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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진심(盡心塵心)
정성을 다하는 마음과 세속의 이익을 탐하는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盡 : 다할 진(皿/9)
心 : 마음 심(心/0)
塵 : 티끌 진(土/11)
心 : 마음 심(心/0)
진심진심(盡心)은 마음과 정성(精誠)을 다함이고, 진심(塵心)은 속세(俗世)의 일에 더럽혀진 마음 또는 속계(俗界)의 명리(名利)를 탐내는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사상가들이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자신의 사상을 세상에 펼치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를 찾아다녔다. 이를 유세(遊說)라고 한다. 이 말은 오늘날 맥락이 조금 다르지만 선거에서 후보자가 자신의 정책을 알리는 행위를 가리킬 때 사용한다.
맹자도 양나라와 제나라 등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사상을 현실에서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사실 당시 도로와 숙박업 등 여행 여건이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이 열악한 상황이라 유세는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다. 맹자는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열망으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맹자(孟子)'의 첫 문장은 맹자가 양나라 혜왕(惠王)을 만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혜왕은 맹자를 보고 "천 리를 멀다고 여기지 않고 양나라로 왔다"며 그 노고를 치하했다.
혜왕은 맹자를 몇 차례 만나면서 자신이 실현하고자 하는 정책에 관해 맹자에게 자문하기도 하고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중의 하나를 소개하면 이렇다.
혜왕은 하내 지역에 흉년이 들면 그곳의 주민을 하동으로 이주시키기도 하고 구휼미를 보내기도 했다. 혜왕이 당시 다른 나라의 재해 대책을 살펴보니 자신처럼 하는 경우가 없었다. 이에 그는 백성들이 어느 나라가 살기 좋은지 따져보고서 많은 사람이 양나라를 찾으리라 내심 기대를 많이 했다.
당시가 '싸우는 나라들의 시대'로 불릴 정도여서 약육강식의 현실을 이겨내려면 땅을 넓히고 인구도 늘려야 했다. 혜왕은 자신의 재해 대책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뛰어나므로 다른 나라에서 양나라로 살려고 오는 이민 행렬이 줄을 이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이뤄지지 않았다. 혜왕은 자신이 국가 재해의 발생에 진심으로 대처하고 있는데 왜 자신의 백성이 많아지지 않는지(寡人之於國也, 盡心焉耳矣. 寡人之民不加多, 何也) 그 이유를 몰라 맹자에게 물었다.
맹자는 그 유명한 오십보백보 이야기를 했다. 전쟁터에 오십 보 도망간 사람이 백 보 도망간 사람더러 자신보다 더 많이 도망갔다고 비웃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혜왕이 다른 나라 군주보다 재해 대책을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정도의 문제일 뿐이라는 말이다.
사실 양나라를 비롯한 당시 국가들은 군사의 식량을 창고에 쌓아두고 마구간의 말은 관리를 잘 받아 온몸에 윤기가 흘렀지만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림으로 고생하다가 죽은 사람이 길에 즐비했다.
이런 상황에도 부국강병을 외치며 국부를 늘려야 한다고 외칠 뿐 호전적인 정책을 반성하지 않았다. 재해에 구휼미 제공은 언 발을 녹이는 미봉책에 불과했다.
혜왕은 진심했다고 하지만 맹자가 보기에 그건 진심의 전부가 아니라 진심의 일부를 한 것일 뿐이다. 이 진심의 일부마저 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혜왕은 전쟁에 승리해 패자(覇者)가 되려는 부푼 꿈을 꾸고 있지만 사실 그 꿈은 백성의 엄청난 희생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재해에 따른 작은 고통을 볼 뿐이지 호전에 따른 큰 고통을 보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혜왕은 백성의 큰 고통에 눈을 감고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결국 그가 말하는 진심은 자신의 명리를 키우려는 진심(塵心)이거나 자신의 기대에 따르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진심(嗔心)이다.
혜왕은 개인의 야욕에 빠져, 오로지 백성을 잘살게 하겠다는 진심(眞心)이 없기 때문에 진심(盡心)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진심(眞心)의 진심(盡心)에 사람들이 공감하고 호응하지 누가 진심(塵心)과 진심(嗔心)의 진심(盡心)에 맞장구를 치겠는가.
