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류왕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도 많지만 제가 주장하고싶은 것은 당시 민생사정을 1차적으로 고려해야 할것입니다.
그에 따라 영류왕에 대한 비판이 정당하려면 다음과 같은 전제조건이 따라야 합니다.
우선 당과의 전쟁을 결심할만한 민생의 충분한 안정성및 전쟁수행이 뒷받침할만큼의 탄탄한 경제적 여건이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앞서 수와의 전쟁과 연관을 짓는다면 수와의 전쟁에서 고구려가 그다지 피해와 휴우증이 없어야지만이 이러한 전제조건성립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수와의 전쟁에서 비록 승리했다고는 하지만 국민들이 전쟁에 지쳐있고 민생이 어려워진 상태라면 영류왕의 정책은 타당할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영류왕의 정책이 잘못되었다라는 논제가 성립될려면 수와의 전쟁에서 그다지 피해가 없는 상태에서 민생사정이 탄탄하고 국민들의 전쟁에 대한 의지가 강해야 한다는 조건이 필수적입니다.
첫댓글유럽이 1차세계대전 후에 20년안되서 2차세계대전이 일어났다는것을 인지하기 바랍니다. 고구려 역시도 614년 마지막고수전쟁이 끝나고 630년까지 전쟁없는 평온한 상태였습니다. 백,신과는 계속해서 전쟁상태에 있었지만 대부분 평온한 상태였습니다. 무려 16년간 전쟁이 없던 상태입니다. 이미 백성들의 생업은 어느정도 정상퀘도에 올라왔다고 보입니다. 영류왕이 대당전쟁을 피한 이유는 역시 귀족들의 반발때문이라고 봅니다. 손해만 보게 되는 전쟁을 치러야 하는 귀족들이 보기엔 대당전쟁은 쓸모없는 전쟁이죠.
백성들의 생업이 정상궤도에 올랐다고하나 귀족들의 반발과 백성들이 적국인 당나라에 원한을 가져 스스로 싸우기를 자처하지 않고서는 이미 십수년간 전쟁없는 가운데 평온을 즐기고 있었다면 왕이 억지로 전쟁준비를 독려 한들 반발만 커질뿐!!!!.. 명분과 별다른 효과는 기대하기가 어렵 다고 봅니다. 이때는 혁신적인 정권교체가 없는 한 바뀌기 힘든 상황이겠지요.위의 본문 주장처럼 대신들과 "국민(백성)들의 전쟁에 대한 의지가 강해야 한다는 조건이 필수적입니다" 라는 선구자님의 주장과 내용에 참으로 공감이 가는군요!
'정치는 결과'라는 말을 잘 음미하시기 바랍니다. 영류왕의 정책으로 인하여 고구려는 외교적으로 고립되었습니다. 그리고 당나라와의 전쟁을 필요이상으로 힘들게 만든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아무리 백성을 위한다 어쩐다 해도 결국 국가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정치에 있어서 동기는 사실상 무의미합니다. 아무리 동기가 좋았다해도 결과가 실패이면 그 군주는 무능한 군주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외교적인 고립을 초래한건 영류왕이 아니라 연개소문입니다. 영류왕은 어떻게든 당과의 전쟁을 피하고 외교적인 화평을 추구하려 했습니다. 영류왕이 실패한 군주는 맞지만 그 실패의 이유는 그의 정책이 아니라 그가 연개소문을 먼저 죽이지 못한것입니다. 당이 고구려 침략의 야욕을 가진것은 분명하며 연개소문이 아니라도 고구려침공을 했을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렇게 침략의 명분을 쉽게 주지는 않았을겁니다. 그렇다면 당 내부에서도 고구려침공을 반대하는 세력이 힘을 얻을 수 있으며 태종도 거국적인 군사를 일으킬 명분을 쉽게 얻지는 못했을겁니다. 영류왕의 정책이 잘 못 되었다고 말하긴 힘들죠.
그에 반해 연개소문은 당의 사신을 잡아가두는 등 외교적인 수단자체를 원천봉쇄 했습니다. 적어도 고구려가 대국을 자처한다면 사신을 잡아가두는 그런 졸렬한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연개소문이 권력을 얻는 과정에서도 자신에 반하는 대신들은 죽이더라도 왕을 죽여서는 안되었습니다. 이런 점을 봐도 연개소문의 인물됨은 대충 짐작이 갑니다. 그가 죽을때에도 자신들의 아들들에게 전권을 물려준거나 그런 전권을 위임받은 아들들이 형제간의 분란이 일어나자 너무나 쉽게 당에 투항하여 오리려 조국을 멸하는 향도가 되는 꼴을 볼때 애초 연개소문과 그의 집안은 권력에만 뜻이 있었을 뿐 나라의 앞날에는 별 관심도 없었을겁니다.
그리고 외교적 고립이 무엇을 말하는지 오해하신듯 하군요. 당과 문제가 발생했다고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것입니까. 마치 고려가 중국에 종속된 듯이 말씀하시는군요. 영류왕이 북방경영에 신경을 쓰지 못했기 때문에 거란, 실위등에 대한 영향력을 빼앗겼고 돌궐이 멸망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연개소문의 권력욕 때문이라면 굳이 수십년간 당과 전쟁을 치룰 이유가 없죠. 무조건 영류왕의 정책을 답습하면 그만 아닙니까. 그러다보면 가랑비에 옷 젖는줄도 모르고 당에 흡수되어 흔적도 없어지겠지만...하지만 연개소문의 대외정책은 오히려 기존의 장수왕에서 영양왕까지 전반적으로 같습니다. 이것이 뭘 의미하겠습니까.
