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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겸전(文武兼全)
학문적 소양과 행정 실무와 나라 살림을 잘 이끌어 가는 능력인 文과 군사적 소양과 기량인 武를 두루 갖추고 있다.
文 : 글월 문(文/0)
武 : 굳셀 무(止/4)
兼 : 겸할 겸(八/8)
全 : 온전 전(入/4)
초장왕의 문무겸전
'행군'에서 말하는 문무겸전은 관인한 문(文)과 엄격한 무(武)의 리더십을 적절히 섞어 사용할 것을 권한 것이다.
아무리 살벌한 전쟁터라 할지라도 장수가 시종 군기로 부하를 대할 경우 자칫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전쟁터일수록 오히려 상황에 따라서는 관인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역대 사서에 나오는 문무겸전 리더십과 관련한 대표적인 사례로 초장왕의 절영지연(絶纓之宴) 일화를 들 수 있다. 이는 전한시대 말기 유향이 지은 '설원' '복은'에 나온다.
이에 따르면 초장왕이 투초의 난을 평정한 뒤 공을 세운 신하들을 위로하기 위해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이때 총희로 하여금 옆에서 시중을 들도록 했다.
밤이 늦도록 주연을 즐기고 있는데 문득 큰바람이 불어 촛불이 모두 꺼져버렸다. 문득 총희의 비명이 들렸다. 누군가 그녀의 가슴을 더듬으며 희롱했던 것이다.
총희가 그자의 갓끈을 잡아 뜯고는 초장왕에게 호소했다. "대왕, 속히 촛불을 켜 갓끈이 없는 자를 잡아주십시오!"
초장이 하령했다. "오늘은 경들이 과인과 함께 즐겁게 술을 마시는 날이다. 갓끈을 끊어버리지 않는 자는 이 자리를 즐기지 않는 것으로 알겠다."
군신들이 모두 갓끈을 끊어버린 뒤 술을 마셨다. 3년 후 초나라가 중원의 패자인 진(晉)나라와 접전을 벌이게 되었다. 한 장수가 선봉에 나서 죽기를 무릅쓰고 분투한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
초장왕이 그 장수를 불러 물었다. "과인은 평소 그대를 특별히 잘 대우해준 것도 아닌데 어찌하여 그토록 죽기를 무릅쓰고 싸운 것인가?"
장수가 답했다. "신은 이미 3년 전에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당시 갓끈을 뜯긴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그때 대왕의 온정으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목숨을 바쳐 대왕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초장왕 곁에 손숙오와 등 많은 인재가 있었던 점에 주목한 후대인들이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낸 일화로 보인다.
절영지연은 흔히 절영지회(絶纓之會)로도 불린다. 연(宴)과 회(會) 모두 연회를 의미한다. 항우와 유방의 운명을 가른 홍문지연(鴻門之宴)을 홍문지회로 부르는 것과 같다.
'춘추좌전' 등의 사서는 초장왕을 크게 부각시키지 않았다. 남만(南蠻)으로 간주했던 탓이다. 그러나 그는 제환공 및 진문공을 뛰어넘는 당대 최고의 인물이었다.
초장왕은 존왕양이를 내세운 제환공과 진문공의 패업을 이은 춘추시대 최후의 패자에 해당한다. 초장왕과 관련한 일화가 매우 많다. 대표적인 일화로 절영지연 이외에도 명장경인(鳴將驚人)과 문정(問鼎) 설화를 들 수 있다.
'사기' '초세가'에 따르면 초장왕은 즉위한 지 3년이 지나도록 호령(號令)을 발하지 않고, 사냥하러 갈 때만 궁 밖을 나서고, 사냥을 나가지 않을 때는 궁 안에서 밤낮으로 여러 부인과 함께 술만 마셨다.
이때 그는 시종을 시켜 이런 글을 문 밖에 내걸게 했다. "감히 간하는 자가 있으면 죽음을 내릴 것이다!"
하루는 오삼(伍參)이 간하기 위해 궁으로 들어갔다. 오삼은 오월시대를 풍미한 오자서의 증조부다. 마침 초장왕은 왼손으로 정희(鄭姬), 오른손으로 월녀(越女)를 껴안은 채 음악 연주를 듣고 있었다.
초장왕이 노기를 띤 목소리로 물었다. "그대는 술을 마시러 왔는가, 아니면 음악을 들으러 왔는가?"
