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정으로 나가 둑길을 걸어
오월이 하순에 접어드는 화요일은 근교로 나가는 자연학교 등교 차편은 열차를 이용할 생각이다. 날이 밝아온 아침 식후 이른 시각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니 녹색으로 높이 솟구친 메타스퀘이아가 우뚝했다. 퇴촌삼거리로 나가 창원천 상류 천변을 따라 걸어 창원대학 앞으로 향했다. 올봄 잦은 비로 맑은 물이 흐르는 냇바닥엔 싱그럽게 자란 노랑꽃창포가 눈길을 끌었다.
도청 뒷길을 돌아 역세권 상가를 지난 중앙역에 닿아 매표창구에서 한림정역까지 표를 한 장 구했다. 아침 일찍 진주에서 출발해 동대구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는 마산을 거쳐 창원으로 오면서 통근객을 부려 놓자 동대구로 가는 승객이 탔다. 나는 열흘께 전 화포천 습지 탐방을 나선 걸음에 진영역까지 나간 적이 있다. 이번에는 그보다 한 정거장 더 지난 한림정역에 내릴 요량이다.
정차했던 열차가 선로를 미끄러져 비음산 터널을 빠져나가자 모내기가 진행 중인 들녘과 공장지대가 드러났다. 진례역에 잠시 정차한 열차는 진영역에 섰다가 다시 멈춘 한림정역에 내린 승객은 나 혼자였다. 이용 승객이 적어 몇 년 전부터 역무원이 근무하지 않는 무인역으로 운영하는 역사를 빠져나가 면 소재지 거리를 지났다. 전형적인 시골티가 나는 인적이 한적한 소읍이었다.
역 앞에 바둑판처럼 구획이 정리된 주택지는 아마 오래전 강변 상습 침수지역 거주자를 집단 이주시킨 촌락인 듯했다. 한림정 일대는 낙동강 중상류 안동댐이나 합천댐이 건설되기 이전엔 큰비가 내리면 매번 물난리를 겪었는데 근년에 와 4대강 사업 이후 농경지나 주택이 잠긴 뉴스를 접한 적이 한 차례도 없다. 화포천이 샛강으로 낙동강에 합류하는 지점에는 대형 배수장도 생겼다.
주택지에서 들녘으로 나가자 북면 온천장에서 창원 대산을 거쳐 김해 생림으로 뚫리는 신설도로 공사는 꽤 진척되어 갔다. 내가 열차에서 내렸던 KTX 선로와 넓은 습지로 된 화포천 구간은 높다란 주탑을 세운 사장교 공법으로 건너편 산자락의 터널로 바로 진입하도록 했다. 어디선가 흘러오는 대형 농수로를 따라가는 들녘에는 수확을 앞둔 양파를 비롯해 넓은 경작지가 펼쳐졌다.
한림 들녘에는 벼농사 지대답게 대형 미곡처리장이 나왔다. 추수기 산물 벼를 한꺼번에 받아 저장해 두었다가 때때마다 쌀로 가공해 소비자에 공급하는 시설이었다. 철길 따라 북쪽으로 올라간 배수장에서 강둑으로 가는 길보다 지름길이 되는 들녘 한복판에서 시산마을로 향했다. 야트막한 강변 산언덕을 배경으로 형성된 술뫼에 사는 지인 농막을 찾아가니 주인장은 부재중이었다.
지인은 주말엔 부산 자택에 머물다가 주중은 농막에 기거하는데 이번에는 다른 일정이 있는 듯했다. 텃밭에는 고추와 오이를 비롯한 다양한 작물을 키우는데 엊그제 유튜브 영상에 올려둔 고구마는 활착이 잘 되어 자랐다. 텃밭을 빙글 둘러보고 눈앞에 드러난 낙동강 둔치를 바라봤다. 강 건너는 밀양 상남의 명례와 오산이고 밀양강이 낙동강 본류로 흘러드는 삼랑진 뒷기미였다.
술뫼에서 유등으로 가는 강둑으로 나가자 둔치 파크골프장엔 여가를 즐기는 동호인들이 잔디밭을 누볐다. 4대강 사업으로 심어진 금계국은 해마다 씨앗이 퍼져간 우점종이 되어 늦은 봄이면 금빛 세상을 펼쳐 보였다. 자전거 길로 뚫린 강둑은 물론 드넓은 둔치에도 지천으로 자라 핀 금계국이 절정이었다. 강둑에서 금계국꽃 열병을 받으며 가동을 지난 유등에서 북부리로 올라갔다.
연전 한 방송국에서 방영된 드라마로 세인들의 이목을 받아 천연기념물이 된 팽나무가 선 마을이다. 오후면 아동안전지킴이 봉사활동을 하는 동료 셋을 만났다. 약속되길 금계국이 만발한 둑길을 걷고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벚나무가 녹음을 드리운 둑길을 한 번 더 걸어 수산대교 길목 중화요리 식당을 찾아 각자 취향 따라 점심을 먹고 오후는 우리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했다. 24.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