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인간, 좋은 남편, 훌륭한 아버지의 삼박자가
너무 어려웠던 그들에게
- 40대가 된 딸이 평생 이해하기 어려웠던 80대 아버지를 인터뷰하다 -
소설가이자 다큐멘터리 작가,
여든을 넘긴 아버지를 인터뷰하다
저자 김경희 작가는 KBS 다큐 공감, EBS 하나뿐인 지구, EBS 다큐프라임 등의 방송작가이자 소설가다. 그녀는 수많은 이들을 만나 그들을 알기 위해 인터뷰해오면서 언젠가는 소중한 가족에 대한 인터뷰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특히 언제나 서먹하고 불편했던 아버지, 평생 어머니를 고생시킨 이기적인 아버지, 그렇기에 속 깊은 이야기 한 번 제대로 나누지 못했던 아버지가 마음에 걸렸다. 실은 그의 인생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어느 날 용기 내어 아버지에게 인터뷰를 신청했다. 백발의 팔순 노인이 되어 있는 아버지와의 10번에 걸친 인터뷰에서, 그녀는 비로소 아버지가 아메리카노 커피를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젊은 시절 전라도 이리(익산)의 소문난 ‘주먹’이었음도 알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위해 자신의 화려한(?) 과거를 청산하며 서울로 상경한 것이다. 이후 그는 취객과 진상 손님을 상대해야 하는 택시 운전수로 살아야만 했다. 가슴 속의 열정과 갈증, 욕망을 늘 억누르고 살아야 했던 그는 술에 취한 날이면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이야!” 하며 포효하기 일쑤였다.
저자가 40이 넘도록 알고 있던 아버지는 게으르고 이기적인 가장이었다. 모두가 ‘미친 듯이 바쁜 하루를 보내며 한 푼이라도 더 벌어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을 당연히 여기던 시대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하루 일하면 하루는 꼭 쉬어야 했던 남자였다. 느즈막이 집을 나서 일을 하곤 점심때면 어김없이 들어와 대자로 누워 코를 골며 한숨 자고 나야만 다시 일을 나섰다. 아내가 늘상 눈물을 훔칠 때 언제나 맛있는 음식을 찾고, 언제나 즐길 거리를 찾으며 사는 철없는 남편이었다. ‘물을 마시고도 이를 쑤셔야 폼이 난다’던 아버지는 그렇게 언제나 희생적인 아버지와는 거리가 멀던 사람이었다.
마흔이 넘어 인생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 마흔 넘긴 딸은 아버지를 인터뷰하며 비로소 남편과 아버지의 모습을 넘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아버지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실은 아버지를 미워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있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인터뷰가 끝나고 정확히 한 달 뒤에 희귀 암 판정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어린 딸은 아빠 품에 안겨 “나는 커서 아빠랑 결혼할 거야!”
라고 앙증맞게 외치곤 한다.
그러나 철이 들며 점점 “나는 절대 아빠 같은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하기 일쑤다.
아버지도 한 인간이었음을 자식은 잊고 산다
마흔을 넘겨서야 부모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어째서일까. 아마도 부모님 나이가 되어 보니 세상은 마음먹은 대로 살아지지 않는다는 것, 자신이 감당해야 할 역할이 너무도 많고 무거워서 죽도록 힘들었을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일 것이다.
그 나이가 되어 보니, 이미 그들은 노년의 삶을 살고 있다. 어머니의 인생과 등장인물들에 대해서는 늘 귀에 딱지가 앉도록 수십 번, 수백 번 들어 아예 외울 지경이 되는 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아버지는 말이 없다. 사랑한다는 말도, 원망도, 어떠한 변명도 없다.
이 책은 그들을 위한 것이다. 한때 가슴속에 수많은 열정과 꿈을 품고 가족들을 위해 밖에 나가 청춘을 불살랐던(성공과 상관없이) 그들, 나이가 들어 집으로 돌아와 보니 서먹해진 가족들에게 어떠한 변명도 없이 그저 늙고 사라져버린 그들이 궁금해진 어느 딸의 기록이다. 아버지가 말문을 열자, 아버지의 인생이 보였다. 그리고 가족과 자식에 대한 사랑이 전해졌다.
▶김경희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대 후반 라디오 드라마 무대>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고 30대에 TV다큐멘터리로 전향했다. 대표작으로는 KBS 수요기획 <제주에 살어리랏다>, KBS 다큐공감 <영혼을 채우는 음식, 소울푸드>, EBS <하나뿐인 지구>, <세계의 아이들>, EBS 다큐프라임 <생선의 종말>, MBC 다큐스페셜 <꽃으로도 때리지마라> 등이 있으며 여전히 방송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 리얼 다큐에세이 《제주에 살어리랏다》, 여행 에세이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 엔솔로지 《호텔 프린스》, 《소설 제주》, 《소설 부산》 등이 있다. 논픽션인 다큐멘터리와 픽션인 소설 사이에서 늘 갈팡질팡한다.
오랜 세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2018년 출판사 권유로 그를 인터뷰하게 되면서 극적으로 화해에 성공했다. 소통의 행복도 잠시, 곧바로 아버지가 암 판정을 받았다.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그건 아닐 테지만 마음 한쪽이 늘 저릿하다. 아버지는 변명하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아버지와 보낸 마지막 사계절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차례
추천사 | 아빠를 쉽게 사랑할 수 없었던 수많은 자식들에게
프롤로그 | 딸은 아빠의 인생을 이해할 수 있을까?
