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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포기하고 주님을 따릅니다 (고난주간 수요일)
찬송 : 십자가의 전달자
일시 : 2024년 3월 27일(수)
성경 : 눅22:1-6절
☞ https://youtu.be/Vb599lexc7I?si=45LfmKBdu_i-5jYp
고난주간 수요일 침묵의 날이라 불리우는 날이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침묵하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성경은 이날 주님의 사역을 말하고 있지 않아 침묵의 날로 불리게 된 것이다.
예정되었던 심방이 교회 사정으로 취소되어 나도 오늘 침묵하며 쉼을 가지는 날로 보내려 한다. 여기저기 아픈 몸을 추스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리고, 더 깊이 주님을 묵상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한다.
주님의 사역이 기록되지 않은 이날 가장 두드러진 사건은 이것이다. 1-2절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다가오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도로 죽일까 궁리하니 이는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 함이더라’
이스라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축제 중 하나로, 고대 이스라엘에서부터 지켜온 축제입니다. 이 축제는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고 자유를 얻은 날을 기념하는 것으로, 유월절은 유대인들에게 그 역사적인 중요성과 신앙적인 의미가 깊습니다.
이런 전 민족적인 행사에 대제사장의 역할 중 하나는 소중한 민족정신과 신앙을 유전시키는 절기를 관리하고 이를 집행하는 것이었다. 흩어졌던 백성들까지도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올 정도로 그들에게 이날은 매우 중요했다.
그날을 집행하고 관리하는 최고의 책임자가 바로 대제사장이다. 이런 사람이 이 소중한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예수를 무슨 방도로 죽일까?> 고민하고 있었다고 오늘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메시지 성경은 이 부분을 번역하면서 이렇게 해석과 같은 번역을 했다.
<예수를 없앨 방도를 찾고 있었으나 백성이 두려운 나머지 자신들의 행동을 숨길 방법도 함께 찾고 있었다.>
아마도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정확한 심중을 전달하는 번역이 아닐까 싶다. 분명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고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예수님을 죽이고 싶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이 그런 존재라는 것을 숨기고 다른 사람을 통해 이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명성에 심각한 타격이 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 일을 하고 싶어서 이들은 누군가 대타가 찾았던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존재가 자신을 부인하지 않을 때 나오는 무서운 죄악이 아닌가 싶다.
<이러면 안 되는데>하면 멈추어야 하는데 그것을 감추고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그 욕망을 해소하려는 마음들이 당대의 최고의 영적 지도자라는 사람의 속내라는 사실이 오늘 아침 큰 울림으로 내게 들린다.
그리고 이렇게 찾는 그들의 안테나에 가룟유다가 걸린 것이다. 3-5절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도를 의논하매 그들이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대제사장과 가룟유다는 전혀 연결점이 없어 보인다. 서로 증오하는 사이다. 그러나 사탄이 들어가자 이들은 연합했다. 적이 동지가 된 것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 둘은 모두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꿈에 주님이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전혀 함께할 수 없는 둘은 동지가 되어 예수님을 죽일 기회를 함께 꾸미게 된 것이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의 선함>을 포기하고 <주님의 선함>을 따르는 자이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인정하기 전까지 인간은 자신의 선함을 포기하지 않고 주님이 만약 자신의 선함을 막는다면 주님을 팔아서라도 자신의 선함을 붙잡는 그런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깊이 묵상케 된다.
오늘 나의 선함이 포기되고 주님의 선함을 붙잡고 가는 주님의 종이 되었는지 주님은 내게 물으신다. 아니 앞으로 순간순간 내 속에서 올라오는 나의 선함을 주님의 선함앞에서 완전히 굴복시키며 주님의 선함에 순종하는 자가 될 것이냐고 주님은 물으신다.
그제, 어제 부른 찬양의 가사가 생각난다.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내가 가진 선함이 결코 선을 이루지 못하며, 나에게도 유익되지 못함을 인정한다. 아무리 선해 보여도 그것이 나의 선함일 때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되지 못함을 나는 너무도 많이 경험했다. 왜냐하면 나란 존재의 무력함과 교묘함 때문이다.
마치 대제사장이 자신의 마음을 숨기기 위해 대타를 찾듯이 말이다. 오늘 본문의 대제사장과 가룟 유다가 바로 나란 존재임을 인정하고 회개한다. 이들은 그 자리에 선 자이고 나는 그런 생각에 머문 자일 뿐 차이가 없다.
그러기에 내가 정말 붙잡아야 할 것은 내 선함이 아니라, 주님의 선함이다.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어야 한다. 예수님 조차는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하셨던 것처럼 오직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
웨이브리즈 플랫폼 최종 면접을 앞두고 오늘 작품 제출의 날이다. 내 속에 다양한 생각들이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정말 나란 존재가 얼마나 무력하고, 미약하며, 교묘한 존재인지를 발견한다. 주님이 분명 보여주셨음에도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많은지 ~
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나는 정말 무서운 대제사장이고, 더 끔찍한 가룟유다임을 자백하며 오늘도 나를 부인하고 오직 주님을 붙잡는다. 주님의 인도하심아래 오직 주님의 형상으로 빚어지기까지 사랑과 충성을 다하는 자로 서기를 기도한다.
주님, 이 종이 나를 포기합니다. 나란 존재가 얼마나 무력한 인간인지를 자백합니다. 교묘한 인간이고 더러운 인간인지를 자백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오직 주님을 붙잡습니다. 이 종 나의 생각 버리고 오직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랑과 충성으로 나아가겠사오니 주님의 형상을 이루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