요즘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보들은 자신의 진심이 알려지지 않아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다고 걱정을 한다. 걱정을 하기 전에 자신의 '진심'이 자신과 주위 사람들의 출세와 이익을 잡으려는 진심인지 국가와 민족을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이끌 수 있는 진심이 따져봐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혜왕처럼 희생과 공감은 하지 않고 자신의 영광을 키우고자 한다면 그런 진심에 귀 기울일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진심은 혼자 할 일일 뿐 함께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진심(眞心)의 리더십 핵심은 진심(盡心)
철학을 배우려고 하면 보통 철학사부터 읽으라고 한다. 어떤 인물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야 철학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고 조사가 귀찮고 따분하듯 철학사를 읽는 것은 쉽지 않다. 철학사에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인물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내'가 보기엔 별 차이 없는 개념과 사상을 두고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는 이야기를 감당하기가 쉽진 않다.
그러나 조금만 읽다 보면 '내'가 색다른 별천지에 왔다는 느낌도 갖는다. 기업 운영을 위해 재고 조사를 건너뛸 수 없듯이 한 사상가의 출현과 특징을 알려면 철학사의 흐름을 간략하게라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동양 철학사를 다룰 때 '맹자'는 빠질 수 없다. '맹자'를 읽지 않고서는 맹자의 기본 사상만이 아니라 주자의 성리학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조선시대 연산군 시절에 '맹자' 읽기를 둘러싼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다. 연산군 3년(1497년)에 채윤공(蔡允恭)의 고양 군수 임명을 두고 대간(臺諫)과 영의정 노수신(盧守愼)의 주장이 엇갈렸다.
대간은 채윤공이 글을 읽을 줄 모르니 목민관으로 부임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반면 노수신은 글을 읽지 못해도 자질이 있으면 수령이 될 만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연산군은 대간의 탄핵을 받아들여 채윤공에게 책을 읽게 했다.
시험의 첫 번째 책이 '맹자'였다. ('연산군일기' 3년 7월 27일) 채윤공에게 '맹자'를 읽게 했더니 한문의 끊어 읽기도 제대로 못 하고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읽혀도 이해하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칠사(七事)를 물어도 뭘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칠사(七事)는 수령이 임금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임지로 떠날 때 외웠던 일곱 가지 항목을 말한다. 칠사(七事)의 주요 항목이다.
農桑盛?
농사와 누에치기가 잘 되는가?
戶口增?
인구가 늘었는가?
學校興?
학교가 잘 돌아가는가?
軍政修?
군정이 정비됐는가?
賦役均?
부역이 고른가?
詞訟簡?
송사가 간결한가?
姦猾息?
범죄가 끊어졌는가?
채윤공은 '맹자'를 비롯해 세 가지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 고양 군수로 가지 못했다. 연산군은 채윤공의 일을 계기로 수령 중에 소임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가 있는지 조사해 보고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맹자'라는 책은 왜 목민관의 자질을 테스트하는 기준으로 쓰일 정도로 주목을 받았을까? '맹자'는 공자의 '논어(論語)'처럼 문장이 뚝 끊어지지 않고 하나의 스토리를 중심으로 쭉 이어진다. 이 때문에 한문을 배울 땐 '맹자'부터 읽으라고 한다.
철학사 관점에서 보면 맹자는 마음(心)을 철학의 주제로 삼은 최초의 학자다. 철학사의 자원을 활용해 '마음의 철학'이라는 새로운 판을 짰다는 점에서 맹자는 동양 철학사의 '스티브 잡스'에 비유할 만하다.
맹자 이전에는 마음의 개념이 없었다거나 마음을 두고 논의를 펼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이전 사람들도 마음이 아픈 줄 알고 남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들은 마음이 몸과 관련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맹자는 왜 이전에 주목하지 않았던 마음에 눈길을 돌렸던 것일까? 사람들은 깨어나서 잠들기까지 끊임없이 어떤 행위를 한다.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에 끌려서 그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일까?
