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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이불수(苗而不秀)
싹은 틔었는데 꽃은 피우지 못하다는 뜻으로, 배우고도 완성에 이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말이다.
苗 : 모 묘(艹/5)
而 : 말이을 이(而/0)
不 : 아닐 불(一/3)
秀 : 빼어날 수(禾/2)
출전 :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
子曰: 苗而不秀者, 有矣夫. 秀而不實者, 有矣夫.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싹은 틔었는데 꽃은 피우지 못한 것이 있구나! 꽃은 피었는데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이 있구나!"
주자는 묘(苗)를 곡식이 막 싹을 틔우는 것이라고 풀고, 수(秀)는 꽃을 피우는 것이라고 풀었다. 實은 열매가 영근 것이라고 풀면서, 배우고도 완성에 이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말씀이라고 본다. 秀는 禾(벼 화)部와 乃(내)가 합쳐진 글자로 乃(내)는 孕(잉)의 생략형으로 '머금다', '토해낸다'는 뜻이 있다.
남송(南宋)·원대의 성리학자인 진력(陳櫟)은 공자의 안회에 대한 말씀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에 근거해 이 문장은 공자께서 안회(顔回)의 요절을 애석해하신 것이라 본다.
이에 대해 정약용은 안회는 비록 요절했지만 덕(德)은 이미 성숙한 사람이었으며, 만약 이 장을 공자께서 안회를 애석해하신 것으로 본다면 안회의 덕이 성숙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고 보아 진력(陳櫟)의 의견에 반대한다.
양백준은 진력의 의견에 일부 동의하면서, 예형(禰衡)의 안자비(顔子碑)에 근거해 안회는 秀而不實에만 해당하므로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지 확정할 수 없다고 본다.
정약용은 이 문장은 "공자는 천지가 만물을 낳는 이치를 말씀하신 것으로, 하늘이 이 사람을 낳으시고는 시간을 주시지 않아, 확충하고 크게 할 수 없게 하시니, 이것을 일러 하늘은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을 학문에 비유하자면 담담하여 아무 맛이 없는 것으로, 애석하고 안타까워하는 미묘함은 없다"고 풀고 있다.
묘이불수(苗而不秀)
苗而不秀者有矣(묘이불수자유의)
벼 싹 중엔 잘 자라지 못한 것도 있거니와,
秀而不實者有矣(수이불실자유의)
잘 자란 것 중에는 결실을 못한 것도 있다.
논어 '자한장(子罕章)'에 이런 구절이 눈길을 끈다. 곡식을 심고 가꾸다 보면 곡식의 삯이 잘 자라는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그런데 어떤 것은 잘 자랐으면서도 열매가 영글지 않은 것도 있다.
땀 흘리며 지은 농사인데 꽃도 피우지 못하고 자라지도 못한 것들이 눈에 띄거나 또는 싹이 잘 자라기는 했지만 열매가 영글지 않은 빈 쭉정이가 눈에 많이 띄면 그 농부는 논 밭둑에 주저앉아서 한숨만을 지을 것이다.
당음(唐音)에 '민농(憫農)'이라는 오언시(五言詩)가 있다.
鋤禾當午天(서화당오천)
汗滴禾下土(한적화하토)
벼논을 매다가 점심나절이 되니 땀방울이 벼 폭 아래 논바닥에 뚝뚝 덜어지누나.
誰知盤中飡(수지반중손)
粒粒皆辛苦(입입개신고)
밥상에 차려진 밥의 낱알 하나하나가 모두 농부의 쓰라린 고생 끝에 얻어진 것임을 뉘라서 알리오.
농부의 힘든 땀의 보람임을 절실히 생각하게 한다. 그런 농부에게 꽃도 피우지 못하고 열매도 영글지 못한 벼 폭이 눈에 띈다면 그 농부의 실의와 절망은 어떠할까? 능히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이는 사회현상을 비유해서 한 말이다. 원문에서 말하는 수(秀; 吐花曰秀)는 꽃이 핀다는 뜻이며, 수이불실(秀而不實)은 꽃은 피웠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을 말한다. 학교에 다니고 공부를 했다면서 성취하지 못한 무리를 수이불실(秀而不實)이라 비유했다.
