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태어난 곳, 보성군 문덕면 양동리 811번지, 오른 쪽 대밭 사이 약간 높이 있는 집>
걸어서 당신께 (3) / 봄이 오면!
· 걸었던 거리 538Km
· 오늘 걸은 거리 24Km
· 걸은 총 거리 562Km
· 오늘 걸은 코스 : 겸백 ▷득량수력발전소 ▷군두사거리 ▷득량역 ▷예당 ▷조성역
· 걸린 시간 : 5:00
· 2016.11.07(월)
겸백으로 차를 모는 중간에 왠지 산소에 들러 가고 싶다. 아버지·할머니·할아버지와 선대의 묘소에 절하고, 주모경을 바친 후 내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을 건너다 본다. 이 중 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만 살아 생전 함께 했던 분이다. 그 외 선조님들은 어떤 분인지 사진이나 초상화 조차 없었기에 그저 상상으로만 그려 볼 뿐이다. 나의 살과 피를 전해 주신 소중하신 분들과 시간을 초월하여 교감을 나누면서 저 건너 편 내동 마을, 오른 쪽 대밭 사이의 높다랗게 자리잡은 나의 옛집에서부터, 내가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4Km를 책보 매고 유소년 시절의 뼈를 키우며 오가던 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었던 말치부락까지 한 눈으로 일별하며 흘러간 시간들을 복원해 본다.

<동지산 아래, 왼쪽 전봇대 끝 야산에 선산이 자리잡고 있다.>
겸백 농협창고 앞에 차량을 주차하고 출발이다. 건너 편에 <초암산 등산로 입구> 안내 표지가 화살표와 함께 조그맣게 골목을 향해 붙어 있다. 내년 봄에도 내가 이 우주에 발 붙이고 숨쉬며 평화를 호흡하며 지낼 수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최근 내가 걸었던 이틀 길과 오늘 길을 포함하여 3일 간의 여정을 함께 드라이브하면서 꽃잎 휘날리는 가도를 스치며 함께 웃고, 초암산의 철쭉 산행을 해보고 싶다. 4월 초의 벚꽃, 5월 둘째 주의 초암산 철쭉을 상상으로 그려보면서 득량을 향하여 걷는다. 득량을 막 빠져 나가는데 오른 쪽 천변 건너편의 소나무밭이 눈을 끈다. 저 솔 숲도 겸백의 휴양지인듯 싶다. 거닐어보고 싶다. 하지만 내 마음은 득량을 향해 내닫고 있다.

<겸백 소나무숲 휴양지, 옆으로 강이 흘러 봄 여름이면 쉴만 하겠다.>
조금 더 걷자 왼쪽으로 사곡마을 입구가 나온다. 이 마을로 넘어가면 득량을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나는 오늘 지도를 가져 오지 않아 안전하게 자동차 도로를 따라 걷는다. 내고향 근처라고 가볍게 걷고 싶어 그냥 왔는데, 도보 여행에서 5만분의 1 지도는 필수임을 오늘 다시 깨닫는다. 벚나무 터널을 지나 고개를 넘는다.
내리막길을 걷노라니 오른 쪽으로 묘동마을 입구이다. 이내 왼쪽으로 제법 큰 마을이 나온다. 대겸마을이다. 남양삼거리에 이른다. 벌교 보성 간 4차선 도로가 가로지르고 있다. 단호박집하창고 오른 쪽으로 자리하고 있다. 4차선 도로를 오른 쪽으로 끼고 나란히 걷는다. 신암마을이 나온다. 큰 도로아래를 통과해야 볼 수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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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마을길로 들어섰더라면 이 곳이 나오는 건데!>

<가을 빛!>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가 막힌 곳에서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으로 사곡마을로 통하는 길이다. 아! 내가 이 지름길을 두고 빙 에둘러 왔구나. 오른 쪽으로 방향을 트니 수남리를 옆에 두고 득량·회천 방향이다. 오른 쪽으로 깊이 들어간 수남리는 산촌생태마을인가 보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순천시 송광면 후곡리도 이런 산촌생태마을로 지정되어 있다. 친환경 농법과 유기농법으로 주암호의 수질을 보호하고, 우리의 미래 먹거리를 상업적이 아닌 생태적으로 유익한 방향으로 전환해가는 이런 시범 마을이 모든 자연부락으로 퍼져 이런 생태마을로 변화될 수 있다면 좋겠다. 지구의 미래에 대해, 인간의 먹거리에 대해 상업주의를 벗어나 지금보다 더 생태적 환경을 우선시 하는 그런 미래를 그려보며 걷는다.