공자는 사람의 행위에서 지식이 중요하다고 봤다.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세련되고 우아하며 때론 단호하고 엄격하게 처신한다. 반면, 지식이 부족한 사람은 우아해야 할 때 볼품이 없고 엄격해야 할 때 물렁하게 굴 것이라는 게 공자의 생각이다.
따라서 공자는 사람이라면 자고로 배워서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맹자도 지식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 지식은 책에 적혀 있고 어른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중요한 지식은 모두 마음에 뿌리박고 있다고 봤다.
'맹자' 진심 상편 제21장에 이르기를, "군자가 사람의 참다운 본성으로 여기는 것은 사랑, 도의, 예의, 지혜 네 가지인데, 이는 모두 마음에 뿌리박고 있다. 본성은 밖으로 비치게 되는데, 해맑게 얼굴에 드러나고 등에 가득 차며 팔과 다리로 뻗어나간다. 이처럼 팔과 다리는 말이 없어도 스스로 알아차리게 된다."
맹자는 마음이 밖으로 훤히 드러나면 사람이 그것을 읽어 낼 수 있다는 점을 중국 철학사에서 처음으로 뚜렷하게 말했다. "사람은 대나무 죽간이나 비단에 쓰인 문자만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와서 신체(몸)에 드러난 새로운 문자도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맹자의 생각이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얼굴이 빨개지고 말을 더듬고 행동이 어설퍼진다. 이때 우리는 거짓말하는 사람에게 "얼굴(몸)에 쓰여 있는데 거짓말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말하기도 한다. 맹자는 '마음-몸'의 언어가 따로 있다는 점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음-몸' 언어를 읽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마음-몸'의 언어가 가리키는 방향을 인지하지만 그대로 따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은 '마음-몸'의 언어를 읽고 그대로 한다고 말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면 그것을 왜곡해 달리 행동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처럼 알고도 못 하거나 잘못 알고 그대로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마음-몸'의 언어를 읽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맹자'의 서두를 장식하는 맹자와 양혜왕의 대화에 귀 기울일 만하다. 당시 양혜왕은 동쪽 제나라와 싸우다가 큰아들을 잃었다. 서쪽 진(秦)나라로부터 패해서 700리 땅을 잃었으며, 남쪽 초나라에는 치욕을 당했다.
당시 양혜왕은 이 나라 저 나라에 얻어터지는, 그야말로 동네북과 같은 신세였다. 양혜왕은 연거푸 당한 치욕을 갚기 위해 자신의 백성들에게 나름대로 노력했다.
하내(河內) 지역에 흉년이 들면 그곳의 주민을 하동(河東)으로 옮기고, 떠나지 못한 주민에겐 곡식을 배급했다. 하동 지역에 흉년이 들면 하내 지역에 했던 것처럼 똑같이 했다. 양혜왕은 이런 노력을 통해 백성들 숫자가 늘어나길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양혜왕 입장에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양혜왕)은 나라를 다스리면서 온 마음을 다할 뿐이다." "이웃 나라의 정치를 살펴봐도 자신(양혜왕)처럼 마음을 쓰는 자가 없다." 양혜왕은 늘 이같이 말했음에도 그가 바라던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맹자의 말처럼 양혜왕도 마음에 없는 짓을 한 것이 아니라 '마음-몸'에서 생기는 대로 구휼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양혜왕은 자신의 복수를 위해 백성들의 협조를 절실히 필요로 했다.
흉년에 시달리는 백성을 구휼했다는 점에서 선량하다고 할 수 있지만 결국 그의 모든 행동은 복수와 연결돼 있었다. 복수를 위해 백성을 구휼한 것이지 백성을 사랑해서 그들을 구휼했던 게 아니다.
즉 백성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우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조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은 맞지만 때 묻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가 진심(盡心)을 했다고 하지만 그 마음은 진심(眞心)이 아닌 진심(塵心)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혜왕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화를 참지 못하고 성내는 진심(嗔心)을 갖게 됐다.
