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서 제일 오래된 명품급 마애불이자 삼천사계곡의 영원한 은둔자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
- 보물 657호

▲ 마애불과 그에게 보금자리를 내준 눈썹바위 |
대웅보전 옆구리를 지나면 왼쪽으로 범상치 않은 모습의 눈썹바위를 만나게 된다. 그 바위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마애불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깃들여져 있으니 그가 바로 서울에서 가장
오
래된 마애불인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이다.
불상 앞에는 그에게 예불을 올리는 석조 공간이 넓게 닦여져 있는데 그 공간 밑에는 삼천사계
곡이 일조권을 강제로 빼앗긴 채 숨죽여 흘러간다. 한참 학창 시절이던 1992년
가을, 두근거리
는 마음을 다독거리며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지금처럼 계곡을 가리고 앉은 돌로 다진 공
간이 없었고 계곡을 건너면 마애불 앞에 조그만 예불 공간이 전부였다.
서울에 있는 4개의
고려시대 마애불<① 승가사
마애여래좌상 ☞ 관련글
보러가기,
② 안암동
보타사 마애보살좌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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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옥천암 마애보살좌상, ④ 삼천사 마애여래입상>
의 일원으로 고려 초기(멀리
신라 말로 보기도 함)에
조성된 선각(線刻) 마애불이다. 불상 대
부분은 선을 그어 처리했지만 일부는 약간 튀어나온
얕음새김으로 전체 높이는 3m, 불상의 높
이는 2.6m이다.
이 마애불은 윤곽을 따라 금분이 칠해져 있었으나 2000년
이후에 사라졌고, 그의 왼쪽(불상이
바라보는 방향을 기준) 부분에는 약간 붉은 색채를 띠고 있는데, 이는 그에게 채색을 했던 흔
적들이다. 마애불에 색을 입힌 경우는 이곳과 경북 칠곡군 왜관(倭館) 부근에 있는 노석리 마
애불상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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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애불 양쪽에는 네모난 구멍이
2개 있는데 저들은 마애불을 보호했던
보호각의 아련한 흔적으로 그가 감싸주던 부분은 어둠 속의 촛불처럼
유난히도 밝고 하얗다. 마치 광배(光背)에서
나온 빛이 그의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는 것처럼 말이다. |
불상의 머리 뒷쪽에 2겹으로
된 둥근 두광(頭光)이
그를 밝히고 있고 소발(素髮)한
머리 위에
는 무견정상(無見頂相)이
두툼하게 솟아있다. 얼굴은 작고 갸름한 편으로 눈은 지그시 감아 명
상에 잠긴 모습이며 코의 끝부분은 두툼하다. 입은 살짝 오무려 약간의 미소를 선보이고 있고
눈썹 사이에는 둥그런 백호(白毫)가
박혀있다.
그의 키는 얼굴에 비해 꽤 긴 편으로 조금은 두꺼워 보이는 법의(法衣)를
걸치며 두 어깨를 가
렸고 발 밑에는 연화대좌(蓮花臺座)가
있으며, 몸 뒤에는 반짝반짝 윤기를 흐르는 광배(光背)
가 새겨져 있다.
신체적인 균형이 그런데로 비슷하며 몸매는 단정하고 단아한 인상을 풍긴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렸고 왼손은 배 앞에서 받쳐든 모습인데, 이는 부처의 성도(成道)를
상징한다고 한다.
불상 어깨 좌우와 윗부분에는 네모난 구멍과 좌우로 길게 파여진 홈이 있는데 이는 자연현상이
아닌 마애불을 보호하던 목조 가구(架構)를
씌우던 흔적이다. 그 가구는 오래 전에 자연재해나
화재로 없어진 것으로 보이며 그가 사라진 이후에는 불상 위쪽에 있는 눈썹바위의 보호를 받으
면서 눈과 비를 피했다. 게다가 첩첩한 계곡 바위에 자리한 탓에 태풍과 거센 바람의 공격을
피하기에 좋아 거의 천 년의 세월을 살았음에도 바위에 진하게 현신한 듯 건강상태는 좋다.
지금은 이렇게 답사객과 순례객의 발길이 빈번하지만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리 주목을 받
지 못했다. 게다가 민간인 통제구역에 묶여 출입도 부자유스러우니 아는 사람과 절 신도만 조
금 찾는 정도였다. 허나 삼천사와 삼천사계곡에 꽁꽁 씌워진 통제의 굴레가 벗겨지면서 삼천사
의 존재와 함께
마애불의 이름도 약간이나마 알려지면서 찾는 이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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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에 현신한 듯 두드러진 모습의 마애불 윗부분
불상을 수식하고 있는 두광과 신광은 마치 몸에 빛이 발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도록 그의 모습을 더욱 신비롭게 꾸며준다.

