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덴뿌라(天ぷら)의 어원
덴푸라(天ぷら, 템푸라)는 식재료에 밀가루와 계란으로 만든 반죽을 묻혀 튀겨내는 일본의 튀김 요리이다.
같은 튀김이지만 전분반죽을 튀김옷으로 쓰는 가라아게, 빵가루를 쓰는 후라이와는 전혀 다르다. 일본에서 고로케나 돈까스는 덴푸라가 아니라 후라이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덴푸라가 더 고급스러운 음식이라는 인식이고, 상대적으로 가라아게나 후라이는 서민적인 입지를 담당한다. 한때는 덴푸라가 분식집 튀김과 같은 음식이었지만 극도로 바삭하게 만드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공을 들인 고급화된 덴푸라가 대세가 되면서 인식이 달라졌다.
덴푸라의 대표적인 재료로는 새우, 물오징어, 꽈리고추, 아삭이고추, 당근, 깻잎, 고구마 등이지만, 통상적으로 제철 어패류와 야채들이 적절하게 사용된다.
야채를 튀기긴 했는데 야채튀김마냥 재료를 뭉치지 않고, 재료를 낱개로 튀긴 것이 많다. 사실 재료를 뭉친 경우인 카키아게(かき揚げ)가 따로 있다.
볶음밥의 형태로 나올 경우 날달걀의 겉부분을 빵가루 같은 것으로 코팅한 뒤 제공해서 터뜨려서 밥과 비벼먹는 형식으로 내주기도 한다.
일본어 "덴푸라(天ぷら)"의 어원은 "사계제일(四季齊日)"을 뜻하는 포르투갈어 "템포라(têmpora)"에서 유래하였거나, "양념"을 뜻하는 포르투갈어 "템페루(tempero)" 또는 "양념하다"를 뜻하는 동사 "템페라르(temperar)"의 3인칭 단수 형태인 "템페라(tempera)"에서 유래했다고 추정된다.
1529년, 스페인과 포르투갈간에 사라고사 조약(Treaty of Zaragoza)이 체결된 이후 동방무역은 포르투갈이 주도했다.
1543년, 일본 다네가섬(종자도)에 표류한 포르투갈 인이 처음으로 유럽의 화승총을 전해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이 최초로 일본과 포르투갈 간에 교류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
이후 포르투갈 왕 주앙 3세가 동방에 파견할 선교사를 구하자 당시 예수회 원장이었던 로욜라의 추천을 받은 하비에르는 선교사가 되었다. 1549년, 예수회 소속 하비에르 선교사가 최초로 카톨릭을 일본에 전하였다.
이때 함께 온 일행들이 카톨릭의 금육일(禁肉日)을 지키기 위해 고기 대신에 생선과 야채를 기름에 튀겨 먹으며 자연스럽게 튀김 요리 문화가 전래되었다.
카톨릭 금육재(禁肉齋)
과거 일본 요리에서 튀김 음식은 튀김옷 없이 튀기거나 쌀가루를 묻혀 튀겼다는 설이 있으나[출처 필요] 튀김요리가 발달하지 못했었다.
포르투갈인들은 밀가루 튀김옷을 묻혀 튀기는 방식을 소개했다.
포르투갈의 페이시뉴 다 오르타 등이 덴푸라의 기원이 된 음식이라 추정된다. 에도막부는 유채기름 증산을 주도하였고 튀김요리는 서민들도 먹을 수 있는 대중적인 음식이 되었다.
메이지유신(1868년) 때에는 기존에 금기시 했던 육식에 대한 해금령이 내려지자 돈가스를 비롯해 갖가지 서양의 튀김요리가 유행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