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단풍들겄네 님의 글에 격하게 공감하다 보니 나도 한마디 거들고 싶은 생각이...ㅎ
처음 이민 와서는 애들 때문에 일같은 건 생각할 수 없었다.
큰애 7살, 작은애 3살.
14살까지는 보호자가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어야했다.
그런 내가 지역신문을 보고 집에서 할 수 있는 부업거리를 알게됐다.
광고를 낸 Jane은 차로 2~3분 거리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애가 무려 한 다스, 즉 12명.
나중 하나 더 낳아 열세번째 아기까지 봤는데 그 후 더 낳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애를 이리 많이 낳고 기르다보니 그쪽으로 사업눈이 틔였는지 아기용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시그니처는 손자수였다.
질이 좋은 면을 사용해 손으로 자수를 놓아 꽤 비싼 가격으로 팔았는데 반응이 좋아서 나중엔 홍콩이나 싱가폴까지 수출을 한다고 들었다.
어쨌거나 미싱자수가 아닌 손자수를 놓아야하니 그 일을 할 사람들이 필요했던거다.
중학 시절 가사라는 과목이 있었다.
그 시간에 기본적인 프랑스 자수를 배워서 보조 가방도 만들고 손수건에 예쁘게 장미를 놓아보기도 하고 한복 저고리 짓기나 스커트 만들기 정도는 해보았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수 놓는 것을 좋아했었다.
신혼 때는 옆집 아줌마의 꼬드김에 넘어가 스웨터 받아다 수놓는 일을 해보기도 했다.
너무 재밌어서 코박고 몰두하다 남편한테 혼나기도 했다.
어쨌거나 무료하고 마음이 허공에 뜬 듯한 이민 초기에 Jane네 일은 여러모로 숨을 틔어주는 일이었다.
자수실과 도안, 그리고 수를 놓을 아기 비니, 손싸개나, 발싸개, 포대기 등등을 받아와 조그만 벌이며, 풍댕이, 병정, 꽃 등을 수놓았다.
아이들 학교 간 시간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을 맘놓고 사용할 때도 아니니 한국에서 가져간 카셋트 테이프나 비디오 테이프를 걸어놓고 수를 놓고 있으면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잊어버리고 행복했다.
가끔 Jane이 다급하게 숨넘어가는 소리로 전화를 했다.
아주 급한 일이라고.
가보면 한 한시간 정도만 앉아서 하면 다 끝날만한 일을 갖고 호들갑을 떠는 거다.
"언제까지 해다주면 돼?"
"응, 아주 급한 거니까 내일 모레까지만 꼭 부탁할께"
아주 급한 일이라며????
이 정도면 그들에겐 아주 급한 일인가보다.
급하다는 기준이 우리네와는 다른 모양이다.
급한 우리 성격으로는 가져온 즉시 해서 다시 갖다 주고 싶지만 최선을 다해 참고 기다려(?) 모레 정도 갖다주면 너무 고마와한다.
천성이 느긋한걸까?
아님 그만큼 사는 게 치열하지 않아 부지런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 수 있어 그런걸까?
Jane의 에피소드는 하나에 예에 불과하다.
그들이 어떤 서비스나 일의 결과를 받는 입장이 되면 이 쪽 사람들도 빠른 거 엄청 좋아한다.
비록 자신들이 그것을 제공해야할 입장이 되면 다르지만 말이다.
한국같이 4계절의 변화가 정신없는 나라에서는 부지런히 살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무엇인가를 준비해야하는 한 순간을 놓치면 긴 시간을 힘들게 견뎌내야 했을테니 말이다.
일년 내내 더운 나라에서도 산 경험이 있다.
바쁠 게 없다.
바쁠 필요도없고 더운 환경에서 바쁘게 움직이면 몸이 못견딘다고도 했다.
4계절이 있어 부지런하게 서두를 수 밖에 없었던 민족.
혹독한 4계절을 경험해 오늘 아프리카에, 내일 알래스카에 데려다놔도 곧 적응하며 끄떡없다는 민족.
빨리 빨리를 외치며 살아 전쟁의 폐허 속에서 오늘을 만든 사람들.
빨리를 외치다보니 부실도 있고 피로함도 있지만 빨리는 우리의 원동력이 아니었나싶다.
그러나 이제쯤은 빨리의 속도를 조금만 늦추어서 내실도 다지고 삶이 주는 느긋한 행복도 즐기고 살았으면 싶다.