대국의 천자를 자처하는 이세민도 연개소문이 보낸 사신들 가뒀건만 왜 연개소문한테만 그러죠? 그리고 이세민이 만든 명분이란 것도 혼자 떠든 것에 불과하죠 방현령 같은 명신들은 다 명분 없는 전쟁이라고들 했는데, 이세민의 억지 궤변 명분에 동조할 줄이야... 명분이야 만들어내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고구려의 관직체계를 모르는거 같네요 고구려의 관직은 세습적입니다 연개소문의 조상들도 대대로 막리지였고 금석문의 고씨들 몇몇도 세습의 흔적이 보입니다 연남생이나 남건이 연개소문의 벼슬을 이어받았다고 잘못된건 아니죠 영류태왕의 정책은 온건파인 이연 때는 괜찮으나 강경파인 이세민이 집권했을 때는 그 노선을 바꿨어야 했는
그들이 권력에만 눈이 멀었다면 고구려는 660년 이전에 큰혼란에 빠지던가 662년 당나라의 대공세때 누군가 배반을 해서 평양성문을 열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누구도 하지 않습니다. 연개소문은 확고한 의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강한고구려를 천명한것입니다. 또한 이미 당태종은 고구려를 정벌할려고 벼르던 인물입니다. 어떠한 트집만 잡히면 바로 고구려를 침공할 사람이었습니다. 연개소문의 쿠데타와 도발로 당태종이 쳐들어왔다고 생각한다면 당태종의 1,400년전 책략에 말려드는것입니다. 당태종은 자신 사후에도 고구려정벌의 명분을 고구려쪽이 제공 한것으로 할려고 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역사책을 만들어서
붓으로 자신을 성군으로 만들고, 전쟁영웅으로 만든 인물입니다. 그의 야욕은 끝이 없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645년 전쟁에서 패한후에도 650년에 다시한번 고구려정벌을 할려고 하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제가 볼땐 650년에 다시한번 당나라가 쳐들어왔다면 좋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거기서 다시한번 당군을 괴멸시켰다면 당나라는 더이상 전쟁을 수행하지도 못했을테니깐요. 어쩌면 수나라처럼 멸망할 수도 있었겠죠.
이세민은 침략명분을 이미 준비해 놓았고 전쟁준비도 하나씩 갖추어 나가던 시기였습니다. 단지 전쟁준비가 완성되지 않아 시기가 늦추어 지고 있었던 것일뿐...연개소문이 당사신을 감금했을 땐 이미 전쟁준비가 막바지에 들어간 상황이었습니다. 영양왕도 사신을 감금했었고 연개소문도 일시 감금했지만 풀어주었죠. 사신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감금하는 것을 두고 비난하는 것은 처음 듣는군요.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영류왕의 대외정책은 분명 기존의 것과는 달랐고, 굳이 정책을 변경해야 할 이유도 없었으며, 기존의 정책이 곧 전쟁준비를 독려하는 것도 아닙니다. 너무 드라마식 추측에만 빠져있군요. 하여간 영류왕집권시에도 당은 이미 고구려원정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왕은 죽여서는 안된다...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군요. 영류왕은 실권이 있던 태왕이었기 때문에 연개소문 입장에서는 그를 죽이는 것이 최대한 국론을 집결시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아무래도 그가 살아있다면, 그를 중심으로 세력이 뭉칠 수도 있고 다른 목소리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죠. 설마 여기서 성인군자를 논하려는건 아닐텐데요...또한 작위가 세습되는 것은 고구려사에는 매우 흔한 일입니다. 일상적인 사안인데 비판받을 이유도 없고 특이하게 생각할 이유도 없습니다만...
명분에 대해서 한마디 더 하자면, '중국 자제들의 원수를 갚겠다','요동은 본래 우리땅이다'라는 명분과 '연개소문이 왕을 죽였으니 복수하겠다'라는 명분중...어느것이 대신들을 설득하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까요. 전쟁을 반대하는 대신들이 남의 나라 위계질서 잡는데에 무슨 관심이 있을까요. 그들이 너무나도 유교적 인간들이라서? 후자는 단지 명분 하나를 추가한 것이지 실질적으로 대신들을 설득하기 위한 명분은 전자임에 당연하죠.
결정적으로 당태종의 전쟁은 명분은 어느것 하나도 이유가 되질 않습니다. 중국자체들의 원수를 갚는다? 누가 쳐들어오라고 했는가?, 요동은 본랜 우리땅이다? 무려 600년전 이야기를 가지고 무슨자기땅이라고 하나? 연개소문이 왕을 죽였으니 복수하겠다? 자신은 아버지, 형, 동생을 죽이고 등극한 인물입니다.
소요자 // 궤변을 올려놓고 반박을 당했으면 , 다시 자기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올려야 될 거 아닙니까? 항상 , 먼저 태클 걸면서 궤변 올려놓고 , 정작 다른 사람들이 열올리고 열심히 반박하면 , 슬쩍 치고 빠지던데 . 자기 주장에 자신이 있으면 ,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시던가 , 아니면 궤변이었다는 걸 인정하시던가 . 맨날 그렇게 치고 빠지기만 하면 재미 있습니까?
