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적정한 삶3-1. 마스크를 써야 할 때와 벗어야 할 때
지난 수개월 동안 ‘마스크’라는 단어만큼 위상이 높아진 말이 또 있을까? 한때 낯설고 거리감이 느껴졌던 마스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절대적이고 친숙한 존재가 되었다. 팬데믹 초기에는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하는 귀한 물건이었다. 지금은 외출할 때 지갑이나 스마트폰보다 더 먼저 챙기는 필수품이다. 하루 종일 쓰고 있다 보면 불편하고 답답하지만 이 얇은 한 장의 물건이 내 건강을 지켜 주는 유일한 방어막이라는 생각에 의지하게 된다. 피부와 종일 밀착되다 보니 어떨 땐 나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이제 마스크로 반쯤 가리지 않은 사람의 얼굴을 마주할 때면 꾸민지 않은 민낯을 훔쳐본 것처럼 덜컥 놀라기까지 한다.
마스크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병균이나 먼지 따위를 막기 위하여 입과 코를 가리는 물건’이다. 그런데 이 뜻 말고도 다른 사전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첫 번째는 가면이다. ‘얼굴을 감추기 위해 나무, 종이, 흙 따위로 만들어 얼굴에 쓰는 물건’ 말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여러 가지 가면을 쓴다. 사회적 상황에 따라 감정을 속이기도 하고, 진짜 나를 숨기기도 한다. 마치 광대가 무대에서 여러 개의 가면을 번갈아 쓰듯 우리도 여러 개의 자아로 ‘나’라는 인물을 연기한다.
마스크의 또 다른 의미는 말 그대로 ‘얼굴 생김새’다. 얼굴의 골격과 눈, 코, 입의 위치 등 사람이 타고난 그 자체의 얼굴을 뜻한다. 가리는 물건과 가려지는 것이 동일한 단어로 표현된다는 게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팬데믹 시대의 마스크는 이런 여러 가지 의미를 모두 담은 중요한 언어가 되었다. 방역을 위해 필수적으로 쓰고 있지만 반 정도 가려진 내 모습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한다. 마스크를 꾸미는 패션 액세서리까지 유행하고 있다. 나를 지켜 주는 보호막이자 가면, 그리고 내 얼굴 자체인 마스크는 이제 나를 표현하는 도구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마스크 없이 생존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나는 어떤 심리적 마스크를 쓰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벗어야 할 때는 언제일까?
마스크를 써야 할 때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는 여러 개의 심리적 마스크를 구비할 필요가 있다. 상황에 맞춰, 조건에 맞춰 다양한 가면을 갈아 쓰는 것이다. 과거에는 한 사람이 하나의 정체성으로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 가능했다. 또한 언제 어디서나 일관적인 태도를 유지할 것을 교육받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달라졌다. 이제 사회의 다양한 면모에 맞춰 여러 개의 자아로 살아갈 것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인간의 장수와도 연관이 크다.
인류의 수명은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길어졌다. 사람이 이 정도까지 오래 살다니, 인류 역사상 처음 맞이하는 사건이다.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인류의 4분의 3은 채 50세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보다 더 100년 전인 1800년대엔 40세조차 넘기지 못했다. 어떤 학자들은 1만 년 전 인류의 90%는 스무 살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짧은 수명으로는 여러 개의 자아로 살아가기 어려웠다. 지금은 ‘호모 헌드레드’라는 말로 백세 시대를 표현한다. 두 배 이상 길어진 일생에서 여러 개의 자아는 필수적이다.
게다가 사회는 훨씬 더 복잡해졌다. 과거 농경 사회에서 농부는 농사를 짓고 어부는 고기를 잡았다. 귀족은 사람을 부렸고, 노예는 지시에 따랐다. 주어진 역할과 요구되는 활동이 단순했다. 현대의 한국 사회는 엄청난 양과 빈도의사회적 접촉을 필요로 한다.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바일과 피씨마다 열려 있는 메신저 창의 개수를 보자. 그 창의 개수마큼의 역할과 자아를 요구받는 게 아닐까?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얼마나 더 많은 역할과 자아로 살아 나가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놀라울 정도의 확장성이며 인류에겐 처음 맞이하는 현상이다. 이와 관련된 삶의 지침이나 조상들의 가르침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최근 방송가의 가장 핫한 키워드 중 하나가 ‘본캐’와 ‘부캐’다. ‘멀티 페르소나’라는 용어가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기도 한다. 이와 같은 용어들은 모두 심리적 마스크를 의미한다. 아마 여러 개의 자아는 앞으로 우리의 일상이 될 것이다. 부캐 열풍은 이를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좋은 시뮬레이션 기회라고 생각한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새로운 환경에 들어가면 기존에 활동했던 나의 캐릭터를 깨끗이 지울 필요가 있다. 이를 잘 실천하는 사람들이 이른바 ‘계급장 뗄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높은 계급 낮은 계급 모두를 포함한다. 직장에서는 높은 위치의 상사라 할지라도 새로 들어간 동호회에서는 신입 단원다운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 집안의 막내라도 모임의 회장을 맡으면 어리광 따윈 부리지 않는 사람, 우리는 이처럼 다양한 부캐를 부여하면서 나를 정의해 왔던 계급장을 손쉽게 떼어낼 수 있다.
