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5년 겨울
끊임 없는 전쟁은 리가쪽에서 계속 일어났다.
폴란드군은 동쪽에서 전진해오는 헝가리군을 막기 위해
남하하기 시작했고
이에 팔랑가와 흐로드나는 빠른 속도로 회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가는 덴마크와 노보고르드 공국의 위험이 있어
언제 적의 수중에 떨어질지 몰랐다.

그리고 해가 지나
1226년 봄
다시 한번 콘라트의 맹활약이 시작됬다.


콘라트는 개전을 울리는 종소리에 맞춰
기병대를 끌고 적의 사다리를 붕괴시켰으며
이에 남은 병사들이 분산되지 않고 집중해 들어오는것을 잘 각개 격파한 뒤
기병들로 도망치는 병사를 잡아내어 우리 병사 피해 보다 5배가량 많은 피해를 주었다.
이 전투로 인해 덴마크의 대규모 부대 하나가 전멸했으며 덴마크의 왕은 이 소식을 듣고 매우 분개했다고 한다.

이 시점에서 이탈리아 외교관이 계속 내물을 넣은 효과가 있었는지
교황과 우리의 관계가 점점 다시 우호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로링호벤은 교황과 더욱더 친밀해져 빌리니우스를 십자군 선포해야된다고 마음 먹었고
그는 자기의 비상금마저 외교관에게 보내며 교황의 맘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1226년 여름..


빌리니우스에 십자군 원정이 선포되었다.
이에 즉시 로링호벤은 나시우에게 서신을 보내
십자군을 선포하라 했고
나시우는 가을에 십자군을 선포하기 위해 병력을 준비했다.
그동안 리가 북쪽에서는 노보고르드 공국의 장군이 남하했는데
나시우는 선포를 명한뒤 리가를 들러 빌리니우스로 직행하는 계획을 세웠다.
나시우가 세운 계획은 가을부터 척척 이뤄지기 시작했다.


1226년 가을
십자군을 선포한 나시우는
십자군이 결성된 군을 리가로 몰아 콘라트와 함께 노보고르드 공국을 몰살했고
기동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투석기 한분대는 팔랑가로 귀환시켰으며
자신의 부대는 빌리니우스 바로 북쪽에 진지를 구축했다.

1226년 겨울
나시우는 바로 빌리니우스를 포위했고
빌리니우스 지역에서 다양한 군세들이 발견되었으나
나시우는 무시하고 바로 빌리니우스로 직행했고
나시우의 군세가 성에 들어 있지 않은 군세보다 컷기에
주변의 라투아니아 군대도 섵불리 움직이진 못하였다.
20대 초반 튜토닉 기사단원 나시우의 패기에 십자군은 기세 등등하게 포위망을 좁혔고
리가의 노보고르드 공국 공격에 실망하여 탈주한 병사들도 있었으나 [십자군 목적에 맞지 아니하여.]
나시우는 그것을 무시하고 성을 함락시키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나시우와 그의 부관들을 몇일 밤낮을 지새어 공성병기와 모든것을 준비할 작업을 착수했고
1227년 봄에는 빌리니우스에 튜토닉 기사단의 깃발을 꼽겠다고 다짐했다.

1227년 봄.
빌리니우스 전장 외에는 조용한 튜토닉 기사단은
로링호벤의 침착한 재정관리로 인하여 적자를 면하고 있었고
꼬박꼬박 교황에게 내물을 바치고 있어 교황과 동맹을 맺겠다는
로링호벤의 계획은 점점 성사되어 가는 듯 했다.
리가 북쪽에서는 덴마크의 영지가 노보고르드 공국에 뺏길 위험에 처했으나
용맹한 바이킹 앞에서 노보고르드의 군세를 맥을 못출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십자군 원정의 성공을 위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 성만은 튜토닉 기사단에게 뺏길 수 없다며
빌리니우스의 왕은 결사항전으로 버텨내었으나
조금씩 조금씩 밀고 들어가며 나시우는 그의 아들과 그의 목을 베어냈다.
나시우의 용맹함은 튜토닉 기사단의 귀감이 될 정도였으나
그의 전술 자체는 그렇게 효율적이지 않아 조금씩 진전하는 동안 병사가 많이 상했으며
십자군의 맹세를 받든 병사들도 도망치는 상황이 일어나는게 다분했다.
그렇지만 그는 패기를 앞세워 결국에는 빌리니우스에 튜토닉 깃발을 꼽았다.

성안에 있던 병사들은 전멸했으며
구원군으로 오던 병사들은 나시우가 모두 풀어주었다.
이제 라투아니아는 멘스크 마을 하나만 남아있었기에
그렇게 위험하지 않았고
그의 명성에 악명이 더 이상 쌓이는것도 싫었기에
그는 돌아가는 병사들에게 관용을 베풀었다.
이렇게 십자군이 성공하고
나시우의 이름은 유럽 전역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교황은 우리의 성공에 매우 기뻐하며 축하의 서신을 보내주었다.
이에 로마에 있던 외교관은 다시한번 교황에게 선물과 충성을 맹세하며 관계를 더욱더 돈독히 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가톨릭 국가끼리 전시상황이었기 때문에
교황과 동맹은 불가능했고
로링호벤은 즉시 이베리아 반도로 떠나있던 외교관을 불러들여
덴마크와 폴란드에게 협상을 시작할 준비를 했다.

