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444)... 비만 관련 5대 질병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옛날에는 영양실조, 요즘은 비만 걱정
8월 15일은 70년 전 일제(日帝)로부터 해방(解放, Liberation)되어 식민지의 국권을 회복한 광복절(光復節, Independence Day)이다. 그리고 해방 후 3년간 공산주의자들의 수많은 도전을 극복하고, 미군정(美軍政)으로부터 주권을 이양 받아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을 건국하였다.
광복과 건국의 기쁨이 채 가시기 전에 대한민국은 1950년 북한의 6ㆍ25남침전쟁으로 국토가 잿더미가 되었으며,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하였다. 당시 쌀이 귀하여 쌀밥은 할아버지 생일 때 먹는 특식(特食)으로 1년에 한번 먹을 정도였다. 주식(主食)은 소나무 껍질을 보리와 함께 빻아 쒀 먹는 송구죽, 송구죽과 무을 재료로 한 남삐죽, 쑥과 보릿가루를 버무린 쑥범벅 등이었다. 따라서 영양실조(營養失調)가 만연하였다.
해방 후 李承晩(1875-1965) 대통령의 농지개혁(農地改革) 덕분에 시장경제체제가 뿌리내렸으며, 朴正熙(1917-1979) 대통령이 경제개발계획의 꽃을 피워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굴레에서 벗어났다. 또한 세계사의 중심에서 국운융성기를 누려 한국인의 삶도 완전히 달라졌다. 따라서 요즘은 영양과잉으로 인한 비만(肥滿)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과거에 지겹게 먹던 죽(粥)이 최근에는 웰빙(well-being) 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광복 후 70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는 국내총생산(GDP)이 3만1000배가량 증가했으며, 이에 비례하여 국민의 소비력도 크게 늘었다. 한국인의 기대수명(평균수명)은 1960년 51.2세에서 2013년 81.94세로 증가하였다.
서울시의 ‘2012년 기준 자치구별 출생 시 기대수명’ 통계에 따르면 서초구가 83.14세로 가장 길고, 강남구(82.97세)와 송파구(82.55세)가 뒤를 이어 부촌(富村)으로 분류되는 강남 3구 주민들은 다른 구민들에 비해 기대수명도 긴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전체 기대수명은 81.54세로 여성(84.22세)이 남성(78.92세)보다 5.3년 더 오래 산다.
최근(8월 13일)에 국민건강보험공단(National Health Insurance Service)이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사무처(WHO WPRO, 소재지: 필리핀 마닐라)와 보건복지부 후원으로 ‘비만(肥滿)예방 국제심포지엄(International Symposium on Obesity Prevention)’을 개최하였다. 이번 국제심포지엄은 400여명의 전문가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주제별 2개 세션과 종합 토의로 진행됐다.
제1세션의 주제는 ‘아시아의 비만 실태’로 신해림 WHO WPRO 만성질병과장이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 지역의 비만 현황과 예방 및 관리’에 대해 발표했다. 제2세션은 ‘아시아의 비만 예방과 관리’라는 주제로 말레이시아, 중국, 태국, 한국 등 아시아 주요 국가의 비만관리 전략에 대해 각국 비만관리 전문가들이 발표했다. 종합토의 시간에는 우리나라의 비만정책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심도 있는 토론이 진행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09년 ‘비만(obesity)’을 21세기 신종 전염병으로 지목했다. 비만은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정신적인 질병까지 유발할 수 있다. 비만과 관련된 질병에는 고혈압, 당뇨병, 뇌졸중, 고지혈증, 심혈관계 질환, 관절염과 통풍, 수면 무호흡증, 월경불순과 불임, 각종 종양(대장암, 유방암, 전림선암) 등이 있다.
비만은 에너지 섭취와 소비의 균형이 평형을 이루지 못할 때 발생한다. 즉, 에너지 섭취가 증가하거나, 에너지 소비가 감소하면 체중이 증가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경제발전과 함께 식생활의 서구화와 패스트푸드의 등장으로 인해 비만이 증가하고 있다.