<겸백에서 득량으로>
4차선 도로 밑을 통과하여 다시 호젓한 언덕길이다. 그래도 간혹 지나는 자동차가 달려들면 길을 비켜섰다가 걷곤 한다. 왼쪽으로 오도 마을을 두고 고갯마루에 이르자 겸백면과 득량면의 경계가 나온다. 반갑다. 내리막길을 걷는다. 노래를 부르며 걷는다. /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 아 - - - - - - - 가을인-가봐! / 가랑잎이 우수수 떨어지면은 / 살며시 가을이 찾아 오-나봐! / 나운영 곡 '아! 가을인가' 2절 가사다. 오늘 내가 걷는 이 길에서 부르라고 작곡한 노랫말 같다. 길 양 옆으로 서 있는 벚나무 잎이 단풍들어 하나 둘 바람에 날리는 길, 나홀로 걸으며 부르는 노래! 아! 정녕 가을이다. 내 인생의 깊은 가을에 가을을 노래하며 나 홀로 가을길을 걷는다.

<득량수력발전소>
내리막길을 노래 부르며 내려가노라니 오른 쪽으로 득량수력발전소다. 조금더 순천이 45Km, 목포가 101Km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앞으로 나아가니 군두사거리가 나온다. 4차선 도로이다. 벌교 보성을 달리는 차들이 신호 대기 중이다. 군머리 마을을 왼쪽에 두고, 신호를 건너자 돼지국밥집이 보인다. 배가 고파 한그릇 사먹고 가고 싶지만 참는다. 배낭에 든 도시락을 생각해서다. 이제 득량면소재지를 향해 걷는다. 차량들이 더 늘어 걷기 불편하다. 왼쪽에 펼쳐진 농로를 택한다. 득량으로 들어가는 도로를 오른 쪽에 두고 나란히 걷는다.

<군두 사거리>
내가 걷고 있는 이 도로는 845번 지방도로이다. 남쪽 끝 회천을 향하여 종으로 뻗어가고 있는 이 도로에서 벗어나 들판길을 걸으며 멀리 득량면 소재지와 그 뒤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산그림자를 안고 서 있는 산이 제법 위엄을 드러낸다. 득량을 두르고 서 있는 오봉산이다. 오봉사, 오봉빌라 이런 글과 간판들이 그 산이 오봉산임을 알려 준다. 억새 꽃과 들판 여기저기 볏짚을 태우는 연기, 그리고 희미하지만 내게로 가까이 다가오는 득량, 들길을 걸으면서 남녘 농촌의 가을 들판을 호흡한다. 멀리서 바닷내음도 내게로 불어오는 것 같다. 득량으로 들어선다. 입구에 중흥동마을 돌간판이 서있다. 광주의 중흥동과 한자도 같은 것 같다. 서로 자매결연을 맺으면 좋은 인연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걷는다. 득량반점 간판이 보인다. 배가 고프다. 자장면 한 그릇 생각이 난다. 또 배낭 속의 도시락 생각에 참고 걷는다.

<오른 쪽으로 득량과 오봉산이 보인다>
나는 늘 그렇게 참고 살아왔다. 미래의 목표를 두고 현실을 억제하며 살아온 인생이었다. 이제 직장도 마쳤으니 자유인으로 살아가면 좋을텐데 옛 관성이 남아 불쑥불쑥 나를 지배한다. 그깟 자장면 한 그릇 후루룩 뚝딱 맛있게 먹고 걸었으면 좋으련만. 면사무소앞을 지난다. 건물이 꽤 현대적이다. 득량역을 향해 걷는다. 건물들을 추억의 7080거리로 리모델링하여 옛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으로 걷는다. 得糧, 득량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득량만 선소船所에서 무기와 병선을 만들고, 군량미를 조달하여 전란을 승리로 이끈데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자랑스러운 이름이다. 이순신 장군 같은 영웅이 나타나 요즈음 우리나라의 사악하고, 거짓된 무리들을 모조리 휩쓸어 바다에 쳐 넣어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득량역 앞을 지난다. 피식 혼자 웃음을 짓는다. 안되지, 안돼! 그러면 또 쿠데타를 보게 될 것 아닌가! 모든 것은 순리적으로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풀리는 것이 좋지. 암, 반드시 그렇게 풀려야지!

<득량역, 그리고 오봉산>
득량을 빠져 나와 청암 쪽으로 수로를 따라 걷는다. 한참을 걸으며 또 뒤돌아보면 오봉산과 득량이 점점 멀어지면서 한편으로는 이내 왼쪽으로 돌아서면 펼쳐질 풍경에 대한 기대감으로 걸음을 서두른다. 농로길을 계속 가자니 길이 막힌다. 철로가 막아선다. 할 수 없이 철길을 넘어 수로를 건넌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오른 쪽으로는 끝간 데 없는 가을 평야가 펼쳐지고 왼쪽으로는 곧게 뻗은 수로를 따라 아스팔트 길이 나를 안내 한다. 가을 들녘은 추수 뒤 마무리로 여기 저기 연기가 피어 오르고 트랙터 들이 보리 파종을 위해 부지런 논을 갈기도 한다. 저멀리 평야 끝은 필시 바다일 것이다. 지나 온 길의 남쪽 끝은 회천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의 남쪽 끝은 필시 고흥반도를 따라 바다가 펼쳐질 터이다.

