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으로 만났다 인연으로 헤어지고,
이 몸띵이 자체도 인연으로 뭉쳐져서 인연으로 태어나고 인연으로 또 스승을 만나고 그 인연법으로 또 선지식을 만나게 되는 것이어서,
자기가 특별히 존경하고 신하는 그런 선지식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건, 그러헌 선지식, 자기가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큼
존경허고 신할 수 있는 그런 훌륭한 선지식을 가졌다고 허는 것은 대단히 다행한 일이라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인연이 다름으로 해서
내가 신하는 선지식, 또 다른 대중이 신하는 선지식이
다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각자 지은, 심은 인연이 다르기 때문에
또 자기가 신하고 존경하는 선지식이 다를 수가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하등에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선지식은 자기가 신허건 안 허건 어떠헌 선지식은 그 선지식 나름대로 다 그 가풍이 있어서,
내가 지극히 신허지 않는다 하더라도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일생동안 관세음보살 주력을 했다고 해서
지장보살이나 문수보살이나 보현보살은 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존경심을 안 갖는다면 그건 관세음보살을
옳게 신허는 사람이라고 헐 수가 없는 거와 마찬가지고,
화엄경을 독송을 하거나 법화경을 지극정성으로
일생동안 독송헌 사람이 있을... 있다면
<화엄경>이나 <법화경> 말고 다른
<금강경>이나 무슨 <원각경>이나 그런 경전은 경전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함부로 헌다면 그 사람이 어찌 바른 생각을 가졌다고 하겠습니까?
선지식도 또한 마찬가지여서
자기가 참 신하는 선지식이 아니라 하더라도
존경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 참 수행인다운 수행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비방을 하고 그러헌 스님네의 법문은 듣지 아니헐랴고 그러고, 그러헌 법문을 틀며는 듣기 싫어서
나가버리고,
또 어떠헌 선방에서는 자기가 신하는 스님의 법문만을
들을, 듣자고 해가지고 서로 패당이 갈라지고,
이러헌 말을 들었는데
이것은 진실한 수행인이라면 그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입으로 설하는 법은 아무리 거룩한 법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본분에, 본분의 진리에 입각해서 본다면
이미 본분납승의 방을 면치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올바르게 법문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시장바닥에, 시장에 잡배들이 장사허는, 허면서 외치는 소리나, 욕허고 싸우고 술주정뱅이가 주먹질을 하고
싸우고 욕지껄이 허는 그러헌 소리나,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나, 바람 부는 소리나,
새 우는 소리나, 비행기 소리, 자동차 소리에 이르기까지라도 낱낱이 최상승법을 설하고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