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데라고 불렀습니다 외 1편
김은닢
이름을 부르니까
새로운 세계가 송곳니로 손목을 물며 깨어났다
나의 작은 고양이가 칼데를 끌어당기고
칼데는 나를 끌어당겼지 203동 앞에서 만난 치즈 고양이 너도 본 적 있을 거야 자동차 배기통 뒤에서 앞발을 핥고 있었지
시계 초침처럼 똑딱거리며 돌아가는
길, 바닥, 바퀴, 칼데,
무엇이든 납작하게 만드는 바퀴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가졌을까 고양이 몸에 달라붙은 길바닥은 눈을 감고 있었을까
바퀴와 길바닥은 고양이로 태어나 살금살금 걸어 다니겠지
수많은 칼데들의 집과 무덤에서
당신과 무심히 산책하다
어디 있니? 칼데
이름 부르게 되면
길바닥이 살랑살랑 꼬리로 대답하는 것 같고 당신의 밑바닥이 거친 혀로 얼굴을 핥아주는 것 같고 낯설고 아름다운 귀를 열고 들어가게 되지
짚어보지 못한 미래가 푹 파이는 것처럼
칼데의 동그란 눈 사라진다
가축과 야생동물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은
살아남은 가을이 도착한다
층꽃을 단춧구멍에 꽂아주고 싶은 오후 여섯 시, 고양이 눈동자 속에서 넘실대던 것들이 길에 쏟아진다
감각모, 원시 주머니, 센트 박스, 구내염 알약
하나씩 주워서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린다
계속 만지작거리면
지금까지 눈 감고 걸어 다닌 것 같고 꽉 쥐고 있는 너의 주먹을 열어보고 싶고 수요일 저녁엔 분홍코 고양이책방에 가고 싶다
자동차 밑에서 몸을 움츠린 젖은 여름밤이
축축한 털을 털면서 도로를 건너는 중이다
중얼거리는 옥탑
인기척은 너밖에 없다고 중얼거리는 옥탑
옥탑
빨랫줄엔 지키지 않은 약속이 고드름으로 달렸고 찢어진 내 입술은 겨울이 지나도 핏기가 마르지 않았다
나는 그만 너를 걷고 싶은데 아니 너를 외투처럼 걸치고 싶은데 아니, 먼지 털어낸 서랍 속에 너를 넣고 싶어서
첨탑에 갇힌 사람처럼 줄을 내리면
네가 뱉어내는 축축한 구름들
내 혓바닥을 물고 날아가는 부리가 긴 새들
바람에 뒤집히는 너의 목소리와 난간 사이로 내 귓바퀴가 굴러갔다 발목이 지나갔다 그림자가 뛰어내렸다 창틀에 걸린 볕이 발끝을 핥아주었다
이곳에서는 잘 보여
옥상의 돌무덤들도
나를 깨뜨리려고 나를 떨어뜨리려고 옥탑을 열었던
나는
젖은 밤들이 검은 광목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줄을 놓친 빈 소매가 어깨 너머로 날아갔다
누군가 펼쳐 읽을 눈송이들이 떨어지는 저녁
너는 흰 티셔츠에 묻은 얼룩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는 혀에 압정을 박은 사람처럼 눈을 감고
낡아 부슬대는 줄을 끊을까
이 끈을 놓으면 하늘로 떠오를 것 같군 아니 떨어질 것 같군
야윈 별들이 발목을 자르고 풀려나온 자정에도 네 창의 덧문은 닫혀 있었다
너는 눈 쌓인 내 무덤을 열지 않았다
김은닢
1971년 안성 출생.
2022년 시인수첩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