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이고 장엄하며 자유로운 느낌의 협주곡
베토벤은 1804년 2월경 이 작품을 작곡하기 시작하여 그의 형인 카를이 출판업자에게 악보를 넘긴 1806년 3월경에 작품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1808년 역사적인 연주회보다 1807년 3월 베토벤의 적극적인 후원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로브코비츠 왕자의 궁에서 열린 사설 연주회에서의 4번 협주곡 연주가 더욱 의미 있을 듯하다. 당시에는 4번 교향곡과 <코리올란 서곡>이 함께 초연되었는데, 아무래도 궁정 연주자들의 기량도 훨씬 높았을 뿐만 아니라 참석했던 청중들의 이해 수준 또한 한결 높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4번 협주곡은 베토벤의 다섯 개의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가장 시적이고 장엄하며 자유로운 느낌을 준다. 비록 5번 ‘황제’ 협주곡의 그 위풍당당한 스케일에 밀리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비르투오시티(*뛰어난 연주 기교나 기술.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비르투오시타 virtuosita’로 적어야 합니다. ‘비르투오시티’는 영어 ‘virtuosity’를 이탈리아어처럼 읽은 것이죠.)와 시적 고양감의 절묘한 조화만큼은 베토벤의 협주곡들 가운데 단연 압도적이다. 그러한 만큼 모차르트가 꿈꾸었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상상력 풍부한 대화, 즉 협주곡의 이상향을 계승한 최초의 작품으로 이 작품을 꼽는다 하더라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 까닭에 마지막 악장이 모차르트에 의해 완성된 형식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는 점 또한 결코 우연은 아니다.
이러한 형식의 차용에도 불구하고 이 협주곡은 여러 면에서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독특한 개성과 형식적인 독창성은 무반주로 피아노 솔로가 등장하는 1악장 도입부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부드럽고 온화한 주제가 주는 귀족스러운 동시에 서정적인 분위기, 이를 반복하는 오케스트라의 위엄 있는 제시부 전개와 보다 교향악적으로 발전한 전개부의 다채로움 등등이 그러하다. 더 나아가 이전 협주곡들과는 달리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지속적으로 교체, 대화하며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모습은 독주자의 화려함을 강조하곤 했던 동시대의 다른 작곡가의 작품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또한 2악장에서 이질적인 주제들의 사용 또한 낯설음을 던져준다. 체르니는 이 중간 악장에 대해 '아주 오래된 고전 비극'이라고 표현하며 존경을 표한 바 있는데, 19세기의 많은 음악학자들 또한 이 곡이 마치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구하기 위해 지옥의 문을 지키는 퓨어리즈(*복수의 여신들을 가리키는 영어 Furies. 그리스 신화의 ‘에리니에스’. 라틴어로는 ‘푸리아이’)에게 애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마지막 악장은 앞선 두 악장과는 달리, 전혀 다른 세계로 뛰어드는 듯한 쾌속질주 또한 이 작품만의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