맹자는 사람의 참마음이 드러나 그대로 행동할 때 자신과 주위 사람을 따뜻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아무리 진심(眞心)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은 진심(塵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 진심(眞心)과 진심(盡心)
1
진심, 眞心이라 쓰는 게 맞을까? 盡心이라 쓰는 게 맞을까? 많은 사람이 眞心이라고는 써도 盡心이라고는 잘 쓰지 않는다.
참 진(眞)이 들어간 단어 중 가장 많이 쓰는 게 진심(眞心)이란 단어다. 남의 속마음이 진짜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사실 진심(眞心)을 알고 싶은 건 나, 너만 아니다.
세상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알고 싶은 게 진심이다. 친구의 진심, 현재 이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가들의 진심, 애인의 진심...
그러나 정말 갈대와 같은 게 여인의 마음이라고 매일 변하는 마음에 진심이 무엇일까? 철면피 정치인, 바람둥이들의 한결같은 말이 있다. "그때는 그게 진심이었어."
맹자의 진심(盡心)이란 단어를 보고, 비로소 알았다. 진실된 진심(眞心)은 진심(盡心) 뿐이라는 것을... 참된 마음이란 없다. 그저 마음을 다하는 것이 참될 뿐이다.
2
언어가 아닌 실세상에 진심(眞心)은 없다. 진심(盡心)만이 있을 뿐이다. 그럼 어떻게 진심을 쓸까?
마음을 다하는 진심(盡心)이라는 단어는 "내 진심을 받아줘"라는 용법을 쓰기 어렵다. 형용사+ 명사로 구성된 진심(眞心)과 달리 동사+명사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진심(盡心)은 남이 받아주든 말든 상관이 없다. 그저 내 마음을 다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저 내 진심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3
진심(眞心)이 진심(塵心)이 될 때까지 다하는 마음, 진심(盡心). 참 되질 진의 의미로 볼 때 진실(眞實)이 변치 않은 실(實)이듯 진심(眞心)은 변치 않는 마음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데 어찌 한가지 마음만 있을까? 사랑하기 때문에 밉고, 애달프고, 안타깝고, 슬프고, 기쁜 것이다. 마음은 한 조각이지만 그 발현은 수 없다. 모두가 마음의 한 모습이다. 변치 않는 것은 마음의 수많은 조각 가운데 한 조각이다.
어떻게 그 마음을 전할까? 수많은 시인들의 고민이었다. 한 조각 마음의 수많은 이름이 그래서 만들어졌다. 일편단심(一片丹心), 만리심(萬里心), 일편빙심(一片氷心)….
시인들은 옥주전자에 술을 담아 그 속에 일편빙심을 담았고,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그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래도 속 시원하게 전해지지 않는 게 진심(眞心)이다. 그래서 시인들은 여전히 한 조각 마음의 옛 이름을 되풀이 부르고 새로운 이름을 짓는다. 끝이 없어도 전하고 싶은 게 진심(眞心)이다.
시인이 그러니, 일반인들이야 오죽하랴. 오늘도 이 세상 길목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붙잡고 진심을 전한다. 그중 어느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길 기원하며 한 조각 마음을 표현하는 수많은 이름, 수많은 고사를 쏟아낸다.
그 수많은 음들의 이해한 지음지교(知音之交)를 기다리며, 그렇게 마음을 다한다. 마음이 부서져 진심(塵心)이 될 때까지. 진정한 진심은 결국 마음을 다하는 것, 진심(盡心)인 것이다.