오삼(伍參)이 말했다. "며칠 전 신이 교외에 갔더니 어떤 사람이 수수께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신은 그 뜻을 알 길이 없어 대왕에게 알려드리려 온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몸에 오색 빛이 나는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언덕에 앉아 있은 지 3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새가 나는 것을 본 사람도 없고 우는 소리를 들은 사람도 없습니다. 과연 이 새는 무슨 새이겠습니까?"
"그 새는 3년 동안 날지 않았으나 만일 한번 날게 되면 곧바로 하늘로 치솟아 오를 것이다. 3년 동안 지저귀지 않았으나 만일 한번 지저귀게 되면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만들 것이다!"
여기서 한번 떨치고 일어나면 사람을 놀라게 할 만한 재주를 지닌 사람을 지칭하는 명장경인 성어가 나왔다. 일명경인(一鳴驚人)도 같은 말이다.
당시 초장왕은 명장경인의 뜻을 헤아렸음에도 이후 몇 개월 동안 오히려 더욱 주색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루는 대부 소종이 초장왕을 찾아가 통곡했다.
초장왕이 물었다. "그대는 왜 이리 슬피 우는 것인가?"
"신은 이제 죽은 몸입니다. 장차 초나라는 망할 것입니다."
"무슨 이유로 그대가 죽고 초나라가 망한단 말인가?"
"대왕에게 간하면 대왕은 반드시 이를 듣지 않고 신을 죽일 것입니다. 그리되면 대왕은 더욱 하고 싶은 대로 하실 것이고 나라는 크게 기울어질 것입니다."
"그대는 죽음을 무릅쓰고 왜 감히 간하려 드는 것인가?"
"지금 대왕을 두려워하는 제후들이 철따라 바치는 공물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는 만세의 이익입니다. 그런데 대왕은 밤낮으로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고 있습니다. 장차 대국은 쳐들어올 것이고, 소국은 우리를 배반할 것입니다. 일시의 쾌락을 위해 패망을 자초하려 하니 이보다 더 큰 어리석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초장왕이 벌떡 일어섰다. "그대의 말은 사직지신의 말이다. 과인이 어찌 그대의 말을 듣지 않을 리 있겠는가? 과인은 다만 때를 기다렸을 뿐이다!"
비록 설화의 형식으로 꾸며져 있으나 사실에 기초한 일화로 보인다. 이후 음악과 여인을 멀리한 채 국사를 직접 챙기는 만기친재(萬機親裁)를 행하며 본격적인 친정(親政) 행보에 나섰다고 한다.
법을 어기거나 직무를 태만히 한 자들을 가차 없이 주살하고, 초야에 묻혀 있던 인재를 대거 발탁하고, 영윤의 권한을 분산시켜 전횡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차단했다.
기원전 606년 봄, 초장왕이 대군을 이끌고 가 융인을 친 뒤 내친 김에 지금의 섬서성 대리현 동남쪽을 흐르는 낙수(雒水)를 건너 주왕실의 경계에 이르렀다. 진나라는 초나라 군사가 주왕실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마찰을 피했음에 틀림없다.
초나라 군사가 주왕실의 경내에서 무력시위를 하자 보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주정왕이 크게 두려워했다. 곧 왕손 만(滿)을 보내 초장왕에게 물었다. "대군을 이끌고 온 뜻이 무엇이오?"
"과인은 옛날 하나라 우왕이 구정(九鼎)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은나라를 거쳐 지금 주나라에까지 전해졌다고 들었소. 사람들은 구정이 천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세상에 으뜸가는 보물이라고 하나 과인은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본 적이 없소. 그래서 한번 구경하러 왔을 뿐이오."
솥의 무게를 물었다는 뜻에서 훗날 보위를 엿본다는 의미로 전용된 문정(問鼎) 고사가 여기서 나왔다. 초장왕은 이 일로 인해 후대 사가에게 크게 비난을 받았다.
이는 문제가 있다. 초나라가 볼 때 주왕조는 이미 천명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초나라에 복속한 수많은 장강 일대의 제후국이 주나라 대신 초나라를 섬기며 초나라가 왕을 칭하는 것을 공인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초장왕은 이런 분위기에서 생장했다. 그가 진나라의 쇠미한 상황을 틈타 중원으로 진출한 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시기적으로 너무 앞섰을 뿐이다.
