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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의 리얼리즘적 양상과 그 특성(3)
정신면과 내용면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나. 정신면과 내용면
리얼리즘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시정신, 즉 주제의식이다. 아무리 서정시일지라도 그 시적 관심의 대상 즉 주제의식이 사회적 현실을 향하고 있으면 그것은 리얼리즘시인 것이다. 그것은 작가의 시정신과 연관되어 있고 이것이 작품의 지향성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판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는 본질적으로 서사물이 아니기 때문이고 아무리 구체성의 시일지라도 언어적 형상화의 비중이 큰 장르이기 때문에 그 판별 기준을 서사성이나 구체성에 둘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 곧 시정신과 이것이 드러난 시적 지향성에다 두어야 될 것으로 본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표방하고 나선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원, 즉 카프 회원들은 적극적인 저항과 사회 참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였다. 이런 흐름은 기존의 낭만시에 대한 한계 인식에서 비롯된다. 박종화의 <앞으로 우리가 가져야 할 예술은 힘의 예술이다. 가장 강하고 뜨거웁고 매운 힘 있는 예술이라야 할 것이다. 미온적인 사실문학 그것만으로는 우리의 고뇌를 건질 수 없으면 시대적 불안을 위로할 수 없다.는 박종화의 이같은 언명은 기존의 낭만시로서는 시대적인 모순과 고뇌를 드러낼 수 없다는 철저한 반성을 그 바탕에 깐 것이었다. 자기 시의 반성적 태도 위에서 현실인식을 추구한 대표적인 예로 주요한, 양주동, 이상화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이상화는 <백조>동인으로 참가하여 현실에서의 절망과 탈출을 추구해 왔지만 곧 이어 <파스큘라>에 가담하면서 이 같은 태도를 버리고 있다. 작품 <선구자의 노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은 이상화의 이같은 변모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이상화는 밀실이나 동굴 등을 통하여 보인 현실에 대한 불신이나 소극적인 저항 내지 수용을 변모시켰던 것이다.
식민지적 궁핍상이나 무산대중에 대한 뚜렷하고 분명한 관심은 ‘사회 저항과 현실 참여’라는 내용의 문학을 추구했다. 이같은 관심은 1922년 <무산 계급해방을 위하여 문화를 가지고 싸운다>는 슬로건 아래 염군사의 조직을 불러오고 이듬해는 인생을 위한 예술의 건설을 목표로 한 파스큘라를 조직케 한다. 이 파스큘라는 일제 식민지 시대 프로문학의 제1기를 담당하여 교도적 계몽으로 프로문학을 소개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염군사와 파스큘라는 사회적 관심과 문화적 교양 사이의 상대적 우열 때문에 미묘한 불화 관계를 지속하다가 1925년 카프로 해체 통합하기에 이른다. 1920년대에 두드러진 활동을 한 시인은 임화, 김기진 등에 국한해야 할 것이다. 카프 이론가들은 부르조아 문예가 기교의 아름다움이나 인종을 강요하는 데 비하여 프로 문예는 적극적인 현실 변혁과 사회정의를 주장한다고 하였다.
사상적 저술보다도 문학 작품이 존중될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수준작일 경우 이념이나 사상의 차원보다 본질적인 정신의 차원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데 있다.시인들이 무슨 특별한 존재라기보다 문학적 형상 자체가 창조과정의 정신 작용을 생생하게 육화시켜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시의 경우 다른 장르에 비해 시적 주체를 매개로 창작자의 정신 작용을 더욱 직접적으로 핍진하게 드러내는 양식적 속성이 있고 그렇기에 애매하게 보이기 쉬운 시정신 논의가 구체성과 생산성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시가 인간 정신 작용의 정수를 보여주는 예술의 한 양식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육체만의 인간을 상정할 수 없기에 정신이란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것이고 그러한 정신의 작용이 예술의 한 형태로 정착된 것이 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작품 속에는 창작 주체의 정신이 응축되어 드러나 있고 독자들은 그 시를 통해 시인의 정신을 접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시정신은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시적 자아 혹은 시적 주체와, 시적 대상 혹은 세계현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시 속에 투영되는 것이다. 특히 리얼리즘 시정신은 시적 주체와 세계현실의 긴밀하고도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구현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수준에 오른 작품일 경우 시정신은 시인의 감각과 체험이 육화된 상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논리나 사상의 차원을 넘어선다.
