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종북 아니라고요"
보수진영으로부터 대표적인 '종북좌파'로 낙인찍혔던 김제동 씨가 커밍아웃을 했다.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와 국방부 사이버사령부 등으로부터 종북좌파로 몰려 공격받아왔던 김제동 씨는 어제 트위터에 자신의 고향이 종북이 아닌 '경북'임을 당당히 밝히고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켰다. 그런데 이 '유쾌한 고백'을 바라보는 마음이 그리 편치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TK' 죽은 신이 지배하는 땅
지난달 18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제94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에서 경북선수단은 이채로운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경북 선수들이 새마을 마크가 각인된 스카프를 흔들며 경기장에 들어서자 진행자는 “조국근대화, 새마을운동의 발상지 경북도선수단이 입장하고 있습니다”라는 신선한 멘트로 이들을 반겼다. 경북도체육회는 이날의 퍼포먼스에 대해 “전국체전을 통해 새마을운동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상기시켜 경북의 혼을 표출하는 한편 경북의 자존과 명예를 드높이는 뜻깊은 연출을 표현했다”며 자랑스러워 했다.
김제동 씨의 고향 경북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본산이다. 여전히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향수가 강하게 남아 있는 TK(대구 경북)답게 지역의 정체성도 남다르다. 전국체전 개막식에서 경북 선수단이 보여준 새마을 퍼포먼스는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전국체전 개막 3일 전, 경상북도는 새마을운동을 경북의 정체성으로 공식 '결정'했다. 경상북도는 지난 15일 '경북정체성포럼' 총회를 열고 새마을운동을 경북의 4대 분과의 이름이자 4대 도의 정신으로 확정 했다. 새마을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떠나, 도민의 정신을 관이 결정짓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박정희 정신'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관용 경북지사는 지난 9월 새마을운동 수출을 위해 에디오피아 독재자의 초청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박성수 경북도 미래전략기획단장은 "경북 청도가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이고 도민 입장에서는 우리 도가 가진 자산 중 하나이다. 일례로 광주를 인권의 도시라고 하는데 광주만 인권 정책을 한게 아니지만 인권은 광주시민의 자존심인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말했다. 저 공무원은 광주가 인권의 도시로 불리게 된 피의 역사와 독재시대의 관변운동을 '비슷한 것'으로 치부한다. 저 용감한 영혼없음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지난달 구미에서는 '박정희 대통령 96회 탄신제 숭모제례'라는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도지사와 시장, 국회의원, 교육감 등 각계 인사와 3천여명의 인파가 몰려 살아있는 권력을 실감케 했다. 이 행사에서 남유진 구미시장은 문제의 "반인반신" 발언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김관용 경북지사는 5.16쿠데타를 "구국의 결단"으로, 심학봉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아버지 대통령 각하"라고 목놓아 찬양했다.
문제는 종북이 아닌 '경북'이다
경북은 죽은 독재자의 그림자가 지배하는 땅이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죽은 독재자를 신으로 밀어 올리려는 산 자들의 욕망이 지배하는 땅이다. 모든 경상북도 주민들이 박정희교 신도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독재자의 신격화가 용납·조장되는 분위기가 이 지역이 갖는 특유의 문화임은 부인하기 힘들다. 바뀌는 지자체 장들마다 한목소리로 독재자를 신격화하고, 박지만 씨의 득남 소식에 축하 현수막이 시내 곳곳에 내걸리는 이 지역의 분위기를 일부 극성스런 교도들의 문제로로 돌릴 수는 없다.
일베로 상징되는 극우 하류문화에서 '종북'이란 말은 흔히 전라도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그들의 시각에서 볼 때 경북은 '종북'의 대척점에 있는 신성한 지역이다. 김제동 씨는 자신을 향한 종북공세를 향해 이 '문제적 지역'이 자신의 고향이라며 유쾌하게 받아쳤다. 어쩌면 그들은 출신을 '배반'한 김제동 씨가 더욱 얄밉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종북이 아니라 '경북'이다. 정치적 선호를 이유로 특정 지역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치적 선호와 독재의 미화는 구분되어야 한다. 적어도 '종북'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섬기는(섬길 것으로 의심받는) 대상을 향해 당당히 절을 하고 '아버지'라 부르지 않는다. 반면 박정희 동상이 세워져 있는 구미 생가에는 올 한해에만 57만명이 방문해 머리를 조아렸다. 34년 전 죽은 독재자를 찬미하고 독재시대를 미화하는 '경북'이야 말로 이나라 민주주의의 진짜 위협이다. 나라의 한 켠을 독재의 그림자가 지배하는 현실에서 어떻게 건강한 민주주의를 꿈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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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정치블로그 ☞ <다람쥐주인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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