그런 부류를 일컬어 이율곡 선생께서는 구이지학(口耳之學) 또는 삼촌지학(三寸之學)이라 꼬집었다. 이는 얻어들은 것을 입으로만 떠들어 대는 무리로서 그들의 학문이라 자칭하는 깊이와 기리는 세 치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입에서 귀까지의 길이가 세 치(三寸)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이른바 선거직 공직자 및 학벌(學閥), 향벌(鄕閥), 문벌(門閥), 연벌(緣閥) 등을 배경으로 하여 임용된 사람들 가운데 수준 저하와 함량미달(含量未達)한 무리가, 일어탁수(一魚濁水) 격의 방종을 저지르고, 어로불변(魚魯不辨)하는 착각에 빠져들며, 촉견폐월(蜀犬吠月)하는 오판을 범하고서도 도리어 장광설을 늘어놓는 사이비들이 변색충(變色虫) 노릇을 하는 사례를 보게 될 때마다 타기(唾棄)를 금하기 어렵다.
일어탁수(一魚濁水)는 사회를 혼탁시키는 분자를 말하며, 어로불변(魚魯不辨)은 본질이 다른 것을 동일시하는 착시군상(錯視群象)을 말하고, 촉견폐월(蜀犬吠月)은 구름 낀 날이 많아 맑은 하늘을 보기 어려운 촉나라 땅에서는 보름달을 구경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개들까지도 보름달을 멋처럼 보게 되면 무슨 변고인 양 알고 밤새워 짖어대곤 했다고 한다. 이는 정상과 비정상을 뒤바꿔서 선순환과 악순환을 구별 못하는 무지한(無知漢)들을 말한다.
정도이탈자와 착시군상과 무지한들이 만일의 경우, 일당을 이룬다면 그런 집단에 의하여 벌어지는 결과는 불문가지일 것이다. 모두가 공존하는 실존사회 속에는 이른바 사회인의 벌선(閥線)을 넘어서 바라보면, 우자와 졸자, 현인과 어리석은 자, 능력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優拙 賢愚 能慢)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래도 정도(正道)와 정견(正見)과 선순환론자(善循環論者)들은 얼마든지 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을 기피하는 이른바 승기자염지(勝己者厭之)하는 사회벽(社會癖)과 이퇴계 선생께서 역설했던 식자층의 사람들일수록 사기종인(捨己從人)하는 겸허함을 모르는, 이른바 인간편벽증(人間偏癖症)을 지닌 자들이 그것을 버리지 못하면 우리나라 백성은 폐민(廢民)이 될 것이라는 경고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은 못살겠다는 신음의 울부짖는 소리요, 개점휴업(開店休業)은 상공인들이 현장에서 실감하고 있는 공황(恐慌)을 통고하는 소리요, 폐문개창(閉門開窓)은 실 가닥 같은 희망이라도 있을까 하는 요행심의 표현이다. 그와 같은 심정은 논 밭둑에 주저앉아서 수이불실(秀而不實)한 곡식이삭을 품에 안고 한탄하는 농민의 괴로운 심정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예부터 농업이라는 것은 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하였다. 따라서 수이불실은 천하의 대본이 무너진다는 뜻이다. 이처럼 근본이 무너진다는 것은 곧 나라의 기틀(國基)이 무너진다는 뜻이다.
특히 민의는 우측 가도와 좌측 가도에 나누이어서 대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다. 이는 국론의 분열이다. 누구든 사회적 현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현실이 두려워서 기피한다면, 국민을 사랑한다면서 그들이 두려워서 피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일부 공영 보도 매체가 거의 편파 보도에 기울어져 있다는 지적이 많다.
어떤 경우에도 현실을 호도하고서는 현실 문제를 풀어갈 수 없다. 군중도 백성이요, 민중도 백성이다. 그러나 군중은 선동에 의해서 움직이기 쉽고 민중은 자주적인 자기 의견을 지니고 행동한다.
따라서 군중은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참여와 이탈의 성향이 두드러지지만, 민중의 경우에는 자주적인 의견을 지니기에 대의명분을 중요시한다. 일반적으로 사익에 따라 경망스레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민중은 언제나 애육여수(愛育黎首/ 千字文)의 대상이요, 군중은 교화성속(敎化成俗/ 鄕約條)의 마음으로 도듬어가야 한다. 버려야 할 백성은 한 사람도 없다.
어떤 정권에서는 우리정부, 참여정부라는 용어를 쓴 적도 있었지만 그 의미 속에는 '우리 아닌 국민' 또는 '참여 이외 국민이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농민의 경우 알곡도 수확하지만 그 밖의 북데기도 거두어 드려서 퇴비자료로 쓰곤 한다.
논어의 글귀에 담긴 심장한 의미를 되뇌어봄 직하다. 가을이 되면 알곡이 영근 이삭은 고개를 숙이지만, 쭉정이는 속이 비어 고개를 숙일 줄 모른다. 자신이 쭉정이임을 알거든 스스로 자리를 떠나가야 한다.