▲ 마애불의 아랫도리
연꽃으로 치장된 연화대좌 위에 불상이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몸에 걸쳐진
법의 밑에 그의
두 발이 나와 있는데 발가락이 다소 두터워 보인다. |
내가 그의 존재를 알아챈 것은 1992년 가을, 진관사 부근 야산에 숨어있는 줄 알고 부근 야산
을 열심히 뒤적거리다가 미지의 세계나 다름이
없던 삼천사까지 들어왔다. 당시 적멸보궁이던
대웅보전 뒷쪽에서 나와 숨바꼭질을 한 마애불을
발견하고
'서울에도
이렇게 휼륭한 마애불이 있었다니!!' 감탄을 연발하며 북악산(백악산)의
백석동천<
白石洞天, 백사실계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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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은근슬쩍 빠져들고 말았지. 하여 매년
적어도 1~2회
정도 그를 찾고 있다. 나는 이곳에 들어올 때마다 점점 늙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비록 인간이 만든 조각물이긴 하지만 여
전히 정정함을 잃지 않으며 오늘도 삶에 지쳐 찾아온 중생을
맞느라 여념이 없다.
지금은 삼천사 경내지만 예전에는 옛 삼천사로 가던 길목으로 조그만 암자와 계곡, 바위만 있
었다. 그러다가 마애불 주변에 삼천사를 세우면서 지금처럼 경내 한복판이 되었고, 지금의 삼
천사를 일군 성운의 노력으로 오래된 마애불임을 입증받아 1979년
국가 보물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문화재청 지정 명칭은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
이 마애불은 영험(靈驗)이
있기로 소문이 자자해 많은 중생들이 먼 거리를 걷는 수고로움을 마
다하지 않으며 이곳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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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애불 좌측 면에 새겨진
'일붕선사좌선대(一鵬禪師坐禪坮)' 바위글씨
20세기 큰 승려로 추앙받는 일붕(一鵬) 서경보 선사가 이곳에서
좌선한 것을 기리고자 새긴 것이다.

▲ 꼬랑지가 인상적인 귀여운 다람쥐상 (마애불 예불 장소 난간)
(그의 존재의 이유는 모르겠음)

▲ 부처의 진신사리를 머금은 종형사리탑(鐘形舍利塔) |
마애불 앞에는 네모난 기단 위에 심어진 석종형(石鐘形) 사리탑이 있다. 이 탑은 1988년에
성
운화상이 미얀마 마하시사사나 사원의 아판디타 대승정에게서 받은 부처의 진신사리 3과를
봉
안하고 있는데
그 연유로 서울에서 제일 처음 적멸보궁을 마련하여 석가의 진신사리를 머금은
사찰임을 천하에 어필했다.
마애불과 함께 삼천사의 성역으로 무척 애지중지되다가 2012년
진신사리를 담은 거대한 9층석
탑이 지어지면서 중요성이 조금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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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형사리탑 우측의 세존진신사리비
미얀마에서 가져온
진신사리를 봉안한
과정과 이유를 소상히 담아 넣었다. |