결국 나라를 멸망시킨건 연개소문과 군부의 강경파입니다,,,왕을 죽이고 나라를 들어 엎은 이들이,,,,나라를 멸망시켰으니,,,그책임을 묻는 건 당연한데,,,오히려 칭찬 일변도이니,,,어찌 사리에 맞을까,,, 잘할려 했는데,,,나라를 멸망시키고 백성들을 도륙시키고 해서,, 미안해,,,다음 부터 잘 할께.... 이미 귀신이 되어버린 백성들은,,,다음이란 없는 것이지,,,어설픈 머리로 천하 백성을 귀신으로 만들었으니,,, 어찌 백성들의 원한이 없으리요,,,
크게 숲을 보셔야지,,,백성을 도륙시켰다면 지도자로써 책임을 져야지,,,불법으로 세상을 장악했으면 나라와 백성이라도 구했어야 명분이라도 있을 터인데,,,오히려 나라와 백성을 몰락시켰다면 두가지 죄를 지었다고 봅니다,,, 구테타로 왕을 죽이고 권력을 잡은 죄,,,영양왕이 특별히 죽어야 할 폐륜을 저지른것도 아닌데,,,두번째는 나라를 멸망시키고 백성을 도륙시킨 죄,,,우리 민족사상 최악의 지도자라 생각됩니다,,당신들이 그당시의 고구려 백성이라면 내 가족과 내가 죽어서 귀신이 됬다면,,,지금 처럼 연개소문을 칭찬하고 위대한 지도자로 볼 것인지, 위대한 지도자는 영웅적인 용맹스런 그런 멋진 인물이 아님니다,,
자신이 희생하고 못난인물이 되더라도 백성을 구하는 자가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연개소문은 훌륭한 장수일 순 있어도 지도자감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나라를 멸망시킨 지도자는 모두 무능한 지도자입니다,,,의자왕 역시,,,,능력 없으면 스스로 물려나야지,,,끝까지 남아서 나라를 멸망시킨 자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조선 말의 고종도 어리석은 자이고....
연개소문의 행적과 남생형제의 과오를 구분 못하시나...설사 남생에게 과오가 있더라도 남생 형제가 나이가 몇인데 아버지 교육이 어쩌구저쩌구 하는 사람이 있는지...요즘도 나이 30가까이 되면 이미 독립했을 뿐 아니라 20만 넘어도 머리통이 커져서 주관이 뚜렸한데, 15세면 성인취급하는 당시엔??
영양왕의 국정운영이 옳았다고 생각됩니다,,,,국제정세를 정확히 알 수있는 자리는 왕이지,,,장수들이 아니라 봅니다,,,,당시에도 국가에 중정같은 정보부가 있었을 것이고 많은 지략가의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왕의 자린데,,,왕이 정신이 나갔다면 모를 까 모든 국정운영은 신료들과 정보기관의 판단에 따라 이루어 지는 겁니다,, 과연 장수들이 국제정세를 얼마나 알 수 있을까요...당시의 당나라의 정세를 누가 더 정확히 알 고 있었을 까요..
중원의 지금까지 국가중 이세민이 집권한 당나라 시기가 가장 강력하고 국가 운영이 완벽했다고 봅니다,,, 이세민 / 장손무기 / 이적 등과 같은 인물이 국가를 뒤받침하고 있었으니...고구려인들 그들과 대항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했을 겁니다,,,상대가 강할때는 고개를 숙이는 것이 당연하지,,,죽기로 싸우는 것은 장수 들의 성품이고 지도자의 성품은 아니지요..
하하, 이세민이 있던 시기의 당나라나 양광이 다스리던 시기의 수나라나 어차피 국력은 오십보백보로 당대 최강이었습니다. 흔히 양광을 폭군이라하고 이세민을 성군이라고 하는데 이건 훗날 수나라의 역사를 편찬한 당나라가 자신들의 건국명분을 세우기 위해 거짓명분에 불과합니다. 양제가 그토록 개판으로 정치를 했다면 어떻게 100만의 대군을 동원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수양제 시기의 수나라 인구는 1225호, 4600만 인구를 자랑하던 것에 비해 오히려 당나라는 이세민의 집권기간 내에도 각지의 반란과 이전 통일전쟁시기의 전후 수습 때문에 행정인프라 파괴와 대규모 유민의 발생으로 실제국가가 통제하는 호구나 인구가 폭군
양제 때의 1/3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님께서 그렇게 칭송하는 이세민은 스스로가 저지른 '형제를 죽이고 제수씨를 강간하며 아버지를 핍박한' 폐륜 덕분에 안 그래도 남북족 시대를 지나 형성된 거대 문벌귀족에 비해 권위와 명성이 떨어지던 이씨 왕가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내부반란까지 발생하는 원인을 제공합니다. 이런 당나라가 수양제의 통치하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던 수나라보다 무조건 강력하고 훌륭한 시절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군요.
장손무기와 이적등 당시의 당나라는 최고의 인재들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그들의 인물됨을 알 수 있다면 누구라도 싸우려 하지 않을 겁니다,,성인의 품성을 지니고 지헤를 가진 인물이였다고 전해지는 데,,,백성들의 인망도 컷을 것이고,,,,이세민의 전쟁에 반대한 그들도 연개소문의 집권으로 명분을 잃고 전쟁에 참여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어짜피 역사는,,,가정일 뿐 그때를 보지 못했으니,,,그냥 헛소리일 수도 있겠지요...
님의 그 발언은 위에 밝힌 스스로의 논리를 뒤집는 것입니다. 님은 위에서 왕의 훌륭함(or신하의 중요성을 격하하는 방식)만으로 모든 잣대를 평가하려는 논리를 펼치셨는데 지금은 엉뚱하게 이세민은 언급않하고 장손무기와 이적만을 가지고 당나라를 평가하시려는 이유가 뭡니까? 그리고 장손무기와 이적이 훌륭한 정치가와 장군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당나라의 사정이지 고구려의 입장에서는 침략자에 불과합니다.
[어짜피 역사는,,,가정일 뿐 그때를 보지 못했으니,,,그냥 헛소리일 수도 있겠지요.]<-그리고 이건 도대체 무슨 의도로 말씀하신 겁니까? 지금 님이나 저는 논리와 증거를 바탕으로 '토론'을 하는 중인데 무슨 어이없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님은 애초에 스스로의 추상적인 감성에만 의존하고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주장만을 늘어놓으시더니 기껏 하는 말이 논리적인 대답을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댓글입니까? 이왕하실거면 좀 더 진진한 자세로 임하십시오.
