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 핀 오동꽃
<대구·동화사>
①
신라 제41대 헌덕왕의 아들로 태어나 15세에 출가한 심지 스님이
지금의 대구 팔공산에서 수도하고 있을 때였다.
심지 스님은 살을 에는 듯한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속리산 길상사(지금의 법주사)로 향했다.
영심 스님이 그의 스승 진표율사로부터 불골간자를 전해받는 점찰법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길상사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법회가 시작되어
심지 스님은 당에 올라가 참석할 수가 없었다.
스님은 안타까워 마당에 앉아 신도들과 함께 예배하며 참회했다.
법회가 7일째 계속되던 날 크게 눈이 내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심지 스님이 서 있는 사방 10척 가량은 눈이 내리지 않았다.
신기한 현상에 갑자기 법회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안 법당에서는 심지 스님을 안으로 들어오도록 청했다.
스님은 거짓병을 빙자하여 사양하고는 마당에 물러앉아 법당을 향해 간곡히 예배했다.
스님은 기도 중 매일같이 지장보살의 위문을 받았다.
법회가 끝나고 다시 팔공산으로 돌아가던 심지 스님은 양쪽 옷소매에 2개의 간자가 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참으로 괴이한 것일이록나.』
심지 스님은 길상사로 되돌아가 영심 스님 앞에 간자를 내놓았다.
『간자는 함 속에 있는데 그럴 리가….』
영심 스님은 이상하다는 듯 봉해진 간자함을 열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함은 비어 있었다.
이상히 여긴 영심 스님은 간자를 겹겹이 싸서 잘 간직했다.
심지 스님이 다시 팔공산으로 돌아가는데 간자가 먼저와 같이 또 소매깃에서 발견됐다.
길상사로 또 돌아온 심지 스님에게 영심 스님은 말했다.
『부처님 뜻이 그대에게 있으니 간자는 그대가 받들어 모시도록 하게.』
심지 스님이 영심 스님으로부터 받은 간자를 소중히 머리에 이고 팔공상에 돌아오니
산신이 선자(仙子) 두 명을 데리고 영접했다.
심지 스님은 말했다.
『이제 땅을 가려서 간자를 모시려 한다.
이는 나 혼자 정할 일이 아니니 그대들과 함께 높은 곳에 올라가
간자를 던져 자리를 점치도록 하자.』
심지 스님은 신들과 함께 산마루로 올라가서 서쪽을 향해 간자를 던졌다.
간자가 바람에 날아가니 신이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다 부른 뒤 간자를 숲속 샘(지금의 동화사 참당 뒤 우물)에서 찾았다.
샘 주위에는 때아닌 오동꽃이 눈 속에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심지 스님은 그곳에 절을 세워 간자를 모시고는 절 이름을 동화사라 명했다.
②
의상 법사가 중국 종남산에 머물 때였다.
하루는 종남산에서 도가 높기로 유명한 지엄 스님이 의상 법사를 초대했다.
말로만 듣던 두 스님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 법담을 나누다 보니 저녁 공양때가 됐다.
의상 법사가 지엄 스님에게 말했다.
『스님께서는 공양을 짓지 않고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공양을 잡수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저도 오늘 하늘 공양을 한번 먹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귀하신 손님이 오셨으니 곧 공양을 드시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지암 스님은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주문을 외웠다.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오늘은 공양을 한 사람 분만 더 내려 주십시오.』
그러나 어찌도니 영문인지 하늘에서는 공양이 내려오지 않았다.
지엄 선사는 당황했다. 결국 의상 법사는 저녁 공양을 들지 못한 채 떠나왔다.
의상이 막 떠난 뒤 하늘에서 천사가 공양을 갖고 왔다.
『집 밖에 병사들이 있어 늦었습니다.
방금 병사들이 지금 나가신 스님을 모시고 물러가는 걸 보고 급히 왔으니 혜랑하옵소서.』
지엄은 그제서야 의상 법사가 자기보다 더 훌륭한 스님임을 깨달았다.
그는 은근히 뽐내려 했던 점을 뉘우치고는 그 길로 의상을 찾아가 사과했다.
『법사 스님을 몰라 뵙고 그만 실례를 범했습니다.』
『원, 별말씀을요. 이러시면 오히려 제가 송구스럽습니다. 스님께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말씀해 보시지요.』
『스님께선 옥황상제와 가까우시니 제석궁에 보관돼 있는 부처님 치아를 하나 빌려 오실 수 없으실는지요?』
『글쎄요, 한번 해 보겠습니다.』
지엄 선사는 아주 겸손한 태도로 옥황사제에게 의상 법사의 청을 전했다.
『의상 같은 훌륭한 법사의 청이니 부처님 치아 한 개를 아주 드리겠소.』
천가가 지엄을 통해 보내 온 부처님 치아를 받은 의상은 머리 위로 공손히 받들어 절을 하고는 지엄에게 말했다.
『이 치아는 스님이 구하셨으니 스님께서 모시도록 하십시오.』
『아닙니다. 옥황상제께서는 스님께 아주 주신 것입니다.』
지엄선사가 탑을 세우고 부처님 치아를 봉안하니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예배를 올렸다.
그러나 송나라 휘종 때 불교를 믿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헛소문이 나돌자
절에서는 부처님 치아를 탑에서 꺼내 몰래 배에 실어 보냈다.
『부디 안전하고 평화로운 인연 있는 땅에 모셔지옵소서.』
배는 둥실둥실 떠서 고려 앞바다에 다다랐다.
사람이 타지 않은 이상한 배에서 금상자를 발견한 어부는 즉시 관가에 고했다.
이 소식을 들은 임금은 부처님 치아를 대구 팔공산 유가사에 모시도록 명을 내렸다.
이때 절 주위에는 눈 쌓인 겨울철에 때아닌 오동꽃이 만개하였으므로
왕은 이를 기념하여 절 이름을 동화사로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