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이문구 소설 『관촌 수필』
책 소개
이 책은 1940년대 중반에서 1950년대 중반과 1970년대 초반 보령의 관촌, 갈머리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작가 이문구의 고향인 이 곳이 내 삶의 터전이라는 사실은 작품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저자의 뒷동산이라 불리는 뷍산은 부엉산이었으나, 지금은 왜‘봉황산’으로 불리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 집 뒷산이 바로 그 뷍산이란 사실을 알고 나니 그 느낌이 사뭇 다르게 와 닿는다. 한 밤에 부엉이라도 울어준다면 좀 더 실감나지 않을까?
행운유수의 옹점이
책을 읽다보면 거의 모든 꼭지에서 등장하는 이 사람은 옹기 옆에서 태어나 옹점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그는 독자인 나조차 친근함을 넘어, 보고 싶고 궁금하기까지 한 인물이 되었다. 옹점이의 씩씩하고 활기차며, 정 많고 당찬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선하다. 그녀의 구성진 노랫가락조차 들어보고 싶어지는 건 독자라면 인지상정이 아닐까?.
녹수청산의 대복이
양반가의 체면 때문에 부리는 상민의 자식들과는 같이 어울리지 못하게 하는 할아버지의 엄명에, 저자는 어린 시절 또래 친구가 없었다. 대복이는 짖 궂고 나쁜 짓을 일삼는 동네 문제아였지만, 어린 저자에겐 최고의 놀이 친구였다. 감옥에서 풀려난 대복을 문구의 모친은 극진하게 대접해주는데, 그런 모습에서 모친의 자애로운 품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여기서는 대복이의 인생 반전의 반전 이야기가 재미있게 펼쳐진다.
공산토월의 석공이야기
공산토월에 담긴 석공의 이야기는 그의 됨됨이와 저자 집안과의 인연만으로도 ‘미인박명’이란 말이 어울릴 만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법 없이도 살 그런 착하고 훌륭한 사람을 하늘은 왜 그리도 빨리 데려가는지. 석공의 죽음에 작가의 슬픔 못지않게 책을 읽는 독자도 안타까워 가슴이 먹먹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사투리는 독서의 방해 요소인가?
2025년 11월 보령 문화의 전당에서 열린 <명천 이문구의 작품과 생애에 대한 학술 세미나>에 방청객으로 참관한 적이 있었다. 패널들의 토론 중에 심한 사투리 때문에 읽기가 어려워 일반인의 접근성이 떨어지니, 표준어로 풀어쓴 책을 발간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럼 고인이 된 작가의 고유한 문체를 훼손하여 발간하자는 뜻인가? 타지 출신인 나조차 사투리를 이해하는데 충청도 출신 패널이 ‘이해 어렵다’는 주장을 펼치는 데에는 공감할 수 없었다.
이 책이 외국어로 된 책도 아니고, 우리 한글로 쓰여진 책인데, 다소 생소한 단어가 있을 수는 있다 해도 읽는데 방해가 될 정도로 해석이 안된다는 게 당최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터넷과 문맥을 통해서도 충분히 유추 가능한데, 그런 의견이 나왔다는 사실은 크게 실망스러웠다.
관촌수필은 향토적인 내용도 훌륭하지만 맛깔스러운 고향 사투리를 잘 활용하여 고향의 정서를 잘 살려냈다는 데서 그 가치가 높다.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투박하면 투박한대로 작가의 글은 그의 고유한 문체이니, 훼손되지 말아야 한다. 2022년 발행된 책에는 '어휘풀이'가 첨부 되어있어 그러한 문제를 다소 해결했다고 본다.
관촌수필을 만나다.
18년 보령 생활 중 우연히 알게 된 식당 ‘관촌면옥’에서 주인에게 『관촌수필』과의 연관을 장난삼아 물은 적이 있다. 그때까지 ‘관촌’이 지역 이름일 거라고는 짐작도 못했었기에 나온 물음이었다. 그제서야 이 책이 지역 소설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고, 대천여고 시절 딸이 읽던 소설을 책꽂이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작가를 드디어 마주하게 되었다.
작가의 고향 갈머리의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는 읽는 재미를 넘어, 지역민의 소소한 정서를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초입부는 양반과 유교사상을 강조하는 부분이 있어 식상했지만, 다음 꼭지부터는 읽는 내내 감탄을 하며 읽었다. 구수한 사투리의 정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토착어를 이용하여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형성해가는 문장력은 나의 감탄을 자아냈다. 또한 사투리가 내 입에서 중얼거려질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별반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하고 소박한 하층민들이다. 이런 인물들을 작가는 정감있고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로 승화시켰다. 이것은 작가 이문구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고향에서 재산을 몰수당하고 가족들을 참혹하게 잃었으며, 생명의 위협까지 당하며 떠났던 고향이었고, 생활고로 힘든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이 어찌 아름답기만 할까. 그의 처지에서 고향의 인물들을 이처럼 따뜻하고 선한 사람으로 묘사할 수 있는 건 분명 고향과 인물들에 대한 저자의 애정 어린 마음이 첫째일 것이고, 큰 갈등이나 반전, 크라이막스 없이도 지루하거나 식상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작가의 탁월한 문장력 때문일 것이다.
2026년 02월 04일 저녁 6시 30분
에 이문구 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 결성식이 원도심 어울림센터 3층(어울길 84)에서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보령 관촌 출신 이문구가 타계한 지 23년이 되었습니다. 이문구의 작품을 좋아하고, 그의 정신을 기억하고자 하는 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보령이 낳은 훌륭한 이문구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을 느끼고 기릴 수 있는 문학관이 조속히 보령에 세워지길 학수고대한다.
책 익는 마을 백 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