나를 바꾸는 연습은 특히나 한국 사회에서 꼭 필요하다. ‘우리 부인’, ‘우리 아빠’ 등 엄연히 ‘나의’ 소유인 것에도 ‘우리’라는 1인칭 대명사를 서슴없이 쓰는 한국인 아닌가. 이는 앞서 지적했듯이 주변국에서도 좀처럼 찾기 어려운 언어습관이다. 관계주의가 우리를 얼마나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문제는 ‘우리’가 ‘나’를 강하게 짓누를 때 창의성이 발현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변의 눈치나 분위기를 살피다 보면 관습을 벗어나는 게 좀처럼 쉽지 않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부캐가 아닐까? 지금 설정된 캐릭터에만 몰두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지고 분명해질 수 있으니까.
사회적 거리두기로 기존의 관계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의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취미나 관심사만으로도 전혀 다른 종류의 ‘우리’가 온라인 세상에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핵심 관계라고 생각했던 사람들과의 거리가 느슨해지기도 한다.
시게히로 오이시 미국 버지니아대 교수와 셀린 케세비르 런던 경영대 교수 팀은 사람들이 맺는 관계의 성향에 대해 오랜 시간 연구해 왔다. 그들이 내린 결과는 다음과 같다. 가난하고 이동이 적은 집단일 경우, 가까운 친구와 동료에게 시간과 노력을 집중한다. 이는 안전에 대한 기본 욕구를 충족시킬뿐더러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유하고 이동의 양이 많은 사회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가까운 사람에게만 몰입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네트워크의 인물들에게도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한다. 이를 통해 더 많은 기회를 찾고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으며 아울러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유비, 관우, 장비처럼 도원결의로 맺어진 몇몇 사람들에게 집착하면 적응할 수 없다는 말이다.
멀고 느슨한 관계의 인물들에겐 생각지 못한 장점이 있다. 내가 처한 상황과 문제를 더 객관적으로 봐준다는 것이다. 나 역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많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물론 나의 정서를 이해하고 심리적으로 힘이 되어 준 것은 자주 만나는 가까운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기발한 아이디어로 뜻밖의 실마리를 준 사람들은 아주 가끔 연락하는 사람들이었다. 나의 본캐가 아닌 부캐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묘수를 찾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나와 타인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하는 시대다. 아니, 오히려 물리적 만남을 자제해야 하는 시기다. 이럴수록 평소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사람들과 원격 형태의 다양한 만남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 내가 심리적 마스크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 또한 다양한 마스크를 쓰고 나를 만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선배가 후배처럼 겸손한 모습을 보이고, 진지했던 이가 전에 없던 유머 감각을 발휘하며, 혼자 말하길 즐기던 사람이 경청하는 자세를 취할 수도 있다. 절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마스크를 무조건 거짓이라 생각할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한 인간에게 내재된 다양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쓰던 본캐라는 두꺼운 마스크에 가려져 나오지 못한 새로운 자아를 만나는 것이다.
마스크를 벗어야 할 때
심리학 용어 중에 ‘가면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쉽게 가면으로 번역했지만 실제 용어는 ‘imposter syndrom’으로, 1970년대 후반, 조지아 주립 대학의 심리학자 폴린 클랜스와 수잔 임스 교수에 의해 처음 이름 붙여진 현상이다. 자신의 성공으로 얻은 부와 명성이 사실은 운에 의한 것이었고, 스스로가 과대평가 받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의 능력과 자질이 들통날 거라는 불안감을 뜻한다.