그리고 님은 연개소문이 집권함으로써 당나라가 쳐들어올 명분과 의도를 가졌다는 식으로 설명하는데 이것은 사료조차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잘못된 편견에 불과합니다. 이세민은 당나라에게 알아서 고개를 숙이던 영류태왕 시기에 천하의 지도와 지리, 봉수 등의 조사를 맡고 각 나라의 원근을 판별하는 것을 직무로 하는 직방낭중職方郎中 진대덕을 첩자로 보내어 고구려의 지리와 내정을 염탐하는 등 침략전쟁을 위한 사전준비를 미리 계획하고 있던데 다가 진대덕이 고구려의 정보를 가지고 돌아온 다음해에는 아예 자신의 침략의사를 공식석상에서 노골적으로 표방합니다. 다음은 진대덕의 보고를 받고 그가 직접 한 말이지요.
“고구려의 땅은 본래 한나라의 사군이다. 우리가 군사 수만 명을 이끌고 요동을 공격하면 다른 여러 성들이 반드시 구원하러 올 것이다. 이때 별도로 수군을 동래에서 출발시켜 바다를 건너 평양으로 들어간다면 아주 쉬울 것이다. 그러나 천하가 겨우 평정되었는데, 또 사람들을 수고롭게 하고 싶지는 않다.” 이 시기는 아직 연개소문이 집권하기 전으로 이세민은 연개소문의 집권과 상관없이 세부전략과 전술까지 수립해놓을 정도로 고구려를 공격할 뜻을 분명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다만 패륜아 이세민의 집권으로 왕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서 당나라에 수많은 내란이 발생하여 내부정리가 덜되었으므로 전쟁을 시작하지 못했을 뿐.
장손무기와 이적이 어떤 인물인지 이들을 정확히 안다면 고구려의 정책이 옳았는다 잘못?는가를 알 수 있겠지요. 장손무기와 이적의 보필을 받는 이세민을 상대할 수 있을까요,,,그들의 엄청난 군대와 당대 최고의 지략가와 이세민 ....고구려의 군사가 그들보다 많다면 해볼만 하겟지만,,,군사력 차이는 비교할 수 없이 차이가 나는데,,,무얼가지고 싸울까요,,,현실이 그런걸,,,용기만으로 전쟁을 할 순 없을 터인데,,,
어이가 없군요, 그럼 을지문덕과 영양태왕이 쓰러뜨린 수양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시기나 합니까? 그는 폭군이라고 불리기 이전에 뛰어난 전략가였습니다. 이세민이 나중에 한번 돌궐에게 깨진 적이 있었는데 스스로 뭐라고 했는 줄 아십니까? "나는 (수)양제에 미치지 못하는 구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했을텐데요? 도대체 적국의 관리가 잘났다는 것이 고구려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그리고 한가지 충고하건데 저는 물론이고 여기에 토론하는 대부분의 분들은 이세민 정권의 주요구성원들까지 다 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이세민 정권의 중추를 담당했지만 겨우 장손무기와 이세적 밖에 언급못하는 미지님보다
그리고 님은 계속 장손무기와 이세적이 잘났으니까 게임이 안된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영양태왕과 대결한 수양제의 밑에있는 뛰어난 장수들과 재상들에 대해서 알기는 합니까? 당시 고구려의 국력이 어느 정도이며 전체병력이 어느정도로 추산되는지 아시기나 합니까? 스스로의 논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사료를 제대로 제시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 님의 주장이 아까 전부터 전한테 계속 허무하게 반박당하는 겁니다. 님은 심하게 말하자면 국가간의 대결은 물론이고 정치의 기본도 모르시는 것같은데 역사에 대해 토론을 하시려면 최소한 먼저 이런 것을 유기적으로 공부하고 오십시오.
국가간의 전쟁이란 삼국지에 나오는 무협지가 아니죠. 제갈량처럼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몇천으로 몇만을 괴멸시킬 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삼국지자체가 무협지니 그것은 나관중 선생님의 상상력입니다. 국가간의 격돌이란 눈에 보이는것만 해도 군사력, 경제력, 행정력, 방어체제등등 수많은 변수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것 까지 한다면 엄청난 변수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저 장수1,2명 신하 1,2명이 뛰어나다고 해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나라는 이적, 장손무기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명장들과 뛰어난 대신들이 많았습니다.
첫댓글 유럽이 1차세계대전 후에 20년안되서 2차세계대전이 일어났다는것을 인지하기 바랍니다. 고구려 역시도 614년 마지막고수전쟁이 끝나고 630년까지 전쟁없는 평온한 상태였습니다. 백,신과는 계속해서 전쟁상태에 있었지만 대부분 평온한 상태였습니다. 무려 16년간 전쟁이 없던 상태입니다. 이미 백성들의 생업은 어느정도 정상퀘도에 올라왔다고 보입니다. 영류왕이 대당전쟁을 피한 이유는 역시 귀족들의 반발때문이라고 봅니다. 손해만 보게 되는 전쟁을 치러야 하는 귀족들이 보기엔 대당전쟁은 쓸모없는 전쟁이죠.
백성들의 생업이 정상궤도에 올랐다고하나 귀족들의 반발과 백성들이 적국인 당나라에 원한을 가져 스스로 싸우기를 자처하지 않고서는 이미 십수년간 전쟁없는 가운데 평온을 즐기고 있었다면 왕이 억지로 전쟁준비를 독려 한들 반발만 커질뿐!!!!.. 명분과 별다른 효과는 기대하기가 어렵 다고 봅니다. 이때는 혁신적인 정권교체가 없는 한 바뀌기 힘든 상황이겠지요.위의 본문 주장처럼 대신들과 "국민(백성)들의 전쟁에 대한 의지가 강해야 한다는 조건이 필수적입니다" 라는 선구자님의 주장과 내용에 참으로 공감이 가는군요!