천하는 초장왕이 생각하는 것보다 넓었다. 중원의 제후국은 초나라의 패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곧바로 주왕실을 넘본 것은 득보다 실이 많았다. 주왕실은 비록 힘은 없었으나 아직 천자의 위엄이 남아 있었다.
당시 주왕실의 왕손 만은 초장왕의 문정에 이같이 반박했다. "옛날 하나라는 먼 곳의 나라들이 각각 그 나라의 기이한 산천을 그림으로 그려 올리고, 9주(九州)의 장관이 동을 진공하자 구정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라 마지막 왕 걸(桀) 때 구정이 은나라로 넘어갔고, 다시 은나라 마지막 왕 주(紂)가 포학하자 주왕조로 넘어왔습니다. 주나라의 덕행이 아름답고 밝으면 구정이 비록 작다 하더라도 무거워서 쉽게 옮길 수 없고, 그렇지 못하면 구정이 비록 크다 하더라도 가벼워서 쉽게 옮길 수 있습니다. 주나라의 덕이 비록 쇠미해졌다고는 하나 아직 천명이 바뀌었다는 조짐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천자가 되는 것은 덕행에 있지 구정의 대소나 경중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서는 초장왕이 부끄러운 나머지 이내 철군한 것은 물론 이후 불측(不測)한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고 기록해 놓았다. 이런 기록이 사실일까? 상황이 여의치 못해 부득이 철군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중원을 제패하지 못한 상황에서 구정을 초나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주왕실을 대신해 천하를 취하고자 했다면 굳이 구정을 옮길 이유도 없었다.
실제로 초장왕은 왕손 만에게 이같이 일갈했다. "그대는 구정을 믿지 말라. 구정은 초나라의 부러진 창만 녹일지라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고철을 녹여 얼마든지 구정을 만들 수 있다고 일갈한 것은 무력으로 천하를 장악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배포가 크고 기개가 높은 인물이었다.
구정의 대소경중을 물은 것은 주나라가 천명 운운하는 것을 가소롭게 여긴 결과다. 천명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드는 것이다. 때문에 그가 문정 직전 무력시위를 벌였던 것이다.
초장왕은 역사상 최초로 적군의 시체를 묻어주었던 군주이기도 하다. '춘추좌전'에 따르면 기원전 597년 봄에 정나라를 둘러싸고 중원의 패자 진나라와 남방의 강국 초나라가 정면으로 맞붙었다. 초나라의 대승이었다.
황혼 무렵 진나라 군사를 뒤쫓던 초나라 군사가 지금의 하남성 섬현인 필(邲) 땅에 이르렀다. 대부 오삼이 청했다. "속히 진나라 군사를 뒤쫓아 가 모조리 무찔러야 합니다."
초장왕이 반대했다. "우리는 전에 선왕 초성왕이 성복 땅에서 진문공에게 패한 이래 사직까지 치욕을 받아야만 했소. 그러나 이번 싸움으로 가히 전날의 분을 씻게 되었소. 이제 우리도 진나라와 강화할 도리를 생각해야만 하오."
더 이상 전진하지 않고 필 땅에 영채를 세웠다. 덕분에 진나라 군사는 황하를 무사히 건널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지를 빠져나온 진나라 군사들은 이미 크게 놀란 까닭에 대오를 이루지 못한 채 어지럽기 짝이 없었다. 이들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황하를 모두 건너게 되었다. 사가들은 이를 필지역(邲之役)이라 한다.
당시 정나라 군주는 초나라가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필 땅까지 갔다. 초나라 군사들을 형옹(衡雍) 땅으로 안내해 크게 잔치를 베풀고 승전을 축하했다.
이때 초나라 장수가 초장왕에게 건의했다. "대왕은 어찌해 경관(京觀)을 만들어 후세의 구경거리로 삼지 않는 것입니까?"
