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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있는 것은 성장하고 변합니다. 우리도 성인이 될 때까지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변합니다. 그러기에, 어린아이가 아무리 귀여워도 시간이 지나면 성장해야 합니다. 또, 신체만 자라고 성장해서도 안됩니다. 신체가 자라고 성장하는 만큼, 생각과 지식도 자라고 성장해야 합니다. 신체는 자랐는데 생각과 지식이 자라지 못하면, 참으로 심각한 일입니다. 그런데, 나무와 풀을 보면 새삼 신기합니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에,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지만, 나무와 풀은 이런 불볕더위 속에서도, 전혀 시들지 않고 오히려 더욱 푸른빛이 짙어집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나무와 풀은 땅속으로 뿌리를 내려서 수분과 영양분을 섭취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 옥상의 작은 화분에서 자란 잡초들을 제거하기 위해 뽑아보면, 흙 위에 있는 부분보다 흙 속에 있는 뿌리가 훨씬 더 깁니다. 어떤 것은, 화분 흙의 절반을 차지하여, 흙인지 뿌리인지 반반인 것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작은 화분에 있으면서도, 여름철의 불볕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푸른 빛을 발하며, 잘 자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된 우리에게는 믿음이라는 영적 생명체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몸 된 교회와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지체들이 하나가 되어 행하는 믿음으로, 이는, 날마다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믿음은 교회를 출석하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변화를 경험해야 합니다. 하지만, 영적 변화를 경험하고 교회를 다닐지라도, 신앙의 상태는 갓 태어난 어린아이와 같기에, 하나님께 쓰임받는 성숙한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계속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삶의 인도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우리의 삶을 견고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거짓의 아비요 우리를 멸망시키는 두려움의 영을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전하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은, 교회와 성도가 지향해야 할 완전한 영적 성숙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모든 성도와 교회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중심적인 어린아이에 머무르지 않고, 교회공동체의 유익을 생각하며 이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성숙한 모습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나가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원합니다. 하지만, 나 중심의 사고와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미숙함을 내려놓고 전체를 생각하는 성도가 되어,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3절을 보시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야, 성숙한 성도가 됩니다.
본문의 시작을 보시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라고 합니다. 여기서, “믿는 것”은, 믿음의 행위라기보다 믿음의 내용을 의미하며, 또, “아는 일”은 그리스도가 중심이 된 구원에 포함된 모든 것을 인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되게 하는 것이, 교회의 목사와 주일학교 교사들에게 부여된 사명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의 일치에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일치가 근본이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앙이라는 추상적인 명칭 하에, 자신들이 원하는 여러 형태의 그리스도관을 가집니다. 이로 인해, 신앙의 불일치가 생겨나며, 또, 이단들이 생성하고, 활약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목사와 교사를 세우셨고, 목사와 교사는 이 사명을 충성으로 맡되,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어서, 본문의 중간을 보시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라고 합니다. “온전한 사람”은 “장성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됩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사람은 모든 부분에 있어서, 성숙한 신앙의 모습을 갖춤으로, 그리스도의 충만한 상태가 됩니다. 여러분, 본문이 제일 먼저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겁니다. 성도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알 때, 우리의 속사람은 성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모든 교회가 예수님을 믿는 일에 대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성도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대하여 이것이 바르고 참된 믿음이다”라고 정하는 것이 아니며, 또, 믿음이 좋다고 인정을 받는 사람의 믿음을 믿음의 기준으로 내세우는 그러한 믿음도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르고 참된 믿음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겁니다. 교회가 예수님에 대해 믿고 아는 일에 있어서, 하나가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우선적인 것은, 교회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성령을 통해, 교회에게 주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 안에서 서로 하나 된 모습을 증거하며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이심을 굳게 믿는 것이 믿음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굳세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름으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4절을 보시면,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성도 각 개인의 성장만큼 성장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자라지 않고 여전히 어린아이의 믿음에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성도가 될 수 없으며,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을 누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자라서 성숙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믿음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와 반대인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신학생시절에, 마포에 있는 동방정교회를 방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수업시간에, 동방정교회가 초대교회의 형태를 가장 많이 유지하고 있다고 배웠고, 또, 우리 기독교가 아닌 다른 교회들을 탐방하여, 보고서를 제출하는 과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동방정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느낀 것은, 참으로, 세월의 변화에 따라가지 않고, 정통적인 것을 그대로 고수하며, 신앙을 지키는 교회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세월이 변하는 데, 교회는 변하지 않는다며, 세상의 문화를 변화시키려면,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면서,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교회도 변화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위험한 것은, 이렇게 변화하는 것은 좋지만, 이에 따라 우리의 신앙도 변한다는 겁니다. 세상의 변화 중심에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의 편리함입니다. 우리의 만족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근본은 인본주의입니다. 바로 이러한 인본주의가 우리의 신앙에도 자리를 잡게 됨으로,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신앙을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바꾸는 주객전도의 결말을 가져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그 곳의 원주민들과 통용하지 말고, 그들의 풍습을 따르지 말고, 그들을 모조리 몰아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패망을 맞이 한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이, 우리의 신앙을 지키는 것인가?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생활을 하는 것인지를, 우리는 기도하며, 찾아서 실천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시면,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여기서의 “어린 아이”는 앞 절인 13절의 “온전한 사람”과 대조되는 말입니다. 또한, 이는, 마 18: 3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에서의 “어린 아이”와도 구분됩니다. 본문에서의 “어린 아이”는 영적 분별력이 없는 상태를 말하며, 마 18장에서의 “어린 아이”는 순수함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본문에서의 “어린 아이”는 영적 분별력이 없음으로, 무엇이 잘못된 신앙이고 이단이며, 또, 비성경적인 것인지를 알지 못하기에,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나 주변에서 미혹하는 거짓된 사람의 말을 듣고 이단과 사이비에 빠져 교회를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여, 온전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교회의 성장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 각 개인의 성장과 그 궤적을 같이 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교회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장할 때 비로소 성장하게 됩니다. 영적 어린아이는 믿음의 성장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부흥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오히려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분열을 시킵니다. 그래서, 성도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진리인 말씀에 따라 믿음의 진실을 말하며, 행동하고 생활함으로,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6절을 보시면,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해야 합니다.
교회의 성장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그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속사람인 영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 15: 1 - 2을 보시면,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고 합니다. 여러분, 성도된 우리의 신앙 성장 목표가 무엇입니까? 주기철 목사님과 같이 되는 겁니까? 아니면, 손양원 목사님과 같이 되는 겁니까? 아니면, 다윗과 되는 겁니까? 아브라함처럼 되는 겁니까? 그들은 신앙 성장의 목표를 이룬 분들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목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그들처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에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을 찾고 그 분께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 안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이것을, “성령충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를 보면,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오순절에 마가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행 2: 41을 보시면,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고 합니다. 또, 행 2: 47을 보시면,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합니다. 결국,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교회가 변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가운데, 성도된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는 것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성장과 성도의 영적 성장은 동일선상에서 비례합니다. 그러기에, 이것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겁니다. 지금껏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개인적으로 받는 은혜에만 익숙한 가운데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 각 개인에게 주시는 은혜가 은혜의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본문을 조용히 상고해 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유기체인 우리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의 성장만큼, 우리의 유기체인 교회가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름으로, 교회를 성장시키고, 부흥시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