'정치는 결과'라는 말을 잘 음미하시기 바랍니다. 영류왕의 정책으로 인하여 고구려는 외교적으로 고립되었습니다. 그리고 당나라와의 전쟁을 필요이상으로 힘들게 만든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아무리 백성을 위한다 어쩐다 해도 결국 국가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정치에 있어서 동기는 사실상 무의미합니다. 아무리 동기가 좋았다해도 결과가 실패이면 그 군주는 무능한 군주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외교적인 고립을 초래한건 영류왕이 아니라 연개소문입니다. 영류왕은 어떻게든 당과의 전쟁을 피하고 외교적인 화평을 추구하려 했습니다. 영류왕이 실패한 군주는 맞지만 그 실패의 이유는 그의 정책이 아니라 그가 연개소문을 먼저 죽이지 못한것입니다. 당이 고구려 침략의 야욕을 가진것은 분명하며 연개소문이 아니라도 고구려침공을 했을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렇게 침략의 명분을 쉽게 주지는 않았을겁니다. 그렇다면 당 내부에서도 고구려침공을 반대하는 세력이 힘을 얻을 수 있으며 태종도 거국적인 군사를 일으킬 명분을 쉽게 얻지는 못했을겁니다. 영류왕의 정책이 잘 못 되었다고 말하긴 힘들죠.
그에 반해 연개소문은 당의 사신을 잡아가두는 등 외교적인 수단자체를 원천봉쇄 했습니다. 적어도 고구려가 대국을 자처한다면 사신을 잡아가두는 그런 졸렬한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연개소문이 권력을 얻는 과정에서도 자신에 반하는 대신들은 죽이더라도 왕을 죽여서는 안되었습니다. 이런 점을 봐도 연개소문의 인물됨은 대충 짐작이 갑니다. 그가 죽을때에도 자신들의 아들들에게 전권을 물려준거나 그런 전권을 위임받은 아들들이 형제간의 분란이 일어나자 너무나 쉽게 당에 투항하여 오리려 조국을 멸하는 향도가 되는 꼴을 볼때 애초 연개소문과 그의 집안은 권력에만 뜻이 있었을 뿐 나라의 앞날에는 별 관심도 없었을겁니다.
그리고 외교적 고립이 무엇을 말하는지 오해하신듯 하군요. 당과 문제가 발생했다고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것입니까. 마치 고려가 중국에 종속된 듯이 말씀하시는군요. 영류왕이 북방경영에 신경을 쓰지 못했기 때문에 거란, 실위등에 대한 영향력을 빼앗겼고 돌궐이 멸망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연개소문의 권력욕 때문이라면 굳이 수십년간 당과 전쟁을 치룰 이유가 없죠. 무조건 영류왕의 정책을 답습하면 그만 아닙니까. 그러다보면 가랑비에 옷 젖는줄도 모르고 당에 흡수되어 흔적도 없어지겠지만...하지만 연개소문의 대외정책은 오히려 기존의 장수왕에서 영양왕까지 전반적으로 같습니다. 이것이 뭘 의미하겠습니까.
대국의 천자를 자처하는 이세민도 연개소문이 보낸 사신들 가뒀건만 왜 연개소문한테만 그러죠? 그리고 이세민이 만든 명분이란 것도 혼자 떠든 것에 불과하죠 방현령 같은 명신들은 다 명분 없는 전쟁이라고들 했는데, 이세민의 억지 궤변 명분에 동조할 줄이야... 명분이야 만들어내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고구려의 관직체계를 모르는거 같네요 고구려의 관직은 세습적입니다 연개소문의 조상들도 대대로 막리지였고 금석문의 고씨들 몇몇도 세습의 흔적이 보입니다 연남생이나 남건이 연개소문의 벼슬을 이어받았다고 잘못된건 아니죠 영류태왕의 정책은 온건파인 이연 때는 괜찮으나 강경파인 이세민이 집권했을 때는 그 노선을 바꿨어야 했는
그렇지 않고 똑같이 대합니다 그리고 그는 진정 평화만 바란것이 아니었습니다 영류태왕은 신라를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군부세력의 불만을 억제하기 위해서겠죠 결과적으로 신라 공격은 성과가 없을 뿐더러 신라가 당에 밀착하는 계기만 만들었을 뿐입니다
그들이 권력에만 눈이 멀었다면 고구려는 660년 이전에 큰혼란에 빠지던가 662년 당나라의 대공세때 누군가 배반을 해서 평양성문을 열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누구도 하지 않습니다. 연개소문은 확고한 의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강한고구려를 천명한것입니다. 또한 이미 당태종은 고구려를 정벌할려고 벼르던 인물입니다. 어떠한 트집만 잡히면 바로 고구려를 침공할 사람이었습니다. 연개소문의 쿠데타와 도발로 당태종이 쳐들어왔다고 생각한다면 당태종의 1,400년전 책략에 말려드는것입니다. 당태종은 자신 사후에도 고구려정벌의 명분을 고구려쪽이 제공 한것으로 할려고 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역사책을 만들어서
붓으로 자신을 성군으로 만들고, 전쟁영웅으로 만든 인물입니다. 그의 야욕은 끝이 없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645년 전쟁에서 패한후에도 650년에 다시한번 고구려정벌을 할려고 하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제가 볼땐 650년에 다시한번 당나라가 쳐들어왔다면 좋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거기서 다시한번 당군을 괴멸시켰다면 당나라는 더이상 전쟁을 수행하지도 못했을테니깐요. 어쩌면 수나라처럼 멸망할 수도 있었겠죠.