경관은 적의 시체를 모아 산처럼 만든 전승기념물을 말한다. 초장왕이 경관의 건립을 일언지하에 반대했다. "원래 무(武)라는 글자는 싸움을 멈추게 한다는 뜻에서 창을 뜻하는 과(戈)에 멈출 지(止)를 더해 만든 글자요. 무에는 포학을 금하고, 싸움을 그치게 하고, 큰 나라를 보유하고, 천하평정의 공을 세우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만민을 화락하게 만들고, 만물을 풍부하게 하는 등 7가지 덕이 있소. 나는 7가지 덕 가운데 단 하나도 이루지 못했소. 장차 무엇으로 후손에게 무덕(武德)을 보일 수 있겠소? 오직 선군의 사당에 승전을 고하면 그것으로 충분하오. 옛날에 영명한 왕이 불경스러운 무리를 토벌하고, 약소국을 병탄하는 불의한 자들을 죽인 뒤 그 시체 위에 흙을 덮어 경관을 만든 것이오. 이는 경관을 본보기로 삼아 간특함을 징계하고자 했던 것이오. 지금 진나라는 죄를 지은 것이 없고 백성은 충성을 다해 죽음으로써 군명을 받들고 있소. 그러니 어찌 경관을 만들 수 있겠소?"
그러고는 진나라 군사의 시체를 모두 땅에 묻어주었다. 초장왕은 황하 강변에서 하신(河神)에게 제사를 지낸 뒤 선군의 사당을 지어 승전을 고하고는 이내 회군했다.
그의 이런 모습은 제환공 및 진문공이 보여준 패자의 모습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후대인이 초장왕을 제환공과 진문공에 뒤이어 주저 없이 춘추시대의 3번째 패자로 꼽은 이유다.
초장왕은 실력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명분 면에서도 진나라를 압도했다. 초장왕은 '손자병법'이 화두로 삼고 있는 병도(兵道)를 달리 표현한 무도(武道) 내지 무덕(武德)을 가장 그럴듯하게 해석했던 인물에 해당한다.
무(武)를 두고 전쟁을 상징하는 과(戈)와 멈출 지(止)의 합성어로 파자(破字) 풀이를 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문무겸전의 진면목이 어떤 것인지 몸으로 보여주었던 셈이다.
▶️ 文(글월 문)은 ❶상형문자로 攵(문)의 본자(本字)이다. 사람 몸에 ×모양이나 心(심)자 꼴의 문신(文身)을 한 모양이다. 살갗에 바늘로 찔러 먹물이나 물감 등으로 글씨나 그림이나 무늬를 들이는 것을 문신이라 하고, 형벌로서 하는 수도 있지만 축하(祝賀)하는 표로도 하였다. 나중에 '무늬', '글자', '학문', '문화' 따위의 뜻에 쓰였다. ❷상형문자로 文자는 '글'이나 '문장'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文자는 양팔을 크게 벌린 사람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文자의 갑골문을 보면 팔을 벌리고 있는 사람의 가슴에 어떠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몸에 새긴 '문신'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文자의 본래 의미는 '몸에 새기다'였다. 그러나 文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문서'나 '서적'과 같이 글을 새겨 넣은 것과 관련된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文자가 이렇게 글자나 서적과 관계된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糸(실 사)자를 더한 紋(무늬 문)자가 '무늬'라는 뜻을 대신하게 되었다. 文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상용한자에서는 관련된 글자가 없다. 그래서 文(문)은 (1)문장(文章) (2)무(武)에 대하여 학문, 학예, 문학, 예술 등을 이르는 말 (3)어떤 명사 아래에 쓰이어 문서, 문장(글)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 (4)신발의 치수의 단위 (5)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글월, 문장(文章) ②어구(語句; 말의 마디나 구절), 글 ③글자 ④문서(文書) ⑤서적(書籍), 책 ⑥문체(文體)의 한 가지 ⑦채색(彩色), 빛깔 ⑧무늬 ⑨학문(學問)이나 예술(藝術) ⑩법도(法道), 예의(禮義) ⑪조리(條理) ⑫현상(現狀) ⑬산문(散文) ⑭결, 나뭇결 ⑮얼룩, 반점(半點) ⑯돈의 한 가지, 그 돈의 개수를 나타내는 말 ⑰신발의 치수의 단위 ⑱아름다운 외관(外觀) ⑲주문왕의 약칭(略稱) ⑳빛나다, 화려하다 ㉑아름답다, 선미(鮮美)하다 ㉒몸에 새기다 ㉓꾸미다 ㉔입묵(入墨)하다, 자자(刺字)하다 ㉕어지러워지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책 책(冊), 글 서(書), 글 장(章), 문서 적(籍),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호반 무(武), 말씀 언(言)이다. 