▶️ 盡(다할 진)은 ❶형성문자로 尽(진)은 통자(通字), 尽(진)은 간자(簡字), 侭(진)과, 儘(진)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그릇 명(皿; 그릇)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다하다의 뜻을 가진 부수(部首)를 제외한 글자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릇 속을 비우다가 전(轉)하여, 다하다, 남김 없이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盡자는 '다하다'나 '완수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盡자는 皿(그릇 명)자와 聿(붓 율)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聿자는 손에 붓을 쥐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솔'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해석한다. 盡자는 이렇게 솔을 들고 있는 모습에 皿자를 결합한 것으로 식기를 씻는다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식기를 씻고 있다는 것은 이미 식사가 끝났다는 뜻이다. 그래서 盡자는 식사가 끝난 후 설거지까지 마무리했다는 의미에서 '다하다'나 '완수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盡(진)은 ①다하다 ②완수(完遂)하다 ③극치(極致)에 달하다 ④최고에 달하다 ⑤다 없어지다 ⑥사망(死亡)하다 ⑦죽다 ⑧모든 ⑨전부(全部)의 ⑩~만 ⑪다만 ~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곤할 곤(困), 다할 추(湫), 다할 극(極), 다할 진(殄), 다할 궁(窮), 다할 갈(竭), 가난할 빈(貧)이다. 용례로는 있는 힘을 다함을 진력(盡力), 몸과 마음이 지쳐 쓰러질 정도로 열심히 힘을 다함 또는 그렇게 하는 일을 진췌(盡悴), 마음과 정성을 다함을 진심(盡心), 창고에 있는 곡식이나 물건을 풀어서 죄다 나누어 줌을 진분(盡分), 맡은 바 직분을 다함을 진직(盡職), 돈이나 물품을 남김없이 다 내어 줌을 진하(盡下), 정성을 다함을 진성(盡誠), 생각 했던 바를 다 쏟아 놓는 말을 진언(盡言), 운이 다함을 진운(盡運), 충성을 다함을 진충(盡忠), 죄다 멸망하거나 또는 멸망시킴을 진멸(盡滅), 사물의 근원을 속 깊이 연구하여 앎을 진원(盡源), 술이 몹시 취함을 진취(盡醉), 모조리 다 죽음을 진몰(盡歿), 재물이나 정력 따위가 죄다 없어짐을 핍진(乏盡), 줄거나 또는 해져서 다 없어짐을 모진(耗盡), 시들어 없어짐을 조진(凋盡), 아직 다하지 못함을 미진(未盡), 하나도 남지 않고 다 팔림을 매진(賣盡), 아주 사라져 다 없어짐을 소진(消盡), 점점 쇠하여 다 됨을 쇠진(衰盡), 재물 따위를 죄다 써서 없애 버리는 것을 탕진(蕩盡), 힘이나 마음을 다함을 극진(極盡), 무엇이 저절로 다 됨 또는 몸과 마음으로 정성을 다함을 자진(自盡), 모조리 잡음이나 휘몰아 잡음을 타진(打盡), 간곡하게 정성을 다함을 곡진(曲盡), 기력이 다 빠져 없어짐을 탈진(脫盡), 모두 타 버림을 소진(燒盡), 기력이 다하여 없어짐을 기진(氣盡), 끝나거나 다하지 않음을 부진(不盡), 다 없어짐을 절진(絶盡), 맥이 풀리고 기운이 아주 빠짐을 맥진(脈盡), 줄어 없어짐을 감진(減盡), 마음과 힘을 있는 대로 다 씀을 비진(備盡), 힘이 다 지침을 역진(力盡), 세상의 모든 잡귀를 굴복시키는 일을 항진(降盡), 멸하여 없어지거나 없앰을 멸진(滅盡),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다하여 없어짐을 갈진(竭盡), 모조리 닳아 없어짐을 올진(兀盡), 몹시 써늘함을 냉진(冷盡), 목숨이 끊어져 죽음을 합진(溘盡), 쓸 만한 계책이 다하여 없음을 계진(計盡), 충성을 다하고 힘을 다함을 일컫는 말을 진충갈력(盡忠竭力), 착함과 아름다움을 다한다는 뜻으로 완전무결함을 이르는 말을 진선진미(盡善盡美), 맡은 일에 진종일 부지런히 쓰는 힘을 일컫는 말을 진일지력(盡日之力), 존경하는 마음으로 몸을 낮춰 온힘을 다한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국궁진력(鞠躬盡力),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모자람 없이 넉넉함을 일컫는 말을 끽착부진(喫着不盡), 글로는 의사를 충분히 표현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서부진언(書不盡言), 식량이 떨어져 기운이 다함을 일컫는 말을 식갈역진(食竭力盡) 등에 쓰인다.
