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방희 작가의 첫 소설집. 짧은 소설 11편과 단편소설 5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집은 한 편 한 편 높은 완결미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서정성에 바탕을 두면서도 역사와 현실을 꿰뚫는 서사적 핍진함이 신선하면서도 세련된 소설 미학을 한껏 보여주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들을 통해 왜곡되고 파괴된 시대적 질곡 속에 내던져진 사람들의 굴곡진 삶의 애환을 예리한 시선으로 드러내고 있다. 함축적인 서사 전개와 반전의 묘미를 통해 삶의 이면을 들춰내는 동시에 서정성 짙은 문체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 출판사 서평 ::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굴곡진 애환을
작가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로 위무하고 다독이는 소설들!
아동문학은 물론 일반문학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박방희 작가가 그동안 주력해 온 동시와 동화, 시와 시조 장르를 넘어 소설가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바로 소설집 『달로 가는 남자』를 펴낸 것이다.
사실 박방희 작가는 오랜 기간 소설 창작을 함께 해왔다. 2001년에는 《스포츠투데이》 신춘문예에서 추리소설 부문에 「서 있는 여자」가 당선되었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오랜 기간 작품을 갈고 닦으면서 간간이 선보여 왔을 뿐 본격적인 활동은 미루어 왔다. 따라서 작품집을 통해 본격적으로 독자들을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그런 만큼 한 편 한 편 높은 완결미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서정성에 바탕을 두면서도 역사와 현실을 꿰뚫는 서사적 핍진함이 신선하면서도 세련된 소설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박방희 작가를 소설가로 처음 만나는 독자들의 반응이 어떨지 적잖이 기대된다.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눠진다. 흔히 엽편(葉篇)소설, 혹은 장편(掌篇)소설이라 불리는 짧은 소설 11편과 일반 단편소설 5편으로 구성된 것이다. 소설의 분량이 뭔 대수냐 싶겠지만, ‘나뭇잎 한 장, 혹은 손바닥에 쓴 소설’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짧은 소설은 그만큼 함축적일 수밖에 없는 소설 양식이다. 즉, 인생의 한 단면을 날카롭게 포착해내 하나의 픽션으로 응축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타의 소설과는 다른 미학적 차원을 느끼게 한다. 간혹 인물들의 굴곡진 인생과 그 삶을 좌지우지하는 시대적 풍랑을 촌철살인의 예리함으로 꿰뚫어내는 동시에 해학과 풍자로 삶의 본질을 드러내는 묘미가 엽편소설의 주요 특징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한다.
물론 박방희 작가의 짧은 소설은 해학이나 풍자에 치중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함축적인 서사 전개와 반전의 묘미를 통해 삶의 이면을 들춰내는 동시에 서정성 짙은 문체로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김호운 소설가는 “소소한 일상은 물론이고 때로는 가슴 아픈 이야기마저도 서정적인 문장으로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라고 평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다수의 작품들이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장 서정적인 작품인 「얼룩」에서 보듯이 대체로 삶의 아픔을 아우르는 서정적 문체와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서사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어서 서사적 완결미에 이르고 있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한국 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들은 예리한 시선으로 왜곡되고 파괴된 시대적 질곡 속에 내던져진 사람들의 굴곡진 삶의 애환을 꿰뚫어 함축적으로 집약해 보여준다.
그때부터 아이는 아버지를 기다렸다. 밤에 자지 않고 있다가 아버지를 만나, 아버지가 빨갱이가 아니라는 대답을 꼭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손님」
「손님」의 한 대목이다. 아이의 아버지는 무슨 연유인지 쫓기는 몸이 되었다. 집안에서는 멀리 장사하러 갔다고 말하지만 마을에서는 빨갱이가 되어 군경에 쫓겨다니는 걸로 소문이 나 있다. 아이들도 빨갱이 자식이라고 놀려댄다. 그래서 아이는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아버지를 기다리는 것이다. 빨갱이가 아니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 하지만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 한밤중에 찾아온 사내가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아버지는 끝내 손님인 양 모른 척 말없이 다녀갈 뿐이다.
이처럼 빨치산이 된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 말고도 월북한 남편을 기다리는 어머니(「다락 속의 아버지」), 빨치산이 된 아들을 기다리는 노인(「신작로」) 등 누군가의 기다림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 애잔함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들은 한국 현대사의 아픔인 분단과 이념 갈등이 초래한 슬픈 가족사를 상기시키고 있다.