첫댓글 저도 일화가 생가나네요
제가 시드니에서 있을때
매일 수영장 가는데 수영강사가 물밖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요
그러니1년가까이 배워도 자유형 호흡을 잘 못한다고 속상해 하는 교민
제가 자청해서 수영강사 했는데
단 두달만에 호흡하게 만들었죠
그때 그 엄마
저에게 수영대국 이라도
가르치는 속도는 역시 한국 빠름빠름 했지요
글 재미있게 읽었어요
집안에서 아이들 키우며 할수있는 최고의 일거리 였네요
한국의 빠름빠름...
전 부끄러운 문화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젠 속도조절을 해도 좋지 않을까 싶지요.
뭐라도 할수 있는 건강이
감사하지요..
애들어릴때 둘 맡기고
베비시터 나가면
할께 없어요. ㅠㅠ
공교롭게 지금
타이밍이 이런 유트브...
https://youtu.be/Ye6KZu9ESHk
PLAY
그렇죠, 뭐라도 하려면 건강해야...
그때는 젊었고 건강했지만 남의 나라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던 시절이었지요.
애들도 봐야했고.
그때 집에서 꼼지락거리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좋았어요.
다니러 왔던 친정엄마는 보고 한심해 했지만
저는 꿩먹고 알먹는 기분.
무슨 일이 중요한게 아니고 뭔가 한다는 게 그냥 좋았죠.
난 아직도 정확한 이유와 장단점을 확신 할수 없어요
이런 모습, 서둘지 않으며 여유있는 처신과 행동, 관습이 정상인지,
우리만 유독 정신없이 번갯불에 뭐라도 구워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가 특이한 사람들인지, 어려버~~
제게도 정확한 이유와 장단점을 확신할 수도 없고 어려운 문제예요. ㅎ
그러나 이 쪽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오랜 세월 살았어도 별 문제나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이제 조금씩 빨리 문화의 맛을 보니 그들도 빨리를 선호하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그건 자신들이 누릴 때나...ㅎ
어쨌든 이미 빨리 문화권에서 살아본 나는 답답하기는 합니다.
그래도 여기선 빨리는 안되도 메뉴얼대로만 하면 언젠가는 다 되더라는 확신이 있어 그맛에 사는 것 같기도 합니다.ㅎ
모든 일이 다 개인적인 사고와 습관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에피소드 일 겝니다. ^^~
개인적인 사고와 습관이 모여모여 국민성이 되고 민족성이 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쪽이 좋고 나쁘다는 단정은 아니구요, 일단 저는 빠른 문화의 단점보다 장점이 그립구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이쪽 느긋한 문화도 나름 즐기며 살고 있답니다.
옴마야 그짧은 시간에
순식간에 장문글 올리시구?
빠르다는거 실감하네유.
제가 젊을적 여러나라 둘러
보니 못사는 교민이 없구 다들
대부분 그곳에서 성공하신분들이
많더군요. 느려터지고 느긋한곳
이라 치열한 전쟁터에 살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이 당연히
앞서가는거 같더군요.
저두 회사가면 느긋히 여유
부리며 하지마는 그래두 능률은
극대화 시켜주지요.진짜 능력
있는사람은 쉴거 다쉬고 느긋해도
빨리 효율적으로 일하는 사람일거
같아유
남의 나라 살면 그저 부지런히 사는 수 밖에 없죠.
한국에서 무엇을 하고 살았건 남의 나라에선 다 내려놓고 몸뚱아리 움직여 남 노는 시간에도 열심히 일하는 수 밖에...
어떤 때는 저리들 열심히 일할 거면 한국에서 하지 뭐하러 남의 나라와서 고생하나 하는 생각도 하지요.
어쨌든 그렇게들 애써서 시간 지나면 자리잡고 한숨 돌리고 삽니다.
건강하면 이제부터 그들 누리는 여유도 함께 누려보고요.
노후가 조금 안정적인 게 그나마 다행이지요.
요새는 외국 사람들도 빠른 걸 점점 선호한다는 기사를 자주 접하곤 합니다.
세상에서 우리 민족만 빠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열정적이고 경쟁이 치열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러지 싶습니다.
빠른 맛, 매운 맛.
다른 곳은 몰라도 저 사는 이쪽 동네는 요즘 이 두 맛에 서서히 익숙해져가는 느낌입니다.
누리는 것은 물론 좋지만 제공하는 입장에서 경쟁에서 밀리는 느낌도 들겠지요.