눈에 띄는 성공을 이룬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나며, 생각보다 많은 유명인들이 이 가면 증후군으로 고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탈리 포트만이나 엠마 왓슨 같은 배우들뿐 아니라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인 셰릴 샌드버그가 그 예다. 이들 모두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큰 성공을 이뤄 낸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면에는 극심한 불안이 존재했다. 그로 인해 본인과 주변 사람들 모두 길고 어두운 침체기를 보내기도 했다. 예전에 이 증상은 주로 여성에게 많이 관찰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남성들에게도 쉽게 나타난다고 한다.
굳이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큰 성공을 거둔 후에 일정 기간 침체되는 경험은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물론 탄력을 받아 더 큰 성공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갑자기 자신감이 꺾이거나 위축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오죽하면 ‘두 번째 성공은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왜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 것일까? 성공 후 너무 커져 버린 주위의 기대감이 부담스럽기 때문일까? 그것도 맞는 말이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당연한 원인이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과도한 노출’로 보고 있다. 사람에겐 누구나 사적 영역이 필요하다. 아무리 집단 속에서 어울리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도 적정한 시간 동안 혼자 있어야 한다. 그 시간과 공간에서 자신을 진정시키고 다독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영역을 거친 후에 다시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다. 그런데 큰 성공을 한 경우 사적 영역이 갑작스럽게 줄어들게 마련이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일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벌어지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사적 영역이 줄어들 때 증폭되는 심리기제는 ‘불편함’과 ‘불안감’이다. 그런데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불안은 전염성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전혀 무관한 다른 일에도 불안이라는 감정은 삽시간에 번진다. 모든 일에 자신감이 없어지고 나쁜 결과부터 상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최근 큰 성공이나 성취를 거둔 사람이라면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일정한 시간 동안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홀로 머물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점을 간과한다. 불안한 마음에 더욱 사람을 만나고 관계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는 것이다.
또 다른 원인은 ‘회피동기’다. 쉽게 말해 좋은 것을 갖고 싶은 마음을 ‘접근동기’라고 한다면, 나쁜 것을 막아 내고 싶은 욕구를 ‘회피동기’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직전에 큰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남들보다 강한 회피동기를 지니게 될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이룩한 성과를 지속시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것도 두렵다. 지금 이 상태가 유지되면 좋겠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도 겁이 난다. 변화에 대한 적응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번째 성공이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본인의 생각일 뿐이다. 주변에서는 성공을 거둔 이들을 가만두지 않으니까. 더 큰 일을 맡기고 싶어 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라며 자극한다. 성공의 요인을 궁금해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예측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큰 존경심과 기대감을 표현한다. 이 모든 것들은 당사자에겐 또 다른 불안 요소로 다가와 더욱 고통스럽게 마련이다.
직전에 큰 성취를 거둔 분들에겐 마스크를 벗으라고 조언을 드리고 싶다. 일단 사람들 틈바구니를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마스크를 내려놓고 진짜 자신을 마주한 순간, 불안감은 줄어들고 새로운 정신적 에너지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미래 예측에 대한 말은 피하라고 권하고자 한다. 앞으로의 전망을 이야기해 달라는 질문 앞에서 솔직하게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당황할 수도 있고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상황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 보자. 내가 성취한 분야와 다소 동떨어진 일이어도 좋다. 오히려 나의 관점을 재정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으로 북적이는 거리에서 벗어나 나만의 방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마스크를 벗는다. 감염예방 도구인 마스크뿐 아니라 심리적 가면 또한 벗어던지자. 가볍게 민낯을 드러내는 절대 시간과 공간을 가져야 한다. 내가 이룬 성취 때문에 불안하다면 더더욱 필요하다.
*위 글은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에 심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인지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아트 마크먼 교수의 지도하에 인간의 판단, 의사결정, 문제해결 그리고 창의성에 관해 연구하였고, 현재는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면서 아주대학교 창의력연구센터장을 지냈고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면서 대학교 각종 교육기관, 기업에서 왕성하게 강연하고 있고, ‘어쩌다 어른’, ‘세바시’, ‘책 읽어 드립니다’, ‘나의 첫 사회생활’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게 있는 “김경일”교수의 저서 ‘적정한 삶’ 제3장 ‘팬데믹 이후의 공동체’ 중 일부를 옮겨본 것입니다. 그 외 저자의 저서로는 “지혜의 심리학”,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 “십 대를 위한 공부사전” 등이 있고, 역서로는 “혁신의 도구” 등이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