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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글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凡草
2017년, 9월 10일, 일요일, 맑음
(범초산장 이야기 805회) 영지 버섯 전문가(?)
범초산장에 이질풀 꽃이 피었다. 가을에 피는 꽃이다. 작은 꽃이지만 앙증맞고 귀엽다. 지난 주에 뿌린 무씨가 벌써 돋아났다. 사파이어처럼 고운 씨에서 저런 싹이 나왔다. 그렇다면 사파이어 잎인가! 시들시들하던 배추도 두 포기 정도만 죽고 다 살아났다. 여리여리하던 잎들이 비를 맞고 거짓말처럼 기력을 회복했다. 땅속에는 신통한 한의원이 있나 보다. 다 죽어가던 환자가 나아서 불끈 일어난다. 게으른 사람이 딱 키우기 좋은 양고추냉이. 잎 한 장이 부채만큼 크다. 가을에는 캐어서 뿌리를 갈아 고추냉이 가루를 만들어봐야겠다. 봉숭아 꽃물 들일 사람도 없는데 봉숭아 꽃이 피어서 눈으로만 꽃물 들였다. 모종으로 심은 상추가 벌써 이만큼 컸다. 뜯어서 밥을 싸 먹었다. 나는 쌈을 좋아해서 산장에는 쌈천지다. 범초산장이 아니라 범초쌈장이라고 해야 하나? 돼지 목살을 한 팩에 7500원 주고 사서 들깨, 케일, 상추, 아주까리, 당귀 잎으로 싸 먹었다. 고기만 먹을 때보다 더 맛이 있었다. 석산리 범초텃밭 주변에서 씨를 받아다 뿌렸는데 올해 새 품종 나팔꽃이 피었다. 기존에 있던 파란색 나팔꽃은 작고 볼품 없는데, 이건 크고 화려하다. 석산리 밭 근처에 보라색 나팔꽃이 있던데 그 씨를 받아와야겠다. 나는 보라색 나팔꽃이 더 마음에 든다. 요건 범초산장 밭이 아니라 도라지집 들깨밭이다. 내가 이렇게 잘 키울리가 있나? ㅎㅎ
아주 잘 키웠다. 역시 농사를 전문으로 하는 집이라 나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도 이런 밭을 보고 주눅들지 않는다. 나는 나대로 하면 되니까. 남의 밭을 보고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림의 떡을 보고 침을 흘릴 필요는 없으니까. 보기에는 엉성해도 내 밭에 더 정이 간다. 꼬질꼬질한 내 밭의 깻잎들은 아무 것도 안 주었다. 저런 집 깻잎들은 화학 비료에 농약을 뒤집어 쓰고 저렇게 잘 컸으리라. 나도 내년에는 미생물 발효액을 만들어서 뿌려주어야겠다. 내 밭의 농작물들은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하지만 마음으로는 무척 아껴주고 있다. 아내와 참 오랜만에 뒷산 약수터에 갔다. 몇달 만에 갔는데 울퉁불퉁하던 길이 아주 좋아졌다. 금정구청에서 손을 본 모양이다. 질 좋은 약수를 떠 와서 잘 마시고 있다. 올해 지독한 가뭄을 겪고 나서 물탱크를 설치하기로 했다. 물이 많을 때 물통에 받아 놓으면 가물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물통에 물을 받아 놓으니 모터를 틀지 않아도 물이 제법 잘 나왔다. 물 탱크가 1.5톤이라 한 번 받아 놓으면 한 달 이상은 쓸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들어올 때는 세 사람이 들고 오다가 힘에 부치면 굴려서 들어왔다. 1.7미터 높이의 받침대 위에 물탱크를 앉혀 놓고 호스를 겨울에도 얼지 않도록 보온 재료로 감싸고 있다. 물탱크 기술자가 어찌나 꼼꼼한지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널 정도로 잘 해주었다. 나는 이런 기술 분야에는 아무 상식이 없는데 오늘 이런 작업을 지켜보면서 어떤 과정으로 물탱크가 설치되는지 잘 알게 되었다. 계곡에서 물을 퍼올리는 펌프 말고도 작은 펌프가 하나 더 들어갔다. 이 작은 펌프는 물탱크에서 실내 수도꼭지로 가는 물을 밀어주는 역할을 한다. 펌프 하나로는 다 안 되니까 이게 보조 역할을 한다. 펌프도 독불장군으로는 안 되고 둘이 힘을 모아야 된다. 기술자 두 사람이 열심히 작업한 끝에 마무리가 되었다. 시험삼아 계곡의 물을 받아서 틀어보니 아주 잘 나왔다. 이젠 물 걱정을 덜었다. 산장에 물이 콸콸 쏟아지니 세상 근심이 다 사라진 기분이다. 물탱크를 놓아준 분에게 감사드린다. 오래 오래 잘 쓰겠습니다! 이 작업을 보면서 내가 깨달은 점이 있다. 바로 다음 사진이다. 작은 펌프가 들어있는 스티로폴 상자에 구멍을 뚫어 플라스틱 호스를 끼워 놓았다. 이건 왜 필요하냐? 상자 안에 습기가 차면 펌프가 빨리 고장난단다. 상자 안에 있는 공기가 순환할 수 있도록 이 호스를 양쪽에 달아놓았다. 말하자면 공기 구멍이다. 말못하는 기계도 숨을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물며 사람이야 더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맑은 공기를 자주 쐬어야 하고, 공기가 탁한 곳에 오래 있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집안 공기도 자주 갈아주어야 할 거고..... 물탱크 기술자가 일을 다 마치고 가자 아내가 아이디어를 발휘하여 물탱크 아래에 나무를 차곡차곡 재어 놓았다. 참 머리가 잘 돌아간다. 난 이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는데... 그리고 물탱크 호스가 깔려 있는 주변에 비닐을 깔아 깨끗하게 만들었다. 거의 정리의 달인이다. 이러니 내가 아내한테 큰소리를 못 치고 살아간다. ㅎㅎ 아니지. 되려 큰소리를 치며 살고 있으니 간이 배 밖에 나왔나? 이건 옆집에 핀 유홍초. 가을에 씨를 받아서 내년에는 범초산장에서도 꽃을 보아야지. 이가을 선생님표 꽃범의 꼬리가 꽃을 잘 피웠다. 점점 더 뻗어나가기를 바란다. 물통에서 키우는 물냉이가 거의 다 죽고 한 두 포기만 남았다. 새로운 물이 들어오는 개울에서 키워야지 물통에서는 잘 안 된다. 더위가 심하면 죽는 모양이다. 찬물이 자꾸 들어와야 한다. 연갑씨와 해마다 이맘때 영지버섯을 따러 간다. 오늘도 같이 갔다. 재작년에는 나는 뒤만 졸졸 따라 다녔고 연갑씨가 다 땄는데, 작년에는 내가 몇 개를 땄고, 오늘은 연갑씨가 하나만 따고 내가 다 찾아서 땄다. 이제는 반 영지 전문가(?)가 되었다. 숲속 어디쯤에 있고 어떤 곳에서 잘 나는지 확실히 알았다. 자연이 준 선물을 감사한 마음으로 모셔왔다. 영지가 살아 남으라고 뿌리는 잘라두고 윗부분만 땄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