이세민은 침략명분을 이미 준비해 놓았고 전쟁준비도 하나씩 갖추어 나가던 시기였습니다. 단지 전쟁준비가 완성되지 않아 시기가 늦추어 지고 있었던 것일뿐...연개소문이 당사신을 감금했을 땐 이미 전쟁준비가 막바지에 들어간 상황이었습니다. 영양왕도 사신을 감금했었고 연개소문도 일시 감금했지만 풀어주었죠. 사신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감금하는 것을 두고 비난하는 것은 처음 듣는군요.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영류왕의 대외정책은 분명 기존의 것과는 달랐고, 굳이 정책을 변경해야 할 이유도 없었으며, 기존의 정책이 곧 전쟁준비를 독려하는 것도 아닙니다. 너무 드라마식 추측에만 빠져있군요. 하여간 영류왕집권시에도 당은 이미 고구려원정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왕은 죽여서는 안된다...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군요. 영류왕은 실권이 있던 태왕이었기 때문에 연개소문 입장에서는 그를 죽이는 것이 최대한 국론을 집결시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아무래도 그가 살아있다면, 그를 중심으로 세력이 뭉칠 수도 있고 다른 목소리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죠. 설마 여기서 성인군자를 논하려는건 아닐텐데요...또한 작위가 세습되는 것은 고구려사에는 매우 흔한 일입니다. 일상적인 사안인데 비판받을 이유도 없고 특이하게 생각할 이유도 없습니다만...
명분에 대해서 한마디 더 하자면, '중국 자제들의 원수를 갚겠다','요동은 본래 우리땅이다'라는 명분과 '연개소문이 왕을 죽였으니 복수하겠다'라는 명분중...어느것이 대신들을 설득하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까요. 전쟁을 반대하는 대신들이 남의 나라 위계질서 잡는데에 무슨 관심이 있을까요. 그들이 너무나도 유교적 인간들이라서? 후자는 단지 명분 하나를 추가한 것이지 실질적으로 대신들을 설득하기 위한 명분은 전자임에 당연하죠.
결정적으로 당태종의 전쟁은 명분은 어느것 하나도 이유가 되질 않습니다. 중국자체들의 원수를 갚는다? 누가 쳐들어오라고 했는가?, 요동은 본랜 우리땅이다? 무려 600년전 이야기를 가지고 무슨자기땅이라고 하나? 연개소문이 왕을 죽였으니 복수하겠다? 자신은 아버지, 형, 동생을 죽이고 등극한 인물입니다.
소요자 // 궤변을 올려놓고 반박을 당했으면 , 다시 자기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올려야 될 거 아닙니까? 항상 , 먼저 태클 걸면서 궤변 올려놓고 , 정작 다른 사람들이 열올리고 열심히 반박하면 , 슬쩍 치고 빠지던데 . 자기 주장에 자신이 있으면 ,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시던가 , 아니면 궤변이었다는 걸 인정하시던가 . 맨날 그렇게 치고 빠지기만 하면 재미 있습니까?
켄님 표현 주의 바랍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소요자님은 남의 의견을 반박하시기 전에 너무 감정 내키시는 대로 자기 주장만 피력하시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반박하시기 전에 그 사람이 뭘 말하고자 하는지 좀 더 주의 깊게 관찰하셨으면 좋겠군요.
결국 나라를 멸망시킨건 연개소문과 군부의 강경파입니다,,,왕을 죽이고 나라를 들어 엎은 이들이,,,,나라를 멸망시켰으니,,,그책임을 묻는 건 당연한데,,,오히려 칭찬 일변도이니,,,어찌 사리에 맞을까,,, 잘할려 했는데,,,나라를 멸망시키고 백성들을 도륙시키고 해서,, 미안해,,,다음 부터 잘 할께.... 이미 귀신이 되어버린 백성들은,,,다음이란 없는 것이지,,,어설픈 머리로 천하 백성을 귀신으로 만들었으니,,, 어찌 백성들의 원한이 없으리요,,,
주장 하실 때 근거 들어주세요. 무슨 소설 쓰시는 것도 아니고 그래야 토론이 되지 님 처럼 추상적으로 소설 쓰면 토론이 되나요? 님이 보기에 저 위의 댓글들이 옳지 않다면 사료적 근거를 들면서 제대로 반박 하시던가.. 저번에도 어떤 님한테 반박당하고도 그냥 가시더만..
크게 숲을 보셔야지,,,백성을 도륙시켰다면 지도자로써 책임을 져야지,,,불법으로 세상을 장악했으면 나라와 백성이라도 구했어야 명분이라도 있을 터인데,,,오히려 나라와 백성을 몰락시켰다면 두가지 죄를 지었다고 봅니다,,, 구테타로 왕을 죽이고 권력을 잡은 죄,,,영양왕이 특별히 죽어야 할 폐륜을 저지른것도 아닌데,,,두번째는 나라를 멸망시키고 백성을 도륙시킨 죄,,,우리 민족사상 최악의 지도자라 생각됩니다,,당신들이 그당시의 고구려 백성이라면 내 가족과 내가 죽어서 귀신이 됬다면,,,지금 처럼 연개소문을 칭찬하고 위대한 지도자로 볼 것인지, 위대한 지도자는 영웅적인 용맹스런 그런 멋진 인물이 아님니다,,
연개소문은 영양태왕을 죽이지 않았고 나라를 멸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죽인 것은 영류태왕이고 나라를 멸망시킨게 아니라 구한거죠
자신이 희생하고 못난인물이 되더라도 백성을 구하는 자가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연개소문은 훌륭한 장수일 순 있어도 지도자감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나라를 멸망시킨 지도자는 모두 무능한 지도자입니다,,,의자왕 역시,,,,능력 없으면 스스로 물려나야지,,,끝까지 남아서 나라를 멸망시킨 자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조선 말의 고종도 어리석은 자이고....