비만인 경우 대개 체중이 많이 나가지만 근육이 많은 사람도 체중이 많이 나갈 수 있다. 따라서 체내에 지방(脂肪)조직이 과다한 상태를 비만으로 정의한다. 즉 신체비만지수인 체질량지수(BMI, Body Mass Index) 즉 체중(kg)을 신장(m)의 제곱으로 나눈 값이 25(서양인은 30) 이상이면 비만으로 정의한다.
전 세계적으로 비만율(肥滿率)이 1980년과 2014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하여 2014년 현재 전 세계 성인 인구의 약 13%(남성 11%, 여성 15%)가 비만에 해당된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공단이 검진 자료 1억900만여 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비만 인구가 2002년 29%에서 2013년 31.5%로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 고도 비만(BMI 30 이상)은 2.5%에서 4.2%로 1.7배, 초고도 비만(BMI 35 이상)은 0.17%에서 0.49%로 2.9배 늘었다. 특히 20대 청년들의 고도 비만은 11년 전보다 2.5배, 30대는 2.7배 증가하여 20ㆍ30대 젊은층의 고도 비만 증가 폭이 컸다. 비만 인구가 전체적으로 증가한 가운데 개인의 노력만으론 극복하기 힘든 고도 비만과 초고도 비만인 사람이 2013년 기준 55만명이 넘어선 상태이다.
이번 국제심포지엄에서 아동청소년의 비만관리가 시급하다는 것이 강조됐다. 아동청소년 비만의 80% 이상이 성인 비만으로 이어진다. 아동청소년기의 비만은 낮은 자존감, 우울증, 식이장애 등을 일으키거나, 제2형 당뇨병, 성조숙증, 성선기능저하(男兒), 다난성난소증후군(女兒) 등을 생기게 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아동청소년 비만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소득과 학력수준이 낮을수록 비만율이 높았다. 따라서 이들 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관리가 필요하다.
비만과 관련된 5대 질병(뇌졸중ㆍ고혈압ㆍ심장병ㆍ당뇨병ㆍ이상지혈증) 치료 비용도 2002년 8000억원에서 2013년 3조7000억원으로 4.5배 늘었다. 현재 추세가 계속되면 오는 2025년에는 이들 질환 치료비용이 7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비만 관련 질병 진료비 증가가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적인 운영 측면에 부담을 주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비만 유별률 및 진료비 증가에 선제로 대응하기 위하여 지난해 11월 ‘비만관리대책위원회’를 출범하였으며, 올해 말 연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비만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인 도움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비만 예방 및 관리와 관련된 법안 중 ▲건강증진법, 식품안전기본법, 지역보건법, 보건의료기술진흥법, 건강검진기본법, 영유아보육법 등은 보건복지부 위주로 관리되고 있으며, ▲학교급식법, 학교보건법, 유아교육법 등은 교육부에서, ▲청소년기본법은 여성가족부, ▲식품산업진흥법, 식생활교육지원법, 축산물가공처리법은 농수산부,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부, ▲국민체육진흥법, 체육시설이용법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관장하고 있다.
이와 같이 비만관련 법안 25개가 6개 부처에서 나눠서 맡고 있기에 각 부처마다 따로 사업을 추진하므로 사업의 연계성이 떨어져 시너지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또한 비만 프로그램이나 사업에서 표준 가이드라인이 없어 중구난방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비만관리를 ‘건강’이 아닌 ‘미용’적 관점에서 보는 잘못된 인식도 있다. 이에 여러 부처의 비만사업을 일원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비만정책 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보건복지부가 중재자가 돼 비만 프로그램을 관리하도록 한다.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계획에 따라 오는 2018년부터 급여로 적용되는 고도비만환자의 비만수술도 단순히 BMI 지수를 기준으로 하거나 합병증이 있는 초고도비만환자 등을 급여 대상자로 할 경우 일부러 체중을 늘리는 등 문제가 일어날 수 있으므로 도덕적 해이가 일어자니 않도록 케이스 바이 케이스 방식으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또한 비만수술 후 바로 급여로 해주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추적관찰과 사후관리 등에 참여한 환자에 대해서만 급여로 인정해주는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비만관리와 관련해 2020 중장기계획이 있지만, 절반까지 온 현시점에서 비만율이 감소되기는커녕 오히려 늘고 있는 추세이다. 따라서 정부 부처간 프로그램 관리뿐만 아니라 비만율을 본격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환자관리도 필요하다.