잇속에 물들면 살아온 방식도 버려야하는 게 자본주의 사회인 듯 합니다.
경쟁이 이제 동네 수준이 아니라 국제적인 것이 되다보니...
ㅎ 대단 하시네요
손자수
사업에 도전해 보시지 그랬어요~^^
한 오년쯤 심심풀이 삼아 하고 다른 일로 전향했습니다.ㅎㅎ
재미있었어요.
잔돈모아 한번씩 쓰는 재미도 쏠쏠했구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ㅎㅎ 하는 것만 얘기해서 그렇지요, 못하는 거 많습니다.
손자수는 재미있어서..
즐기지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나이컨님,
아들 딸 성장해 각자의 살림 나도록 애많이 쓰셨지요?
이제는 편안해지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코로나 끝나면 꼭 다녀가십시요.
미국에 비하면 너무나 소박한 촌이지만 그래도 나름 한번쯤은 돌아볼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양몰이 개는 정말 늠름하니 의젓하고 멋집니다.
개를 무서워하지만 이 개만은 한번 쓰다듬어 주고 싶더군요.^^
@나이컨 멋지긴요, 그냥 평범한 생활인이지요.
어디서나 일상 생활이야 다 비슷하겠지만 고향을 떠나, 고국을 떠나 다른 언어, 다른 문화에 섞여 산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은 카페도 모르고 생활 속에 묻혀 그리운 마음만 안고 살다 이렇게 속에 묻었던 얘기도 하고사니 참 좋은 세월을 살고 있다 생각합니다.
지금은 다시 코로나로 뚝 떨어져있는 느낌이지만 다시 하늘길이 열리면 마음만큼 가까이 두고 살 수 있겠지요.
본문은 말 할 것도 없이 재밌게 읽었구요.
월영님의 대댓글 중에
"빠르진 않아도 메뉴얼대로만 하면 된다는 확신" ,, 이 구절이 아주 격하게 와닿네요.^^
네, 이곳은 빨리 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드린대로 규정대로만 하면 꼭 됩니다.
공연히 서두르거나 안되는 일을 되게 하려면 사단이 나지요.
그 믿음이 있어 기다리는 일도 견딜만 한 것 같습니다.^^
월영님 글을 보니
처음 이민 갔을때 생각이 납니다.
그때는 미쿡사람들 너무 순진한것인지
돈벌기도 참 좋았던것 같고요.
9.11 터지고 난후에 잠시 어려움도 있었
지만 적응이 쉽게 되더러고요.
우리나라는 사계절 변화속에서
특히나 농사일은 빨리 빨리 가 아니면
않 되었지요.
지금도 벌써 날씨가 포근하여지니
금새 풀들이 솟아나고 봄똥배추 꽃이
피어 버리네요.
그래서 저도 요즘 빨리 빨리 서두르며
살아 갑니다.
맞아요, 무악산님.
사계절의 변화가 빠른 곳에서 농사를 짓자니 그때 그때 해야할 일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 같습니다.
철마다 모내고 피뽑고 물대고 거두고...
어느 한 순간이라도 소홀히 하면 안되었겠지요.
일년 내 여름인 나라에 있어보니 바쁠 게 하나도 없더군요.
그냥 뿌려만 두면 일년에 서너번 거둔다니..
그러나 결핍이 있어야 극복하려 애를 쓰고 발전이 있나 봅니다.
여름, 겨울이 있다하나 크게 온도차이가 없는 곳에 살다보니 한국의 계절변화가 정말 빠르게 느껴집니다.
봄동 꽃이 피었네요.
이제 다른 꽃들도 만발하겠습니다.
고국에서 맞는 봄, 가슴 가득 누리시길 바랍니다.
다들 대단하시유 남의 나라에서
열심히 사시는 거보면 장하십니다
어디에 있든 열심히 살았겠지요. ㅎ
이민 생활치곤 이곳은 그리 열심히 살일이 없는 곳이었던 것 같아요.
열심히 할래야 할 겨 별로 없는...
강제로 여유를 누려야했습니다. ㅎ
생각하고 또 하고,
남들이 보면 준비기간이 너무 길다고 합니다.
막상 일을 하면 금방 해 치우니까. 그게 또 불만이더군요.
이리 쉽게 할 일을 벼르기만 한다구요.
준비가 충분했으니 쉽게 하는 듯이 보이는 건데...ㅎㅎ
그럴 수도 있겠군요.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을 하기 쉬우니 말입니다.
타인의 일을 존중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