작가는 도덕이나 정치의 문제에 관하여 뚜렷한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성격에 대해, 정열에 대해, 인간사에 대해 또한 사회의 모든 사상에 대해 절개수술을 가해야 한다.그리하여 작가의 충실한 리얼리즘은 낡은 상황을 부수면서 새로운 현실을 형성해나가는 독자적 기능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최두석은 <시와 리얼리즘>이란 자신의 논문에서 리얼리즘시 정신, 즉 ‘세상을 바로 보고 바로 살려는 마음’이 진보주의, 비관주의, 현실주의와의 관관 관계를 통해 구현된다고 보고 있다. 이 말은 연구 대상 시인들에게 그러한 경향이 농후하다는 것이지 이 세 가지가 리얼리즘시 정신의 전부란 의미는 아니다.
첫째, 진보주의적 경향이다. 근대정신 혹은 현대정신의 특징으로 진보에 대한 신념을 내세울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진보란 인간 생활이 전반적으로 한층 좋은 상태로 이행해가는 것을 의미하고, 진보에 대한 신념이란 미래에는 사태가 좀더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절실할 수밖에 없는 일제 강점기에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진보주의에 경사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초기 카프 시는 정신의 작용을 생생하게 형상화로 보여 주지 못했다. ‘뼉다귀’시라는 호칭이 생겨날 정도로 정신이 형상으로 구현되지 못하고 이념을 구호의 형태로 생경하게 노출시킨 경우가 많았다. 이는 진보에 대한 절박감 혹은 조급함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진보주의적 사유가 시의 속성에 대한 천착과 변증법적 상관관계를 맺지 못함으로써 선전 선동성에 대한 일방적인 강조로 치달았던 것이라 생각된다.
시인에게 있어 정신의 단련은 시적 성취와 함께 나아가는 것이 정도다. 카프 시 가운데 진보주의적 사상이 단련되면서 폭과 깊이를 획득해가는 모습은 임화에게서 가장 대표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임화의 진보주의가 시의 속성과 상관관계를 맺으면서 단련되는 것은 다다이즘 실험시를 거쳐 “프롤레타리아 진영 시의 새 지평을 타개한 것들”로 평가되고 있는<네거리의 순이> 등의 단편서사시를 창작하면서부터이다.
순이야 누이야
근로하는 청년 용감한 사나이의 연인아......
생각해보아라 오늘은 네 귀중한 청년인 용감한 사나이가
젊은 날을 싸움에 보내든 그 손으로
지금은 젊은 피로 벽돌담에다 달력을 그리겠구나
드리고 이 추운 밤 가느다란 그 다리가 피아노줄같이 떨리겠구나
또 이봐라 어서
이 사나이도 네 크다란 오빠를......
남은 것이라곤 때묻은 넥타이 하나뿐이 아니냐
오오 눈보라는 도락구처럼 길거리를 달아나는구나.
- 임화. <네거리의 순이>, 부분 -
이 시는 어조와 화법이 실감나게 형성되어 있다. 어조나 화법의 형성은 시적 형상을 창조하는 데 기본이 된다. 이 시는 이념을 직설적으로 토로하지 않고 형상적 자질로서의 서사로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이 시의 주된 화제는 오빠의 친구이자 누이의 연인인 ‘근로하는 청년’에 대한 것으로 그는 현재 노동운동을 하다가 구속되어 감옥에 있다. 시적 서사에 의해 상황과 인물이 구체화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선 시인이 젊음을 유달리 강조하고 청년의 용감성을 부각시키는 데서 창작 주체의 정신이 어떠한가를 알 수 있다. 이 시에서 청년은 진보를 이룩할 위대한 사명을 지닌 자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추론하자면 ‘임화의 진보주의적 정신은 진보를 이룩하기 위하여 매진하는 청년의 형상 속에 투영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 비관주의적 경향이다. 일제의 식민지 상태에 있던 이 땅의 시인들이 사회의 발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에 당대 시인들이 진보에 대한 열망이나 신념을 위주로 하는 시를 쓰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보주의적 신념이나 열정은 일제 파시즘의 진군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와 관련된 것이 바로 비관주의적 정신이다.
