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 들녘을 걸어
오월 하순 목요일이 밝아왔다. 간밤 마산과 창원에 사는 초등학교 친구들이 격월로 만나는 모임으로 갈비찜으로 저녁을 같이 먹고 헤어졌다. 모처럼 밤에 나가본 상남동 식당가에서 꽃대감 친구와는 사는 아파트단지까지 같아 귀갓길 동행이 되어주었다. 시청 로터리를 돌아 용지호수를 거쳐왔더니 밤하늘 중천에는 음력 사월의 보름달이 걸려 수면에 비쳐 멋진 야경을 보여주었다.
새벽에 전날 동선을 따라 생활 속의 글을 남기고 아침 시조는 ‘초등 친구 곗날’로 뽑아 지기들에게 안부를 전하면서 사진은 용지호수 야경을 보냈다. “윗동네 아랫동네 재 너머 마을까지 / 여섯 해 뒹굴고도 평생을 함께하는 / 벽화교 개띠 친구들 징글맞게 만난다 // 얼굴은 주름지고 성성한 귀밑머리 / 돌봐온 피살붙이 이날은 잠시 잊고 / 손잡아 잔은 채워도 예전 같지 않더라”
식후 자연학교 등교를 위해 현관을 나서 원이대로로 나갔다. 1년 넘게 진행된 급행 버스 운행을 위한 도로망 선형 개선 공사는 마무리되어 열흘 전부터 버스 정류장이 중앙선으로 옮겨져 있었다. 주남저수지를 비켜 상리로 가는 32번 버스를 타려고 마음을 두어 대방동을 출발해 오는 차를 기다렸다. 대방동에서 정한 시각이 되어 출발한 32번을 타고 충혼탑을 둘러 명곡교차로로 갔다.
명서동을 거쳐 도계동에 이르기까지는 새로운 도로망이라 버스는 전용차선으로 다니도록 해 주행 우선권이 주어졌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용강고개를 넘어간 버스는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을 거쳐 단감 테마공원을 둘러 나왔다. 화목에서 동전을 지날 무렵 요양원으로 출근하는 직원이 내리자 버스는 승객이 아무도 없어 혼자 타고 용산마을을 지날 때 내렸다.
용산마을 입구를 일일 도보 여정의 기점으로 삼았다. 굳이 여정이라고 붙일 정도도 아니지만 그래도 내게는 그만한 의미 부여가 필요했다. 1번 마을버스를 타고 지름길을 따라 가술로 곧장 갈 수 있었지만 용산에서 둑길과 들길을 2시간 남짓 걷고 싶어서였다. 근래 한낮이면 기온이 부쩍 높아져 뙤약볕 아래서는 걷기가 무리여서 이른 아침에만 걸으려고 서둘러 교외로 나갔더랬다.
산남저수지와 주남저수지 경계를 삼는 배수문 둑에서 주남저수지 산책로 테크를 따라 걸었다. 수면에 면적을 넓혀 자라는 연잎에는 밤새 내린 이슬이 모여 구슬 같은 투명한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아득하게 넓은 저수지 수면을 응시하면서 갯버들이 무성한 산책로를 벗어나자 또 다른 배수문으로 이어질 둑길이 펼쳐졌다. 어디선가 씨앗이 날아와 둑길 길섶 자란 접시꽃이 꽃을 피웠다.
용산마을 남단에서 저수지 둑에서 들녘으로 내려갔다. 사람들은 대개 주남저수지 산책을 나와 둑길만 걷다가 되돌아간다만 나는 때로는 들녘을 걷기도 한다. 벼농사만 짓고 겨울철에는 북녘 철새가 머물다 떠난 드넓은 들판에서 농로를 따라 걸었다. 수로에는 부들이나 갈대가 자랄 정도로 폭이 제법 넓었다. 무논을 다려 모를 낼 준비를 하는 논에는 중대백로가 날아와 먹이를 찾았다.
들녘 한복판 자리한 백양마을을 지난 신동마을에 이르니 눈앞에 가술 산업단지와 엘에이치 아파트가 드러났다. 그 바깥으로는 진영의 신도시 아파트가 아스라이 보였다. 한동안 들길을 더 걸어 산업단지 이면도로에서 가술 거리를 지나 마을 도서관에 닿으니 사서가 자리를 지켰다. 서가 앞에서 읽을 책을 골랐는데 공병호가 탈무드를 풀어 쓴 책을 비롯해 네 권 뽑아 열람석에 앉았다.
저자가 강연이나 인간관계에서 경험한 예화를 적절히 곁들인 탈무드 이야기에서 신중년을 살면서 명심해야 지혜를 되살렸다. 그 책을 완독하고 ‘오십에 시작하는 마음 공부’를 펼쳤다. 김종원이 조선 후기 문장가 박지원의 인생 후반전을 풀어 쓴 책이었는데 점심시간이 되어 프롤로그만 읽어두고 도서관을 나왔다. 국도변 식당에서 콩국수를 시켜 한 끼 때우고 오후 일정을 수행했다. 24.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