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한반도 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
한미군 감축 움직임이 지난해부터 감지됐으나 정부는 이를 의도적으로 은폐하려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 정부가 그동안 주한미군 감축설을 일관되게 부인한 것과는 달리 미국이 지
난해에 이미 주한미군 감축 입장을 비공식적으로 통보했고, 올 2월에는 공식채널을
통해 재배치 계획을 설명했다는 주장들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19일 "미국이 작년 9월 초 주한미군 1만2천명 정도를 줄일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비공식적으로 통보해왔으나 북핵문제 등을 이유로 미국의 협
조를 얻어 감축관련 논의를 올 상반기까지 유보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2월 13∼14일 서울에서 열린 제7차 미래동맹 정책구상회의에서도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계획(GPR)' 개념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주한미군도 이 계획에 따라
재배치될 것임을 한국측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안보연구원의 김성한(金聖翰) 교수팀은 지난해 11월 "주한미군 2사단의 재
배치가 경량.신속.첨단화 방향으로 나아감에 따라 주한미군 병력의 일부 감축 가능
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팀은 "미국은 자국군의 특정임무를 한국군에 이관하는 것을 필두로 ' 한
국방어의 한국화'를 제고하고 주한미군은 동아시아 차원의 '안정자(Stabilizer)' 역
할을 맡게 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며 한국측의 방위력 증강을 주문했다.
미국은 GPR에 따른 주한미군의 단계적인 감축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사실을 이
미 8개월 전부터 한국측에 통보했고,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안보 전문가들이 독자적
인 대비책을 권고해온 사실을 보여주는 발언들이다.
또, AP통신은 지난해 10월 "미국은 주한미군의 3분의 1 가량인 1만2천명을 줄이
는 문제를 놓고 한국과 협상중"이라고 전했고, 서울방송(SBS)은 3월 1일 감축이 한
국 정부에 비공식적으로 통보됐음을 보도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 감축과 관련된 언론보도가 있을 때마다 이를 적극
부인해왔다.
고건 총리는 주한미군 감축에 관한 AP보도와 관련, "미국측으로부터 감군에 대
한 요청을 받은 바 없다. 다만 미국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무기체제 첨단화에 따른
한반도 재배치 계획을 추진중이다. (감축문제를) 공개 제의한다면 감출 수 없기 때
문에 국회에 보고해 정식으로 논의하겠으나 현재까지는 없었다"고 밝혔다.
국방부도 언론사에 배포한 해명자료를 통해 "SBS가 보도한 주한미군 감축관련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감축과 관련해 한미간 어떠한 논의도 없었고 미측으로부터
통보받은 사실도 없다"고 발표했다.
유보선 국방부 차관은 국무회의 참석에 앞서 기자들에게 "한미간에 감축과 관련
한 논의가 전혀 없었고 현재도 논의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 예정된 것도 없다"며
감축설을 일축했다.
미국이 주한미군 3천600명을 이라크 안정화 작전에 투입하는 것을 계기로 본격
적인 감군계획에 돌입할 것이라는 사실이 최근 언론을 통해 확인될 때까지 정부는 `
모르쇠'로 일관해온 것이다.
군사전문가들은 "정부가 주한미군의 감축 움직임을 오래전부터 파악하고도 이를
알리지 않은 것은 안보불안 확산 등을 우려해 고의로 숨기려 한 데서 비롯된 의혹이
짙다. 그러나 안보문제는 `국민 알권리'의 핵심인 점에 비춰 올바른 처신은 아니었
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또 "주한미군이 갑자기 한반도에서 빠져나갈 경우 국민들에게 미치는 안
보불안 심리는 통제불능 상황으로 악화될 수 있는 만큼 충격완화와 총력대비태세 수
립을 위해서라도 감군 움직임을 제 때 설명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국방부 관계자는 "주한미군이 단계적으로 철수할 가능성은 여러 차례 감지됐으
나 공식적인 채널을 통한 감축이나 연합지휘체계의 변화에 대한 논의는 한번도 없었
기 때문에 언론 보도를 부인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