사회의 진보에 관해서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있겠는데, 1930년 이후의 일제 강점기는 아무래도 비관론이 실감났던 시기이다.당시 일제 파시즘의 폭압 아래서 그들을 물리칠 민족 내부의 힘을 감지하지 못한 시인들에게는, 비록 세계사가 진보의 방향으로 나아간다해도 그것이 우리 민족사와 연결될 수 없었던 관계로 시인에 따라 혹은 사회적 상황 악화에 따라 절망감에 깊숙이 빠져드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러한 경향을 시정신의 비관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오호 이리하야 내 청춘은 반 넘어 늙었건만
행락도 사랑도 모르는 채 반 멈어 늙었건만
오 모든 것은 지나간 세월과 함께 자최도 없는 꿈이든가
어이넚다 기가 차다 내 오늘날 한 개의 가라지 신세될 줄이야
참으로 참으로 나는 한 개의 가라지
죽도 밥도 못되는 한 개의 가라지
아아 어느 날 어느 때 꺽어져도 쪼드러져도
누구하나 원통해할 이 없는
- 이찬, <가라지의 설움> 부분 -
가라지 즉 강아지풀에 시적 자아를 비유한 서정시로서, 작가인 이찬은 과거 카프에 속했던 시인들 둥에서 대표적으로 비관주의적 경향을 보인다. ‘가라지의 설움’이라는 제목에도 나타나듯 비관적 정서가 시의 주조를 이루고 있다. 미래의 비관적 전망에 대해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임화의 태도라면, 절망에 빠져 자신을 적나라게 드러내는 것이 이찬의 태도다. 비관주의적 경향을 보인 중요한 시인으로 오장환과 백석이 있다. 둘은 모두 국가 상실감을 통절하게 앓아낸 시인인데, 그에 대한 시적 대응양상은 다르다. 오장환이 전래적인 것을 송두리째 부정하였다면, 백석은 급격하게 사라져가는 전래적인 것들을 재현하는 데 심혈을 기울렸다.
셋째, 현실주의적 경향이다. 사회의 진보를 지상의 과제로 두는 진보주의는 물론이고 이상의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절망하는 비관주의에도 바람직한 세계에 대한 열망은 내포되어 있다. 사회의 변혁을 꿈꾸며 기획하는 것이 진보주의자의 입장이라면 변혁의 가능성을 믿을 수 없어 절망감에 시달리는 것이 비관주의적 입장인 셈인데, 중요한 것은 아무리 암담한 현실일지라도, 그리하여 진보가 아무리 절박할지라도 현실을 진지하고 겸허하게 끌어안는 태도이다. 즉 바람직한 세상은 하루 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현실세계의 변화를 통해 이룩되는 것이라는 점을 창작 태도 속에 제대로 육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진보가 아무리 절박하더라도 이상을 당위로 경화시키지 않은 채 현실에 대한 창작적 대응을 유연하고 집요하게 수행하는 자세를 상정할 수 있는데, 그러한 자세를 떠받치는 시정신을 현실주의라 할 수 있다. 현실주의는 세상을 바로 보고 바로 살려는 마음 가운데 우선 세상을 바로 보는 문제에 역점을 두는 것으로서, 당대의 지배적 세력에 대한 영합이나 순응을 의미하는 현실추수주의와는 상반되는 개념이다.
눈 덮인 철로는 더욱이 싸늘하였다
소반 구퉁이 옆에 앉은 농군에게서는 송아지의 냄새가 난다.
힘없이 웃으면서 차만 타면 북으로 간다고
어린애는 운다. 철마구리 울 듯
차창이 고향을 지워버린다.
어린애가 유리창을 쥐어뜯으며 몸부림친다.
- 오장환, <북방의 길> 전문 -
인용시에서 기찻간 농부 일가족의 정경이 예사롭지 않다. 파탄 상태에 빠진 당시의 조선 농민이 자신의 생활 근거지로부터 쫓겨가는 장면을 핍진하게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의 시적 주체는 화자 차원으로 물러나 있고, 그 점이 당대의 민족 현실을 드러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즉 시인의 주관 개입을 가능한 한 억제함으로써 효과를 본 경우인데, 그 점은 시인의 울고 싶은 마음이 유리창을 쥐어뜯으며 우는 어린애의 모습으로 객관화된 데서도 드러난다. 이 시에서 시적 주체는 진보에 대한 열망을 숨긴 채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시를 쓰는 시인의 내면에는 ‘세상을 바로 보고 바로 살려는 간절한 마음’이 깔려 있다고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눈 덮인 철로는 더욱 싸늘하였다.”나 “소반 귀퉁이 옆에 앉은 농구에게서는 송아지의 냄새가 난다”와 같은 시구를 산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농군에게서 송아지 냄새를 맡고 철로의 싸늘함을 느끼는 것에서 이 시는 시적 대상과의 긴밀한 상관 관계를 내장하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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