▶️ 心(마음 심)은 ❶상형문자로 忄(심)은 동자(同字)이다. 사람의 심장의 모양, 마음, 물건의 중심의, 뜻으로 옛날 사람은 심장이 몸의 한가운데 있고 사물을 생각하는 곳으로 알았다. 말로서도 心(심)은 身(신; 몸)이나 神(신; 정신)과 관계가 깊다. 부수로 쓸 때는 심방변(忄=心; 마음, 심장)部로 쓰이는 일이 많다. ❷상형문자로 心자는 '마음'이나 '생각', '심장', '중앙'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心자는 사람이나 동물의 심장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心자를 보면 심장이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심장은 신체의 중앙에 있으므로 心자는 '중심'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옛사람들은 감정과 관련된 기능은 머리가 아닌 심장이 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心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마음이나 감정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참고로 心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위치에 따라 忄자나 㣺자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心(심)은 (1)종기(腫氣) 구멍이나 수술한 구멍에 집어넣는 약을 바른 종이나 가제 조각 (2)나무 줄기 한 복판에 있는 연한 부분 (3)무, 배추 따위의 뿌리 속에 박인 질긴 부분 (4)양복(洋服)의 어깨나 깃 따위를 빳빳하게 하려고 받쳐 놓는 헝겊(천) (5)초의 심지 (6)팥죽에 섞인 새알심 (7)촉심(燭心) (8)심성(心星) (9)연필 따위의 한복판에 들어 있는 빛깔을 내는 부분 (10)어떤 명사 다음에 붙이어 그 명사가 뜻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마음, 뜻, 의지(意志) ②생각 ③염통, 심장(心臟) ④가슴 ⑤근본(根本), 본성(本性) ⑥가운데, 중앙(中央), 중심(中心) ⑦도(道)의 본원(本源) ⑧꽃술, 꽃수염 ⑨별자리의 이름 ⑩진수(眞修: 보살이 행하는 관법(觀法) 수행) ⑪고갱이, 알맹이 ⑫생각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물건 물(物), 몸 신(身), 몸 체(體)이다. 용례로는 마음과 몸을 심신(心身), 마음이 움직이는 상태를 심리(心理), 마음에 품은 생각과 감정을 심정(心情), 마음의 상태를 심경(心境), 마음 속을 심중(心中), 마음속에 떠오르는 직관적 인상을 심상(心象), 어떤 일에 깊이 빠져 마음을 빼앗기는 일을 심취(心醉), 마음에 관한 것을 심적(心的), 마음의 속을 심리(心裏), 가슴과 배 또는 썩 가까워 마음놓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심복(心腹), 본디부터 타고난 마음씨를 심성(心性), 마음의 본바탕을 심지(心地), 마음으로 사귄 벗을 심우(心友),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으로 묵묵한 가운데 서로 마음이 통함을 일컫는 말을 심심상인(心心相印), 어떠한 동기에 의하여 이제까지의 먹었던 마음을 바꿈을 일컫는 말을 심기일전(心機一轉), 충심으로 기뻐하며 성심을 다하여 순종함을 일컫는 말을 심열성복(心悅誠服), 마음이 너그러워서 몸에 살이 오름을 일컫는 말을 심광체반(心廣體胖), 바둑을 두면서 마음은 기러기나 고니가 날아오면 쏘아 맞출 것만 생각한다면 어찌 되겠느냐는 맹자의 언질에서 비롯된 말로 학업을 닦으면서 마음은 다른 곳에 씀을 일컫는 말을 심재홍곡(心在鴻鵠), 썩 가까워 마음놓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심복지인(心腹之人), 높은 산속의 깊은 골짜기를 일컫는 말을 심산계곡(心山溪谷), 심술꾸러기는 복을 받지 못한다는 말을 심술거복(心術去福), 마음이 번거롭고 뜻이 어지럽다는 뜻으로 의지가 뒤흔들려 마음이 안정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심번의란(心煩意亂), 마음에 줏대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심무소주(心無所主),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심심풀이로 어떤 일을 함 또는 그 일을 일컫는 말을 심심소일(心心消日), 마음이 움직이면 신기가 피곤하니 마음이 불안하면 신기가 불편함을 일컫는 말을 심동신피(心動神疲), 마음속의 생각이나 느낌을 이르는 말을 심중소회(心中所懷), 사람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경지를 일컫는 말을 심행소멸(心行消滅), 마음속의 생각을 모두 털어놓음을 일컫는 말을 심복수사(心腹輸寫), 마음을 다하여 도를 구함을 일컫는 말을 심성구지(心誠求之), 심두 즉 마음을 멸각하면 불 또한 시원하다라는 뜻으로 잡념을 버리고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면 불 속에서도 오히려 시원함을 느낀다는 말을 심두멸각(心頭滅却), 마음은 원숭이 같고 생각은 말과 같다는 뜻으로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생각을 집중할 수 없다는 말을 심원의마(心猿意馬) 등에 쓰인다.
