러한 면에서 바라문교의 윤리전통상 매우 중요한 문헌으로서 누구나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하는 사회적 의무와 의례적 규범들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의무경"은 더욱 발전하여 서력기원전 약 200년경부터 기원후 300년경 사이에는 고대인도인의 생활규범을 더욱더 완전하게 체계적으로 제정해 놓은 법전들이 편찬되게 된 것이다. 이 법전들 가운데서 가장 권위있는 것은 마누법전(200B.C~300 A.D)과 야즈나발키야법전(100~300) 같은 것으로서, 이들은 마우리야왕조 이후 인종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점점 더 복잡해 가는 사회적 상황과 불교와 같은 비바라문계의 종교적, 사상적 위협에 대처한 바라문들의 대응으로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 법전들도 우파니샤드처럼 지식과 해탈을 인생의 최고의 목표로서 인정하고 있지만 이들의 실제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현세의 삶 속에서 지켜야 할 올바른 의무적 행위를 체계적으로 규정해 주는데 있다. 이러한 의무적 행위체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소위 "마르나아슈라마"제도, 즉 사성계급의 사회적 의무와 인생의 사기에서 개인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삶의 형태를 제시해 주는 제도이다. 특히 생의 사기에 대한 이론은 현세에서 사회적 질서를 준수하며 사는 재가자의 삶과 초세간적 해탈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서 만들어 진 것이다.
즉, 생의 제1기는 범행자의 생활로서, 아동기를 마친다는 표식으로서 입문식을 한 다음 집을 떠나서 스승의 지도하에 베다 등의 학문을 배우며 금욕적인 생활을 한다. 제2기에는 학습기간이 끝난 다음 재가자로서 결혼을 하고 신들과 조상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일, 후계를 낳는 일 등을 하며 본능적 욕망과 부를 추구하는 생활을 한다. "마누법전"은 이 시기를 바라문적 사회질서의 핵심으로서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제3기는 제가자로서 성공적인 삶을 마치고 손자를 본 다음 숲속으로 들어가서 은거하면서 명상과 금욕의 생활을 한다. 이것이 임서자의 생활이다. 마지막으로 제4기에는 완전히 일체의 사회적 축대관계를 끊고서 현세의 삶을 "포기한 자"로서 오로지 해탈의 세계만을 추구한다.
이와 같이 하여 바라문의 사회윤리체계는 인생이 추구해야 할 제가치들을 치우침 없이 균형있게 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함으로써 불교의 해탈중심적인 경향을 제재하며 사회전체의 이익을 도모하고자한 것이다. ▲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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