<조성평야, 예당평야?>
도로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면서 왼쪽으로 여러 마을을 지난다. 나의 왼쪽엔 수로와 그 건너 마을이 연이어 나타났다 사라지고, 또 그 마을 저만큼 뒤로는 아마 철길이 순천 쪽으로 뻗어 있을 것이다. 배가 고프다. 돼지국밥도, 자장면도 참아내야만 했던 그 도시락을 먹어야 한다. 금평 마을 정자에서 늦은 점심을 시작한다. 맛있다. 신 김치에 현미찰밥, 맛있다. 신 김치 반찬과 미역줄기 무침에 먹는 소박한 식사였지만, 유보된 그 음식들의 맛을 모두 합친 만큼의 별미였고 보상이었다. 다시 기운이 난다. 또 걷는다. 왼쪽으로 예당산과 그 밑자락에 예당이 보인다. 앞으로 나아간다. 또 많은 마을들을 지나친다. 오른 쪽으로는 여전히 가없는 가을 들판이 날 따라 온다.

<내가 지나온 들판>
내가 지나가는 이 길은 마을 사람들의 타작 마당이다. 가을 콩을 거두어 깔아 놓고 두들기는 할머니들이 간간이 눈에 띈다. 노동하는 사람들 옆을 베낭 메고 하릴없이 떠가는 나그네 마냥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수고하십니다!"하고 인사를 건넨다. 나이들어 가면서 끝없는 평야를 바라보며 콩 타작을 하고 있는 이들을 마주하고 지나치면서 내 마음에 똬리를 틀고 있는 외로움 만큼의 쓸쓸함을 그들의 표정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나이 들어 가면서 조금도 외롭지 않은 사람 어디 있을까? 왼 손에 쥔 1단짜리 묵주를 헤아리며 나는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을 위하여 성모송을 바치며 걷는다. 한 사람에게 1단 씩. 그런데 전화 벨이 울린다. 마리아 아욱실리아이다. 대부님! 제 생일 잊으셨어요? 아 너로구나! 그래 깜빡 했네! 미안하다. 그런데 나 조금 전에 널 위해 묵주기도 1단 했는데! 반갑다. 잘 지내지? 저 마음이 아파 학교에 안 나가고 있어요! 나는 또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 서로를 위해 기도하자고 했다. 또 걷는다.

<예당에서 조성으로 가는 농로길>
저 멀리 농로의 끝이 보이는 곳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오늘의 목적지 조성이다. 득량을 벗어나 강골전통마을·금평마을(오봉3구)·초암·보흥·상천·한포·동곡·신동·청화동·덕정·대흥·용머리·신기마을을 지나왔다. 그동안 내내 오른 쪽으로는 가을 들판이 따라왔다. 신기마을을 지나면서 아주머니 한 분에게 길을 묻는다. 마침 일을 하다 간식을 먹던 중이었나 보다. 곳감 두 개와 밀감 세 알을 건네 준다. 나그네는 조그만 일에도 감격한다. 홀로 걸으면서 먹었던 곳 감 두 알의 맛은 꿀맛이었다. 철길을 건너 4차선 도로와 나란히 걷는다. 조성이 코 앞이다.

<철길을 건너 조성으로 들어선다.>
오늘 5시간을 걸었다. 이제 다음엔 이 조성에서 벌교까지 걸을 계획이다. 17Km. 그러나 도보 여로는 몇 Km가 될지 모른다. 서둘러 겸백으로 돌아와 광주로 향한다. 저녁 미사에 참여해야 한다. 시국 기도회 미사다. 본당 신부님이 맥주 사주시겠다고 해서가 아니라 왠지 참석하고 싶다. 부지런히 차를 몰아 샤워를 하고 남동성당으로 향한다. 시몬 주교님께서 미사를 집전하신다. 청소년들에게 하신 말씀을 들려 준다. 최OO이 잘 한 것도 있다는 것이다. 이 땅의 청소년들 가슴에 불을 질러 주었다는 것이다. 사제와 수녀님들이 앞장 서겠다고 하셨다. 미사가 끝나고 광주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이신 이영선 골롬바노 신부님이 성명서를 낭독했다. 이런 성명서를 낭독할 필요가 없는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성 입구>
신부님들이 앞장서고 그 뒤를 수녀님들이 촛불을 들고 뒤따른다. 성당을 나서 동구청 로타리를 거쳐 아시아 문화전당으로 향한다. 'OOO처벌!' 'OOO당 해체!' 손팻말과 촛불을 들고 일반인들은 수녀님들 뒤를 따라 구호를 외치며 구 도청 앞 광장까지 행진한다. '내가 바라는 나라'를 주제로 광장 토론회가 열린다. 조영대 신부님이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노래하고 여러 젊은이들이 마이크를 잡고 시국을 토로한다. 나는 오늘 걸었던 피로감이 엄습해 손팻말과 성명서 용지를 소중하게 껴안고 집으로 향한다.

<옛 도청 앞에서의 광장 토론회> <다음까페 마음의 고향, 후곡>