용례로는 생각이나 느낌이나 사상 등을 글로 표현한 것을 문장(文章), 글자나 숫자 따위로 일정한 뜻을 나타낸 것을 문서(文書), 공적인 성격을 띤 문서나 서류를 문건(文件), 좋은 글을 가려서 뽑음을 문선(文選), 옛날의 제도나 문물을 아는 데에 증거로 되는 기록이나 서적을 문헌(文獻), 글의 성분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를 문맥(文脈), 글의 구절을 문구(文句), 글을 짜고 꾸미는 법칙을 문법(文法), 글을 볼 줄도 쓸 줄도 모름을 문맹(文盲), 살갗을 바늘로 찔러 먹물이나 다른 물색을 넣음 또는 그렇게 만든 몸을 문신(文身), 한 사람의 시문을 모아서 엮은 책을 문집(文集), 서재에 꼭 있어야 할 네 벗 즉 종이와 붓과 벼루와 먹을 일컫는 말을 문방사우(文房四友), 전문식과 무략을 다 갖추고 있음을 이르는 말을 문무겸전(文武兼全), 문화의 모든 산물이 서로 오고 감을 일컫는 말을 문물교류(文物交流), 남의 글이나 저술을 베껴 마치 제가 지은 것처럼 써먹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문필도적(文筆盜賊), 허물도 꾸미고 잘못도 꾸민다는 뜻으로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뉘우침도 없이 숨길 뿐 아니라 도리어 외면하고 도리어 잘난 체함을 일컫는 말을 문과식비(文過飾非), 까막눈인 사람들을 가르쳐 글 모르는 이가 없도록 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문맹퇴치(文盲退治), 문장이 썩 잘 되어서 한 점도 가필할 필요가 없을 만큼 아름다움을 이르는 말을 문불가점(文不加點), 문도 번거롭고 예도 번거롭다는 뜻으로 규칙이나 예절이나 절차 따위가 번거롭고 까다로움을 일컫는 말을 번문욕례(繁文縟禮), 가난한 사람은 농사 짓느라고 여가가 없어 다만 삼동에 학문을 닦는다는 뜻으로 자기를 겸손히 이르는 말을 삼동문사(三冬文史), 유교를 어지럽히는 도적이라는 뜻으로 교리에 어긋나는 언동으로 유교를 어지럽히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사문난적(斯文亂賊), 어떤 일을 시작하기는 쉬우나 이룬 것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창업수문(創業守文), 용과 같이 위엄 있는 모양을 하고 있으나 실은 물고기라는 뜻으로 옳은 듯하나 실제는 그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어질용문(魚質龍文) 등에 쓰인다.
▶️ 武(호반 무)는 ❶회의문자로 戈(과)와 止(지)의 합자(合字)이다. 창(戈)과 같은 무기(武器)로 병란(兵亂)을 막아 그치게(止) 한다는 뜻이 합(合)하여 호반(虎班), 굳세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武자는 '무사'나 '무예', '무인'을 뜻하는 글자이다. 武자는 戈(창 과)자와 止(발 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戈자는 낫과 같은 모양의 고대 무기를 그린 것이다. 이 무기는 방패 뒤에 숨어 적의 발목을 절단하는 용도로 쓰였다. 武자는 이렇게 창을 그린 戈자에 발을 뜻하는 止자를 더한 것으로 무사가 창을 들고 움직이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래서 武(무)는 문(文)에 대하여, 군사(軍事), 무술(武術), 무인(武人) 등의 뜻으로 ①호반(虎班; 무관武官의 반열班列) ②무인(武人) ③무사(武士), 병사(兵士) ④군대(軍隊)의 위용(威容), 무위(武威) ⑤병법(兵法), 전술(戰術) ⑥무예(武藝), 무술(武術) ⑦병장기(兵仗器; 병사들이 쓰던 온갖 무기), 무기(武器) ⑧발자취, 발자국 ⑨반보(半步), 석 자 ⑩무왕(武王)의 준말 ⑪굳세다 ⑫용맹(勇猛)스럽다, 맹렬(猛烈)하다 ⑬군사를 부리다, 지휘하다 ⑭잇다, 계승(繼承)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글월 문(文), 말씀 언(言)이다. 