▲ 2층 규모의 산령각(山靈閣) |
마애불이 의지하고 있는 눈썹바위 옆구리에는 2층짜리
산령각이 있다. 산령각이란 절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산신각(山神閣)의
다른 이름으로 삼천사는 그 흔한 이름 대신 천태각이나
산령각
처럼 생소하고 어려운 이름을 선택해 중생들을 아리송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산신
각이긴 하지만 독성(獨聖)과
칠성(七星)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어 삼성각(三聖閣)의
역할을 한
다.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산령각은 2층으로(1층은
창고 등으로 쓰임) 내부 중앙에는 금
칠을 한 거대한 산신탱이 걸려있다. 예전에는 산신과 호랑이, 동자(童子) 등은 나무로 돋음새
김으로 새기고 나머지는 그림으로 상큼하게 처리했으나 돈을 좀 벌었는지 죄다 도금을 하여 금
색
옷으로 갈아입혔다.
화려하게 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산신의 수염과 동자의 머리를 빼고는 모조리 색이 같아서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벌이듯 분간이 쉽지 않아 눈만 아프다.
이렇게 산신탱은 삼천사에서 마애여래입상, 세존진신사리탑 다음으로 자랑하는 보물로 비록 고
색의 기운은 없지만 다른 절과 달리 산신을 크게 내세운 산신도량으로 절을 키우면서 '북한산(
삼각산) 산신이 보좌를 튼 절'임을
진하게 자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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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란한 금칠의 산신탱과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올려진
공양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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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성(나반존자) 할배가 그려진 독성탱 |
▲ 칠성들의 회합 현장, 칠성탱 |

▲ 산령각과 마주한 눈썹바위
- 오랜 세월의 주름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 산령각에서 굽어본 마애불 예불 공간과 종형사리탑 주변,
그리고 대웅보전의 두툼한 뒷모습

▲ 산령각에서 굽어본 삼천사 위쪽 다리
저 다리는
삼천사계곡 등산로로 북한산성과 비봉, 옛 삼천사터로 이어진다.
다리 주변 계곡에는 중생들이 쌓아올린 기하학적인 돌탑들로 가득해
조그만 돌탑의 세상을 이룬다.

▲ 삼천사의 독특한 불전 ~ 천태각(天台閣) |
산령각 옆에는 천태각이라 불리는 벽돌 건물이 있다. 천태각은 16나한의
하나로 천태산(天台山
)에서
몸을 일으킨 독성<나반존자(那畔尊者>의
보금자리로 독성각(獨聖閣)과
비슷하다. 삼천사
는 독성각이란 보편적인 이름을 취하지 않고 그가 일어난 천태산의 이름을 따서 천태각이라
했
는데 산령각에 독성탱이 있음에도 별도로 그만의 건물까지 두어 대우하고 있다.
이 건물은 199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건물 안에는 108개의
인등(引燈)이
내뿜는 열기와 기름냄
새로 가득해 더울 때 오면 정말 한증막이 따로 없다. 인등은 기름을 담고 심지를 넣어 불을
켠
것으로 하루 종일 불을 밝힌다. 그래서 건물 내부가 더운 것이다.
건물 지붕에는 매일 치솟는 열을 외부로 배출하고 공기를 통하게 하여 내부 온도를 유지시키는
통풍구가 있으며, 다른 건물과 달리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2개로
바깥 문인 여닫이문은 언제나
열려있으나 안쪽 문인 미닫이문은 인등을 지키기 위해 항시 닫혀져 있다. 문을 들락날락
거릴
때는 반드시 문을 닫아야 인등의 건강에 지장이 없다. |

▲ 천태각의 주인, 독성상과 자연석으로 간단하게 손질한 16나한들 |
천태각 독성은 대머리의 둥근널쩍한 얼굴, 길다란 귀, 약간 두꺼워 보이는 옷(얼마나
더울까?)
, 그리고
배 앞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결가부좌(結跏趺坐)를
취한 여유로운 모습이다. 명
상에 잠긴
그의 익살스런 표정은 보는 이들에게 웃음을 머금게 하며 그 좌우에는 조그만 16나
한상이
포진해 있는데 그들은 전국 각지에서 가져온 자연석으로
정성스럽게 조성한 것이다. |

▲ 삼천사 위쪽 계곡을 가득 메운 돌탑의 물결

▲ 삼천사 돌담길 (삼천사계곡 산길) |
삼천사에서 북한산(삼각산)으로
오르려면 종형사리탑 좌측에 있는 대문으로 나가거나 일주문에
서 오른쪽
길로 가야 된다. 마치 높은 담장에 둘러싸인 기와집이나 궁궐 담장길을 거닐 듯, 운
치가 깃들여진 돌담길은 삼천사의 또다른 명물이라 할만하다. |

▲ 아비규환의 속세로 무거운 발걸음을 하다~~

▲ 연등의 전송을 받으며 ~~
이렇게 하여 봄의 한복판에 찾아간 북한산 삼천사 나들이는
대단원의 휘장을 걷는다. (이후 내용은 생략) |
첫댓글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이렇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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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