수이불실(秀而不實)
국가대표 선수들은 올림픽에서 그동안 갈고닦았던 기량을 뽐냈다. 지난 도쿄 올림픽은 시작하기 전부터 축하와 기대보다 우려와 불안이 교차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올림픽이 1년 연기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일본 국민들 중에는 코로나19가 완전히 통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열리는 올림픽은 바이러스 확산을 가져오고 경제적으로 이익보다 손해가 예상된다며 올림픽 개최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짧게는 지난 5년, 길게는 평생 실력을 갈고닦은 선수들의 피와 땀을 도외시할 수 없었다. 온갖 우려와 불안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이 시작되면서 선수들의 기량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일부 경기장을 제외하고 코로나19로 인해 무관중 경기가 펼쳐졌다. 이 때문에 경기 외적 요소보다 선수들이 더 주목을 받은 듯하다. 경기장의 선수 이외에 다른 화젯거리가 없었으므로 미디어가 경기 내내 선수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승패와 관련해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이전에는 선수와 국민이 금메달이 아니면 주목할 만한 가치를 두지 않았다. 금메달이 아니면 시상식 이후에 메달을 목에서 벗는 선수도 있었다. 이 때문에 ‘메달의 색깔만 따지는 시선’과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비인기 종목의 선수는 설혹 좋은 성적을 거둬도 언론과 국민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올림픽의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도 명(明)과 암(暗)을 각각 따로 비추는 차별이 있었다.
이번에는 수영에서 황선우 선수, 높이뛰기 우상혁 선수 그리고 여자 배구 대표팀은 메달을 수상하지 못했지만 예선과 결선 과정에서 보여준 기량에 많은 국민들이 박수를 보냈다.
선수들도 수상을 못 했다고 해서 귀국할 때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여자 배구 대표팀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은 메달 획득을 못 한 선수들에게 "어떤 메달도 여러분의 열정과 땀을 대체할 수는 없다"며 위로를 했다고 한다.
이 말은 여자 배구 대표팀만이 아니라 올림픽에 참가한 모든 선수에게도 해당되고 또 일상을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공자는 3,000명의 제자를 길러냈다고 한다. 그중에 어찌 선생의 속을 썩이지 않는 사람이 없었을까. 공자는 재여(宰予)가 낮잠 자는 장면을 보고서 크게 실망한 듯했다.
이에 이전에 내가 사람의 말을 들으면 그대로 실천하리라 믿었지만 이제부터 사람의 말을 들으면 실제로 어떻게 하는지 관찰해야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낮잠을 잤다는 사실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열정이 식었기 때문에 공자가 실망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공자는 기대와 달리 실력이 확 늘지 않아 제자리를 맴도는 제자들도 본 모양이다. "싹이 틔었지만 꽃이 피지 않는 경우도 있고, 꽃이 피었지만 열매가 맺지 않는 경우도 있도다(苗而不秀者有矣夫, 秀而不實者有矣夫)."
이 말을 올림픽에 적용하면 묘이불수는 예선에 진출했지만 결선에 진출하지 못한 선수에, 수이불실은 결선에 진출했지만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에 해당될 수 있다.
그렇다고 공자가 "싹을 틔운 뒤에 꽃을 피우고 꽃을 피운 뒤에 열매를 맺는 경우가 있다(苗而後秀者有矣夫, 秀而後實者有矣夫)"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공자는 묘이후수와 수이후실의 제자를 칭찬해 맹진하도록 했지만 묘이불수와 수이불실의 제자를 위로해 앞으로 나아가도록 격려했던 것이다. 공자의 인간적인 묘미가 느껴진다고 할 수 있다. 1등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는 학생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건넸기 때문이다.
간혹 공자가 묘이불수와 수이불실의 말로 제자를 질책했다는 풀이도 있다. 물론 선생이 학생에게 앞으로 나아가도록 다그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읽으면 공자가 성취에만 주목하는 너무 차가운 선생이 된다. 우리도 묘이불수와 수이불실의 선수가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격려와 지지를 잊지 않아야겠다.
