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라트가 계속 노보고르드를 주시하는 동안
루프레히트는 1234년 여름
라발에서 요격해 나온 덴마크 부대와 조우했다.
루프레히트와 부관 필리프는
훌륭한 연합 작전으로 손쉽게 그들을 물리쳤고
루프레히트는 이제 라발이 튜토닉의 품안으로 들어오기 직전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훌륭한 루프레히트 지휘 아래
튜토닉의 군대는 승승장구 했다.
이제 그들은 라발을 향해 한발자국 더 가까이 선 것이었다.
루프레히트가 병력을 재정비하고 라발을 포위한 그 순간
콘라트 역시 포스코프를 포위했다.
첩보원이 예상한대로 노보고르드 공국의 왕은 곧바로 키예프 왕국의 북진에 신경쓰며
군세를 수도로 돌렸고
그 소식을 들은 콘라트는 곧바로 포스코프를 향해 진군했다.
라발,포스코프를 점령한다면 튜토닉의 재정상황에 매우 도움이 될 것이고
이제는 함부로 건들 수 없는 중소국가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귀족 의회가 제노아와 친선 교류를 맺으라는 서신이 전해온 지 3개월 뒤인 1234년 가을.
덴마크와 튜토닉 전쟁에 교황이 직접 중재하고 나섰다.
이에 다잡은 라발을 루프레히트는 있는 신경질을 다 부리며
포위를 풀고 남하했다.
더 이상 덴마크를 손톱하나 건들였다가는 파문 당할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들은 콘라트 역시 눈살을 찌푸리며 교황을 비난했지만
당장 자신의 앞에 있는 공성전이 더 중요했기에
그는 짜증난 마음을 추스리고 포스코프 공성전을 알리는 나팔을 불었다.
포스코프에는 노브고르츠키라는 수성의 명장이 지키고 있었으며
콘라트는 자기가 싸웠던 전투중 제일 힘겨운 전투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생각보다 노보고르드 공국의 병사는 더 거칠고 굳건 했으며
한순간에 튜토닉 군세가 밀리고 전멸 당할뻔 했으나
콘라트는 병사들을 추스리고 추스려 점령하는데 성공한다.
노보고르드 공국의 결사항전에
내부 성을 점령하고도 성문 밖에서 치열한 혈전이 펼쳐졌으며
노브고로츠키가 죽고 노보고르드 공국의 깃발이 내려갔을때
그들은 우리에게 굴복하며 전투를 종결 시킬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 무려 1200명 가까운 희생자가 나왔다.
이는 수성하던 전투인원 보다 많았으며
콘라트가 애지중지하던 기사단중 2 분대가 전멸했다.
이 결과는 얼마나 전투가 치열했고 힘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콘라트는 폴포츠크에서 했던 것과 같이 시민 반을 죽이거나 강제 이민시켰으며
경제력이 줄더라도 저항이 일축됨과 동시에 빠르게 안정을 취할 수 있었기에
기사도가 떨어지는 그의 행동이었지만
그는 헤르만이 그랜드 마스터 였을때 부터 항상 실속을 추구 해왔다.
1234년 겨울에는
스몰렌스크에 주둔해 있던 키예프 왕국의 병력들이
노보고르드로 북진한다는 정보가 전해졌다.
스몰렌스크도 큰 성이었지만
노보고르드로 직진하여 적의 심장을 베어낸다면
반란군이 된 스몰렌스크의 점령은 더욱 더 쉬워지기 때문일 것이라는 판단에 북진한 것이다.
한편 루프레히트는 포스코프에서 추방당한 전투 인원이 결합하여 반란군이 되어 동쪽으로 몰려오는 것을 처리했다.
루프레히트는 가볍게 피해를 받으며 전투를 끝냈고
점점 경험이 풍부해져 갔다.
비록 그랜드 마스터 콘라트 만큼은 아니었으나
아직 그는 20대 중반의 창창한 나이었기에
전 유럽에 이름을 떨칠 기회는 많이 남아 있었다.
1235년 부터는
교황과 친목을 다시 유지시킴과 동시에 내부적인 재정을 전체적으로 관리하라는 콘라트의 지시가 떨어졌다.
끝없이 달려왔던 전쟁은 잠시 휴전기간으로 변해 있었기에
교황이 정전 협정을 거두는 날까지는 여유가 있었고
루프레히트는 리가에는 직접 들어가진 않았으나 빌리니우스와 리가의 병력들을 수송시키며
자신은 정전 협정이 끝나는 날을 기다렸다.
1235년 여름에는
키예프 왕국이 노보고르드로 진입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콘라트는 이를 잘 눈 여겨 보고 어부지리를 취할 생각을 했다.
키예프는 우리를 믿고 있었기에 마음을 놓고 노보고르드로 진군했으며
노보고르드의 왕은 노련미로 그들과 싸울것이 분명했다.
서로의 힘이 빠진다면 이득을 보는것은 키예프나 노보고르드가 아닌 튜토닉이었기에
콘라트는 지속적인 정보를 취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1235년 가을.
자하드가 성공했다는 서신이 전 유럽에 퍼졌다.
