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3.10.7.토요일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바룩4,5-12.27-29 루카10,17-24
일치의 중심
-그리스도 예수님과 우정의 여정-
“기도가 답이다”
"주님은 어지시다 찬양들 하라,
당신의 자비는 영원하시다,"(시편136,1)
10월 묵주기도 성월에 맞이하는 오늘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은 참 의미가 깊습니다.
462년전 이슬람제국의 침략으로 유럽이 풍전등화 상태에 있을 때 1571년 10월 7일 주일,
오전부터 시작된 그리스의 앞바다 레판토 해상에서 그리스도교 연합군과 이슬람 제국의 치열한 전투는
오후 4시경 그리스도 연합군의 대승으로 끝납니다.
어느 역사가는 말합니다.
“이 오스만 제국의 패배는 지중해에서의 오스만의 확장을 저지시켰고, 서부의 주도권을 유지하였으며.
예전에는 저지할 수 없었던 오스만을 격퇴할 수 있다는 서방의 자신감을 신장시켰다.”
그리스도교 연합군의 신성동맹을 성공시킨 성 비오 5세 교황은 이날 모든 신자에게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하였고
교황 자신도 함께 베드로 광장에서 묵주기도를 바쳤다 합니다.
마침내 치열한 해상 전투 끝에 그리스도교 연합군은 대승을 거두었고 사람들은 묵주기도의 힘 덕분에
승리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성 비오 5세는 10월 첫 주일을 ‘승리의 성모 축일’로 지내도록 했고, 후에 10월 7일로 확정되면서,
1960년 성 요한 23세는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그 명칭을 바꿉니다.
성 비오 5세가 전 유럽 신자들에게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했고 기도의 힘으로 대승을 거두었던 것입니다.
당시 오스만 제국의 술탄 셀립 2세는 “나는 모든 기독교 제왕들의 무력에는 꼼짝도 안 하지만,
다만 저 교황의 기도의 힘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합니다.
여기서 잠시 성 비오 5세 교황에 대해 소개합니다.
교황이 없었다면 신성동맹도 없었을 것이며 레판토 해상 전투에서 유럽의 승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성 비오 5세 교황은 무엇보다 기도의 사람이었고 실행의 사람이었습니다.
성 비오 5세는 자신이 속해있던 도미니코회의 규율에 따라 종래의 호화스러웠던 교황청의 의식주를
간단하고 검소하게 하여 교황청을 수도원과 비슷하게 만들었습니다.
교황 즉위식을 중지시키고 그에 들어갈 경비를 모조리 빈민구제 및 경영이 곤란할 정도로 가난한 수도원을
원조하는 목적으로 기부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교황용 제의를 맞추지 않고 전임 교황들의 제의를 그대로 입었으며 때때로 맨발로
로마의 성당들을 순례했다고 합니다.
교황이라는 가장 높은 지위에 올랐으면서도 예전의 검소한 수도생활을 평생 그만두지 않았으며,
따라서 교황청은 도덕과 근면의 모범적인 곳이 되었고, 교황청의 개혁도 최고조에 이르렀다 합니다.
또 하나 소개드리고 싶은 일화입니다.
성 비오 5세 때부터 교황이 본격적으로 하얀색 의복을 입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까닭은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 성 비오 5세가 교황들과 추기경들이 입었던 기존의 붉은 색 의복을 입는 대신에
자신의 하얀색 도미니코회 수도복 입기를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성인의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한지 하느님께서 유럽을 구하라 예비하신 섭리의 교황임을 깨닫습니다.
성인은 레판토 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다음해인 1572년 5월1일 “오, 주님! 저에게 고통과 인내를
더하여 주소서.”란 기도를 남기고 선종합니다.
아마도 레판토 해전으로 인한 심신의 충격이 컸던 듯 합니다.
기도의 힘은 믿음의 힘이자 바로 하느님의 힘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삽니다.
제 수도생활 만 41년, 아무리 기도해도 기도에는 여전히 초보자같습니다.
그래도 심기일전하여 다시 기도를 시작합니다.
레판토 해상 전투에서 대승을 거둘수 있었던 것도 묵주기도를 통한 성모님의 전구 덕분임을 깨닫습니다.
묵주기도 성월 10월, 묵주기도 많이 바치시기 바랍니다.
묵주는 천국에 들어가는 패스포드란 말도 있으니 늘 묵주는 소지하시기 바랍니다.
성모님 손잡고 천국문 입장하는데 수문장인 성 베드로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보고 듣고 말하지 못해도 감각은 마지막까지 살아있기에 마지막까지 손에 들고 할 수 있는 기도가
묵주기도입니다.
그래서 수도자들이 임종하면 손에 묵주를 쥐어주나 봅니다.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 또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일흔 두제자들이 복음 선포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귀환하자 감격에 넘쳐 감사기도를 바치는 주님이십니다.
당시 제자들은 주님께 그대로 기도도 보고 배웠을 것입니다.
일치의 중심이신 주님과 우정의 여정중인 우리들에게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기쁨에 벅차 자신들의 업적을 고백하는 일흔 두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그대로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대로 우리가 용기백배하여 더욱 기도할 의욕을 북돋우는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한다.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참으로 끊임없는 한결같은 간절한 기도로 주님과 날로 깊어지는 우정의 사람들인 우리를
세상 무엇도 해치지 못합니다.
세례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음이 바로 참 기쁨의 원천임을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기쁨의 감격에 벅차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바치는 주님의 감사기도입니다.
다음 기도문은 공관복음에 전해오는 단 하나 예수님의 감사기도문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일흔 두 제자들은 물론 우리 모두가 겸손하고 순수한 영적 철부지들입니다.
주님의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 주셨다.” 라는 고백에서 아버지와 일치의 절정을 보여주니
이 또한 예수님의 깊은 기도의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이런 예수님과 우정을 깊이하는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절대적이겠는지요!
이어 제자들에게 주시는 행복 선언 역시 그대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눈이 있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니요, 귀가 있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닙니다.
무지에 눈멀고, 무지에 귀먹으면 참으로 영적현실을 보지도 못하고 하느님의 말씀도 듣지 못합니다.
가을은 기도의 계절입니다.
끊임없이 한결같이 깨어 바치는 간절한 기도가 믿음을 더해주고 주님과의 우정을 깊이해주며
날로 마음의 눈을, 마음의 귀를 열어주고 밝게 해줍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의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끝이 없습니다.
기도와 회개는 함께 갑니다.
잠시 기도와 회개의 삶에 소홀했다 하더라도 다음 제1독서 바룩서의 말씀에 용기백배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아, 용기를 내어라.
너희 마음이 하느님을 떠나 방황하였으나, 이제는 돌아서서 열 배로 열심히 그분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신 그분께서, 너희를 구원하시고, 너희에게 영원한 기쁨을 안겨 주시리라.”
그러니 날마다 끊임없는, 한결같은 기도와 회개로 열 배로 그분을 찾고 사랑하며 주님과 우정의 여정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저 또한 늦게 수도사제생활에 입문했기에 주님의 영원한 현역의 전사로서 몇배로 힘껏 살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런 각오로 삽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과의 우정을 날로 깊게 해줍니다.
"하늘의 하느님을 찬양들 하라,
당신의 자비는 영원하시다."(시편136,26).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