▶️ 苗(모 묘)는 ❶회의문자로 艸(초; 풀)과 田(전; 밭)이 합(合)하여, 밭에 심은 작은 풀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苗자는 '모종'이나 '곡식'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苗자는 艹(풀 초)자와 田(밭 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모종은 벼를 논에 심기 전에 미리 싹을 틔운 것을 말한다. 씨앗의 발아율을 높이고 초기생육을 활성화할 수 있으므로 지금도 쓰이는 방식이다. 이것을 '이앙법(移秧法)'이라고 한다. 苗자는 그러한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밭에 어린싹이 심겨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래서 苗(묘)는 ①모, 모종 ②핏줄 ③백성(百姓) ④곡식(穀食) ⑤사냥 ⑥오랑캐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모 앙(秧)이다. 용례로는 식물의 모종으로 이식하기 전의 어린 나무를 묘목(苗木), 일의 실마리 곧 일이 나타날 단서를 묘맥(苗脈), 대가 오래된 자손을 묘서(苗緖), 여러 대를 걸친 먼 후대의 자손을 묘예(苗裔), 옮겨 심을 수 있게 자란 어린 나무나 풀의 뿌리를 묘근(苗根), 모종으로 옮겨 심으려고 기른 벼 이외의 온갖 어린 식물을 묘종(苗種), 못자리로 나물, 꽃, 나무 따위의 모종을 키우는 자리를 묘상(苗床), 벼 종자를 뿌려서 모를 기르는 못자리를 묘판(苗板), 모를 내기 전이나 작물의 꽃이 필 때에 논밭에 주는 거름을 묘비(苗肥), 알에서 방금 까 나온 누에를 묘의(苗蛾), 오랑캐를 정벌함을 묘정(苗征), 씨나 싹을 심어서 묘목을 가꾸는 것 또는 그렇게 가꾼 묘목을 종묘(種苗), 묘목이나 모를 기름을 육묘(育苗), 벼의 모를 화묘(禾苗), 뽕나무의 묘목을 상묘(桑苗), 묘목을 고름을 선묘(選苗), 다 자란 묘목을 성묘(成苗), 물속에서 자라는 어린 볏모를 수묘(水苗), 좋은 묘목을 양묘(良苗), 모나 묘목을 기르는 일을 양묘(養苗), 모나 묘목 따위를 원 밭에 옮겨 심음을 이묘(移苗), 빨리 자라라고 모를 뽑는다는 뜻으로 빠른 성과를 보려고 무리하게 다른 힘을 더하여 도리어 그것을 해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조장발묘(助長拔苗), 급하게 서두르다 오히려 일을 망친다를 일컫는 말을 발묘조장(拔苗助長), 곡식이 빨리 자라도록 하려고 이삭을 뽑아 올린 때문에 모두 죽어 손해를 보게 된다를 이르는 말을 알묘조장(揠苗助長) 등에 쓰인다.
▶️ 而(말 이을 이, 능히 능)는 ❶상형문자로 턱 수염의 모양으로, 구레나룻 즉, 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을 말한다. 음(音)을 빌어 어조사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而자는 '말을 잇다'나 '자네', '~로서'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而자의 갑골문을 보면 턱 아래에 길게 드리워진 수염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而자는 본래 '턱수염'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지금의 而자는 '자네'나 '그대'처럼 인칭대명사로 쓰이거나 '~로써'나 '~하면서'와 같은 접속사로 가차(假借)되어 있다. 하지만 而자가 부수 역할을 할 때는 여전히 '턱수염'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而(이, 능)는 ①말을 잇다 ②같다 ③너, 자네, 그대 ④구레나룻(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 ⑤만약(萬若), 만일 ⑥뿐, 따름 ⑦그리고 ⑧~로서, ~에 ⑨~하면서 ⑩그러나, 그런데도, 그리고 ⓐ능(能)히(능) ⓑ재능(才能), 능력(能力)(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30세를 일컬는 말을 이립(而立), 이제 와서를 일컫는 말을 이금(而今), 지금부터를 일컫는 말을 이후(而後), 그러나 또는 그러고 나서를 이르는 말을 연이(然而), 이로부터 앞으로 차후라는 말을 이금이후(而今以後), 온화한 낯빛을 이르는 말을 이강지색(而康之色), 목이 말라야 비로소 샘을 판다는 뜻으로 미리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일이 지나간 뒤에는 아무리 서둘러 봐도 아무 소용이 없음 또는 자기가 급해야 서둘러서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을 갈이천정(渴而穿井),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듯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주 다른 것을 이르는 말을 사이비(似而非), 공경하되 가까이하지는 아니함 또는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꺼리어 멀리함을 이르는 말을 경이원지(敬而遠之), 뾰족한 송곳 끝이 주머니를 뚫고 나온다는 뜻으로 뛰어나고 훌륭한 재능이 밖으로 드러남을 이르는 말을 영탈이출(穎脫而出), 서른 살이 되어 자립한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견식이 일가를 이루어 도덕 상으로 흔들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삼십이립(三十而立), 베개를 높이 하고 누웠다는 뜻으로 마음을 편안히 하고 잠잘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고침이와(高枕而臥), 형체를 초월한 영역에 관한 과학이라는 뜻으로 철학을 일컫는 말을 형이상학(形而上學), 성인의 덕이 커서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유능한 인재를 얻어 천하가 저절로 잘 다스려짐을 이르는 말을 무위이치(無爲而治)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부적절(不適切),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나 죽여 없애야 할 원수를 일컫는 말을 불구대천(不俱戴天), 묻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가히 알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불문가지(不問可知),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도 없다는 뜻으로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사의(不可思議),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일컫는 말을 부정부패(不正腐敗), 지위나 학식이나 나이 따위가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함을 두고 이르는 말을 불치하문(不恥下問),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을 불혹지년(不惑之年), 필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음을 일컫는 말을 불요불급(不要不急), 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난관도 꿋꿋이 견디어 나감을 이르는 말을 불요불굴(不撓不屈), 천 리 길도 멀다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먼길인데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달려감을 이르는 말을 불원천리(不遠千里) 등에 쓰인다.