▶️ 塵(티끌 진)은 회의문자로 본디 글자 鹿(록; 사슴)이 떼지어 달릴 때 흙먼지가 일어나는 모양을 뜻하고, 바뀌어 먼지의 뜻이 되었다. 그래서 塵(진)은 십진(十進) 급수(級數)의 단위(單位)의 하나. 사(沙)의 만분의 일. 애(埃)의 열 곱절의 뜻으로 ①티끌 ②때, 시간(時間) ③유업 ④소수의 이름 ⑤더럽히다 ⑥묵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티끌 많은 세상을 진세(塵世), 티끌 세계 또는 이 세계를 진계(塵界), 티끌 세상을 진경(塵境), 티끌의 세계를 진환(塵寰), 세상의 속된 것을 진애(塵埃), 티끌과 흙을 진토(塵土), 속된 마음이나 평범한 생각을 진금(塵襟), 속되고 비루함을 진루(塵陋),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상대방을 더럽힌다는 뜻으로 상대방에 대하여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을 진혼(塵溷), 속세의 명예와 이익을 생각하는 마음을 진념(塵念), 속세의 어지러운 일이나 세상의 속된 일을 진사(塵事), 지저분한 속된 세상을 진속(塵俗), 티끌을 분진(粉塵), 바람이 불어 햇빛에 벌겋게 일어나는 티끌을 홍진(紅塵), 연기처럼 자욱하게 일어나는 모래 섞인 흙먼지를 사진(沙塵), 바람과 티끌으로 세상에 일어나는 어지러운 일을 풍진(風塵), 먼지가 들어오는 것을 막음을 방진(防塵), 속세의 티끌로 세상의 여러 가지 번잡한 사물을 속진(俗塵), 공기 중에 떠도는 먼지를 걷어 없애는 일을 수진(受塵), 썩 작은 티끌이나 먼지 또는 썩 작고 아주 변변하지 못한 물건을 미진(微塵), 차가 달려간 뒤에 일어나는 먼지를 차진(車塵), 세속을 벗어남을 출진(出塵), 더러운 먼지를 오진(汚塵), 티끌 모아 태산으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모이고 모이면 큰 것이 될 수 있다는 뜻의 속담을 진합태산(塵合太山), 먼지를 밥이라 하고 진흙을 국이라 하는 어린아이의 소꿉장난이라는 뜻으로 실제로는 아무 소용없는 일을 이르는 말을 진반도갱(塵飯塗羹), 밥 짓는 시루를 오래 쓰지 아니하여 먼지가 앉았다는 뜻으로 매우 가난함을 이르는 말을 증중생진(甑中生塵), 먼지에 새기고 그림자를 입으로 분다는 뜻으로 쓸데없는 헛된 노력을 이르는 말을 누진취영(鏤塵吹影), 가슴에 먼지가 생긴다는 뜻으로 사람을 잊지 않고 생각은 오래 하면서 만나지 못함을 일컫는 말을 흉중생진(胸中生塵), 늙바탕에 겪는 세상의 어지러움이나 온갖 곤란을 백수풍진(白首風塵), 바람 앞의 티끌이라는 뜻으로 사물의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풍전지진(風前之塵)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