용례로는 전쟁에 쓰이는 총검이나 화포나 핵병기 따위 온갖 기구 또는 어떤 일을 달성하기 위한 힘이나 방패가 되는 수단을 무기(武器), 전투를 하기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어 차림 또는 어떤 일을 하기에 필요한 마음의 자세나 기술 등을 갖춤을 무장(武裝), 군사 상의 힘 또는 마구 욱대기는 힘을 무력(武力), 무예를 익히고 무도를 닦아서 전쟁에 종사하는 사람을 무사(武士), 무술에 뛰어나고 군대를 거느려 다스리는 우두머리를 무장(武將), 전쟁에서 세운 공을 무공(武功), 무인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무도(武道), 무인이 갖춘 위엄과 덕망을 무덕(武德), 무사 또는 무협의 세계를 무림(武林), 모든 군사 시설이나 장비를 무비(武備), 병법에 대한 글이나 책을 무경(武經), 무예에 익숙하고 능란함을 무간(武幹), 무력이나 억압으로 일을 해 나감을 무단(武斷), 무인으로서의 명예를 무명(武名), 군대 또는 무력의 힘을 무세(武勢), 무예에 뛰어나고 용감함을 무용(武勇), 무도를 배움을 강무(講武), 힘차고 씩씩하게 걷는 걸음을 보무(步武), 위엄 있고 씩씩함을 위무(威武), 무예를 닦음을 연무(硏武), 영특하고 용감함을 영무(英武), 무기를 보관하고 쓰지 않음을 언무(偃武), 이 세상을 떠난 별천지를 이르는 말을 무릉도원(武陵桃源), 시골에 지위 있는 사람이 백성을 억지로 내리 누르는 짓을 함 또는 그런 시골을 일컫는 말을 무단향곡(武斷鄕曲), 지배자의 학정이나 압제 따위에 대항하여 백성이 무장을 하고 일어나는 저항 운동을 일컫는 말을 무장봉기(武裝蜂起), 무인으로서의 운수가 길고 오래감을 일컫는 말을 무운장구(武運長久), 학문에 뛰어나고 무술에 뛰어남으로 모든 것에 뛰어남을 일컫는 말을 영문영무(英文英武), 문식과 무략을 모두 갖추고 있음을 이르는 말을 문무겸비(文武兼備), 걸음걸이가 씩씩하고 버젓함을 일컫는 말을 보무당당(步武堂堂), 문무가 뛰어남 또는 그러한 것을 갖춘 사람을 일컫는 말을 능문능무(能文能武), 군사를 쓸 만한 곳이나 무력을 쓸 만한 곳을 이르는 말을 용무지지(用武之地) 등에 쓰인다.
▶️ 兼(겸할 겸)은 ❶회의문자로 禾(화; 벼), 秝(력; 많은 벼)와 又(우; 손)으로 이루어졌다. 많은 벼를 손에 쥐다, 한번에 갖다, 겸하는 일 등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兼자는 '겸하다'나 '아우르다', '포용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兼자는 두 개의 禾(벼 화)자와 又(또 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兼자는 손에 여러 개의 벼를 움켜쥔 모습을 그린 것으로 한 번에 여러 일을 겸하고 있다 하여 '겸하다'나 '아우르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兼자는 모양을 달리한 兼자가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兼(겸)은 (1)두 명사(名詞) 사이에 쓰이어, 그 명사(名詞)들이 표시하는 내용이 서로 아우름을 뜻함 (2)두 가지 이상의 행위(行爲)나 동작(動作)을 아울러 함을 뜻함 (3)겸괘(謙卦) 등의 뜻으로 ①겸(兼)하다, 아우르다 ②둘러싸다 ③포용(包容)하다, 겸용(兼用)하다 ④얻다 ⑤쌓다, 포개다, 겹치다 ⑥배가 되게 하다 ⑦나란히 하다 ⑧배향(配享)하다 ⑨다하다, 진(津)하다 ⑩같다 ⑪합(合)치다 ⑫아울러, 함께 ⑬마찬가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우를 병(倂)이다. 