이슬람을 믿던 사람들은 모두 환호와 경외심을 표했으며
교황과 신앙심이 출중했던 이들은 배아픔과 질투심을
국력이 강하고 기사도였던 이들은 술탄 제국과 겨뤄보길 원했다.
루프레히트는 온 서신을 한번 보고는 쓰레기통에 버려버렸으며
곧 정전이 풀리는 기간이었기에 라발의 북쪽으로 진군했다.
지속적으로 교황과 다시 친분을 맺어 놓은 상태였기에
라발을 다시 포위해도 이번엔 별다른 말이 없을 것이고
한번 놓쳤던 기회를 두번 다시 놓치기 싫었던 그는
이를 뿌득뿌득 갈면서 결전을 기다렸다.
1235년 겨울에는
팔랑가의 기사단원 디트마르가 국경을 넘어온 폴란드 군을 처리했다.
디트마르는 그렇게 호전적인 성향은 아니었으나
튜토닉 영토로 넘어오는 이상 봐줄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여 그들을 모두 베어버렸다.
조용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였으나
북쪽이 정리되고 남진할 때가 온다면 최전선에 서서 맹활약을 준비하고 있었고
콘라트가 죽는다면 다음 그랜드 마스터 자리는 자신이었기에 쉬는날에도 수련에 매진하며 자신부터 혹독하게 다루었다.
디트마르가 폴란드 군을 꺽는 동시에
교황은 정전을 파기했으며
이에 신난 루프레히트는 라발을 곧바로 포위했다.
정전이 끝나면 바로 다시 공격해올줄 알앗던 덴마크는
몇몇 분대를 빼고는 본국으로 수송했고
라발에 남아있던 군대는 별로 없었으나
자신들의 가족과 영토를 잃기 싫었기에 죽기를 각오하고 수성 준비를 했다.
해가 저물고 저물어
1236년 봄
라발 공성전이 시작됬다.
북쪽 병사들은 드세기로 유명해
루프레히트가 패기로 밀어부쳐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고
루프레히트도 만만찮은 피해를 입고 승전가를 울렸다.
루프레히트는 앞으로의 공성전도 다 이럴것이라는 각오를 했다.
이제 공성과 수성전에는 소규모 전투가 없을테니까
라발을 점령함으로서 튜토닉 기사단의 명성은 한층 더 높아졌다.
반란군과 라투아니아의 압박에 못이길 수도 있었던 그들은
초대 그랜드 마스터 헤르만이 훌륭하게 라투아니아를 격파하다 전사했으며
현 그랜드 마스터 콘라트가 훌륭하게 리가를 수성 그 시기에 라투아니아를 멸망 시키었고
동쪽으로 직접 자신이 움직여 노보고르드 공국의 마을 한곳과 성 한곳을 점령해 냈다.
북쪽 덴마크와의 전투에 승승 장구하고 있는 루프레히트도 대단한 장군이었지만
지금의 튜토닉은 콘라트가 다 이뤄낸 것이었다.
1236년 봄..
중소규모가 된 튜토닉의 그랜드 마스터 콘라트는
전 유럽에 이름을 알리고 있는 장군이자 수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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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라트가 드이어 풀별에서 -1네요 ㅠㅠ
고생한다 왕이 최전선에 서서 매번 승리하고 다니니..
슬슬 전선이 좁혀져 갑니다.
이젠 소홀히 해왔던 내정관리와 노보고르드 공국을 정리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겠네요
핀란드쪽은 살펴봤더니 아직도 반란군이;; 꽁으로 하나 더먹게 생겼네요
일지를 빠르게 써내려 가는 이유는
이 일지가 완결나면
이 일지를 토대로 5권 분량의 긴 소설을 집필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즉 이 일지가 기본적인 뼈대가 되는 셈이죠 ㅋㅋ
주인공과 그 이외의 모든것은 미정이지만
지금 생각하고 있는 방향은
주인공 자체의 비중을 크게 두지 않고
쩌리에서 그냥 명 전투를 참관하고 장군들의 전술과 전략을 더 비중있게 둘 생각입니다.
콘라트는 거의 천재로 나올거고.. 주인공은 콘라트 보다는 루프레히트와 활동하는 방향쪽으로 잡고 있습니다.
뭐 아직 일지도 이제 초중반이라 이 계획은 앞으로 언제든 변할 수 있겠네요 ㅋㅋ
일지는 계속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포스코프전투에는 고전을 하셨네요 ㄷㄷㄷ 1200명손실
9성장군이라 ㅎㄷㄷ 대단 하십니다 ㅋㅋ
소설도 기대 되는데요?ㅋ 잘봤습니다
공성전이 이제는 힘들어지네요 적 사기가 안떨어져서;; 아예 이제 적진으로 직행뒤에 카운트다운을 노려야겠습니다 ㅋㅋ
콘라트는 정말 그랜드 마스터네요 ^^ 잘 보고 있습니다..
루프레히트도 잘만키운다면 콘라트를 뛰어넘을수도있겟네요 ㅋ 재정은 아직까지 긴박감이 ㅇㅅㅇ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