비만 치료의 기본은 식사량을 줄이고 운동량을 증가시켜야 한다. 식사요법은 칼로리 섭취를 줄여야 하므로 평소에 섭취하던 열량보다 500-1000kcal 정도 덜 섭취하도록 한다. 운동은 치료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매일 30분 이상 하는 것이 좋다.
생활습관 개선 이외에도 약물로 비만을 치료하기도 한다. 비만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의 종류는 크게 식욕억제제와 지방의 흡수를 저해하는 약으로 나눌 수 있다. 수술은 BMI 40 이상인 초고도 비만인 환자에게 시행한다.
식욕억제제 시부트라민을 1년 정도 복용할 경우 평균적으로 5-9%의 체중이 감소한다. 그러나 약물 부작용으로 두통, 심한 갈증, 불면증, 변비 등을 비롯하여 혈압과 맥박수가 다소 증가할 수 있으므로 주기적으로 혈압과 맥박수를 체크해야 한다.
지방분해효소의 억제제인 오르리스타트는 체내에서 지방이 소화되지 못하도록 하는 약이다. 이에 섭취한 지방의 약 30%는 소화 및 흡수되지 않고 몸 밖으로 배출된다. 부작용으로 대변이 자주 마렵거나 지방변(脂肪便)이 생길 수 있다. 지방 흡수율의 감소로 장(腸)에서 지용성비타민의 흡수율도 떨어질 수 있으므로 종합비타민제를 복용하는 것이 좋다.
비만은 만성질환이므로 병원 비만클리닉에서 전문의사의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비만클리닉에서는 단순히 비만 약제(藥劑)를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병의 시작인 대사증후군(代謝症候群)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통해 개개인에 맞는 맞춤 치료법을 시행한다. 이에 비만 치료는 단순한 체중 감량보다는 체질 개선과 건강증진의 개념으로 인식하여야 한다.
비만클리닉을 방문하면 ▲비만 전문의 상담(비만도 측정, 식습관 및 생활습관), ▲호르몬 분석검사, ▲인슐린 내성검사(인슐린 저항성 측정, 당불내성 평가), ▲체성분 분석(체지방의 양과 비율, 근육량과 비율 등), ▲복부 및 대퇴부 컴퓨터 단층촬영, ▲경동맥 초음파검사, ▲비만 전문의 재상담(각종 검사 결과 분석, 비만형 분류, 치료 방향 결정), ▲비만 전문 영양 상담, 운동 상담, 행동 치료, ▲정기적 추적관찰 등을 체계적으로 실시한다.
한편 대학병원 등에서 무료로 실시하는 ‘비만교실’에 참석하면 ▲비만 전문의 강의, ▲비만 전문 영양사의 체중 감량과 유지를 위한 식단 짜기, ▲비만 전문 운동 치료사의 운동요법 지도, ▲행동 치료사의 비만 행동 요법, ▲전문영양사가 추천하는 교육용 식사 제공, ▲각종 교육 자료 및 기구 배포, ▲체지방 측정 등으로 진행한다.
우리사회는 비만에 대한 경각심이 미약하여 비만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비만을 심각한 질환으로 보지 않고 미용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비만을 각 개인, 학교, 지역사회, 국가 모두가 국민건강의 중점과제에 두고 협력을 통해 적극적인 관리에 임하여야 한다. 비만은 ‘질병’이라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글/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청송건강칼럼(444). 2015.8.20. mypark1939@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