▶️ 秀(빼어날 수)는 ❶회의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벼 화(禾; 곡식)部와 乃(내)를 합(合)한 글자이다. 乃(내)는 孕(잉)의 생략형으로 벼가 잘 익었다는 뜻을 나타내는 듯하다. ❷회의문자로 秀자는 '빼어나다'나 '(높이)솟아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秀자는 禾(벼 화)자와 乃(이에 내)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乃자는 줄이 굽어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모양자 역할만을 하고 있다. 秀자의 소전을 보면 禾자 아래로 乃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벼가 잘 자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秀자는 본래 '솟아나다'에서 '성장하다'나 '(꽃이)피다', '무성하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에 빗대어 '빼어나다'나 '뛰어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秀(수)는 성적이나 등급 따위를 평점하는 기준의 한 가지로 수, 우, 미, 양, 가의 다섯 계단으로 평점할 경우에 우의 위로 으뜸가는 등급으로 ①빼어나다 ②(높이)솟아나다 ③뛰어나다, 훌륭하다 ④성장하다, 자라다 ⑤(꽃이)피다 ⑥아름답다 ⑦무성(茂盛)하다 ⑧이삭(꽃대의 끝에 열매가 더부룩하게 많이 열리는 부분) ⑨꽃 ⑩꽃이 없이 열매가 맺는 것 ⑪꽃이 피고 열매가 맺지 않는 것 ⑫수(繡), 자수(刺繡) ⑬정수(精粹) ⑭지초(芝草: 지칫과의 여러해살이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준걸 준(俊), 뛰어날 걸(傑), 빼어날 정(挺)이다. 용례로는 학문과 재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을 수재(秀才), 재주가 빼어나고 현명함을 수민(秀敏), 우수하고 월등함을 수월(秀越), 산수의 경치나 사람이 얼굴 모습 등이 빼어나게 아름다움을 수려(秀麗), 재주가 뛰어나고 고상함을 수아(秀雅), 우수한 작품을 수작(秀作), 재주와 기능이 남보다 뛰어남을 수걸(秀傑), 빼어나고 깨끗함을 수결(秀潔), 산과 들의 맑고 아름다운 경치를 수색(秀色), 재지가 빼어나고 훌륭함을 수영(秀英), 재주가 뛰어나고 영묘함을 수령(秀靈), 아주 빼어나게 아름다운 눈썹을 수미(秀眉), 여럿 가운데 아주 뛰어남을 우수(優秀), 재주나 지혜나 풍채가 뛰어남을 준수(俊秀), 남의 집 처녀를 점잖게 이르는 말을 규수(閨秀), 특별히 뛰어남을 특수(特秀), 얼굴이 깨끗하고 준수함을 청수(淸秀), 재능이 남보다 뛰어나게 우수함을 교수(翹秀), 보리만 무성하게 자란 것을 탄식함이라는 뜻으로 고국의 멸망을 탄식함을 이르는 말을 맥수지탄(麥秀之歎), 나뭇잎이 저 산 모양이 드러나 맑고 빼어나다는 뜻으로 가을 경치가 맑고 수려함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각로청수(刻露淸秀), 눈썹과 눈이 수려하다는 뜻으로 얼굴이 빼어나게 아름다움을 이르는 말을 미목수려(眉目秀麗)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