용례로는 자기가 맡은 본디의 근무 이외에 다른 근무를 겸함을 겸근(兼勤), 본무 이외의 다른 직무를 겸함을 겸무(兼務), 둘 이상의 것을 한데 합치어 소유함을 겸병(兼倂), 여러 가지가 겸하여 갖추어져 있음을 겸비(兼備), 둘 이상의 대상을 아울러 섬김을 겸사(兼事), 겸하여 닦음 또는 겸하여 수행함을 겸수(兼修), 두 적과 싸워서 두 적을 죄다 이김을 겸승(兼勝), 두 가지 이상의 직무를 겸함을 겸임(兼任), 여러 가지를 다 갖추어 완전함을 겸전(兼全), 두 가지 이상을 겸하여 얻음을 겸득(兼得), 마주 앉아서 서로 마주 보며 식사하는 일을 겸상(兼床),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감화시켜서 착하게 함을 겸선(兼善), 자타나 친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모든 세상 사람을 똑같이 사랑함을 겸애(兼愛), 도량이 넓음을 겸용(兼容), 여러 가지 일을 다 겸하여 맡아 봄을 겸장(兼掌), 한데 아울러서 겸함을 병겸(竝兼), 그전 직무를 그대로 겸함을 잉겸(仍兼), 전례에 따라 관직을 겸함을 예겸(例兼), 한 번에 이일 저일을 겸하여 하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겸사겸사(兼事兼事), 한꺼번에 일을 겸하여 하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겸지겸지(兼之兼之), 혼자서 몇 사람을 당해 낼 만한 힘을 일컫는 말을 겸인지력(兼人之力), 혼자서 능히 몇 사람을 당해 낼 만한 용기를 이르는 말을 겸인지용(兼人之勇), 몇 가지를 겸한 위에 또 더욱 겸함을 이르는 말을 겸지우겸(兼之又兼),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면 시비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을 겸청즉명(兼聽則明) 등에 쓰인다.
▶️ 全(온전할 전)은 ❶회의문자로 㒰(전)은 본자(本字)이다. 많이 모은(入) 구슬(王, 玉) 중에서 가장 빼어나고 예쁜 구슬로 온전하다, 완전하다를 뜻한다. 여기서 모은(入)은 完(완)의 갓머리(宀; 집, 집 안)部와 같아서 모든 것을 덮는 일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全자는 ‘온전하다’나 ‘갖추어지다’, ‘흠이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全자는 入(들 입)자와 玉(옥 옥)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入자는 무언가를 끼워 맞추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들이다’라는 뜻이 있다. 全자는 이렇게 ‘들이다’라는 뜻을 가진 入자에 玉자를 결합한 것으로 옥을 매입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값비싼 옥을 사들일 때는 제품의 상태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全자에서 말하는 ‘온전하다’라는 것은 ‘흠이 없다’라는 뜻이다. 全자는 옥에 흠집이 전혀 없다는 의미에서 ‘완전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全(전)은 (1)한자(漢字)로 된 명사(名詞) 앞에 붙어 온 모든 전체(全體)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온전(穩全)하다 ②순전(純全)하다 ③무사(無事)하다 ④상처(傷處)가 없다, 흠이 없다 ⑤갖추다, 갖추어지다 ⑥온전(穩全)하게 하다 ⑦병이 낫다 ⑧완전히, 모두, 다 ⑨흠이 없는 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온몸 또는 전신을 전체(全體), 통틀어 모두를 전반(全般), 한 나라의 전체를 전국(全國), 어떤 범위의 전체를 전면(全面), 전체의 모양이나 형편을 전모(全貌), 사물의 모두를 전부(全部), 전체의 인원을 전원(全員), 액수의 전부를 전액(全額), 어떤 일의 전부를 맡는 것을 전담(全擔), 위임된 어떤 일을 처리하는 일체의 권한을 전권(全權), 편안하여 탈이나 위험성이 없음을 안전(安全), 본바탕대로 고스란히 있음을 온전(穩全), 부족이나 흠이 없음을 완전(完全), 건강하고 온전함 또는 튼튼하고 착실함을 건전(健全), 보호하여 유지함을 보전(保全), 완전하여 조금도 빠진 것이 없는 것 또는 아주 안전한 것을 만전(萬全), 온 마음과 온 힘을 다 기울임을 전심전력(全心全力), 어떤 일이나 다 알아 행하는 신불의 절대 지능을 전지전능(全知全能), 어떤 일에 모든 힘을 다 기울임을 전력투구(全力投球), 몸과 정신의 모든 것을 전신전령(全身全靈), 아주 돌보아 주지 아니함을 전불고견(全不顧見), 한 떼의 군사가 죄다 결단난다는 전군함몰(全軍陷沒)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