연개소문은 자기 할거 다 하고 갔습니다 2차 고당전쟁 이후 고구려의 승리를 끝으로 사실상 전쟁은 끝난거나 마찬가지였죠 2차 고당전쟁은 연개소문이 승리로 이끌고 얼마안가 죽었죠
미지님 여기는 토론을 하는 장소지 어느 한 사람의 일방적이고 논리적이지 못한 주장따위를 늘어놓는 곳이 아닙니다. 님의 다분히 공상적이며 감상적인 주장을 펼치시기 전에 먼저 증빙사료와 타당성을 제시하십시오. 그것이 올바른 토론의 자세입니다.
연개소문의 행적과 남생형제의 과오를 구분 못하시나...설사 남생에게 과오가 있더라도 남생 형제가 나이가 몇인데 아버지 교육이 어쩌구저쩌구 하는 사람이 있는지...요즘도 나이 30가까이 되면 이미 독립했을 뿐 아니라 20만 넘어도 머리통이 커져서 주관이 뚜렸한데, 15세면 성인취급하는 당시엔??
영양왕의 국정운영이 옳았다고 생각됩니다,,,,국제정세를 정확히 알 수있는 자리는 왕이지,,,장수들이 아니라 봅니다,,,,당시에도 국가에 중정같은 정보부가 있었을 것이고 많은 지략가의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왕의 자린데,,,왕이 정신이 나갔다면 모를 까 모든 국정운영은 신료들과 정보기관의 판단에 따라 이루어 지는 겁니다,, 과연 장수들이 국제정세를 얼마나 알 수 있을까요...당시의 당나라의 정세를 누가 더 정확히 알 고 있었을 까요..
고대 정치가 어떻게 이루었졌는지나 공부하고 오세요. 왕이라도 신하들의 도움이 없으면 허수아비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연개소문은 일개 장수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고구려의 정보부서로 알려져있는 중리부를 담당한 명문 재상가의 계승자입니다.
왕이라고 해서 과연 모든 것을 알고 신하는 항상 왕보다 부족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그런식으로 따진다면 신하의 권력이 왕을 능가하는 다른 왕조들의 사례는 어떻게 설명하실 건가요? 결국 정치의 모든 것은 권력의 크기에 좌우되는 겁니다.
중원의 지금까지 국가중 이세민이 집권한 당나라 시기가 가장 강력하고 국가 운영이 완벽했다고 봅니다,,, 이세민 / 장손무기 / 이적 등과 같은 인물이 국가를 뒤받침하고 있었으니...고구려인들 그들과 대항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했을 겁니다,,,상대가 강할때는 고개를 숙이는 것이 당연하지,,,죽기로 싸우는 것은 장수 들의 성품이고 지도자의 성품은 아니지요..
그것은 지금 관점이고, 관련 글들을 검색해서 충분히 이해한 후에 말씀하세요. 당시 당나라 정세가 어땠는지...
하하, 이세민이 있던 시기의 당나라나 양광이 다스리던 시기의 수나라나 어차피 국력은 오십보백보로 당대 최강이었습니다. 흔히 양광을 폭군이라하고 이세민을 성군이라고 하는데 이건 훗날 수나라의 역사를 편찬한 당나라가 자신들의 건국명분을 세우기 위해 거짓명분에 불과합니다. 양제가 그토록 개판으로 정치를 했다면 어떻게 100만의 대군을 동원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수양제 시기의 수나라 인구는 1225호, 4600만 인구를 자랑하던 것에 비해 오히려 당나라는 이세민의 집권기간 내에도 각지의 반란과 이전 통일전쟁시기의 전후 수습 때문에 행정인프라 파괴와 대규모 유민의 발생으로 실제국가가 통제하는 호구나 인구가 폭군
양제 때의 1/3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님께서 그렇게 칭송하는 이세민은 스스로가 저지른 '형제를 죽이고 제수씨를 강간하며 아버지를 핍박한' 폐륜 덕분에 안 그래도 남북족 시대를 지나 형성된 거대 문벌귀족에 비해 권위와 명성이 떨어지던 이씨 왕가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내부반란까지 발생하는 원인을 제공합니다. 이런 당나라가 수양제의 통치하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던 수나라보다 무조건 강력하고 훌륭한 시절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군요.
당나라와 맞서 싸운 연개소문은 죄인이라 하시고, 수나라와 맞서 싸운 영양태왕은 영웅이라고 칭송하시는데 스스로가 생각하셔도 참 모순된 논리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스스로 추측하지 마시고, 게시판에서 관련 글들을 검색해서 충분히 이해하신 후에 충분한 근거와 함께 본인 의견을 전개하세요. 한가지 예로, 고구려에도 중정과 같은 기관이 있습니다만, 누구의 관리하에 있는지 아시는지...
이론...티얼님이 이미 말씀하셨군요.
장손무기와 이적등 당시의 당나라는 최고의 인재들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그들의 인물됨을 알 수 있다면 누구라도 싸우려 하지 않을 겁니다,,성인의 품성을 지니고 지헤를 가진 인물이였다고 전해지는 데,,,백성들의 인망도 컷을 것이고,,,,이세민의 전쟁에 반대한 그들도 연개소문의 집권으로 명분을 잃고 전쟁에 참여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어짜피 역사는,,,가정일 뿐 그때를 보지 못했으니,,,그냥 헛소리일 수도 있겠지요...