1장. 아버지는 늘 불편한 존재였다
애매하고 어색한 사이 | 아빠, 외롭게 해서 미안해요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이야기 | 12살, 아빠와의 인생 암흑기가 시작되다 | 단성사, 그리고 나의 첫 영화 <장군의 아들> | 가출의 추억 | 요가 같은 사람 | 허영의 쓸모 | 아버지가 싫어서
2장. 그는 알고 보니 참 멋있는 사람이었네
주 3일 근무, 워라밸의 선구자 | 식도락과 한량 유전자의 은밀한 역사 | 88서울올림픽, 그리고 칼 루이스의 사인 | 씨름에 진심인 어느 가족 | 나에게는 건달의 피가 흐른다 | 나에게는 싸움꾼의 피가 흐른다 | 발가락이 닮았다고? 식성도 닮는다
3장.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한 남자의 마지막 시간들
19시간의 수술이 끝나고 난 뒤 | 옛날 노래를 듣다 | 카프카의 변신 – 암 병동에서 알게 된 것들 | 마지막 커피 | 마지막 호흡 | 아버지는 변명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 | 죽음의 모습 | 새벽 3시의 김치볶음밥 | 암스테르담에서 융프라우까지
4장. 아버지를 인터뷰하다
-딸이 아버지에게 드리는 100가지 질문과 답
에필로그 | 발목이 시큰해도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책 속에서
아빠의 존재는 내게 늘 연구대상이었다. 그는 늘 사람을 헷갈리게 했다. 어떨 때 보면 남자다운 모습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가 순식간에 비겁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늘 허를 찔린 기분이 들었다. ‘아빠라는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아빠라면 가족을 위해 전적으로 희생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빠를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습관을 가졌다. 어떤 게 아빠의 본모습일까 헤아려 보기 위함이다. 고민의 힘이란 그런 걸까? 나는 웬만하면 사람에게 잘 속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속거나 이용당하는 아빠를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한두 번이야 속을 수 있다지만 아빠는 뒤돌아서면 또 속았다. 그러면서 재산도 많이 잃었다. 웬만하면 다시는 안 볼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아빠는 마음에 담아두는 것 없이 또 보는 사람이다. 어린 마음에는 그런 모습을 보며 아빠가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는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들어온 아빠가 거실에 앉아 울부짖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내 인생은 도대체 왜 이 모양이야!” 하고 포효하는 한 마리 사자처럼 보였다. 아빠는 그런 사람이다. 자신의 잘난 모습이든 못난 모습이든 고스란히 노출하는 사람이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을 듣고는 나는 단박에 아빠를 떠올렸다. ‘하늘나라 사람의 옷은 재봉선이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너무 아름다워서 흠잡을 데가 없다’는 뜻도 되지만 ‘옷감에 재봉선이 없다 보니 치부가 다 드러날 수도 있다’는 뜻도 된다. 아빠도 그랬다. 자신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마음을 숨기고 안 그런 척 하는 것은 아빠의 성향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 탓에 아빠 같은 사람들은 결국 무인도처럼 외로운 삶을 산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자신을 속이고 살지는 않았다. 단점과 치부가 다 드러나는 아빠로 인해 힘들 때도 많았지만 다르게 보면 나는 아빠 덕에 생각의 힘을 기를 수 있었다. 가히 미래에 올 고통을 미리 겪게 하는 그는 요가 같은 사람이다.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나는 아빠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모두 희생적이고 훌륭할 수는 없을 것이다. 꿈을 이루지 못한 아버지도 있고, 자랑할 거 하나 없는 인생을 산 아버지도 있다. 그래도, 그들은 아버지라는 자리를 지키고 살아왔다. 그저 최악의 아버지만 아니면 되는 게 아닐까? 자식들은 훌륭한 아버지든 조금 못난 아버지든 모든 것에서 나름대로 배우며 자란다. 꿀처럼 달콤한 아버지이든 요가처럼 미리 고통을 겪게 하는 아버지이든 그들 모두 누군가의 아버지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은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지도 모른. - <요가 같은 사람> 중에서
85. 아버지, 우리가 어떤 아버지로 기억하길 바라세요?
— 글쎄, 어떤 아버지로 기억되는가 하는 건 너희들 몫이지, 내가 말할 건 아니지 않니? 그건 오로지 너희들 몫이야. 그저 지금 내 꿈이라면 너희들 모두 건강히 잘 살면 되는 거지. 내가 어떤 사람일까? 엊그제 내가 그림 배우는 곳에 다니는 전직 조종사 분들이 나를 며칠째 지켜보면서 이렇게 묻는 거야. 대체 예전에 뭐하던 분이시냐고. 보통 웬만한 사람들은 과거에 뭐하고 살았는지 대충 짐작이 가는데 나는 도통 뭐하던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거야. 그렇지, 나는 그런 사람이지. 한번은 그림 수업하는 날 다들 빙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어. 나는 몇 살이고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이다, 이렇게 말이다. 나는 일어나서 그랬지.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인지가 뭐가 중요하냐고. 나는 마흔여덟 살이다, 라고 말이야.
본문 <아버지를 인터뷰하다> 중에서
제목 ∙ 아버지는 변명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
(아버지를 인터뷰하다)
저자 ∙ 김경희
펴낸곳 ∙ 도서출판 공명
펴낸날 ∙ 2021년 11월 25일
판형 ∙ 신국변형 140*200
분야 ∙ 국내문학 > 에세이
값 ∙ 16,500원
쪽수 ∙ 312쪽
ISBN∙ 978-89-97870-58-5 03810
02 3153 1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