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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과도 같은 늦깎이 사춘기가 끝난 후 그는 어렵사리 호주행을 결심했습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도, 여권 발급도 수월하지 않은 9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미국은 가기 어려웠고, 유럽은 꿈꿀 수조차 없던 선택권에서 그는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당시 그는 호주에서 소위 ‘문화 충격’을 받게 되었는데요. 처음 거리에 즐비한 일본 자동차를 보고 놀랐고, 오전 7시에 시작해 오후 4시면 끝나는 호주의 근무 여건에 두 번 놀랐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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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는 내내 ‘가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했던 박원선 법인장.
가치Value 있는 것을 쫓는 그의 생각은 1년 간 호주에서 머물고 난 93년 무렵,
한국을 대표하는 LG전자의 일원이 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대부분 대학생이 29세를 인생의 전성기로 꼽는다는 걸 알고 계신가요?
취업 후 경제적이나 심적으로 안정되는 시기로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취업만 되면’이란 말이 대학생 사이에선 모든 인생의 문제가 풀릴 단초처럼 여겨지곤 하죠.
박원선 법인장이 입사한 이후는 어땠을까요. 입사 4년 차가 되던 해, 카자흐스탄 주재원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겁도 없이 2개의 가방만 달랑 들고 찾아간 공항에서 그는 예상치 못한 광경에 당황스러웠다고 했는데요.
공항에 불이 안 들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도둑 소굴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죠.
심지어 공항 화장실에는 문도, 변기 뚜껑도 없어, 사람들은 신문으로 얼굴 가린 채, 볼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당황스러움은 현지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요. 깨지고 부딪히는 연속이었죠.
영하 30도씩 떨어지는 추운 날씨에다가 맡은 업무마저 어려웠습니다.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도 아팠다고 그는 전했습니다. 설상가상...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계속 채찍질했습니다. ‘성공하자.’라는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버텼습니다. 지금 하는 일이 하나의 과정이라 여기며, 결과에 집착하지 않으려 노력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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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오스트리아 법인은 현재 프리미엄 딜러Premium Dealer에 진입했습니다. 고가 프리미엄 제품만을 취급하는 독일 전자 브랜드 뢰베의 갤러리LOEWE Gallery에도 21개 매장을 설치했죠. 과거 국내 대기업이 이 뢰베에 OEM을 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여겼던 시절에 비하면, 매우 괄목할 만한 결과입니다. |
그럼에도 아직 박원선 법인장에게는 ‘LG의 브랜드 강화’라는 과제가 안겨져 있습니다.
물론 LG가 국제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은 것은 확실하지만 여전히 유럽에서, 특히 보수적인 독일어권에서는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죠.
어려울 때마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하나라고 합니다. 과연 이 판단과 결정이 정의에 부합하는가?
언뜻 보면 ‘정의’라는 단어는 매우 거창하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한 정의는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정의는 자신, 타인, 그리고 사회를 향한 진지한 성찰과 배려일 테니까요.
*이 포스트는 'LG럽젠'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