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는다...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 하지 않는다... 나는 이제 그 어느 누구도 아니다... 누구의 딸도... 누구의 친구도... 그렇게 점점 사람들에게서 멀어진다. 나는 이제 사람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두려움의 존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실 그 어느 누구도 죽었다 살아 돌아온 사람이면 몰라도 죽음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죽는다는 것은 알지만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죽음이 두렵기만 하다.
인간이 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단 한번 겪을 수 있는 죽음은 인간의 발달과정의 마지막 소멸단계이다. 말 그대로 조금의 흔적만 남기고 갈 뿐, 자신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나도 언젠가 나이가 들어서 죽는다는 건 알지만, 죽고 나서 나는 생각 할 수가 없다. 모른다. 죽어서도 나는 비록 몸은 사라졌지만, 다른 곳에서 지금과 똑같이 생각하고, 기억하고, 숨쉬고 있을까, 아니면 완전히 잊어버릴까.
내가 죽음이 두려운 건 단순히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잊혀져가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 숨쉬어 갈 때, 내가 정말 이 세상에 미련 갖지 않고 후회가 없이 살았나 하는 것이다. 무섭다. 내가 비록 몸은 없지만, 아직 내 속에는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될까봐.
마음 편히 미련없이 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러나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영웅들은 죽기전에 자신들의 삶에 조금의 후회가 없이 갔을까. 영웅, 보통사람들이 엄두도 못 낼 일을 성공하여 업적을 남긴 인물을 말한다.
영웅들은 죽고 나서 더욱 더 빛이 난다. 현재에도 반일감정으로 찬 우리들에게 투철한 애국정신을 보여는 이순신장군을 비롯해 그 당시 사회의 이슈에 따라 영웅들도 우리에게 다르게 다가온다. 용감하게 선의를 행하고 간 그에게 돌을 던질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들이 살았을 때 과연 행복했었는지를 궁금해 하는 사람도 없다.
영웅이 죽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 살아왔다면, 우리는 계속 그들에게 영웅이라 불렀을까.
영웅은 죽음을 택하면서 자기의 업적을 마지막으로 더욱 더 빛을 내며, 사람들은 단지 그의 죽음을 자신들의 판단을 통해 그것에 열광하게 된다. 영웅의 죽음을 열광하는 것과 삶의 연장에 환호하느냐는 영웅도 자신이 죽기를 원했을까, 나도 다 자신들은 개개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영웅이었다면 나는 죽고 싶었을까, 그렇지 않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이들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위로 할수 있을 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누구나 오래 살기를 바란다.
황우석교수의 배아 줄기세포 복제가 성공을 하면서, 우리는 삶의 연장선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사람들은 과연 오래살 수 있는 문이 열려 이런 발표들에 환호 하는 것일까. 지금의 노인연령도 충분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지 못한 아픈 환자들에게 빛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사람들이 오래 살고 싶어하는 이유는 다가 올 죽음의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내가 영원히 살아간다. 그것 또한 죽음과 같은 고통이 아닐까. 인간에게 주어진 삶에만 충실하며 살다가고 싶다. 그게 제일 아름다운 삶인 것 같다. 더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추해지고 싶지는 않다.
만약 영원히 살게 된다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나와 다른 여러 삶을 누려보고 싶다. 책에 나오는 세상을 빛낸 영웅이라든가, 인기 스타라든가, 로또 당첨에 걸리때까지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긁어 보던가, 더 많은 사랑을 해보던가.
사실 지금도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수는 없다. 내 여건에 맞춰서 만족할 뿐이다. 오래 살게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사람들은 한가지를 얻으면, 두가지를 더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첫댓글 [3]죽음을 모르기때문에 두렵다는 부분과,마지막 부분이 좋았던것 같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3]담담하게 주제에 따른 생각을 써 내려 가신 것이 인상적입니다. 영원한 삶은 죽음과 같은 고통이란 부분이 좋네요.
[3]내용을 전개하는데 표현이 매우 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3)자신의 생각을 잘표현하셨네요
[3] 충분히 살지 못한 환자들은 얼마까지 살면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