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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한 순종 강력한 외침 (고난주간 화요일)
찬송 :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일시 : 2024년 3월 26일(화)
성경 : 마21:33-46절
☞ https://youtu.be/jWQAwZqMaMw?si=XS8h3xSEQaAGxyND
고난주간 화요일이다. 이날 주님은 많은 변론의 자리를 가지시며 당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세상의 화살을 맞아야 하셨다. 그럼에도 주님은 당당하게 그 모든 화살을 맞으면서도 성전에서 가르치시기를 계속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신다. 조금도 피하지 않으셨다. 물론 이런 일련의 행위는 그를 잡고자 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45-46절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만왕의 왕이신 주님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대접을 받으셨다. 그럼에도 주님은 당당히 자신을 드러내셨다. 특히 오늘 <무슨 권위로 성전에서 가르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는 세 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오늘 아침은 두 번째 비유인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 그들을 책망하셨던 사건을 중심으로 고난주간 묵상을 하려고 한다.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이렇게 시작된다. 33절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주인은 포도원을 만들었고, 산울타리를 둘러 안전하게 보호했으며, 즙짜는 틀을 만들어 포도주를 생산함에 필요한 기구를 설치했다. 거기에 망대를 지어 두루 살필 수 있도록 해 준 후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으로 갔다.
그리고는 열매 거둘 때가 되자 종들을 농부에게 보내 세를 받으려 했다. 그러자 농부들은 종들을 때리고 죽이고 돌로 치며 빈손으로 돌려 보냈다. 다시 주인이 처음보다 많이 보냈으나 농부들은 그들에게도 그렇게 했다. 36절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이 정도 되면 농부와의 계약을 끝내야 하는데 주인은 놀라운 선택을 한다. 바로 이 위험한 농부들에게 자기 아들을 보낸 것이다. 37절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이 주인은 정말 무식한 것일까? 무력한 것일까? 이들을 사랑한 것일까?
사람들은 이 주인을 무식하다 말하고 무력하다 말한다. 그러나 이 주인을 아는 자들은 이 주인은 이들을 진실로 사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농부들은 이런 주인의 사랑을 오해하여 이용했다. 38-39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문제는 그 아들이다. 아들은 왜 이런 자리에 올 때 무력한 모습으로 왔는가? 주인에게 있는 힘을 발휘하여 이들을 제압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왔으면 아예 이런 생각도 못하고 굴복했을 터인데 말이다.
분명 상속자이고 주인의 유산을 받을 자인데 아들은 무력하게 악한 농부들에게 잡히고 포도원에서 쫓겨나 죽임을 당하고 있다.
지금 예수님은 자신의 처지를 누구보다 정확히 아시며 이런 비유를 논쟁하며 자신을 무시하는 이들에게 당당히 밝히고 있다. 그는 세상이 자신을 무시하는 가운데 힘을 달라고 구하기 보다는 힘없이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향해 묵묵히 순종하여 걸으시며 오히려 이 비유를 통해 더 강력한 메시지 전하신다.
40-41절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떼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그 악한 자들은 진멸하고>
이 대답은 이 비유를 듣고 있던 이들의 대답이다. 너무도 상식적이고 너무도 당연한 결론인 것이다. 이렇게 너무도 당연하고 상식적인 삶이 무너지고 불의하고 악한 일을 자행하고 있는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을 향해 주님은 엄청난 책망을 외친다. 43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다시 말하면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그 자리를 빼앗길 것과 새로운 나라의 도래가 오고 있음을 선언하신 것이다. 많은 변론의 자리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무력하게 죽어야 할 아들로 보냄을 받은 주님은 조금도 두려움없이 그 자리에서 당당히 자신의 죽음과 그 미래를 밝히고 계신 것이다.
나라면, 이 순간을 그들을 무례에 반발하며, 그들을 제압하기 위한 힘과 능력과 사람들을 달라고 요청하거나 그런 자리에 보낸 것에 대해 왜 라는 질문을 던지며 불평했을 터인데 ~
주님의 태도에는 그런 모습이 정말 1%도 없다는 사실이 오늘아침 큰 울림을 가지고 묵상하게 된다. 오히려 그렇게 무력한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그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을 향한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통로로 사용하신 주님을 깊이 묵상한다. 주님 ~
아버지의 무식하고 무모한 사랑에 아들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 사랑에 순종되어 자신을 버리시며 죽음의 십자가를 향해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셨다. 그 어떤 힘도 가지지 않으신 채 그 악한 농부들의 손에 붙잡히는 자리로 묵묵히 가시며 그들을 향한 최고의 경고를 외치는 수단이 되셨다.
왕이시며, 구원의 주가 되시는 주님이 죽음으로 경고의 수단이 되사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을 마지막까지 이렇게 선명하게 외치셨다는 사실을 깊이 묵상하며 오늘이란 시간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작은교회와 사역자들을 깨우고 일으키는 사역에 더욱 더 최선을 경주하는 날, 그러나 나의 힘을 갖추는 것에 관심을 갖지 않고 오직 주님이 맡기신 사명에 집중하는 날 되기를 다짐한다.
오늘도 아침부터 중보기도세미나, 베스트셀로로 시대읽기, 젊은 세대 사역자들을 위한 <예플루언서>를 통해 주님의 뜻을 향하여 나간다. 주님 오늘도 당신의 뜻에만 순종하되 사랑과 충성으로 순종되게 하소서. 그 어떤 상황에도 힘으로 대응하지 않고 묵묵히 주어진 길을 사랑으로 걸으며 최고의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날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