님의 그 발언은 위에 밝힌 스스로의 논리를 뒤집는 것입니다. 님은 위에서 왕의 훌륭함(or신하의 중요성을 격하하는 방식)만으로 모든 잣대를 평가하려는 논리를 펼치셨는데 지금은 엉뚱하게 이세민은 언급않하고 장손무기와 이적만을 가지고 당나라를 평가하시려는 이유가 뭡니까? 그리고 장손무기와 이적이 훌륭한 정치가와 장군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당나라의 사정이지 고구려의 입장에서는 침략자에 불과합니다.
[어짜피 역사는,,,가정일 뿐 그때를 보지 못했으니,,,그냥 헛소리일 수도 있겠지요.]<-그리고 이건 도대체 무슨 의도로 말씀하신 겁니까? 지금 님이나 저는 논리와 증거를 바탕으로 '토론'을 하는 중인데 무슨 어이없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님은 애초에 스스로의 추상적인 감성에만 의존하고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주장만을 늘어놓으시더니 기껏 하는 말이 논리적인 대답을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댓글입니까? 이왕하실거면 좀 더 진진한 자세로 임하십시오.
그리고 님은 연개소문이 집권함으로써 당나라가 쳐들어올 명분과 의도를 가졌다는 식으로 설명하는데 이것은 사료조차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잘못된 편견에 불과합니다. 이세민은 당나라에게 알아서 고개를 숙이던 영류태왕 시기에 천하의 지도와 지리, 봉수 등의 조사를 맡고 각 나라의 원근을 판별하는 것을 직무로 하는 직방낭중職方郎中 진대덕을 첩자로 보내어 고구려의 지리와 내정을 염탐하는 등 침략전쟁을 위한 사전준비를 미리 계획하고 있던데 다가 진대덕이 고구려의 정보를 가지고 돌아온 다음해에는 아예 자신의 침략의사를 공식석상에서 노골적으로 표방합니다. 다음은 진대덕의 보고를 받고 그가 직접 한 말이지요.
“고구려의 땅은 본래 한나라의 사군이다. 우리가 군사 수만 명을 이끌고 요동을 공격하면 다른 여러 성들이 반드시 구원하러 올 것이다. 이때 별도로 수군을 동래에서 출발시켜 바다를 건너 평양으로 들어간다면 아주 쉬울 것이다. 그러나 천하가 겨우 평정되었는데, 또 사람들을 수고롭게 하고 싶지는 않다.” 이 시기는 아직 연개소문이 집권하기 전으로 이세민은 연개소문의 집권과 상관없이 세부전략과 전술까지 수립해놓을 정도로 고구려를 공격할 뜻을 분명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다만 패륜아 이세민의 집권으로 왕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서 당나라에 수많은 내란이 발생하여 내부정리가 덜되었으므로 전쟁을 시작하지 못했을 뿐.
장손무기와 이적이 어떤 인물인지 이들을 정확히 안다면 고구려의 정책이 옳았는다 잘못?는가를 알 수 있겠지요. 장손무기와 이적의 보필을 받는 이세민을 상대할 수 있을까요,,,그들의 엄청난 군대와 당대 최고의 지략가와 이세민 ....고구려의 군사가 그들보다 많다면 해볼만 하겟지만,,,군사력 차이는 비교할 수 없이 차이가 나는데,,,무얼가지고 싸울까요,,,현실이 그런걸,,,용기만으로 전쟁을 할 순 없을 터인데,,,
어이가 없군요, 그럼 을지문덕과 영양태왕이 쓰러뜨린 수양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시기나 합니까? 그는 폭군이라고 불리기 이전에 뛰어난 전략가였습니다. 이세민이 나중에 한번 돌궐에게 깨진 적이 있었는데 스스로 뭐라고 했는 줄 아십니까? "나는 (수)양제에 미치지 못하는 구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했을텐데요? 도대체 적국의 관리가 잘났다는 것이 고구려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그리고 한가지 충고하건데 저는 물론이고 여기에 토론하는 대부분의 분들은 이세민 정권의 주요구성원들까지 다 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이세민 정권의 중추를 담당했지만 겨우 장손무기와 이세적 밖에 언급못하는 미지님보다
동급으로 알면 알았지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국가간의 대결은 신하 한두 사람만의 역량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군사력의 차이가 난다고 하셨는데 그럼 수양제의 100만대군과 대적한 영양태왕은 왜 비판하지 않으십니까? 님의 주장대로라면 영양태왕은 먼저 선공까지 때려 초강대국에게 시비를 건 전쟁광(?)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님은 계속 장손무기와 이세적이 잘났으니까 게임이 안된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영양태왕과 대결한 수양제의 밑에있는 뛰어난 장수들과 재상들에 대해서 알기는 합니까? 당시 고구려의 국력이 어느 정도이며 전체병력이 어느정도로 추산되는지 아시기나 합니까? 스스로의 논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사료를 제대로 제시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 님의 주장이 아까 전부터 전한테 계속 허무하게 반박당하는 겁니다. 님은 심하게 말하자면 국가간의 대결은 물론이고 정치의 기본도 모르시는 것같은데 역사에 대해 토론을 하시려면 최소한 먼저 이런 것을 유기적으로 공부하고 오십시오.
국가간의 전쟁이란 삼국지에 나오는 무협지가 아니죠. 제갈량처럼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몇천으로 몇만을 괴멸시킬 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삼국지자체가 무협지니 그것은 나관중 선생님의 상상력입니다. 국가간의 격돌이란 눈에 보이는것만 해도 군사력, 경제력, 행정력, 방어체제등등 수많은 변수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것 까지 한다면 엄청난 변수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저 장수1,2명 신하 1,2명이 뛰어나다고 해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나라는 이적, 장손무기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명장들과 뛰어난 대신들이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