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주교에서 사용되는 용어중 불교에서 유래된 용어는 어떤것이 있을까?
천주(天主)'라는 용어는 가톨릭(천주교)을 상징하는 가장 핵심적인 단어이다.이 단어 역시 그리스도교가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동아시아의 불교에서 널리 쓰이던 용어였다.
서양의 '하느님(Deus)'이라는 개념을 동아시아인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하던 선교사들이, 불교 세계관과 동양 철학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신적 존재의 명칭을 빌려와 토착화시킨 대표적인 사례이다.
불교의 우주관(수미산 세계관)체계에서 '천주'는 하늘 세계의 주인(임금)'을 뜻하는 말이었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계 위로 수많은 하늘(天)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중 중심이 되는 하늘인 '도리천(三十三天)'의 왕이자 부처님의 법을 수호하는 신인 제석천(帝釋天)을 불교 경전에서는 천주(天主)'라고 불렀다.
불교 경전인 《화엄경》이나 구마라집이 번역한 《대지도론》 등을 보면, 부처님께 설법을 청하거나 하늘 세계를 다스리는 여러 하늘의 왕들을 '방방천주(方方天主)' 혹은 대천주(大天主)'라고 지칭하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16세기 말, 중국에서 선교하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신부는 서양의 유일신(Deus)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장벽에 부딪힌다. 당시 유교의 '상제(上帝)'나 '천(天)'은 인격신의 느낌이 부족했고, 일반 대중에게는 불교나 도교의 신적 개념이 더 친숙했기 때문이다.
이에 마테오 리치 신부는 불교와 고대 중국 사상에서 하늘의 최고 주재자를 뜻하던 천주(天主)라는 단어를 선택하여, 너희가 본래 알고 있던 하늘의 주인(천주)이 바로 우리가 전하는 유일한 창조주 하느님이다"라며 교리서인 《천주실의》를 저술했다.
《천주실의》가 조선시대에 이수광, 이익 등 실학자들에게 전해지면서 서학(西學)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조선의 선비들과 백성들은 불교 경전이나 전통 사상을 통해 '하늘의 주인'이라는 뜻의 '천주'라는 단어에 이미 정서적 거부감이 없었기에, 이 신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결국 이 종교를 믿는 신앙 공동체를 천주를 믿는 종교'라는 뜻의 천주교(天主敎)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한국 가톨릭(성당)에서 사용하는 한자어 용어 중에는 불교에서 유래된 용어가 많다.
과거 서양의 선교사들이 중국, 한국 일본등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할 때, 사람들이 복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미 대중에게 익숙했던 불교 용어를 차용해 번역했기 때문이다.
성당에서 자주 쓰이는 대표적인 불교 용어들을 소개한다.
성당 (聖堂): 원래 불교에서 부처님의 형상을 모셔 둔 신성한 전각을 의미하던 말이었다.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하느님을 모신 거룩한 집'이라는 뜻으로 차용되어 지금은 천주교의 예배당을 뜻하는 대표적인 단어가 되었다.
참회 (懺悔): 성당에서 죄를 뉘우칠 때 "참회합시다"라고 하거나 고해성사 전에 참회 기도를 바친다.원래 이 단어는 불교의 산스크리트어로 '크샤마(Ksama, 용서를 빌다)'를 한자로 음역한 참(懺)과, 한자어 회(悔)가 합쳐진 대표적인 불교 용어이다. 자신이 지은 업장(죄)을 부처님 앞에 고백하고 뉘우치는 의식에서 유래했다.
자비 (慈悲): 미사 중에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Kyrie eleison)"라고 끊임없이 외치는 이 단어는 불교의 핵심 덕목이다. '자(慈)'는 다른 이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비(悲)'는 다른 이의 슬픔과 고통을 덜어주는 것을 뜻하는 부처의 마음이다. 가톨릭에서는 이를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연민을 표현하는 단어로 선택해 사용하고 있다.
공덕 (功德): 가톨릭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덕', 또는 선행을 통해 쌓는 성인들의 '공덕'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는 불교에서 좋은 업(業)을 쌓아 미래에 복을 받게 되는 선행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삼위일체 (三位一體): 성부, 성자, 성령이 한 하느님이시라는 가톨릭 최고의 신비 교리이다. 본래 불교 대승불교 교리에서 부처의 세 가지 몸(법신, 보신, 화신)이 본질적으로는 하나라는 '삼신일체(三身一體)' 사상과 그 맥을 같이 하는 불교적 철학 용어에서 번역의 힌트를 얻어 정착된 용어이다.
장로 (長老): 주로 개신교에서 많이 쓰이지만 가톨릭 성경(신약성경의 원로들)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이 단어는, 불교에서 덕이 높고 나이가 많으며 수행을 오래 한 스님'을 높여 부르는 호칭이었다. 금강경의 '장로 수보리' 등이 대표적이다.
위령 미사 / 삼우(三憂) / 49재: 용어 자체의 유래라기보다는 가톨릭이 한국에 토착화되면서 불교적 예식을 수용한 사례이다. 세상을 떠난 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慰靈)' 개념과, 장례 후 사흘째 되는 날 미사를 드리는 '삼우 미사', 그리고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 드리는 위령 미사는 한국 불교의 49재와 유교적 제례 문화가 가톨릭의 위령 기도와 결합한 형태이다.
은총(恩寵), 은혜(恩惠), 기도(祈禱) 역시 그리스도교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부터 불교에서 깊이 사용되던 언어들이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막론하고 한국 그리스도교는 이 단어들을 빌려와 서양의 영성(Grace, Prayer)을 번역하는 옷으로 삼았다. 각각 불교에서 어떻게 쓰였고 성당에서는 어떻게 정착되었는지 살펴본다.