여전히 분단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념 갈등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블랙홀이자 아킬레스건과 같다. 하지만 이 오랜 갈등과 상처를 아물게 할 당사자 역시 우리이고 그 방법 역시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등」에서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빨치산을 잡으러 토벌대로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남산댁 이야기와 빨치산이 된 남편을 기다리는 지실댁 이야기가 함께 등장한다. 인민군이 강성할 때는 지실댁네 집 등불이 환하게 불이 켜지고, 반대로 토벌대의 공격으로 공비가 힘을 못 쓸 때는 남산댁네 집 등불이 불을 밝힌다고 함으로써 당시 이념 대립의 아이러니한 양상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과 대립도 서로에 대한 애정과 이해 앞에서는 해소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에서는 동지 팥죽 한 그릇이 서로의 마음을 열고 다가서게 한다. 남산댁이 지실댁에게 동지 팥죽으로 손을 내밀어 화해를 하는 장면에서는 훈훈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이외에도 노동운동을 하다가 수배자가 된 아버지를 기다리는 가족 이야기(「아버지는 더 이상 집에 오지 않는다」), 집이 도청을 당하는 바람에 가족과 전화 통화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노숙인(「밝고 따스한 곳」)의 이야기도 시대에 맞서는 개인과 그를 기다리는 가족들의 안타까운 현실이 애잔함을 더하고 있다.
이에 비해 5편의 단편소설은 좀더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특히 「고모」는 한 여성의 일대기를 소략하게 다룬 과거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에게 던지는 메시지의 울림이 아주 큰 작품이다. 새댁 시절 남편을 잃고 유복자를 낳아 키우면서 평생을 다한 노모가 아들의 부양을 거부한 채 스스로 소멸해 가는 과정이 애처롭기만 하다. 그런데 작품의 제목이 ‘고모’라는 점에서 비상함이 느껴진다. 한자로 ‘古母’라고 표기한 작가의 의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즉, ‘옛날 어머니’라는 뜻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고난을 몸소 이겨내면서도 절대적인 헌신과 희생, 그리고 절제의 미덕을 보여온 어머니상은 이제 옛날 어머니상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개인적 욕망과 자기애가 우선하는 요즘 시대에 한번쯤 되돌아봐도 좋을 ‘古母’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표제작 「달로 가는 남자」는 사소한 접촉사고로 인해 속속들이 드러나는 주변 인물들의 사생활과 속내를 통해 현대 자본주의 시대의 음흉한 인간성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결국 사소하기 짝이 없는 접촉사고로 인해 지상을 잠시 떠돌던 남자는 자신의 고층 빌딩 사무실로 올라가 평소의 일상을 되찾는다. 달과 지상의 대비를 통해 현대인들의 일그러진 욕망의 그늘을 그린 작품이다.
이외에 전업작가로 나선 화자가 세상 속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그린 「낮은 세상」, 남북문제를 다룬 「거인을 위하여」, 실직을 한 나도 씨가 도시 곳곳을 산책하며 마지막 휴일을 보내는 이야기인 「나도 씨의 마지막 휴일」도 눈여겨볼 만한 작품들이다.
:: 차례 ::
작가의 말
머슴과 참꽃
손님
아버지는 더 이상 집에 오지 않는다
밝고 따스한 곳
형제
저녁 눈
등
얼룩
다락 속의 아버지
신작로
수레 끄는 노인
고모(古母)
낮은 세상
달로 가는 남자
거인(巨人)을 위하여
나도(羅稻) 씨의 마지막 외출
발문
:: 추천의 말 ::
박방희 소설을 관통하는 제재는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굴곡진 애환들이다. 때로는 부드러운 시선으로 때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 삶들을 꿰뚫으며, 그 속에 녹아 있는 사랑과 아픔을 꺼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우선 박방희 소설가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눈길을 끄는 것은 부드럽고 아름다운 문장이다. 그러면서도 서사를 이끄는 힘이 넘친다. (……) 일흔이 넘은 나이에 첫 소설집을 냈지만, 나는 지금부터 박방희 소설가의 창작활동이 물꼬를 트듯 왕성하게 이어져 우리를 놀라게 하지 않을까 큰 기대를 한다.
—김호운(소설가,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동시로 시로 익히 아는 박방희 선생이 소설을 보여주실 줄은 정말 몰랐다. 짧은 픽션들이지만 이것이 시와는 엄연히 다른 장르인데, 이걸 해내다니! 소설이 자랑하는 스토리와 극적 구성 면에서 한 편 한 편 완결미를 보이면서 또한 그 작은 픽션들이 서로 묘한 고리를 이루어 전체적으로는 장편소설을 제공하는 듯하다. 운문 영역에서 다져온 시적이자 환상적인 문체, 아동을 대상으로 한 오랜 창작 이력에서 절로 뿜어 나오는 우화적이자 동화적인 서사성 등으로 우리 소설에서 흔하지 않은 세계까지 확보했다. 문장 사이사이의 여백에 머물게도 하고, 다음 장면을 빨리 보려고 서둘게도 한다.
—박덕규(소설가, 단국대 교수)
:: 작가의 말 ::
나는 이제 소설로 세상에 말을 건다.
더러 세상에 시비하거나
도발도 하게 될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
:: 작가 소개 ::
지은이_박방희
2001년 《스포츠투데이》 신춘문예 추리소설 부문에 「서 있는 여자」 당선. 마천산 자락에서 전업작가로 살며 시, 시조, 동시, 동화, 소설 등 여러 장르의 글을 쓰고 있다. 대구소설가협회. 한국미니픽션작가회, 한국소설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