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한국 관객들은 [안개 속의 풍경]을 통해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과 처음 만났다. 그것은 한 편의 서정시였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안개 속을 헤치며 길을 떠나는 어린 남매의 모습들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우리들의 망막 속에서 어른거린다. 영화의 엔딩 씬은, 안개가 걷히고 나무 한 그루가 국경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남매는 나무를 향하여 달려간다. 안개 걷히기 전 총소리가 들렸지만 우리들은 믿고 싶어진다. 그들이 나무에 안기는 것처럼 아버지를 만났을 것이라고. 과연 그들은 아버지를 만났을까? 아니, 아버지라라는 존재가 정말 실재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런 의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통과의례적 여행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이며, 길 위에서 깨닫게 되는 삶의 다양한 형태들이다. 그들은 영화의 끝 부분에서, 영화가 시작할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모한다. [율리시즈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영화 탄생 초창기에 만들어진 필름을 찾기 위해 전쟁의 한 복판을 헤쳐 나가는 영화감독 A는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있는 길 위를 헤매고 다닌다. 이렇게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모든 인물들은 길 위에 있다. 그들은 절대 한 군데 정착하거나, 선형적 시간의 흐름에 지속적으로 몸을 맡기지 않는다.
1998년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영원과 하루]에는,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모든 영화미학이 집대성되어 있다. 침묵의 3부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안개 속의 풍경](신의 침묵), [비키퍼](사랑의 침묵),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역사의 침묵)에서 볼 수 있는 침묵의 언어들은 물론, 그리스 현대사의 비극을 다룬 [유랑극단]이나 보스니아 내전을 배경으로 한 [율리시즈의 시선], 20세기 현대사의 비극을 다룬 [울부짖는 초원]의 웅장하고 장엄한 서사시적 리듬이 표현되어 있다.
테오 앙겔로폴로스의 영화는 항상 햇빛을 피해 숨는다. 그의 영화는 습습한 안개가 낀 언덕이나 강, 혹은 위험한 파도가 출렁이는 해변에서 이루어진다. 그의 인물들이 즐겨 입는 옷은 검은 색이다. 안개 낀 도시 테살로니카에서 죽음을 앞둔 늙은 시인 알렉산더가 자신의 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하루를 추억하는 [영원과 하루]는,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장엄한 서정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유장한 트랙킹 쇼트는, 시간적 공간적 장벽을 극복하고 과거와 현재를, 현실과 환상을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왜 인생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일까? 그 인생의 가장 빛나는 하루는 언제였을까? 불멸의 시어를 찾아 떠난 생의 마지막 여행에서 30년전 아내가 보낸 편지를 발견한 알렉산더는 사랑이 충만했던 과거로 들어간다. 바닷가 태양의 환한 속살 아래서 눈부시게 흰 옷을 입은 친구와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진행된 딸의 생일파티. 경쾌한 웃음소리와 투명한 사랑으로 가득 찼던 그때가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왜 그때는 그것을 몰랐을까? 회색빛 절망의 안개 속에서 돌연 모습을 드러내는 과거의 그 눈부신 하루는, 너무나 찬란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불꽃같은 삶의 광휘는 곧 소멸해 갈 것임을. 그리고 긴 어둠과 습기가 우리를 지배할 것임을. 마치 우리의 생이 그런 것처럼.
밀란 쿤데라가 [불멸]에서 찾고자 했던 유한한 생의 무한한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알렉산더는 자신이 평생을 바쳐 찾고자 했던 불멸의 시어가 곧 사랑이었음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낸 그 짧은 시간이었음을, 따라서 그것들은 결국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영원으로 이어지는 하루의 충만함은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날과 똑같은 의미 없는 날들의 연속에 불과하다.
멀리서 인물들을 바라보는 익스트림 롱 쇼트에서, 표정의 변화까지 섬세하게 드러나는 극단적인 클로즈업 쇼트까지, 끊지 않고 하나의 쇼트로 이어지는 유장한 영화적 리듬은, 단일 쇼트가 하나의 시퀀스를 형성하는 쁠랑 세깡스의 정수를 보여준다. 공간과 시간을 짧게 자르고 분할하면서 감독의 세계관을 창조하는데 역동적으로 기여하는 숏컷과 몽타주 편집 대신, 그는 쁠랑 세캉스를 이용하여 인물과 사건을 객관적으로 드러내고 관객들이 영화의 내부로 들어오도록 이끌어준다. 그래서 그가 창조한 인물들은 이 지상에 거주하는 현실 속의 인물이 되어 우리 옆에 실제로 존재한다.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 속에는 신화와 철학과 시가 행복하게 동거하고 있다. 그가 창조한 독창적 형식 속에는, 삶의 본질적 질문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진정한 작가정신이 살아 있다. 우리의 삶은 여전히 안개 속에 머물고 있지만, 그러나 햇빛 찬란한 날들을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행복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