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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양구법문 (世尊良久法門)
(법좌에 올라 한동안 묵묵히 앉아 계시다가 이르시기를)
'사부대중(四部大衆)은 알겠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탈진어복(脫珍御服)하고 착폐구의(着弊垢衣)라."
(진어복을 벗어 놓고 폐구의를 입었노라)
이 법문 속에는 말로 할 수 없는 참으로 높은 뜻이 담겨 있다.
진어복이란 천자(天子)가 입는 보배 옷인데 상상근기인(上上根機人)을 두고 말한 것이요, 폐구의는 중하근기인(中下根機人)을 말하는 것이다.
또 부처님께서는 성도(成道)하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법적멸상(諸法寂滅相)은 불가이언설(不可以言說)이라. 아령불설법(我寧不說法)하고 질입어열반(疾入於涅槃)이라."
(모든 법의 적멸상은 가히 말로서 설명할 수 없도다. 나는 차라리 법을 설하지 않고 열반에 드는 것이 나으리라)
이 법은 바로 보여 주어도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 까마득하기만 하고 막연하다는 생각만 일어날 뿐이다.
마치 광대무변한 바다를 바라보면서 '저 바다를 어떻게 건너가나?'하며 어렵게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중하근기인을 위한 방편문을 열어 49년 동안 설법하셨으니, 이 일대시교(一代時敎)가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된 것이다.
그러나 조금 전에 산승이 법좌에 올라 아무 말없이 앉아 있다가 '사부대중은 알겠는가?' 하고 말한 것은 언어나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언어나 문자로 설한 교법(敎法)에서는 보리(菩提)라고도 하고, 원각(圓覺)이라고도 하고, 도(道)라고도 하고, 묘각(妙覺)이라고도 하고, 심지(心地)라고 한다.
이 밖에도 많고 많은 이름과 술어(述語)가 있는데, 이와 같은 이름과 술어를 취하지 않고 법문을 하면 중하근기인은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게 된다.
조주 스님께는 연왕(燕王)과 조왕(趙王)이 자주 와서 법문을 청하였는데, 하루는 시자(侍者)가 아뢰었다.
"대왕(大王)이 옵니다."
조주 스님이 깜짝 놀라며 말하였다.
"왔느냐?"
"대왕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또 왔느냐?"
여기에서 '또 왔느냐?' 하는 이 말을 바로 알면 법문을 조금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왕이 정말로 도착하였을 때 조주 스님은 선상(禪床) 위에 가만히 앉은 채 접대를 하며 말하였다.
"상근기인(上根機人)이 오면 선상에서 앉아 영접하고, 중근기인(中根機人)이 오면 문 밖으로 나가 영접하며, 하근기인(下根機人)이 올 것 같으면 저 산문(山門) 밖에까지 나가서 영접합니다."
그러자 조왕과 연왕은 그 뜻을 알고 절을 하며 좋아하였다.
참으로 입을 열어 무엇이라고 말을 하는 것 보다는, 아무 말없이 있는 이것을 바로 알고 바로 꿰뚫어 보면 대장부의 일을 다 마치게 되는 것이다.
산승이 항상 하는 법문인데, 부처님 당시에 어떤 외도(外道)가 부처님을 찾아와서 법문을 청하였다.
"불문유언(不問有言)하고 불문무언(不問無言)입니다."
(유언으로도 묻지 않고 무언으로도 묻지 않나이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아무 말없이 가만히 앉아 계셨고, 이때 외도는 부처님께서 묵묵히 앉아 계신 뜻을 깨달았다.
"세존께서는 대자대비로 저의 미운(迷雲)을 열어 저로 하여금 깨닫게 하셨습니다."
외도는 크게 기뻐하며 떠나갔다.
이 법문에서 부처님께서는 법을 다 설하였고 외도는 그 법문을 모두 알아들었던 것이다.
그때 부처님 옆에는 아난 존자가 있었다.
아난 존자는 언제나 부처님 곁에 있으면서 부처님의 한량없는 법문을 모두 들었다.
매우 총명하였던 아난 존자는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한 일대시교(一代時敎)를 하나도 잊지 않고 그대로 기억하였기 때문에 부처님의 십대 제자 중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칭하여지고 있다.
그러한 아난 존자였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부처님께서 묵묵히 앉아 계셨던 까닭'을 알 수가 없었고 또, 외도가 그렇게 말한 까닭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외도는 무엇을 증득하여 도를 이룬 것입니까?"
"아난아, 좋은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갈 길을 아느니라."
이 말씀처럼 구태여 입을 열어 광장설(廣長設)을 한다고 하여 법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영봉수풍천리거(英鳳隨風千里去)
치조의구서리번(痴鳥依舊棲籬藩)
영특한 봉황은 바람 따라 천리를 날아가고
어리석은 뱁새는 여전히 울타리 밑을 맴도네
울타리의 마른 가지는 아무 소용도 없는데, 뱁새처럼 거기에 머물러 무엇을 찾을 것인가?
더욱이 부처님의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과 교외별전(敎外別傳)은 모두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하였으니, 49년 동안 설한 것과 참된 법문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다.
이것을 분명히 알면 부처님께서 아무 말없이 앉아 계신 그 뜻을 알게 될 것이요, 조금 전에 산승이 묵묵히 앉아 있었던 까닭도 알게 될 것이며, 앞에서 말한 조주 스님의 '상근기법문'도 알게 될 것이다.
정녕 이러한 법문은 공부를 하여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을 갖추지 못하면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애써 공부를 하여 언제라도 해결이 되어야만 한다.
해결만 되면 바로 알고, 바로 보고, 바로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이 법은 깊고 깊은 뜻이 있어 생각으로는 가히 헤아리지 못한다.
오직 이 법을 깨달아야만 법법이 원통(圓通)하고 원명(圓明)하며, 법법이 다함 없는 세계를 빛나게 하며, 일을 끝마친 사람이 될 수 있느니라.
만고벽담공계월(萬古碧潭空界月)
재삼노록시응지(再三撈鹿始應知)
만고의 푸른 못에 비친 공계(空界)의 달을
두 서너번 건져 봐야지 비로소 알리라
이 뜻을 바로 알 수 있도록 공부를 잘 해 가기를 부탁하고 또 부탁하노라.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향곡혜림선사
첫댓글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마하살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요(())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