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얀센 아태지역 마케팅총괄 부사장으로 있던 김옥연 씨가 말레이시아얀센 사장에 임명됐을 때 얀센 내부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한국얀센 출신 중 해외로 진출한 다섯 번째 CEO다. 현재 얀센 아태지역에는 김 사장을 포함해 박제화 대만ㆍ홍콩얀센 총괄사장, 최태홍 한국얀센 사장, 김상진 홍콩얀센 사장 등 4명의 CEO가 포진해 있다. 가히 ‘한국인의 침공’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한국얀센은 1983년 미국 존슨앤드존슨의 제약부문 계열사 얀센-실락 한국 법인으로 출범한 회사. 치료제 중심의 전문 의약품 생산업체이지만 우리에게는 진통제 타이레놀과 비듬 치료제 니조랄로 친숙한 기업이다. 김옥연 말레이시아얀센 대표는 1992년 평사원으로 입사해 서른아홉 나이에 CEO 자리에 올랐다. 부임지인 말레이시아로 떠나기 일주일 전 김 사장을 한국얀센 사무실에서 만났다. 푸근한 인상의 그에게 고속 승진의 비결을 묻자 “창의력과 도전 정신을 고취시키는 한국얀센의 독특한 기업문화 덕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얀센 직원들의 마케팅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한국얀센의 마케팅 전략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세계 각지의 얀센 직원들이 몰려들 정도죠. 경영은 물론 마케팅에도 문외한이던 제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한국얀센 선배들로부터 전수받은 다양한 스킬과 노하우 덕분이에요.”
김옥연 사장은 서울대 약대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국립안전연구원(현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특정 유전자를 복제하고, 유전자 구조를 밝히는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는 한국얀센에 입사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엊그제 일인 양 들려줬다.
그가 당시만 해도 생소하던 한국얀센에 입사 지원 서류를 낸 것은 1992년 10월. 국립안전연구원에서 일한 지 10개월쯤 되었을 때다. 이직을 고민할 때 제약업계에 있던 친구가 한국얀센에서 직원을 뽑는다는 얘기를 전해 지원하게 됐다고 한다.
“솔직히 입사 지원 서류를 낼 때만 해도 대충 지금껏 내가 해온 연구 파트 업무를 맡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서류심사를 거쳐 면접시험을 보러 갔는데, 마케팅 담당 실무진이 느닷없이 ‘마케팅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지더군요. 연구실에서 실험용 쥐와 동거하다시피 해온 제가 받을 질문이 아니라고 생각해 ‘모른다’고 답했죠. 그때부터 내 경력과 무관한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쏟아지는데, 자존심이 상하다 못해 화가 나더군요.”
면접관들은 중ㆍ고등학교를 전교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마친 그의 자부심을 깔아뭉개기 위해 나온 전사들 같았다.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쥐 한 마리를 둘러싸고 궁지로 모는 압박면접이 몇 시간이나 계속됐다. 그 자리에서는 오기가 발동해 “연구 전문 인력을 생소한 마케팅 분야에 배치하는 건 업무적으로 비효율적이지 않겠느냐”며 발톱을 세웠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그동안 자신이 ‘표본실의 청개구리’마냥 실험실에 갇혀 살아온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분하고 억울했는데, 곰곰 생각해 보니 저한테도 문제가 많더라고요. 20년 넘게 살았는데도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내 주장만 관철하려고 했으니 당연히 떨어졌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렇게 단념하고 있는데 일주일쯤 후 2차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보가 왔습니다.”
이번에는 5명의 임원을 상대로 무려 3시간 동안이나 면접을 봤다. 그렇게 해서 입사하고 보니 합격자 중 다수는 면접 현장에서 분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쏟은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한국얀센은 지금도 면접시험이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가능성이 있는 지원자일수록 면접 시간이 길어지고,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사람만이 합격 테이프를 끊는다고 한다.
얀센 아태지역 마케팅총괄 부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얀센 동료들과 함께. |
한번 잡은 일은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러다 보니 일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로 충만한 직원들이 모이게 되더군요. 이들은 항상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성격이라 가만히 두어도 일을 찾아서 하죠.”
입사 후 그는 줄곧 마케팅 부서에서 일해 왔다. 낯선 업무를 익히느라 처음 3년 동안은 고생했지만 분석적이면서도 창의적인 분야여서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성과가 뛰어난 직원들만 엄선해 보내 주는 필리핀 매니지먼트 스쿨에서 6주간 교육도 받았고, 1996년부터 3년 동안 얀센의 국제본부가 있는 벨기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한국얀센의 한 직원에 따르면 그는 회사에서 보내는 해외 연수 때마다 수석을 차지하곤 했다고 한다.
“특별히 재주가 뛰어난 것은 아닙니다. 평소 사내에서 직원들과 나눈 이야기나 일하면서 얻은 경험을 나름대로 정리하고 분석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왔어요. 다른 어느 국가에도 없는 한국얀센만의 독특한 마케팅 성공 사례 덕을 본 것이죠.”
그는 한국얀센 입사 후 가장 기억에 남는 마케팅 성공 사례로 2000년 4월 국내에 발매한 후 위궤양 치료제 분야에서 처방 1위 품목으로 등극한 파리에트 건을 꼽았다. 당시 한국얀센은 총매출의 30~40%를 차지하고 있던 위장 운동 개선제 프레팔시드가 FDA(미식품의약안전청)로부터 부작용이 있다는 이유로 퇴출됨에 따라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처해 있었다. 회사에 감원 바람이 불었을 정도. 이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회사가 내놓은 제품이 바로 작용기전이 프레팔시드와 유사한 파리에트였다.
“파리에트는 프레팔시드보다 먼저 개발됐지만 프레팔시드의 위세에 묻혀 1년에 고작 5000만 원 정도 매출을 올리던 제품이었어요. 다른 제약사에서 나온 제품들이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제품으로 프레팔시드의 빈자리를 메우기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죠. 그런데도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마케팅 전략을 짰고, 곧바로 영업에 돌입한 결과 출시 1년 만에 1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제품으로 만들었습니다.”
마케팅의 기본은 작은 차이를 극대화하는 것. 미묘한 차이지만 다른 유사 제품들에 비해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약효는 빠르다는 점을 내세운 것이 성공 포인트였다고 한다. 이 약의 성공으로 한국얀센은 구조조정 없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는 세계 제약업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일로 당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도 성공 사례로 소개되었다.
“한국얀센의 숨은 경쟁력은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한번 손에 잡은 일은 끝내고야 마는 우리 국민성에 기초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한국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이제 말레이시아에 적용할 차례. 그는 “헬스 케어 시스템이 없어 몇몇 전문의약품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말레이시아 시장에 일반 의약품을 도입, 시장 규모를 키우는 것이 당장의 과제”라며 “말레이시아얀센의 성공 사례가 세계 제약업계에서 오래도록 회자되게끔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20대 후반 일과 결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일을 택했다는 김옥연 사장. 미혼인 그에게 “행복하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두 가지 다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는 슈퍼우먼은 현실에서 흔치 않죠. 그걸 알기에 저는 일을 택했고, 먼 미래보다는 현재에 충실하자는 게 삶의 원칙이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