빌리니우스를 점거한 나시우는
숙청을 시작하고 귀족들의 돈을 벌어들였으며
곧바로 건물의 건축과 병사 재보충을 시작했다.
그리고 첩보를 보내어 멘스크의 상황도 알아봤고
나시우가 예상했던 대로 그렇게 위협적이진 않은 멘스크였기 때문에
라투아니아의 멸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위태위태하던 튜토닉의 국력이
수직상승은 아니었으나 빌리니우스의 획득으로 인해
강해지는 발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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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타이밍 나이스샷 ㄲㄲ
노보고르드 애들 슬슬 몰려오네요 고테크로..
리가 잘못하면 뺏길듯 한데
그래도 그랜드 마스터를 믿어 봅시다!
첫댓글 님 교황과 관계가 왕창 좋아지는 금단의 비기가 있는대 교황청은 돈이 궁한 팩션이라서 내가 좋은 성 한두개 올리고 돈 1만에서 2만 달라고 매우 관대한 제안하면 좋아하는대 돈이 없어서 못한다고 답신오면서 관계가 좋아짐 이걸 여러번하면 최고까지 금방 올리수 있고 마무리는 강 돈 10원 선물하면 간단히 올릴수 잇는대 쓸 생각 있나요?(이 비기쓸때는 교황청 돈 얼마잇는지 그래프 비교칸에서 보시고 하시면 됩니다. 대채로 1만 플로린도 없을거임)
ㅋㅋㅋ 꼼시는 안써요 ㅠㅠ 그냥 고증에 맞게 천원씩 줄래욬
ㅋㅋㅋㅋ
고테크 유닛을 무찔르긔!!! 역시...고테크유닛과 피해를 적게입으면서 싸우려면...수성이 낫것쥬~?
근데 부대가 대규모로 오다보니 사다리 2 & 공성탑 2 & 충차로와서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더군여 ㅜㅜ 이젠 무조건 기병가지고 선제돌격해야댐..
흠...우려한 컴퓨터 기본전술에 고전하시는군요...저또한 고테크 유닛이 섞인 적이 쳐들어오면 아군이 불리할수록 첫성벽은 버립니다 마을인경우 성벽을 버립니다 전병력을
깃발이꽂혀져있는 마지막 점령지인 중앙으로 배열시키죠 물론 조금 생각하시면서 배열해야겟죠? 우선은 몇십초정도 버틸수있는 부대로 두겹정도 정면에 길을 막아야겟죠 혹여나 좌우로올수도 있으니
보병 한부대정도씩은 좌우로 막아놓습니다 그리고 궁병계열을 정면보병 뒤로 어느정도 이격시켜 세워야겟죠 ..그리 배열한 다음 전투가 시작된후 성문이 열리면 정면 보병으로 맞닥뜨리게 될것입니다
물론 적전병력이 물밀듯이 부딪혀 온다면 금새 뚫리거나 밀릴것입니
다 어느정도 전투에 대한 감이 있으시다면 이보병들이 뚫려서 뒤에 있는 병력을 공격하는 타이밍을 어느정도 예측 가능하실겁니다 뚫려서 공격하는 타이밍 전까진 궁수들로 튀어나온 적병들을 일제 사격해준다면 저뒤에서 하늘높이 쏘는 곡사사격보다 훨씬더 적을
효과적으로 죽여나갈것입니다 그래서 그전방부대가 뚫릴듯하면 좌우에있는 보병대나 예비대로 한두부대씩 상황에 맞게 넣어주면 성벽에서 막는것보다 훨씬더 오래버티고 소모도 적을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기본적인 병과는 보병 5:궁병2:노포나 발석차1~2정도 기병은
한두부대정도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구요 물론 포로나 도망치는 적을 잡으시려면 필요하겟죠
필력도 부족하고 대충 설명하다보니~ㅋㅋ 이해하셧을려나 모르겟네요 제경험으론 성벽에서 상위테크 보병들과 싸우는것보단 훨씬더 효과적이고 보다 오래 성을 수성할수있었습니다.
물론 사다리나 공성탑 충차따위야 걱정할필요가 없구요 추가설명이라면 중앙이 넓으면 넓을수록 이전술이 빛이 되고 기병이 가만있기 뭐하시면 적을 유인하시어 기병두부대로 쌈싸드시거나
타이밍을 잘노려서 좁은곳에서의 챠징을 하실수도있습니다 물론 후방에 궁병을 때려잡을수도있구요 전 이전법쓰니 종종 적 근위대들은 뒤에 빠져있기도 하더군요 그럴때 적근위대를 유인해내서
남는병력으로 근위대를 때려잡기도했구요..뭐 터득만하신다면...륌베르님
캠폐인 이야길 오래볼수있겟죠 ㅇㅅㅇ 화이팅!
ㅋㅋ 아... 한번에 보고 이해했습니다 어려운 전투에 한번 사용해보도록 할게요 ㅎㅎ
정말이지 박진감 넘치네요^^ 즐겁게 보고있습니다....
재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