많은 분이 '은총'은 성당 용어, '은혜'는 교회 용어로 알고 계시지만, 본래 두 단어 모두 불교에서 부처님과 보살이 중생에게 베푸는 거룩한 사랑과 보살핌을 뜻하는 단어이다.
불교에는 중생이 세상에서 가장 큰 네 가지 은혜를 뜻하는 '사은(四恩)' 사상이 있다. (부모의 은혜, 중생의 은혜, 국왕의 은혜, 삼보의 은혜). 여기서 삼보(부처, 가르침, 스님)가 베푸는 자비로운 보살핌을 은혜(恩惠) 혹은 은총(恩寵)이라고 불렀다.
《대방광불화엄경》이나 《대승본생심지관경》 같은 불경을 보면, 부처님의 신령스러운 가시광선이나 가르침이 중생의 업장을 녹여주는 것을 두고 '부처님의 은혜와 은총을 입었다'고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가톨릭에서는 서양의 그라시아(Gratia, 하느님이 거저 주시는 초자연적인 도움과 사랑)'를 번역할 때, 부처님이 중생에게 조건 없이 내리는 자비의 빛과 가장 닮은 단어인 '은총'을 선택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기도'라는 단어는 불교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아주 오래된 산천신앙, 무속신앙, 그리고 불교 예식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였다.
불교에서 부처님이나 보살(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등)의 가호(加護)를 바라며 일념으로 염원하는 의식을 '기도(祈禱)' 또는 기도 발원(祈禱發願)'이라고 부른다. 지금도 전국의 사찰에 가면 '신년 기도', '입시 기도', '백일 기도'라는 안내판을 쉽게 볼 수 있다. 한자의 뜻 자체도 빌 기(祈), 목숨 걸고 빌 도(禱) 자를 써서 신령스러운 존재에게 간절히 염원한다는 불교와 전통 종교의 수행 행위였다.
라틴어 오라티오(Oratio,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이자 영적인 청원)'를 번역할 때, 한국인들에게 '절에 가서 불공드리며 간절히 비는 영적 행위' '기도'라는 표현을 전례 용어로 사용하였다.
한국 가톨릭의 전교 역사를 보면 그 답이 나옵니다. 18~19세기 조선에 천주교가 처음 전파될 때, 양반 학자들은 서양의 신학 서적을 한문으로 번역해야 했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나 '초자연적인 은총', '내세의 구원'을 설명할 수 있는 고급 종교 철학 언어는 오직 불교적 개념밖에 없었다.
만약 불교라는 거대한 사상적 자양분이 한반도에 먼저 자리를 잡고 영성적인 언어들을 성숙시켜 놓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성당에서 바치는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이라는 아름다운 기도문은 존재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서양의 신앙이 동양의 불교 언어라는 그릇을 만나 참으로 오묘하고 아름답게 피어난 결과물인 셈이다.
성탄절(聖誕節)과 찬송가(讚頌歌) 역시 어원의 뿌리를 보면 불교적 용어에 맞닿아 있다.
'성탄(聖誕)'이라는 말은 원래 불교에서 성인(부처나 보살)이 세상에 태어남'을 높여 부르던 지극히 불교적인 성어였다. 불교 경전과 문헌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을 찬탄할 때 '성탄'이라는 표현을 전통적으로 사용해 왔으며, 사찰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며 성탄절이라 칭하곤 했다.
가톨릭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Christmas)을 한자어로 번역할 때,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거룩한 분의 태어남을 가장 장엄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로 이 '성탄'을 채택했다. 여기에 명절이나 축일을 뜻하는 '절(節)'을 붙여 성탄절이 되었다. 현재는 예수님의 탄생일(12월 25일)을 뜻하는 고유명사처럼 널리 쓰이게 되었다.
찬송가 (讚頌歌)역시 불교에서 유래된 것이다. '찬송(讚頌)'은 불교 경전에서 부처님의 끝없는 공덕과 가르침을 말과 노래로 높이 기리고 찬탄하는 행위를 뜻한다.
불교에는 부처님을 찬탄하는 노래인 찬불가(讚佛歌)'나 경전의 구절을 음률에 실어 읊는 '범패(梵唄)' 문화가 고대부터 매우 발달해 있었다. 불경을 보면 "부처님의 공덕을 찬송하니..."라는 표현이 수없이 등장한다. 칭찬할 찬(讚)에 기릴 송(頌)을 쓰는 이 단어 자체가 불교적 예배 의식의 핵심이었다.
그리스도교가 들어오면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신앙의 노래(Hymn)를 번역해야 했을 때, 이미 '신성한 대상을 노래로 기린다'는 뜻으로 완벽하게 정착되어 있던 '찬송'에 '노래 가(歌)' 자를 붙여 찬송가 혹은 찬미가라는 단어로 사용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가 성당과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나 매년 기쁘게 맞이하는 성탄절이라는 단어는, 수천 년 동안 한반도에서 부처님을 기리고 그 탄생을 축하할 때 쓰던 가장 정성스럽고 거룩한 언어의 유산이었던 셈이다.
그리스도교는 새로운 종교였지만, 한국인들이 이미 마음에 품고 있던 불교적 언어라는 아름다운 그릇을 빌려 썼기에 지금처럼 우리 삶 속에 자연스럽고 깊숙하게 스며들 수 있었던 것이다.
사진은 티벳식 대예배.
ㅡ전신투지의 자세로 종신서원하는 사제들의 모습이다.
불교수행자들이 보살계를 받을때 종신토록 ㅡ이 몸이 다할때까지 계를 받들고 중생을 받들기를 서원하는 모습과 같다.
/글 사진 석현장

첫댓글 져야 꽃이지, 지지 않으면 조화이다.
조화도 세월 지나면 퇴색한다.
지지 않는 꽃은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무상이다. 제행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